솔직히 말해서, 엑시트가 처음에 괜찮은데?라는 얘기가 나왔을때. 저는 반신반의 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영화를 재밌게 보고난 지금도, 포스터를 보면 이거 별로일거 같은데.라는 얘기를 할 수도 있을거 같아요. 근데 일단 저는 틀렸습니다. 그거도 제대로요.
엑시트를 보다가 엔딩에 승환옹의 <슈퍼 히어로>가 나올때(이번에 새로 편곡해서 싱글이 나왔더라고요.) 깨달았습니다. '아 이거 슈퍼 히어로물이구나' 그리고 엔딩 크레딧에서 오프닝에 스쳐지나간 이름이 다시 떠오르면서 저는 무릎을 탁 쳤습니다. '아 이거 류승완 감독 스타일인거 같은데?'
저는 제 기준에서 되게 오래된 영화긴 하지만 <아라한 장풍 대작전>을 좋아합니다. 약간 싼티나고 촌스러운 느낌을 극장이 아닌 한참 후의 비디오였나 디비디에서 받긴 했지만요. 류승완 감독 특유의 소시민 내지 루저 히어로와 도심을 배경으로 일어나는 액션 장면을 좋아합니다.
저는 엑시트를 보면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촌스럽고 유치하지는 않은 대신, 도심 한복판을 액션 영화의 재료로 써먹는 측면과 청춘 (그리고 반쯤 루저) 히어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측면에서요.
엑시트의 가장 강력한 부분은 철저하게 장르에 집중했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영화는 재난을 배경으로 한 '액션'영화라고 생각해요. 도심 배경의 클라이밍 영화면서, 여기에 유독 가스라는 시간 제한까지 걸어놓고 있습니다. (유독 가스의 짙은 안개는 배경을 가려주는 제작비 세이브도 같이 해줍니다.) 포스터는 코미디 영화 같지만 실상은 '웃픈' 개그에 가까워요. 나도 살고 싶은데, 남아야하는 부분이나 뭐 좀 잘해보고 싶은데 맘대로 안되는 장면이나 웃기긴 한데 참 웃픈류의 개그에 가깝습니다.
기본적으로 다수의 캐릭터의 군상극으로 흐를 수 밖에 없는 재난영화와 달리, 조금은 이른 시간에 나머지 캐릭터를 지워버리고 철저하게 두 주인공의 탈출과 클라이밍에 집중한 구성이 강력하게 밀고 나가는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 액션씬에서 되게 좋았던 점이 직진성과 구불구불한 클라이밍 장면을 적절하게 섞었던 부분이 아닐까 싶어요. 복기해보면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내달리는' 장면은 거의 세 씬이 끝이거든요. 안개 속, 육교 위, 클라이맥스 직전. 근데 영화를 보고 나면 기억에 남는게 강렬한 '직진성'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가 깔끔하게 앞으로 내달리는류의 영화이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들더라구요. 무시무시하게 직진하는 영화라서 그런가. 싶은 느낌의.
여름용 영화로 충분히 차고 넘치지만 굳이, 굳이 트집을 잡자면 아무래도 영화가 다루는 재난의 크기와 실제로 전달하는 재난의 크기가 일치하진 않는다는 점이겠죠. 어쩌면 그 강력하게 묘사된 가스 자체가 주인공들에게 가까울 수록 위력이 약해지는 느낌도 있긴 하구요. 근데, 솔직히 말해서 그 안개 속에서 울리는 휴대폰만으로도 재난의 크기가 충분히 전달이 되는거 같긴 해요. 고통받는 피해자 없이도 전화벨 소리 만으로 충분히 인상적인 묘사라고 생각하긴 해요.
루저 스타일의 슈퍼 히어로가 등장하는 강렬한 액션 영화로 되게 보면서 즐겁다.라는 생각이 되게 많이 들더라고요. 클리프행어에 시간 제한까지 걸려있는데, 이걸 영리하게 우회하거나 돌파하는 장면 하나하나가 되게 즐거웠어요. 코미디, 재난 영화라고 접근하기 보단 묘수풀이?식의 액션영화로 재밌게 즐길만한 영화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p.s. 아 조정석은 그래도 클라이밍이라도 했는데.. 나는 스펙이... 크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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