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이글은 영화에 대한 내용이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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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박스하나 제대로 조립하지 못해 꾸지람을 들을지언정,
대학 입시에 실패해 재수생이 되었을지언정
우리는 언제나 그럴싸한 계획이 있다.
길고 긴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가파른 언덕을 오르고 올라,
햇볕이 내리쬐는 넓디넓은 정원에 도달하는 마법 같은 계획이.
좁디 좁은 반지하가 너무나 갑갑한 탓일까.
소독약의 연기처럼 두리뭉실한 계획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기에 달콤하기 그지없다.
악취가 풍기는 절망은 잠시나마 하얗게 소독이 된다.
그런 그럴싸한 계획이 머릿속을 나오지도 못한건 벌써 몇번째 일까.
그러나 불행의 깊이 만큼 좋은 일들도 일어난다.
기를 쓰고 손을 뻗쳐보니 화장실 천장에 이르러 와이파이가 잡히고 간만에 만난 친구는 일자리를 가져다준다.
수석의 마법일까.
기회가 찾아오니 머릿속의 계획이 하나하나 실현되기 시작한다. 떠오른 기세를 타고 거침없이 올라가기 시작한다.
재물과 운, 하나만 있어도 충분히 행복한데
끝없는 계단을 오르고 오르니 새로운 계획이 연달아 떠오른다.
꿈도 꾸지 못했던 거대한 주택 안으로 기생하는데 성공했다.
싸구려 술안주는 소고기로, 필라이트는 삿포르로 변한다.
얼마나 시의적절한가.
그러니,
피자박스하나 제대로 조립하지 못하는 기택이
근세를 보면서 큰소리를 외칠 수 밖에.
"너희들은 계획도 없지?"
악마인지 천사인지 모를 존재의 입김에 우리가 휘둘릴 때면
우리는 잠시나마 모든 계단을 다 오른 거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고급 욕조에 몸을 담그고, 술에 잠기고 취할때
세상은 무척이나 좁고 좁아서 마치 주인이 된 것마냥 신이 난다.
폭우가 쏟아지고 바람이 부는데도.
거실에서 바라보는 정원의 풍경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성공적인 그들의 계획 속에는 불청객의 존재도,
박 사장의 귀환도 존재하지 않았다.
날카롭고 예리하던 계획이 술에 취한 채 방향을 잃었다.
그러니, 본래 있었던 곳으로 떨어지는 수밖에 없다.
내리는 비처럼 자연스럽게.
내리고 내달린 계단과 언덕 아래로,
어둡고 길고 긴 터널을 지나 빗물이 흐르는 육교를 건넌다.
한참을 떨어지고 멀어졌는데, 아직도 갈 길이 남았다.
계획대로 이루어질 때는 가깝던 높이가
추락하기 시작하니 한참은 깊다.
반듯한 주택을 나와 모든 것들이 구부정한 골목길로 도착했다.
모든 것이 비에 잠겨버린 좁디좁은 반지하가 기다린다.
많고 많던 비는 결국 어디로 흐르는 걸까.
애써 외면했던 질문의 답이 현실을 아프게 찌르기 시작한다.
창문을 닫으려는 노력이,
변기통을 막아보려는 행동이 새삼 서글프다.
장난감 텐트마저도 비가 새지 않는데
그럴싸한 계획이 망했다, 모든 것이 완벽했을 텐데.
그래도 계획을 세워야만 한다. 오르기 위해서.
방공호에 갇힌채로 '행복하게' 일생을 보내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렇다면, 무엇을 수정해야 하는 걸까.
..아니, 계획이 문제가 아니었다면?
다른 사람들이라면 무언가 달랐을까?
"민혁 오빠는 애초에 이럴 일이 없지"아무리 그럴싸한 계획을, 완벽한 계획을 짠다고 한들
우리의 출발지는 바꿀 수 없다.
무수한 요행과 행운이 겹쳐 수평적인 공간을 공유하지만,
기택과 박사장의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수직의 선이 있다.
대화 중간마다 영어를 써보아도.
인터넷에서 뒤진 정보로 속여넘겨도.
밑줄을 그어가며 대사를 연습해도 냄새는 지울 수 없다.
아무리 올라가려고 발버둥을 쳐도
계획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경계가 있다.
서류를 위조하고 임기응변으로 면접까지 통과했으나,
보이지 않는 계급은 바뀔 줄을 모른다.
지워지지 않는 냄새가, 의식해버린 경계가
숨을 쉬는 방법처럼 머릿속을 떠나지 못한다.
형사 다운 형사와 의사 다운 않은 의사는 무엇을 말하는걸까.
우리의 계급과 신분은 '우리' 다울까.
그럴싸한 계획이 성공했던 건 계획이 완벽했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얼마든지 대체 가능한 기생충의 위치였기 때문에 아니었을까.
"나한테 계획이 있다"
그렇게 말했던 기택은 마지막까지도
아무런 계획이 없었다.
지하실 방공호에 갇혀있던 근세와 마찬가지로
지하인지 지상인지 모를 반지하처럼,
기생충들의 구분은 흐릿하기 그지없다.
기택은 근세를 보면서 계획이 없냐며 꾸짖고
근세는 어질러진 술자리를 보면서
교양 없는 것들이라며 조소를 한다.
서로의 자리를 빼앗으려고 노력하고
강탈한 것도 기생충인 그들이었고
그렇게 짤린 운전기사를 걱정하는 것도
기생충인 그들이었다.
지하실에 갇힌 그들을 위해
음식을 나눠줘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죽음에 이르게 한 것도.
그러나 치열하고 격렬한 기생충들의 다툼은
너무도 어둡고 깊숙한 지하실에서 일어나는 일이기에,
지상을 점거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결코 닿지 않는다.
한계단 한계단 오르기 바쁘고 지친 우리가
편안한 소파 위에서 잠에 빠질 때.
어두운 탁자 밑을 궁금해하지는 않을 게 분명하므로.
피 흘리며 박치기를 하던 근세의 신호가 닿지 않았던 것은
그의 절박함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단지 그것은 의미 없는 전등의 깜박거림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박사장을 존경한다며 소리치는 근세를 보면서
박사장이 황당해했던 것은 정말로 몰랐기 때문이다.
그의 냉장고 덕에 근세가 하루하루를 연명했을 거라는 건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채.
자신의 존재로 인해 다송이 트라우마에 걸렸다는 것을
근세가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일파티가 시작되었다.
창가 바깥에 모인 사람들은 분명
나와 같이 갑작스럽게 모인 사람들일 텐테,
아무런 위화감도 구김도 보이지 않는다.
원래부터 이자리에 있어야 할 것처럼 모두가 자연스럽다.
아무런 문제도 보이지 않는다. 똑같이 무계획적인데.
보이지 않던 선이 보인다. 깊고 깊게 박힌 선이.
"나도 여기에 어울릴까"운전 중에 하는 시시껄렁한 질문이나 무심코 올린 맨발,
지하실로 날려버리는 발길질에서 지울 수 없는 냄새까지.
넘을 수 없는 선을 오르기 위해 수많은 계획을 세우고 노력하지만 , 정작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지 않기 위해
여분의 계획을 세우는 일은 좀처럼 없다.
수평선 아래까지 신경쓰기에는 너무나도 여유가 없으니까.
간밤에 내렸던 폭우 덕에
오늘은 화창해서 기분이 좋다고 말하는걸 고민해야 할까.
편안하게 소파에 누워서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는 동안,
탁자 밑에서 엿듣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해야할까.
운전 중에 거는 몇 마디는 어디까지 허용되는 걸까.
불쾌한 냄새에 본능적으로 올라오는 혐오감을
순간 순간 의식하며 참아내야 할까
피 흘리는 혁명이, 우발적인 싸움이, 폭력이, 욕설이,
감정이 터지고, 이성이 마비되고
분노가 야만을 드러내는 순간이 있다.
하나하나 오르던 인내심의 벽이 무너지고
선을 넘어버리는 지점이 있다.
모든 것들은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기때문에.
그렇기는 해도,
인내심이 선을 넘어버리는 경계를 알아내는건 쉽지가 않다.
폭우로 인해 취소된 캠핑 계획이 아쉽기는 해도,
눈치 없이 사생활을 물어보는 질문이,
비아냥처럼 들리는 소리가 불쾌할 수는 있어도,
그러한 사소한 일들로 말미암아
사고가 일어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술자리에서 갑작스레 나온
바퀴벌레 소리에 멱살을 잡을 수는 있어도,
무신경하게 창문 바깥에서
소변을 누는 사람에게 소리를 지를 수는 있어도
술이, 가족이, 사랑이, 여유가
성공적으로 우리를 분노를 줄여주기에
아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
위를 올라가기 바쁜 우리의 계획 속엔
분노마저도 거추장스러운 사치일 뿐이다.
그러나 재난이 밀어닥쳐 더이상의 계획이,
다음을 기약하는 행위가 무의미하게 느껴진다면,
우리는 과연 탁자밑에서 딸의 팬티를 향해
ㅡ의도하지 않은 ㅡ 욕정하는 대화를 들으면서도,
자신도 모르던 냄새에 대한 비하를 들으면서도
인내심을 발휘할 수 있을까.
사업이 망했고, 돈이 떨어졌다.
남은 것이라고는 반지하 조그마한 집이었는데,
집마저도 물에 잠겨버렸다.
체육관에서 무계획이 좋은계획이라며
모든 것을 포기한 기택에겐 더이상 잃을 것이 없다.
그랬을 터인데, 그에겐 아직 잃을 것이 있었다.
피자박스하나 제대로 조립하지 못하는 자신과 다르게,
가장 영리하고 '위쪽'에 어울리던 기정이
눈앞에서 피 흘리며 죽어만 간다.
아내가 사투를 벌이는 와중에
기우가 의식을 잃은 채 지나가고 있다.
남은 건 반지하 뿐인 줄만 알았는데,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해서 의식하지도 않았던
그의 세계가 떨어져 나간다.
"뭐해 차키달라고 !"
혼돈의 순간, 모든 계획이 무너진다.
잠도 제대로 못 잔 머릿속엔 이성은 사라지고 본능만이 남는다.
아버지의 본능이 딸을 끌어안지만 그것뿐이었다.
계획을 세우지도 못하고,
받아먹기에 급급했던 애비는 자녀마저도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
무력한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버지의 역활마저도 거세당한 그는
가지고 있던 차키마저도 바보처럼 무심코 던져버린다.
자식을 살릴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일텐데.
가족을 죽인 근세는 쓰러진 채 아무런 미동이 없다.
재산도 가족도, 모든 것을 가졌던 박사장은
차키마저 손에 쥐며 떠나려고 한다.
아버지답게.
차라리 싸우기라도 했으면,
적어도 칼에 찔리기라도 했으면 좋았을 텐데.
뒤늦은 분노가 심장을 터트리며 머리끝으로 올라온다.
참을 수 없다.
참을 이유가 없다.
화가 난다. 모든 상황이, 세상이, 벌레 같은 나 자신이.
그러나 분노가 가야할곳이 없다. 아무런 계획이 없다.
숨은 가빠지고,
귀는 멍해진채로,
모든것이 느리게 보인다.
영화처럼,
좁아진 시선은 박사장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의 표정에선 혐오가 보인다.
의도하지 않았던 표정이 모욕이 되고
일찌감치 넘어버린 그의 선을 자극한다.
그러면,
과연, 나는, 무엇을,
"오래된 무말랭이 같은,
행주 삶을 때 나는 듯한 '냄새'가 선을 넘어"
비극이 일어났다.
길거리에서 엿보는 반지하의 풍경처럼,
모든 일이 미스터리할 뿐이다.
즐거운 생일파티 중이었는데
갑자기 노숙자가 나오더니 살인을 하고,
별다른 원한이 없을 운전기사가 고용주를 죽인 채 사라져 버렸다.
좁디좁은 반지하가 심정마저 뒤틀리게 만든 것일까.
착한 사람이 되지 못했던 기생충은 선을 넘어 숙주를 죽여버렸다.
기정을 함께 데려가 달라고 말하지 못한 기택이
살인마였기에 그런 것일까.
차키를 뒤지던 박사장이 기정을 챙기지 못했던 건
냉혈한이기에 그런 것일까.
생일파티를 계획한 연교가 너무나 순수했기에 그런 것일까.
절박한 신호마저 무시된 근세가.
지하실의 문을 열었던 기우가,
초인종을 누른 문광이,
수석을 가져다준 민혁이.
망해버린 카스테라 사업이.
시작점으로 돌아가기엔,
지하실의 계단 아래 구분하기 힘든 기생충들이 겹치고 겹쳤다.
반지하 계단 아래 방공호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가기엔
우리는 너무도 여유가 없다. 그러니 더 이상의 의미도 없다.
떠들썩한 뉴스는 잠잠해지고, 형사들의 미행도 점점 뜸해진다.
그리고 기우는 마침내 정답을 찾았다.
그럴싸한 계획이 아니라. 근본적인 계획을
햇볕이 내리쬐는 넓디넓은 정원에 도달하는 마법 같은 계획을.
"아버지는 그저 계단으로 올라와 정원으로 나오시면 됩니다"어째서 이 영화는 고작 15세 관람가일까.
사지가 절단되고 폭탄이 터지고 욕설이 난무하는 영화라면
이리도 불편하지 않았을 텐데,
무능하고 가난한 가족들이 저렇게 화목할 리가 없으니
충분히 비현실 적일 텐데.
저렇게 매너 있는 고용주가 많지는 않을 텐데.
영화를 보고 난 뒤의 불쾌감은
더운 날의 땀처럼 끈적끈적하게 붙어서 떨어질 줄 모른다.
살인을 저지른 기택을 무작정 탓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당차게 면접에 합격하는 기정의 모습을 언제나 꿈꾸고 있는데.
피자박스하나 조립하지 못하고, 대사하나 외우지 못하는
무능한 기택을, 나는 왜 마냥 비난하지 못하는 것일까.
팝콘냄새가 희미해질때까지 계단을 내리고 내려,
정처없이 걷다보니 어느새 지하철 역이였다.
스포일러에서 해방된 나는 여전히 찜찜하고 불쾌했다.
흔들리는 지하철에서는 무말랭이 냄새가 났다.
출구의 에스컬레이터가 고장이 났다.
하는 수없이 길고 긴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길고 긴 계단 위로 햇살이 비추기 시작한다.
한걸음 한걸음을 옮기며, 무심코 나는 중얼거렸다.
계획이 생겼다.
아주 근본적인 계획이
학교나 시험이 문제가 아니라,
돈을 버는 거다. 아주 많이.
그리고 집을 사자.
햇살이 비추는 날 이사를 하자
그리고 그러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