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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9/06/17 08:15:07
Name aureli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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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일반] [토막글] 독일에 대한 가장 짧은 역사 (수정됨)



어제 다 읽은 책인데, 짧으면서도 꽤나 포괄적인 주장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사실 꽤 파격적인 주장을 하고 있는 책이에요. 


게르만 부족 시대부터 오늘날까지의 독일역사를 서술하고 있는 책인데,  

저자에 따르면 독일사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키워드는 

[가톨릭-라틴-로마 문화권의 라인강변 서독과 엘베강 너머의 개신교-프로이센 문화권의 동독의 대립]


저자에 따르면 엘베강 동쪽의 독일은 독일역사에서 가장 나중에 생긴 군사-식민 국가였습니다. 

독일기사단은 “동방십자군”을 통해 슬라브족이 살던 땅을 점령하였고 새로운 식민지를 개척하기 위해 강력한 군사적 규율을 유지해야만 했고, 또 슬라브족의 땅에서 소수였던 자기 자신들이 특별하고 우월한 존재라고 생각했으며 동시에 다수였던 슬라브족에 대해 항상 공포심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프로이센은 이 독일기사단의 후신이었으며, 또 마찬가지로 프로이센의 지배계급이었던 융커들은 

슬라브족을 복속시킨 군인 영주들의 후예였으며 이들이 문화와 생활양식은 서독, 즉 프랑크푸르트, 뮌헨, 쾰른 등과는 아주 달랐고, 따라서 프로이센이 주도한 통일은 “통일”이라기 보단 “정복”에 가까웠다고 합니다.


라인강변 쪽의 독일 도시국가들 및 공국들은 나폴레옹을 해방자로 맞이하기도 했고, 베토벤은 그를 위한 기념곡을 헌사하려고 했었죠 (물론 나중에 찢어버리지만...) 


비스마르크가 오스트리아를 독일통일 과정에서 배제시켜려고 했던 이유 또한 오랜 전통을 갖고 있고, 또 가톨릭 세력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강력한 국가가 독일에 들어오게 되면 프로이센/개신교/융커들의 지배력이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아주 과감하게 엘베강 서쪽은 샤를마뉴 시대부터, 어쩌면 아우구스투스 시대부터 문명화된 라틴-로마 문화권이었던 것에 반해 엘베강 동쪽은 야만과 미신 그리고 극단주의가 지배하던 곳이라고 주장하면서, 진정한 독일(Germania, 게르마니아)은 동엘베(East Elbia)와 다른 곳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독일제국 성립 후 역대 선거 투표율을 보여주면서 서독지역은 꾸준히 가톨릭/민주세력에 투표했던 것에 반면, 엘베강 동쪽 지역은 꾸준히 극단주의개신교/국수주의 민족주의 정당에 투표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동서독의 갈등은 분단이 아니라 독일제국 성립 때부터 쭉 이어져온 것이라고 말합니다. 


훗날 서독의 수상이 되는 콘라드 아데나우어는 이미 1900년대 초반,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이전부터 프로이센의 문화에 거부감이 느끼고 쾰른은 프로이센과 다른 곳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그의 가문은 독실한 가톨릭 가문으로 조부때부터 라인란트가 프로이센에 합병되는 것을 격렬히 반대했던 집안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좀 러프하게 말하면 결국 저자는 라틴-가톨릭 善, 프로이센-개신교 惡이라는 이분법적인 논리로 독일사를 접근하는데... 어떻게보면 선동팜플렛에 가까울 수 있는 책인데 이코노미스트와 스펙테이터 같은 유력잡지에서도 꽤 호평을 했네요. 


분명 단숨에 읽기에는 재미있는 책이고, 나름 생각해볼 거리도 던져주는 책입니다.

한국에도 번역되면 좋을 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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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17 08:59
수정 아이콘
아 번역서인가 해서 읽어보고 싶었는데 아직 번역은 안된 원서군요
좋은 소개 감사합니다.
계층방정
19/06/17 09:00
수정 아이콘
소개해주신 것만 보면 엘베 강 동쪽으로 게르만인이 이주해 온 동방식민운동을 정죄하고 악마화하는 것이 목적이 아닌가 싶고, 책이 호평받는 것은 그것이 유럽을 극우화에서 건져내는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대독일주의와 소독일주의의 대립은 저자가 말하는 엘베 강 동서의 대립이라기보다는 오스트리아가 독일인이 아닌 보헤미아와 헝가리 왕 노릇을 포기할 수 없던 게 더 크고요.
Synopsis
19/06/17 09:39
수정 아이콘
유럽 역사라고는 세계사에서 배운 것이 전부라 각국의 이러한 자세한 역사는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서독 출신 사람입장에서는 이러한 관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독일하면 라인강 밖에 몰랐는데 정작 동독과 서독을

나누는 기준은 엘베강이었네요. 프라하를 통하여 베를린까지 흐르는.

하지만 작가가 상대적으로 선이라고 여기던 가톨릭 문화를 가지고 있고 프로이센에 의해 배재 당했던 오스트리아에서

누구보다 극단적인 히틀러가 나온 것은 또 어떻게 봐야 할까요. 역사란 알면 알수록 재밌는 것 같습니다.
aurelius
19/06/17 09:41
수정 아이콘
저자는 영국사람입니다. 독일문학을 전공한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개신교 전통이 강한 영국에서 개신교 악, 가톨릭 선이라는 이분법적인 주장을 하고, 이게 영국 메이저 잡지에서도 먹힌다는 게 신기합니다. 특히 스펙테이터는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보수주의" 시사 잡지인데... 스펙테이터에서 칭찬을 한다는게...
Synopsis
19/06/17 09:52
수정 아이콘
서독 사람이 아니라 영국 사람입니까? 크크크 더 신기하네요. 더구나 그게 영국에서 먹힌다니...

한국으로 비교하면 자본주의 비판을 하는 책을 조선일보에서 칭찬을 하는 격일까요?
닉네임을바꾸다
19/06/17 10:22
수정 아이콘
(수정됨) 뭐 성공회가 개신교라 하기엔 잉글랜드 국교회 최고지도자가 영국의 국왕이라는거만 빼면 카톨릭과 더 가까울껄요...
홍승식
19/06/17 12:50
수정 아이콘
가톨릭-개신교 가 아니라 라틴-프로이센 대결로 보는게 아닌가도 싶네요.
문명화(로마화)된 지역과 야만화 지역으로요.
19/06/17 10:01
수정 아이콘
동독/서독이 나눠지는거야 독일분단 관련해서 어느정도는 알고있었는데, 그걸 가톨릭/개신교와 엮는건 또 새롭네요.
사실 동구권은 개신교도 아니고, 정교회쪽이라 또 결이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 근데 생각해보니, 또 루터가 독일사람이었군요. 개신교의 뿌리가 독일이었네요. (..)
어쨌든 재미있는 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적세계의궁휼함
19/06/17 10:03
수정 아이콘
한스 콘 같네요. 서방형/동방형 나누는 도식이.
KT야우승하자
19/06/17 10:48
수정 아이콘
서구권과 동구권은 그냥 다른나라였죠
정치형태도 다르지
경제형태도 영주제 vs 농장영주제
사업?형태도 농민이 직접 지배 vs 영주가 지배
지배형태도 중공업 사업자 vs 융커
계급구조도 한쪽은 서유럽과 비슷 vs 한쪽은 동부유럽과 비슷
aurelius
19/06/17 12:02
수정 아이콘
저자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사회적 구조, 정치형태, 시민의식, 경제구조 모든 게 달랐다고... 저자가 자주 사용하는 표현 중에 East Elbia가 있는데, East Elbia라고 검색하면 저자가 제기하는 문제의식을 여럿 찾아볼 수 있더군요.
19/06/17 10:48
수정 아이콘
책을 읽어봐야 알겠지만, 비스마르크가 오스트리아를 배제한건 '안'이 아니라 '못'에 더 가깝지 않나 생각합니다. 윗 분이 말씀하셨듯 오스트리아가 프로이센 밑에 고개 숙이고 들어가기엔 덩치가 너무 컸던 시절이었고 '독일'이라는 나라에 통합되려면 헝가리와 보헤미아를 포기해야 하는데 그게 될 리가 없죠. 그래서 몇 십년 뒤에 1차 대전 후에 다 떨어져나가고 오스트리아만 남았을 때 히틀러가 2차 대전 직전에 합병까지 하고요.

그리고 당시 여러 국가들이 중구난방으로 성립됐던 독일 지방을 평화롭게 통일하는 건 불가능 한 거고 통일을 하려면 정복 말고는 답이 없었을 겁니다. 정복을 안 하고서 지배층이 순순히 밑으로 들어갈리가 없습니다.

또한 과거 프랑크 왕국 시절 까지만 해도 독일 서쪽 지역까지 로마 영향을 받아 문명화된 측면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진정한 독일이라고 할 것 까지야... 그렇게 따지면 우리나라도 고려시대까지 한반도 북부를 먹지 못했고 조선 초기에 간신히 여진족들을 몰아내거나 동화시키고 이남의 주민들을 이주시켜 한반도를 완성시켰는데 그럼 그 쪽은 진정한 한반도가 아니게 되지 않죠.

뭐 여튼 제가 했던 모든 말들은 저 책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한 말이기 때문에 뭐라 확실하게 말을 못 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생각할 꺼리를 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안군-
19/06/17 11:03
수정 아이콘
지역감정(?)은 우리 고유의 유산이 아니었어...?
왠지 우리나라 경상도와 전라도의 대립을 신라-백제로 대입해서 글을 쓰면 저런 내용이 나올것도 같고...
다크템플러
19/06/17 11:39
수정 아이콘
재밌는관점이네요
Lord of Cinder
19/06/17 14:06
수정 아이콘
옛날에 학교 다닐 때 교양 수업에서 들은 이야기 중엔 독일은 토이토부르크에서 시작되었다라는 이야기가 문득 생각나는 글이네요.
스칼렛
19/06/17 21:10
수정 아이콘
소개해주시는 책들 늘 따라가고 있습니다. (번역본 있는거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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