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상상이 잘 안되는 광경이지만, 청나라 말기 시절 원세개에 대한 대외적 평가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외국에서는 거의 열광적인 반응이었고, 양계초 등 중국 내 지식인들조차 "그래도 지금 판세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원세개 뿐……" 이라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워낙 현재와 이미지가 다르기에 조금 믿겨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당시 원세개에 대한 반응을 보면,
"(댁보다 훨씬 나은 인물을)우리가 알고 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원세개로서 그에겐 우리 모두가 기대하고 있다."
- 영국 외무장관이 쑨원에게
"이홍장의 유산을 지금까지 계승한 사람은 원세개 뿐이다. 원세개는 이홍장이 길러낸 인물이다. 그가 장년이 되어 처음 큰 임무를 맡았을 때만 해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지금과 많이 달랐다. 그러나 깊은 공명심과 용감한 기백을 바탕으로 파격적인 행동을 한 점은 오히려 이홍장보다 낫다. 앞으로 그의 마음 씀씀이가 어떠할지, 그의 의지력이 어떠할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오늘날의 관료들 중에서 자력과 명망, 재능 면에서 이홍장의 뒤를 이을 수 있는 인물은 원세개 밖에 없다."
- 양계초
희한하게 영국인 출신 청나라 왕당파(....)로 활동하며 청조에 대해 쉴드를 치던 레지날드 존스턴 같은 경우도 원세개에 대해 이를 갈긴 하지만, 국내에도 나온 '자금성의 황혼' 을 보자면 원세개가 그 당시 가장 주목받던 인물이라는 점을 그 당시의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빨리 그 실체를 알아야 했다." 정도의 서술이긴 하지만.
쉽게 말해서 당시 원세개의 이미지는 "다들 지금 막장이라고 팔짱 끼고 훈수, 일침 둔다고는 하는데, 막상 제대로 나서서 뭘 할 의지도 능력도 없는 인간들 밖에 없지만 유일하게 원세개만이 무언가를 할 수 있다." 정도였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러한 이유는 원세개가 적극적으로 경제 산업, 교육, 군대 부분에 대해 개혁을 추진했고, 또 원세개 본인이 그런 개혁을 시행할 만한 힘도 있고, 무엇보다 열강과 사이가 나쁘지 않다는 이유도 있었는데 이는 바로 의화단 운동 당시 원세개가 보여준 기민한 행동 탓입니다.
원세개가 지방에 있을 당시 벌어진 의화단 운동이 벌어졌습니다. 의화단 운동이야 교과서에도 실릴 정도로 유명한 사건이니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지방에서부터 거대 무뢰배 폭력 집단이 대규모로 모이며 횡행하면서 다 때려부수는 와중에 반 외세랍시고 외국인들이나 외국인들 건물등을 요절을 내는데, 청나라 중앙에서는 이를 진압하기는 커녕 오히려 이들을 부추기는 미친짓이나 하다가 연합군이 출동해서 쓸어버리고 청나라는 엄청난 배상금만 물었다 -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화단 운동때 서태후를 비롯한 중앙에서 정신이 나간 짓을 여러차례 할때도, 원세개는 사건이 커지기 전에 어서 진압을 요구했고, 일단 사건이 벌어진 후에는 중앙의 지원 요청을 무시하고(형식적인 시늉은 합니다) 자신의 관할 구역인 산동에서 의화단의 봉기를 뿌리 채 뽑아 산동의 지주들은 물론, 외국인들을 보호했는데 이러한 점이 외국인들이 높이 평가받아 '유능한 동시에 합리적이고 말이 잘 통하는 사람' 이라는 이미지가 생긴 겁니다.
그런데...다 좋은데 문제는 서태후 입니다.
의화단 운동의 실패 이후 망신을 당하게 된 서태후지만 아직 서태후의 세력은 무시할 것이 못되었습니다. 원세개는 현명하게 오만을 떨지 않고 사태가 수습되자 납작 엎드려서 서태후에게 온갖 선물을 바치면서 마음을 풀게 하고 환심을 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야, 돈 내놔."
"도, 돈 말씀이십니까?"
"그래, 특별기금이 필요하거든. 왜, 떪냐?"
"아아니,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드려야지요."
"아...근데 나도 지금 이것저것 하고 있는게 많아서 당장 유통 가능한 현금이 별로 없는데...."
원세개는 이런저런 생각을 했지만, 없는 돈을 당장 만들 수가 없어서 뾰족한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 돈이 없다고 하면, 결국 다른 사람들에게 손을 뻗치는 방법 밖에 없을겁니다.
결국 원세개는 관리들을 모아 이런저런 사정이 있으니 돈 좀 주라고 점잖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보통 돈 좀 주라고 하면 대답은 이렇게 나오게 되곤 합니다.
"저희도 지금 사정이 안 좋아서...."
없다는데 족쳐서 빼앗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고민을 하던 원세개는, 상당하 묘한 꾀를 냅니다.
우선 원세개는 천진의 울장후(蔚長厚) 표호(票號) 집사를 불러들였습니다. 표호는 청나라 시기 환전 업무를 담당하던 상업 금융기관 입니다.
원세개는 집사에게 자신이 지금 공금을 저금하려고 하는데, 이자를 3푼으로 하면 안되겠느냐고 먼저 운을 떼었습니다. 집사는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나으리, 저희 은행에 저축하면 이자가 많아야 8리 입니다 이거. 3푼을 요구한다면야 저희는 감당을 할 방법이 없다요."
"아니, 이건 공금으로 쓰려고 하는건데?"
"울리살람 표호, 늘 관과 거래를 해 왔고 예치된 공금도 적지 않다요. 예를 들면 어떤 나으리는 30만 원, 또 다른 나으리는 20만 원, 일부 도원, 총재, 통령들도 모두 저금이 있는데 합하면 100만원 정도 된다 해. 이자는 대부분 5리, 6리, 7리, 8리 등으로 다양하지만 1푼을 넘어간 적이 여지껏 없다 해."
"니들 지금 이자 싫어서 구라 치는 거 아님?"
"나으리가 믿지 못하겠다면, 장부를 가져 올 테니 한번 살펴보라요?"
이렇게 하여 집사는 장부를 가지고 왔는데, 원세개가 막 장부를 살펴보려는 순간 부하가 갑자기 들어와 손님이 찾아왔다고 알렸습니다. 그러자 원세개는 집사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다 보고 줄테니까 오늘은 가 보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산동 지역의 왕이나 마찬가지인 사람이 장부 좀 살펴본다고 하니, 집사는 별 의심없이 알았다고 하며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장부에 이름이 오른 사람들이 모두 원세개의 연회에 초대되었습니다. 그리고 원세개가 또 돈 좀 주라고 하자 이번에도 사람들은 "형편이 어려워서..." 이렇게 부정을 합니다.
그러자 갑자기 원세개가 장부를 꺼내들면서 소리쳤습니다.
"그럼 이건 뭐냐? 여기 저금한게 다 써졌는데 왜 다들 구라를 치고 있냐?"
일단 이 시점에서 다들 놀랐겠지만, 그런데 방금전까지만 해도, "돈이 없어서..." "저희가 사정이 안 좋아서..." 이랬는데, 장부를 들이민다고 해도 바로 사실을 인정 할수도 없는 일 아닙니까. 때문에 사람들은 놀라서 황급하게 사람들은 "뭔가 잘 못 된것 같습니다." "전 모르는 일입니다." 하고 모르쇠로 배짱을 부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보통이라면, "거짓말 하지 마라! 여기 다 써있는데, 이 순 사기꾼 같은 놈들!" 이래야 할텐데 원세개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갑자기 정색을 하더니 이러는 겁니다.
"내 생각에도 여러분들이 이런 더러운 돈을 저금 하고 있었을 것 같진 않습니다. 아마도 상인들이 여러분들의 이름을 함부러 도용해서 저금한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원세개에게 장부를 건네 준 집사는 급하게 호출되었고, 원세개는 그를 보더니 갑자기 역정을 내면서 소리쳤습니다.
"내가 지금 여러 어르신들에게 일일히 물어보았는데, 모두 다 그런 거액을 저금한 일이 없다 하시더군. 아마 네가 마음대로 이분들 이름을 차용한 것 같은데, 마땅히 법에 따라 엄한 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후에 하는 소리가,
"이 저금들은 다른 사람의 것처럼 가장한 돈이니, 당연히 관에서 몰수해야 하는 돈이다!"
그 후 원세개는 곧바로 관리들의 이름으로 저금 되어 있는 돈을 모조리 털었는데, 그 금액이 무려 백만원이나 되었습니다.
당연히 관리들은 자신들 돈이 눈 앞에서 날라가는 광경을 보고 있었지만, 방금 전 까지만 해도 "저거 절대 내 돈 아닙니다. 어떤 못된 나쁜 놈들이 내 이름으로 차명계좌를 만들었나 봅니다, 나쁜 놈들!" 이러다가 이제와서 "제 돈 맞습니다 ㅠㅠㅠ" 할 수도 없는 일 아닙니까?
대신 원세개는 이렇게 모은 백만원을 자신은 한 푼도 손을 대지 않고 전부 다 서태후에게 줘 버렸습니다. 서태후도 서태후고, 당시 조정 고관들이던 영록(榮祿), 혁광(奕劻) 등 청나라 조정의 실력자들에게 막대한 뇌물을 바치고 생일잔치 비용, 아들딸의 결혼 비용, 손자들의 생일, 돌잔치 비용 등을 모조리 대면서 점차 조정을 자신의 사람만 가득찬 꼭두각시로 만드는 작업에 아주 쏠쏠하게 써먹게 됩니다.
출처 : 원세개 - 허우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