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9/07/04 20:19:27
Name chldkrdmlwodkd
Subject [일반] 도스토예프스키를 긍정하게 된 소설 '악령'
사실 도스토예프스키는 톨스토이보다 덜 좋아하는 소설가였습니다. 남들이 모두 톨스토이보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더 좋다고 해도 저한테는 여전히 톨스토이가 최고의 소설가였습니다. 예전 글에서도 적었지만 '죄와 벌','지하로부터의 수기'등은 재미있게 읽었어도 그의 최고작이라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저한테는 그렇게 큰 감흥으로 다가오지 않았거든요.

그러던 중에 그의 또다른 대표작이라는 '악령'이라는 책을 읽게 됐습니다. 사실 읽는 내내 가독성이 매우 떨어지고 시점이 자주 바뀌어서 진도가 매우 느리게 나갑니다. 그런데 참고 읽어나가니까 의외로 재미있습니다. 저한테는 '죄와 벌'보다 더 강렬하게 다가왔습니다. 주인공인 스타보로긴은 그야말로 '무'에 가장 가까운 인물로 주변 인물들은 물론 자신도 파멸시키려고 합니다. 조연인 키릴로프는 죽음을 통해 신이 된다는 사상을 갖고 있어서 이걸 지키려고 자살합니다. 전체 줄거리는 사회주의 사상을 가진 조직이 세상을 바꿔보려다 파멸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요. 제가 이걸 좋아하게 된 건 인물들이 회개하지 않고 끝까지 가서 파멸한다는 것 때문입니다.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마지막에 암시이긴 하지만 뭔가 뉘우칠 듯한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악령'의 인물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스타보로긴과  키릴로프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인물들이 죽거나 파멸합니다. 한번쯤 뉘우칠 기색을 보일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이게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악인이 반성한다기보다는 끝까지 자신의 믿음을 추구하다 파멸하는 게 시간이 지날수록 좋아지네요.

톨스토이 작가만큼 좋아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왜 도스토예프스키에 열광하는지는 알 거 같은 작품 '악령'이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이 사이트에 적은 글 중 가장 긴 글일 거 같은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 모두 수고하셨고 내일 불금도 잘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담배상품권
19/07/04 20:33
수정 아이콘
저도 도스토옙스키보다는 톨스토이를 더 좋아합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제가 무덤으로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읽어볼 소설이 아닐까 싶어요.
그런데도 가난한 사람들은 이반 일리치의 죽음과 비슷한 울림을 받았어요. 저 두 문호는 거대한 산맥입니다.
chldkrdmlwodkd
19/07/05 01:56
수정 아이콘
맞습니다. 두 문호 모두 거대한 산맥이죠.
구밀복검
19/07/04 21:06
수정 아이콘
이건 당대 분위기를 알아야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죠. 현대 한국에 빗대 보면 이런 겁니다. 한쪽에는 미국빠들이 있어요. 우루과이 라운드와 WTO와 쌀개방과 FTA 같은 미국식 뉴 오더를 수용해서 미개한 한국의 적폐를 청산하여 선진국으로 도약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언제까지 박정희 시절의 개발독재 관치금융 정부주도 패러다임을 러시아 정교마냥 안고 갈 거냐 이거죠. 또 다른 한편에는 북서유럽 빠는 사회주의자 친구들이 있는 거고요. 평등 인권 여성 소수자 서발턴 같은 걸 이야기하면서 역시 미개한 한국의 적폐를 청산하고 선진국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죠. 우리 안의 권위주의 파시즘을 깨부셔야 비로소 러시아는 아시아가 아닌 진정한 유럽으로 탈아입구할 수 있는 겁니다. 그 반대편에 도스토예프스키식 신토불이가 있는 거고요. 쌀이야 보리야 콩이야 팥이야~ 우리 몸엔 우리 건데 남의 것을 왜 찾느냐~ 이런 신토불이 슬라브주의 vs 사대주의 선진국 콤플렉스, 러시아 정교 vs 프랑스 혁명, 전통주의 vs 민주주의 등등의 대립의 축을 이해하고 봐야 비로소 도스토예프스키의 문장들이 생동감 있게 읽히죠. 스테판은 586 운동권인 거고 표트르는 이석기인 거고 그런 식으로..
닭장군
19/07/04 21:22
수정 아이콘
윈도우즈토예프스키
리눅스토예프스키
강철심장
19/07/04 22:19
수정 아이콘
저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술술 읽었는데.. 악령은 진짜 너무 읽는 속도가 안나서 잠시 스톱 하고 나중에 도전해보려고 합니다.

최근에는 다섯 번째 계절 읽고 있는데 너무 재미나네요..
전자수도승
19/07/05 00:30
수정 아이콘
https://m.ruliweb.com/family/212/board/1010/read/30610131?search_type=subject&search_key=악령
요즘 루리웹에 이런저런 소설 감상 올리는 분이 계시는데 예전에 악령도 다뤘었죠
꽤 괜찮은 감상만화였다 싶습니다
chldkrdmlwodkd
19/07/05 01:59
수정 아이콘
추천 감사합니다. 저도 들어가서 봤는데 괜찮네요. 줄거리 요약도 잘 돼 있고요.
캐터필러
19/07/05 10:35
수정 아이콘
굿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81697 [일반] 전세계 저널 순위 - 2018 [15] 사업드래군11294 19/07/05 11294 1
81696 [일반] [유럽] 유럽 최고위직 인선을 두고 또 혼파망 [27] aurelius9922 19/07/05 9922 3
81695 [일반] 도스토예프스키를 긍정하게 된 소설 '악령' [8] chldkrdmlwodkd7517 19/07/04 7517 3
81694 [일반] 반일감정이 높을때 소개하는 특이한 일본 회사 [47] Jun91116496 19/07/04 16496 6
81693 [정치] [일본] 일본 극우저술가, "자유한국당은 일본과 협력해야" [84] aurelius16074 19/07/04 16074 9
81692 [일반] 백제상열지사 [12] 6556 19/07/04 6556 5
81691 [일반] 일본 사무라이들의 칼과 그들의 모습(사진) [34] 틀림과 다름10413 19/07/04 10413 2
81690 [일반] 주휴수당과 최저임금 [152] 카디르나13614 19/07/04 13614 15
81688 [일반] 수의대에 간 채식주의자 소녀 성장기 (영화 리뷰) [15] 박진호9300 19/07/04 9300 1
81687 [일반] 구글 AI 자율주행 자동차 시범 상용 서비스 개시 [101] 아케이드12343 19/07/04 12343 3
81686 [일반] [스포] 스파이더맨 파프롬홈 - 인피니티 사가의 완벽한 에필로그 [35] 홍승식9795 19/07/03 9795 5
81685 [정치] 시작된 최저임금 전쟁 1만원 vs 8천원 [184] 아유16050 19/07/03 16050 2
81684 [일반] [연재] 늬들은 다이어트 하지 마라! - 노력하기 위한 노력 (9) [37] 229849 19/07/03 9849 28
81683 [일반] 일본의 아름다움의 상징. 19세기말, 게이샤의 모습들 [32] 삑삑이15236 19/07/03 15236 15
81682 [일반] 요즘같은 시대에는 키오스크가 너무 좋다 [101] 검은바다채찍꼬리11758 19/07/03 11758 5
81681 [정치] 일본 경제 제재의 배경인 강제 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이해 [84] 가라한10781 19/07/03 10781 10
81680 [정치] [기사] '동북아'→'인도·태평양'… 韓·美동맹 전략적 의미 '격상'? [59] aurelius12357 19/07/03 12357 4
81679 [정치] 일본의 경제제재 [79] 뿌엉이12677 19/07/03 12677 3
81678 [일반] 충분히 눈부셨다. [5] RookieKid6551 19/07/03 6551 12
81677 [일반] "제약사 여직원이 몸로비…" 영업사원의 슬픔.... [297] 修人事待天命33741 19/07/03 33741 36
81676 [일반] [유럽] EU 주요 보직의 명단이 드디어 합의되었습니다. [15] aurelius7426 19/07/03 7426 1
81675 [일반] [팝송] 에이브릴 라빈 새 앨범 "Head Over Water" [11] 김치찌개6001 19/07/03 6001 1
81674 [일반] 아프리카 TV에서 역대급 스캔들이 터졌습니다. [80] Leeka24716 19/07/03 24716 2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