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스트 제다이를 보고 당혹스럽고 황망했다. 내가 알고 있던 루크의 모습이 이게 아닌데 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부족한 재주이나마 내가 알고 있는 루크 스카이워커의 모습을 반추해본다.
아직 젊었던 루크 스카이워커가 다스베이더를 만나서 패하고 출생의 비밀까지 알게 되었을 때 그는 크게 절망했다. 단순히 패배한 것이 충격이 아니었다. 힘이 부족하다면 수련해서 강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이 마왕 다스베이더의 아들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젊은 루크는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일찍이 젊은 루크는 마스터 요다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만약 부모가 죄를 지었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모를 관가에 고발해야 합니까? 아니면 그것을 숨기고 덮어줘야 합니까?"
마스터 요다가 대답했다.
"마땅히 부모를 모시고 도망가 다시는 천하에 나타나지 않고 은거해야 옳다"
루크는 그 때의 문답을 생각했다. 천하를 위해서는 다스베이더를 죽여야 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친아버지이다. 어찌 자식이 부모를 해한단 말인가? 요다의 가르침대로 아버지를 모시고 은거하고자 하여도 정작 다스베이더는 그럴 생각이 없으니 그럴 방법도 없다. 이대로 홀로 은거하면 어떨까? 루크 자신이야 고고한 절개를 지킬 수 있을지 몰라도 은하계의 천하만민들은 다스베이더로 인하여 계속해서 고통받을 것이다. 그러니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젊은 루크는 번민 끝에 다스베이더를 만나러 가기로 결단했다. 루크의 스승 요다와 오비완이 모두 그를 말렸다.
"우리는 다스베이더를 잘 안다. 그는 완전히 미쳐버렸다. 네가 가서 설득한들 그가 다시 선한 포스로 돌아올 것 같으냐? 소 귀에 불경을 읇는 격이다. 너만 괜히 개죽음할 것이다"
젊은 루크가 대답했다.
"설득이 어려울 것이라는 것은 잘 압니다. 하나 저는 제다이로써 의로운 일이라면 아무리 작은 것이여도 망설이지 말고 인을 위한 일이라면 부모에게도 양보하지 말라고 배웠습니다. 설령 제가 아버지를 설득하지 못하고 죽는다고 하여도 제 죽음으로써 아버지가 백분지일, 만분지일이라도 선한 마음으로 돌아온다면, 그래서 고통받는 은하계 만민들 중 단 한 명의 목숨이라도 더 살릴 수가 있다면, 저는 그를 위해 기꺼이 죽으려 합니다."
젊은 루크는 이렇게 스스로 죽음을 향해 나아갔다. 그는 배웅하러 나온 동료들 앞에서 "장사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 라고 노래를 부르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X-윙 파이터에 올랐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동료들 중에 슬퍼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가 없었다.
루크는 포스의 힘으로 제국군의 방어를 뚫고 다스베이더와 황제가 있는 방으로 들어섰다. 다스베이더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저 아이의 성취가 놀랍구나. 저 아이의 포스는 이미 나보다 약하지 않다. 어쩌면 오늘이 내 마지막일지도 모르겠구나. 그런들 어떠하겠는가?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 자식이 아비를 죽이고 그 자리를 차지한들 무에 그리 대단한 일이겠는가?"
다스베이더는 공격을 시작했다. 그러나 루크는 방어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스스로 포스를 풀어버렸다. 어차피 죽기 위해서 온 길인데 포스는 필요치도 않았다. 다스베이더와 황제의 공격에 일방적으로 당하면서 루크는 그저 눈물을 흘리며 호소할 뿐이었다.
"아버지, 아버지, 제가 왔습니다. 아버지의 아들 루크가 왔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보러왔는데 어찌 이리 핍박하십니까? 돌아가신 어머님께서 바라는 바가 어찌 복수와 증오이겠습니까?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죽어도 좋으나 부디 어머니의 뜻을 헤아려 주소서. 부디 천하만민을 위한 대의를 생각해주소서."
루크의 눈물을 보며 다스베이더는 생각했다.
"일찍이 저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아준 여인이 있었다. 예언이니 뭐니 하는 것 때문에 모두가 나를 의심하고 비난할 때에도 그 여인만큼은 나를 저런 눈으로 바라봐주었다. 포스니 제다이니 하는 것들을 다 떠나서 순수하게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었던 여자... 그 여자가 죽고 난 뒤에 나는 더 이상 세상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스베이더가 되었고 사람들이 나를 손가락질하고 욕해도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
루크는 황제의 공격에 죽어가면서도 어떤 반격도 하지 않았다. 그저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를 목놓아 부를 뿐이었다. 다스베이더는 계속해서 생각했다.
"파드메 공주를 잃고 난 뒤, 단 한명이라도, 단 한 명이라도 나를 이렇게 지켜봐 준 이가 있었더라면 나도 다스베이더 따위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나에게는 세상 전부였던 그녀를 잃었는데도 세상 사람들은 모두 나를 욕하고 비난하기만 했다. 단 한 명이라도 나를 이해해주고 안아줬더라면, 단 한 명이라도 나와 같이 울어주었더라면, 나도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서야 다시 나를 이렇게 아끼고 사랑해주는 눈을 보는구나. 이런 눈으로 나를 보아주는 아이가 죽어가고 있구나... 아니 된다... 아니 된다.. 아니 될 일이다. 아비가 자식을 위해 죽을지언정 어찌 자식이 아비를 대신해서 죽겠는가? 살아라! 이 못난 아비는 죽을 지언정 너는 살아야 한다. 반드시 살아나가거라!"
그날 천하가 대반전되었다. 루크의 고귀한 희생정신에 다스베이더가 감화된 것이다. 혼세마왕 다스베이더가 루크의 호연지기에 감응하여 측은지심과 수오지심을 느끼는 아나킨 스카이워커로 돌아온 것이다.
그 날 이후로 사람들은 루크 스카이워커를 제다이 마스터, 또는 마스터 루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마스터란 어떤 자인가? 포스가 가장 쎈 자가 마스터인가? 그렇지 않다. 포스가 쎈 것을 이용해서 남을 착취하고 강탈하는 자는 포스를 가진 망나니일뿐 결코 마스터가 아니다. 마스터 루크는 진정한 포스는 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희생에서 나온다는 것을 보여줬다. 생각해보라. 젊은 시절의 루크는 다스베이더와의 혈연을 이용해서 은하계의 돈, 권력을 모두 손에 쥘 수도 있었다. 아니면, 반란군의 리더, 위대한 제다이라는 명예를 가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마스터 루크는 그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스로 자기희생하는 길을 택했다. 일신의 영달보다는 천하의 안위를 먼저 걱정하고 근심하는 천하대장부로써의 사표를 보인 것이다.
또한 마스터 루크는 진정한 포스는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마스터 루크가 힘으로 다스베이더를 쓰러트렸다면 다스베이더 사후에도 언제든 힘 있는 자들이 나와 은하계에 분란이 끊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마스터 루크는 힘으로 상대를 쓰러트리려고 하지 않았다. 덕으로써 감싸안았을 뿐이었다. 마스터 루크는 상대에게 자신의 정의를 교조적으로 가르치려 들지 않았다. 진심으로 상대를 위하여 그의 개심을 촉구했을 뿐이었다.
마스터 루크가 다스베이더를 만나러 가기 전, 한 반란군 장군은 그에게 함선을 이용한 자폭공격으로 제국군을 공격하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마스터 루크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덕으로써 감화시키고 예로써 가르쳐야지 어찌 힘으로 억누르려 하십니까?”
과연 마스터 루크가 옳았다. 파천황의 혼세마왕을 개심시킨 것은 힘이나 논리가 아니라 오직 상대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었다. 인간은 결코 이성으로 설득되지 않는다. 오로지 마음으로 감화될 때 스스로 회심하는 법이다.
마스터 루크는 다스베이더 사후에 반란군을 추스르고 제국군을 달래 우주의 평화를 이루고자 힘썼다. 항복하는 제국군을 상대로 죄를 묻지 않았고 공을 세워 과거의 죄를 씻기를 권면했다. 제국군을 증오하기보다 생활고에 어쩔 수 없이 제국군에 들어갈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 마음을 돌려놓으려고 애썼다. 귀순을 거부하는 제국군 병사들을 미워하기보다 그들을 품지 못하는 자신의 부덕함을 걱정했다. 제국군을 무너뜨린 것은 우주선이나 광선검 따위가 아니라 천하만민을 사해동포로 여기는 마스터 루크의 포용력이었던 것이다.
은하계 역사에 통틀어 광선검 싸움에 능한 자, 포스로 무거운 물건을 들어올리는 자들은 삼태기로 건져낼 만큼 많이 있었으나 이렇듯 덕의 마스터, 인의 마스터 라고 불리운 자는 마스터 루크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는 진정한 마스터이자 진정한 제다이였던 것이다.
마스터 루크의 말년의 행적에 대해서 최근에 뭇사람들이 떠들어 대는 이야기가 있다. 마스터 루크가 말년에 제자에게 어둠의 기운이 보인다 하여 칼을 들고 그를 죽이려 했다는 둥, 그 때문에 그 제자가 완전히 어둠의 길로 들어섰다는 식의 이야기들이다.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들이다. 마스터 루크는 일찍이 다스베이더라는 암흑군주를 상대로도 부동심을 유지했던 성인이거늘 새파란 애송이의 어둠의 기운 따위에 경거망동할 리가 있겠는가? 설령 그 어둠의 기운이 커서 위협을 느꼈다고 한들 스스로 몸을 죽여 인을 이루고자(殺身成仁) 했던 마스터가 자기 한 몸 건사하자고 어린 아이에게 칼을 뽑았겠는가? 왕년의 행적을 미루어 볼 때 믿기 어려운 이야기들이다.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무조건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행적들로 비추어 볼 때 그 괴리가 너무 커서 이야기가 악의적으로 조작되었을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때, 영화 <라스트 제다이>에서 묘사된 거짓 이야기들은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가 없다. 반전이 있어야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는 교조주의적 반전 성애자들이나 생각해낼 법한 발상이다. 경박하고 부박한 자들일수록 자신이 만들어낸 반전이 관객들의 예측을 벗어나는 것에 집착한다. 관객과 머리싸움을 해서 관객을 이기려 든다. 자신의 얄팍하고 알량한 잔머리로 다른 이들을 이기는 것에 일희일비한다. 마스터 루크가 등장하는 영화를 만들면서도 정작 영화 속 마스터 루크의 행적을 깊이있게 생각해보지 않았기에 이런 빈약한 집착이 나오는 것이다. 앞으로 나올 시리즈에서는 관객을 이기겠다는 마음, 전작을 상대로 싸워서 뛰어넘겠다는 마음이 누그러들기를 기원한다. 전작들이 이루어낸 성취를 존중하고 관객들을 사랑하는(敬天愛人) 마음이 함께 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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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다! 글쓴이의 이같이 신묘한 붓놀림은 사람의 공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도와야만 되는 것인즉, 글쓴이가 논하는 바가 실로 천도에 닿아 있어 하늘이 감동하여 이끈 것이라. 자신의 몸을 태워 천지의 안온을 일구고자 한 마스터 루크에 대한 거짓 음해를 함부로 입에 올리는 자는 하늘의 노여움을 받아 죽어서도 제 한 몸 묻힐 땅뙈기가 없으리라.
김용 선생 말 나와서 하는 말인데 비슷한 위치의 사조영웅전-신조협려로 이어지는 사조삼부곡에서는 전작 주인공이었던 곽정을 이리 대하지
않았고, 이런저런 오해가 있었음에도 새로운 세대인 양과와 함께 잘 어울러져 새로운 천하5절까지 이어지잖아요.
이런걸 보면 역시 신필은 신필이구나... 싶은 마음입니다. 이번작 루크 보면 마치 곽정이 양과가 엇나갈까 때려죽이려는 모습이면 이럴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