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사 삼국지 선주전 주석 영웅기에 따르면 유비와 조조의 첫 만남을 다음과 같은 서술하고 있습니다.
[영웅기]英雄記 – 영제 말년, 유비는 일찍이 경사(京師-수도)에 있다가 그 뒤 조공(曹公-조조)과 함께 패국(沛國)으로 돌아와 무리를 모았다. 때마침 영제가 붕어하자 천하에 대란이 일었는데, 유비 또한 군을 일으키고 동탁을 토벌하는데 종군했다.
자 그럼 유비와 조조가 수도 낙양에서 만난 시기는 언제이며 같이 조조의 고향인 패국으로 간건 언제일까요? 삼국지집해는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는 중평中平 6년의 일로, 조조曹操가 성명을 고치고, 샛길로 가 동으로 돌아왔으니, 위지 魏志 무기 武紀 권수卷首에 보인다. 이 때 조조의 나이는 35세, 선주의 나이는 29세다.'
결론을 먼저 말씀드린다면 이 해석은 틀렸습니다. 조조가 '성명을 고치고, 샛길로 가 동으로 돌아왔으니' 이 부분은 '동탁은 정권을 장악하자 조조를 효기 교위로 임명했으나 조조는 임관을 거부하고 이름을 바꾼 채 샛길을 통해 동쪽으로 달아났다.'가 원문으로 영제 말년이 아니라 헌제가 즉위한 이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해석은 시기상으로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럼 영제 말년 언제일까요? 고향에서 사사로이 무리를 모으기 시작하려면 두 사람 다 수도나 지방에서 벼슬하지 않고 관직이 없었던 시기일 것입니다. 위서 무제기와 촉서 선주전에 두 사람이 영제 말년에 벼슬이 없었던 시기를 찾아 보겠습니다.
'얼마 후, 대장군 하진이 도위 관구의를 파견해 단양에 이르러 모병하게 하니, 선주와 함께 가다, 하비에 이르러 도적과 조우해, 힘써 싸워서 공을 세웠기에, 하밀승에 제수됐다. 다시 관직을 버렸다. 후에 고당위가 됐다가, 현령으로 승진됐다.' - 촉서 선주전
'그 뒤 경사로 불려가 동군 태수로 전임되나 그 동안 황제 측근의 권신들에게 여러 번 밉보였기에 집안이 화를 입을 것을 두려워해 질병을 칭탁하고 고향으로 되돌아갔다. 낙향한 뒤에는 성 밖에 별장을 짓고 독서와 사냥에 매진하며 지냈다.' - 위서 무제기
두 사서를 교차 검증하면 두 사람이 벼슬이 없었던 때가 조조의 경우 동군태수직을 버린때, 유비의 경우엔 하밀승을 버린때인것을 알수 있습니다. 마침 조조가 경사로 불려갔다가 고향으로 되돌아 갔다고 서술도 되어 있군요. 그러므로 유비가 하밀승을 버리고 경사에 있다가 마침 경사에 동군태수일로 불려온 조조를 만났다고 하면 얼추 들어 맞는 셈입니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가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추가: 유비가 안휘현위에 오른게 187년 6월 이후군요. 독우를 패고 달아나 관구의 밑에서 공을 세웠으니 187년 6월 ~ 188년 8월 사이로 봐도 되겠네요.
+추가2: 삼국지집해 조별전에 전군도위였던 조조가 초현으로 돌아왔다는 기록이 있군요. 188년 ~ 189년 초까지 가능할것 같습니다. 하여간 효기교위 이럴때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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