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춘추시대에 중국에서 벌어진 이야기입니다. 어디서 부터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요. 일단 춘추오패중 하나인 진(晉)문공 중이의 이야기부터 시작해야겠네요. 춘추시대의 진(晉)나라는, 주나라의 동성제후로서 주무왕의 둘째아들이 봉해진 나라였습니다. 그만큼 주나라에 가깝고 강한 나라였죠. 하지만 진나라가 역사에서 크게 활약하지 못했던것은 항상 공족간의 내분에 시달렸기 때문입니다. 중이의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는데요. 중이 역시 자신이 직접 낳은 아들을 왕위에 올리려던, 계모때문에 국외를 유랑다녔습니다. 무려 19년동안 국외를 유랑다니다가 60이 되서야 귀국해서 공위에 오르고, 더 나아가 초나라를 성복에서 크게 물리치며 주왕실의 위엄을 지켜냈고 회맹해서 패자가 됩니다. 그래서 춘추오패중 하나인 진문공이 되죠.
대충 공을 왕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좀 어색한 단어가 보이면 공대신 왕을 넣어서 생각하시면 됩니다. 예를들어 공족이라 하면 왕족쯤으로생각하시면 된다는 겁니다. 이때는 봉건제이나 최고위가 왕이었기때문에 제후들이 공 즉 공작이었죠. 나중에 황제가 생기고 나서는 왕이 제후가 됩니다만. 여튼 진문공은 자기 사후에도 다시 공족들간의 내분으로 공위를 노리고 나라가 쪼개져서 싸울까 걱정하였습니다. 그래서 공작위를 이어받지 못할 공족들을 국외로 위탁 아니 내쫒기로 결정합니다. 자 권력의 중심지에서 공족들이 빠진 빈자리는 누가 차지할까요? 당연히 신하들의 것이 됩니다. 특히 진문공을 따라다니며 동고동락했던 조쇠, 위주, 호언 호모, 선진, 난지, 극곡 같은 공신들과 그의 후손들이 정계에서 대거 활약하게 됩니다. 진나라는 이때부터 소위 육경이라고 불리는 대부들에 의해 좌지우지됩니다. 왕이 제후에게 내리는 작위가 공작 후작 백작등 이었다면, 공작이 자신의 제후에게 내리는 작위가 경이었다고 보시면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이 육경이 만화 킹덤의 육대장의 모티브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 육경들이 권세있는 세도가들이기도 하지만 전쟁이 나면 각기 일군을 이끌던 사람들이거든요. 뭐 모티브가 아닐수도 있습니다.
자 요정도로 배경설명을 끝내고, 본론을 들어가보겠습니다. 때는 진문공도 죽고 진문공의 아들인 진양공이 막 죽었을때였습니다. 진양공이 죽었을때 신하들중 가장 권력이 큰것은 조쇠(진문공의 공신, 이때는 사망)의 아들 조돈이었습니다. 조돈은 진양공의 아들이었던 태자 이고가 나이가 너무 어려서 진양공의 동생을 옹립하려 했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된 진양공의 부인이 조돈을 찾아와 '돌아가신 선친은 무슨 죄가 있다고 그의 적자를 버리시나이까' 라며 울며 하소연을 하였죠. 앞서 말씀드렸듯, 진문공이 공위에 위협이 되는 공족들을 다른 나라로 쫓아냈기때문에 일단 진양공의 동생을 옹립하려면 국외에서 모셔와야했습니다. 이게 첫번째 문제였고 두번째 문제는, 진양공의 부인이 말했듯 조돈이 섬겼던 진양공은 죄가 없는데 적자가 계승권을 박탈당한다는 이야기는 적절한 멘트였고 거기에 흔들렸습니다. 조돈은 이에 본인의 뜻을 굽히고 태자 이고를 공위에 올립니다. 이가 바로 진영공입니다. 일단 시호에 영(靈)이 들어간걸로 상태가 안좋았던 군주구나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삼국지로 잘 알려진 후한의 영제가 그러하듯 말이죠.
본인은 군주가 되었고, 가장 권세있던 신하가 나를 반대했었다. 결혼전 반대한 시부모도 결혼후에 척지고 살고싶다는데, 군주가 될 기회를 박탈하려고 한 사람에겐 오죽할까요. 서로 사이가 좋을리는 만무합니다. 진영공이 백성과 신하들을 막대하는 폭군이었다고 하지만, 그것과는 관계없이 조돈은 제거하고 싶었을겁니다. 이해합니다. 진영공이 장성하고 공의 권위가 생길 무렵부터 조돈의 암살을 시도합니다. 근데 조돈이 나름 인품과 명망이 높은 사람이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래서, 자객이 이런 조돈을 죽일수 없다며 자살하고.. 조돈 주변의 사람들이 목숨을 바쳐 구하면서 세번의 암살위기를 넘기게 되고, 그제서야 공이 자신을 암살하려한 사실을 알게된 조돈은, 군주가 자신을 암살하려하는데 자신이 감히 맞서싸울수는 없고 죽기도 싫으니 몸을 피했다고 합니다. 국외로 몸을 피하려고 변방에 있었는데, 조돈의 동생 조천이 군사를 일으켜 진영공을 시해합니다. 그리고 형에게 '군주가 죽었으니, 도망가지 말고 정계로 복귀하세요'라며 알려줍니다. 조돈은 군자라서 군주와 싸울 마음이 없었는데 동생이 나서서 죽였고, 얼결에 수혜를 입게 되었군요. 믿는 사람은 없겠지요. 여튼 덕분에 정말 조씨천하가 열립니다.
조돈이 암살위협에 놓인게 억울했을수도 있고, 정말 형의 불쌍한 처지를 위해 동생 조천이 상의없이 일을 처리했을 수도 있습니다만, (물론 아니겠지만요) 그걸 사람들이 믿어주려면 조천에게 군주를 시해한 죄를 물었어야 됩니다. 삼국지에서 진태가 사마소에게 조모시해의 죄로 가충을 죽이라던 에피소드와 비슷하죠. 죽이지 않았던것도 비슷합니다. 그래서 조돈은 군주시해의 오명을 쓰게됩니다. 물론 조돈이 살아있을때야 아무도 건드리지 못했죠. 하지만 조돈 역시 죽음을 피할수는 없었습니다. 조돈이 죽고 조돈의 권력을 아들 조삭이 물려받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조정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신하중 도안고라는 자가 있어, 군주시해의 죄를 물어 조씨일가를 몰살시켜야 된다고 주장하고, 조씨의 정적들도 이에 합세하게 됩니다. 신하들중에 한궐이라는 사람이 있어 조씨 일가를 변호합니다. '조돈은 당시 변방에 있었고, 그 전 공작도 조돈을 용서했는데 이제와서 죄를 묻는것은 옳지 못하다.' 라고요. 도자고는 소수의견을 무시하고, 짝짜꿍이 맞는 사람들끼리 일을 처리하려합니다. 이에 한궐이 움직입니다.
이 한궐이 누구냐면, 원래 한씨집안은 진(晉)나라 공족의 방계후손입니다. 근데 몰락한 한미한 방계라 생계가 곤란했었는데 조삭의 조부였던 조쇠가 한궐이 어릴때 거둬줍니다. 어릴때부터 조씨가문의 식객이 된거죠. 한궐은 은혜를 아는 남자였고, 어릴때는 생계가 곤란할 지경이었지만, 출신은 공족출신에 조씨가문의 도움도 있어 지금은 정계에서 나름 한자리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사태가 급격하게 진행됨을 알게된 한궐은 조삭에게 이 사실을 귀뜸을 해주는데, 조삭은 '당신이 저의가문 제사를 끊기지 않게만 해준다면, 전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라고 답변합니다. 도망치진 않겠다는거죠. 한궐은 이미 일이 그른 것을 알고 병을 핑계로 칩거합니다. 도안고는 군사를 몰아쳐 군주시해의 명목으로 조씨일가를 처단합니다. 단 한명 조삭의 부인은 당시의 진(晉)나라 군주이던 진경공의 고모였기에 궁으로 도망쳐 목숨을 부지하죠. 그리고 이 여자는 그때 임신중이었습니다. 도안고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어서 궁에까지 들어와서 아이를 낳는다면 아이만 죽이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를 낳았지만, 밖에서는 도안고의 병사들이 대기하고 있는 상황, 이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제발 울지말라고 기도했더니 아이가 여인 다리사이에서 울지않아서 들키지 않았다고 합니다. 낳았지만 아직 안낳은척 한거고 그것이 통했습니다.
한편 조씨일가는 평소 식객들을 거느렸었고, 그중 정영과 공손저구라는 사람 둘이 있었습니다. 공손이라는 것은, 왕의 손자를 왕손이라 부르는것처럼 공의 손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춘추전국시대에는 공손XX가 매우 많습니다. 공작도 많고 공작분들이 자식생산에 몹시 힘쓰시기에 그 아들과 손자가 많겠죠. 이 중 몇개는 정말 성씨로 굳어져서 우리가 아는 삼국시대의 공손찬, 공손강 같은 성씨가 됩니다. 여튼 하루는 이 두명이 만났는데 공손저구가 정영에게 왜 아직 안죽고 있냐고 물었습니다. 왜 섬기던 조씨일가가 몰살당했는데 아직 살아있냐고 물어본 것이죠. 이에 정영은 '조씨일가의 유복자가 태어날테니 그가 아들이면 그를 지키고, 그가 딸이면 그때 죽어도 잠시 늦게 죽는것 뿐이지 않느냐' 라고 대답합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문제가 있는 이야기지만,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남자가 대를 잇던 시대라 그렇습니다. 그런데 앞서 말했던 여인이 낳은 아이는 아들이었습니다. 정영과 공손저구는 궁안에 침투해 보자기를 만들어 아이를 숨겨서 데리고 탈출합니다. 그 아이가 조무입니다. 그가 오늘의 타이틀인 조씨고아입니다.
무사히 아이를 안고 탈출한 두명. 공손저구는 정영에게 다시금 물어봅니다. '정선생, 아이를 기르는 것과 죽는 것중 어느것이 더 쉽겠소?' 정영은 대답합니다. '당연히 죽는것이 더 쉽지 않소?' .... 여러분 육아가 이렇게 힘이 듭니다. 공손저구는 본인이 쉬운 일을 할테니 정영에게 어려운일을 부탁한다고 합니다. 정영은 이에 공손저구와 헤어지고 도안고를 찾아가 사실을 고합니다. 정영은 '공손저구와 함께 조씨고아를 탈출시켰는데 아이를 기르는것은 힘든일이고, 적절한 보상을 위해 이 사실을 알려드리겠다'는 이야기를 도안고에게 해주죠. 도안고는 군사를 일으켜 정영의 길잡이 하에 아이를 기르고 있는 공손저구의 은신처를 덮칩니다. 분노한 공손저구는 정영에게는 욕을 있는대로 퍼붓고, 도안고에는 인정에 호소에 자신만 죽이고 아이만을 살려달라고 선처를 호소했습니다. 그렇지만 도안고는 들어줄리가 만무하죠. 이내 공손저구와 아이는 두명의 싸늘한 주검이 되어 버립니다. 도안고는 일을 무사히 완수해서 기쁜 마음으로 이제 두다리 뻗고 잘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상하시다시피, 공손저구와 함께 있다가 죽은 아이는 가짜 조씨고아였고, 정영은 진짜 조씨고아를 자신의 집에서 안전하게 기를수 있게 되었습니다.
15년쯤 시간이 흐른뒤, 진(晉)나라의 군주인 경공은 큰 병에 들게 됩니다. 이미 손쓸수 없이 병세가 퍼져버렸다는 뜻의 병입고황이라는 사자성어가 여기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점을 쳤더니 점괘결과가 대업의 후손이 잘못되어 하늘에서 벌을 내렸다고 합니다. 대업은 중국 오제중 하나인 전욱의 후손으로 우리가 잘 아는 진시황의 진(秦)나라의 선조입니다. 참고로 조(趙)씨가문이 진(秦)나라와 같은 혈족입니다. 진경공은 점괘를 받은뒤 당시 육경에 이르른 신하 한궐과 상의를 합니다. 한궐은 앞서 말했듯 조씨가문 식객출신이죠. 한궐은 이에 점괘는 조씨멸문을 뜻하는 것일 것이며, 조씨고아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진 경공은 이에 조씨고아 조무를 불러, 당시 일에 가담한 신하들을 사과시키고, 주범인 도안고는 역적으로 봉해..... 멸문시켜서 조씨가문의 한을 풀어줍니다. 사실 조씨가문 정도의 권신을 제거하는데, 군주의 허락이 없을리는 만무한데 다른 죄목도 아니고 역적으로 봉해져서 멸문당한건 도안고 입장에선 억울할만한 일이죠. 조씨가문 입장에서야 통쾌한 복수극이었습니다만.
모든 복수를 마친 조씨고아 조무는 정영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정영은 이에 자신은 한가지 일이 남았다며, 빨리 조삭(조무의 아버지)과 공손저구에 이 모든 일이 성공했음을 알리러 가겠다고 이야기합니다. 조무는 눈물로 만류하며, 이제부터 부귀영화로 모시려던 참인데 왜 저를 버리려고 하시냐고 했습니다. 그러나 정영은 예전에 죽지 못했던 것은 단지 복수를 위해서이고, 이제는 하루라도 빨리 공손저구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러 가야하며 그래야 이 일이 제대로 성공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자살합니다. 조무는 정영의 죽음을 슬퍼하며 3년상을 치뤘다고 합니다. 여기까지가 중국 4대비극중 하나라는 조씨고아 스토리입니다.
참고로, 후일담으로는 진경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때문에 죽었고요, 조무는 육경이던 한궐의 비호하에 다시 예전의 조씨가문의 위세를 되찾게 됩니다. 그리고 훗날 조씨고아 조무, 조쇠의 식객 한궐, 진문공을 함께 따라다니던 조쇠의 동료 위주, 이 세명의 후예들이 결국 권신들이 되어 결국 진(晉)나라를 조 한 위 세나라로 쪼개고 그것이 바로 전국시대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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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중국 협을 숭상하는 것을 알아줘야 합니다. 이렇게 은원을 따지니 협객 문화가 발전할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물론 너무 넓은 대지도 연관있을 겁니다. 저렇게들 도망다니면 잡을 수 없을 지경이니 공권력이 약해지고 결국 사적재제가 협으로 정착된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궁금한 것이,
연극 <조씨고아>에서는 공손저구가 같이 죽은 아이가 바로 정영의 친자식이었어요,
정영이 갓 태어난 자기 아들과 조씨고아를 바꾸는 거죠,
그 부분은 위 글 속에 없는 걸 보니 후에 만들어진 이야기인가요?
저 진짜 연극 보면서 <조씨고아> 보면서 가장 많이 울었던 것 같습니다.
정영은 나이 마흔에 부인이 임신을 하자 세상 생명 중요하다며 고기도 안먹는
착하디 착한 시골 의원인데 조씨고아를 임신한 공주가 궁으로 불러서 갔다가
이 애기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주시오, 하면서 자살,
아이고 어쩌나 어쩌나 하면서 애기를 데리고 나오다 문지기한테 걸리는데,
그 문지기도 내가 조씨가문에 은혜를 입은게 많다,
내가 알아서 할테니 어서 피하라며 정영을 구한 후에 죽임을 당하고,
그 뒤 공손저구를 찾아가 애를 맡길려고 했더니
공손저구가 애를 바꾸자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ㅜㅜㅜㅜ
정영이 집으로 와서 부인 몰래 자기 애와 조씨고아를 바꾸는데
그걸 부인한테 들켜서 당신 지금 뭐하냐고 미쳤냐고 하는데
정말 어쩔 수 없이 상황에 몰린 정영이 울며울며 자기 아이를 들고 공손저구에게 데려다주고,
도자고가 정영 눈 앞에서 정영 애기를 조씨고아인줄 알고 죽이는데,
어후 ㅜㅠㅠㅠㅠㅠㅠㅠㅠ
정영이 넋이 나간 얼굴로 보고 있고
도자고가 무대에서 퇴장한 뒤 죽은 애기를 안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하면서 울면서 1막이 딱 끝나는데,
이때 진짜 객석의 전관객 다 엉엉 훌쩍훌쩍 울고 있다가
갑자기 객석에 불이 켜지고 서로 민망해하며 얼굴 정리를 하죠 ㅜ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