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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23 11:37
노태우 김영삼으로 이어지는 스무스하면서 급격하고 성공적인 민주화는 유례를 보기 힘들 겁니다. 물태우, 또라이(?) YS 캐릭터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태우, YS 둘 중에 하나만 없었어도 여기까지 못 왔을 거에요...
18/11/23 11:43
우리가 조선시대 역사를 배울때 태종, 세종과 문종, 예종의 비중이 다른 것 처럼, 후세에 역사를 배우는 학생들에게 YS,DJ의 비중과 그 이후 노무현, 이명박의 비중은 좀 다르지 않을까 싶어요.
박근혜는 좀 다른 의미로 역사적이겠지만요.
18/11/23 11:48
87년도 단일화는 김영삼이 했었어야됐다고 봅니다.
김영삼-김대중 그림이 가장 좋았죠. 김영삼이 군부세력 쳑결을 내세우고 그 이후에 김대중이 했었어야됐다고 보네요. 87년도에는 김영삼 같은 깡있는 지도자가 있었어야 했다고 봐요
18/11/23 12:07
심지어 명분도 김영삼에게 조금 더 있었죠.
71년에 출마 포기하고 김대중 밀어준 것도 있고, 김대중이 5공때는 해외로 쫓겨나며 국내 정치 활동은 거의 못한 것과 다르게 김영삼은 국내에서 전두환에게 직접 반기를 든 정치인이었으니 당시 투쟁세력의 지분은 김영삼쪽이 더 컸다고 봐야죠. 김대중의 몇 안 되는 실책이라고 봅니다. 자신의 욕심을 앞세워 큰 일을 그르친......
18/11/23 13:11
사실과 조금 다릅니다. 김대중이 5공 때 국내정치를 거의 못한 건 아니예요.
김대중이 목숨의 위협을 받자 해외로 나간 것은 사실이지만, 85년 총선을 앞두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죽는다는 만류를 뒤로하고 입국했습니다. 80년대 전반은 김영삼이 국내투쟁의 핵심이었다고 할 수 있으나, 85년부터는 두사람의 공이죠. 물론, 말씀하신 취지는 공감합니다. 아무래도 김영삼쪽이 좀 더 지분이 있었죠.
18/11/23 15:31
87년에 어떨게든 단일화가 되어 민주세력이 집권하거나 집권에 가까웠다면 3번째 쿠테타나 혹은 역대급 부정선거를 경험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개인적으로은 87년도의 결과도 두 김의 분열이 1차적인 요인이지만 부정선거도 이에 못지않은 요인이였다고 봅니다. 그 전두환이 안했을리가 없으니까요. 결과를 보면 노태우와 YS가 2백만표 정도 차이였는데... 그러면 100만표 정도로 승패 달라졌고... 일단 군대 쪽에서 최소 10~20만 정도는 했을테니까요. 또한 노태우가 광주 4.2% 전남 8.2% 전북 14.1%를 먹을수 있었다는 것은... 아무리 지역감정이라고 하지만 광주에서 YS가 0.5% 였는데 노태우가 4.8이다... 라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죠. (YS가 전남 1.2, 전북 1.5.... 라는 것도...)
18/11/23 11:56
저도 YS의 공이 크다고 생각하고, 세월이 흐를수록 더 그렇게 느껴집니다.
3당합당이 정치사에 길이길이 남을 수치인것도 사실인데, 그걸통해 권력을 공고화하고 강력한 정책들을 밀어붙일 수 있었죠. 금융실명제든 하나회척결이든 YS만이 할 수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IMF는 YS의 탓도 분명히 있긴 하죠. IMF만 아니었어도 꽤나 존경받는 대통령으로 훌륭한 마무리를 했을거라 생각합니다...
18/11/23 11:56
어쨌거나 저쨌거나 반드시 대통령을 했어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YS - DJ, 이 순서의 대통령 라인이 우리나라 발전을 위해서 필수적이었습니다. 태종만큼 위대한 지도자는 아니지만, 태종 역할을 하긴 했죠. DJ는 대한민국 역사 상 가장 뛰어난 대통령이라고 보는데, DJ가 먼저 대통령이 되었으면 진짜 군부가 무슨 짓을 했을지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18/11/23 12:08
민주화 투사이자, 대통령으로 하나회 척결, 금융 실명제 같은건 정말 YS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할 정도로 공이 분명하고
삼당합당으로 지금 정치체제 (호남..) 만들고 IMF 때 레임덕하고 겹치긴 했지만 YS 정부가 아니라면 그렇게 까지 대책없이 당했었을까? 할 정도로 과도 있고요. 평가는 좀 더 뒤로 미루겠습니다.
18/11/23 12:08
저는 양김이 아직 한국최고의 대통령이라고 생각하는데,
두분다 서로를 포용하지 못하고 군사정권 관계자들과 손 잡은거는 좀 아쉽긴 하지만 공이 과를 충분히 넘는다고 생각합니다. 양김 이후로는 나라의 주도권이 우리가 선출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손 댈수없는 재계에 넘어간 느낌입니다. 이씨가문의 에버랜드를 이용한 편법승계를 건들지 못한 참여정부도 그렇고, 박근혜 최순실은 갖혀있지만 금방나온 그재용도 그렇고... 얼마전 10세아이의 발언..정치인의 자제가 그런 이슈를 일으켰다면 과연 선거에서 직을 유지할수 있을지. 이렇게 줄어든 정치권력으로 이제는 분명한 악과 싸우는게 아니라 구성원간의 이해타산을 조정해야 하는 현재의 대통령직은 군사정권과 정면승부해야 하던 민주화시절과 비교해도 쉽지 않을겁니다.아군과 적이 섞여있고 어느정책에선 아군이 ,저 정책에선 내쳐지기마련.아군만 챙겨도 나라가 기울고 내쳐도 힘들죠..잘 해내시길 바랍니다.
18/11/23 12:17
공이 크긴 한데, 과가 너무 컸죠.
IMF가 100% 본인 탓은 아니지만 나쁜 의미로 미래를 바꿔버렸고, 3당합당은 그저.....
18/11/23 12:24
군사쿠데타 시절 기득권 적폐세력이 민주화투쟁 세력과 결합하여 계속하여 기득권을 장악해 나갈 수 있는 명분을 마련해 주었다는 측면에서 볼때, 이명박근혜 보다도 우리 사회에 미친 악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명박근혜야 그 자리에 누가 있던 자한당 계열 출신이라면 비슷한 결과를 냈을 중간 보스에 불과하지만, YS는 대전환점을 마련한 창업자라고 할까요. 그렇기는 한데, 하나회 척결, 금융실명제 실시 등은 기득권 내부에서 YS가 추진했기에 성공한 사업이죠. 민주 계열에서 추진했다면, 쿠데타 같이 급진적인 방법이 되었든, 매번 하는 국민 갈라치기를 통한 정권 탈환이 되었든, 민주 계열 정부를 쳐 내고 다시 자한당 계열을 들어앉힐 수가 있는데, 이게 자한당 계열 내에서 추진된다면 쳐 내고 들어앉힐 대안이 없거든요. YS가 내부에서 권력을 틀어쥐고 추진했기에 큰 사고 없이 성공할 수 있었던 정책이라 봅니다.
18/11/23 14:37
작년 이맘때쯤 1987 영화 한창일때 자유당 측에서 민주화를 이룬 것은 우리 당이다, 이런 기사를 보고 든 생각과 비슷하네요
마찬가지로, 때에 따라 편리하게, 예컨대 4.19, 5.18, 87년 6월항쟁 등에 대해서는 우리는 김영삼과 통일민주당의 직계 후신이므로 민주화 세력의 절반이다, 또 다른 상황(예컨대 TK지역 유세나 태극기 집회 참석)에 가서는 우리는 반공 산업화세력 즉 박정희 3공 민주공화당의 직계 후신인 정통 보수 세력이다!(전두환은 대놓고는 언급을 잘 안 하지만) 이렇게 조상 선택을 할 수 있죠 크크
18/11/23 12:41
처음 케이블 깐건 김영삼때입니다.
그걸 잘활용해서 it를 발전시킨게 김대중이구요. 물론 요즘 말하는 초고속인터넷의 의미와 케이블은 조금 다르긴합니다만..
18/11/23 12:26
공도 과도 너무 컷던 분이죠.
저는 IMF 직격탄으로 맞았던 세대라 좋은 평은 못하겠습니다. 그래도 공인 부분도 크긴 컷습니다.
18/11/23 12:41
IMF 야 누가 뭐라 할 수 없는 과 그 자체입니다만, IMF 의 자체 병크도 만만찮았죠.
그때야 어려서 별 생각 없었는데, 나이 먹고 찾아보니 IMF 가 대체 뭔 생각으로 그렇게 개입을 했는지 의문입니다. 저 정도면 충분히 공 >> 과 인 대통령이죠. 아니면 지금 이런 글도 못 쓰는 시대에 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18/11/23 12:42
imf가 솔직히 김영삼 대통령때문인건 아니죠. 당시 해외자본에게 뜯어먹히기 딱좋은 구조기도 했고..
문제는 이걸 터질때까지 숨긴건데 이걸 어찌 해석해야될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빨리 풀면 빨리 푸는데로 문제가 있다고 보기도 하거든요. 뭐 민주화 투사 삼당 합당 이런거 다 제끼고 금융실명제랑 하나회 터트린거 이거 2개만으로도 역사에 남을 대통령이라고 봅니다. 국내 적으로 이정도 크기의 업적 쌓은 대통령이 있나 싶거든요.
18/11/23 12:51
경제 문화를 종합했을때 김대중 정부가 1위인건 거의 이견이 안 나오던데
PGR 회원분들은 문민정부하고 참여정부만 비교하면 어느쪽이 더 성공했다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IMF가 김영삼이 다 뒤집어쓸 과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개인을 평가할때도 정부를 평가할때는 또 다른 잣대가 적용되어야 해서
18/11/23 13:05
전 반대로 dj때가 최악이었습니다 개인적 상황만 보면 당시 금모으기 때문에 부모님 이혼 위기까지 가고 난리도 아니였거든요..당시 아버지 직장에서 금할당량까지 나와서 어머니가 죽어도 안된다는 결혼반지에 저와 동생 돌반지까지 싹...
18/11/24 12:46
참 애매한 게 참여정부인데 보통 권위의식 타파 이런 걸 공이라고 하거든요. 근데 DJ땐 권위의식이 쩔었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라고 하고요.
심지어 YS때는 대통령 가지고 개그치는 책이 베스트셀러 되고 이랬는데 대체 권위의식 타파라는 게 뭔지....
18/11/23 13:17
IMF는 김영삼이 방아쇠를 당겼다고 봅니다만, 김영삼이 그 때 방아쇠를 당겼기 때문에 2000년대의 호황도 있었다고 봅니다.
삼당합당도 평균잡자면 10년정도 역사를 늦췄다고 생각합니다만, 3당합당으로 해낼 수 있었던 것들도 많았다고 생각하고요. 지금까지 김영삼에 대한 평가는 공도 크고 과도 크다인데, 전 공은 크고 과는 작다고 봅니다. 대통령 때로 한정할 경우에 공과 과가 조금 비슷해지겠습니다만 여전히 과에 비해 공이 훨씬 크다고 보고요. 딱 87년 이후로만 한정해야 공과 과가 비슷해지지 않을까. 전 기무사의 친위쿠데타 기획에 대해서 별로 크게 보지 않는데요. 만약 탄핵이 부결됐더라도 기획 성사 가능성이 지나치게 낮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그렇게 보는 이유 중 상당부분은 김영삼의 공에 의해 달성된 것이고요.
18/11/23 13:17
물론 87년 양김이 단일화해서 김영삼-김대중 순으로 갔으면 제일 좋았겠죠.
근데 노태우의 역할도 일정부분 있었다고 봅니다. 물론 노태우 스스로 원한 결과는 아니겠지만 여소야대에서 5공청산이니 뭐니 나왔을 때도 대통령이 군출신이니까 그나마 반발이 적었다고 생각해서, 다른 나라들은 민주화하고도 다시 쿠데타 등으로 뒤집힌 국가들도 많자나요.
18/11/23 13:29
유시민 말대로 정치계의 마지막 협객..이라고 생각합니다. 필요할때 대통령이 되었고 자기만 할 수 있는 필요한 일을 했다고 봐요.
18/11/23 13:54
직선으로 당선된 것에 대해서 꽤나 자부심이 있는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인지 국민들 의견에 따르는 정책도 꽤 하려고 했구요. 추징금도 거의 다 냈던데 이것도 그 일환이라고 생각해요. 본인은 국립묘지에 묻히고 싶어하는 거 같던데 본인의 출신을 벗어나는 건 못했으니까 그건 불가한 일이죠.
18/11/23 14:27
손에 묻은 피가 너무 많고 비리도 많이 있어 좋은 대통령이였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좋은 시절에 만났으면 좋은 사람 소리는 들었을만한 사람일듯 합니다. 나름 똑똑하기도 했고... 남북 평화에대해서도 상당히 전향적인 정책도 펼치고...
18/11/23 14:21
87년에 YS가 되었다면 3차 쿠테타가 일어났을 것이라 생각 합니다. 92년도에도 솔찍히 정말 위험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당시에는 칼날위에서 춤을 추던 시기였던것 같습니다.
18/11/23 14:25
하나회가 노태우 정권때 전두환계와 노태우계로 나뉘어서 서로 싸워서 힘이 약해진 것도 컸다고 생각해요.
만약 그러지 않고 바로 문민정부가 들어섰다면 하나회 척결이 쉽지만은 않았을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도 해봤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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