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다들 잘보내셨는지요. 설 연휴에 정말 안타까운 일이 있어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1. 중앙응급의료센터장 윤한덕 선생님 부고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으로 근무 중이시던 윤한덕 선생님께서 지난 2월 6일 돌아가셨습니다.
설연휴에 고향을 내려가시기로하였는데, 연락이 되지 않아 사모님께서 사무실로 직접 찾아가셨고, 책상앞에서 쓰러져계신채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되셨습니다.
평소 일이 워낙 많으셔서 사무실 한켠에 있는 간이침대에서 자주 주무시고 다시 일어나서 일하시는게 일상이셔서, 가족분들도 전날에는 일이 많으신가보다 정도로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2. 윤한덕 선생님의 걸어오신 길
윤한덕 선생님은 전남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시고, 응급의학과라는 전공이 생기자마자 1호로 응급의학과 전문의과정을 마치신 분입니다.
응급의학과 전공의 과정 중 겪은 여러가지 경험으로 전문의로 임상에 머물러 있는 것보다 우리나라 응급의료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행정과 정책 영역에 몸을 바치셨습니다.
2002년 중앙응급의료센터가 설치되고 나서 국립중앙의료원으로 자리를 옮기시고, 10년간 일선에서 고생하시다가, 2012년 응급의료센터장으로 영전하셨습니다. 말만 영전이지 상상할 수 없는 분량의 일과의 싸움을 계속해오셨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업적으로 헬기를 통해 환자를 권역응급의료센터로 직접 옮기는 닥터 헬기, 이국종 선생님을 통해 유명해진 권역외상센터, 응급의료정보체계 등이 있고. 현재 우리나라 응급실을 이루는 근간을 모두 본인 손으로 일궈 내신 분입니다.
3. 국립중앙의료원의 큰 형 저는 지난 1년간 윤한덕 선생님이 발주하신 과제를 맡아 근처에서 선생님을 뵐일이 많았습니다. 평소 고인의 모습은 '동네 큰 형'과 같이 소탈하고 다정했습니다. 동대문에서 회의가 끝난 후 삼겹살에 소주를 사주시며, 행정직이라 소고기를 사줄 수 없다고 농담하시던 모습이 정말 가슴아프게 생각이 납니다.
실제로 본인하시는 일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는 지원과 쏟아지는 일감, 이슈가 터지면 물어뜯기에 바쁜 언론과 정부 관료, 정치인을 상대하시며, 흔들없이 본인의 철학을 펼치신 분입니다. 만약 학교에 남으셨거나, 임상의사로 계셨더라면 더 많은 봉급과 편안한 삶을 사실 수 있었겠지만, 절대 그런 것을 바라지 않으신 분입니다.
항상 회식이 끝나시면 다른 사람들을 다 집에 보내신 후에 돌아가신 본인 사무실로 들어가셔서 남은 일을 하시고, 좁디 좁은 야전 침대에서 주무시고, 다음날 일을 준비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대리를 불러드릴 테니 오늘은 집에 들어가시자고 해도, 다음 날 일이 많으시다며 저희의 출발을 재촉하셨는데, 이럴줄 알았으면, 그냥 댁에 모시고 갈걸 그랬나봅니다.
4. 왜 그렇게 고생하셨을까? 윤한덕 센터장님은 그렇게 밖에 일을 하실 수 없었을까요? 평일에는 당연히 집에 못가시지만, 어디하나 뚜렷하게 명성을 얻으시거나, 대중에게 알려지신 분이 되지 못하셨을까요?
첫번째로 본인께서 묵묵히 일하셨기 때문입니다. 본인께서 드러나게 논쟁적이셨거나, 자신을 드러내는데에는 큰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워낙 일을 잘하셨고, 열심히 하셨기 때문에 주변에서 더 좋은 자리나 기회를 만들어드려도 본인의 직접 일구어내신 중앙응급의료센터를 지키셨습니다.
두번째로 국가가 그동안 응급의료를 비롯한 공공의료에 많은 투자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고인이 일하셨던 국립중앙의료원과 중앙응급의료센터를 가보시면 우리나라의 응급실을 담당하는 이곳이 이렇게도 구석진 곳에 낡은 건물에 있구나라는 생각이 드실 겁니다. 그만큼 말로만 국민의 골든 타임을 지킨다고만 했지, 실제 국가가 그동안 응급의료와 필수공공의료에 행한 투자는 부족했습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우리모두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적디 적은 투자와 높은 기대치 사이를 센터장님과 같은 사명감을 가진 분이 열정으로 그동안 매꿔온 것이 우리나라 공공의료와 응급의료입니다.
5. 떠나간 영웅을 기억해주십시오.
오늘 윤한덕 센터장님의 존함이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와있는 것을 보고, 말그대로 복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고생하셨는데, 돌아가셔서야 남들이 알아주는구나라는 생각과 이것을 계기로 좀더 응급의료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고인에게는 너무 죄송스러운 생각까지......
말그대로 센터장님은 어두운 곳의 영웅이셨습니다. 떠나가셔도 후배들에게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많은 후배들이 그 길을 따라갈 것입니다.
저는 몰랐는데, 이국종 선생님의 회고록에 윤한덕 센터장님에 대한 구절이 있더군요.
'자신의 일이 응급의료 전반에 대한 정책의 최후 보루라는 자의식을 뚜렷하게 가지고 있다.'
'관계에서의 출세에는 무심한 채 응급의료 업무만을 보고 걸어왔다.'
'그가 보건복지부 내에서 응급의료만을 전담해 일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정부 내에서는 도움의 손길이 없었다.
그럼에도 윤한덕은 중앙응급의료센터를 묵묵히 이끌어왔다.'
제가 뵈었던 센터장님과 한글자도 다르지 않은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