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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7/08/31 02:36:13 |
Name |
WhenyouRome.... |
Subject |
[일반] 나는 미쳤었다... |
안녕하세요..
PGR하면서 최근 들어 글 쓴적이 없는데 문득 제 이야기 하나 써보고 싶네요..
내일도 미치도록 일해야 하는데 뭔 바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잘 읽어주시면 감사하겠고 개인적인 이야기니 안 보고 싶으시다면 뒤로가기 눌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전에 잠깐 스쳐가던 회사에서 팀장이 이런 질문을 팀원들에게 한 적이 있다..
인생에서 미쳐본 적이 있느냐??
있다면 대답해보라 했다.. 팀원들중 몇몇은 첫 차로 새 차를 질러버린일.. 고객과 열정적으로 대화해서 계약을 따낸 일..
받은 월급을 하루만에 다 써버린 일 등등을 이야기 했다..
나도 있다고 했다.. 내가 미쳤던 때는 결혼 했던 때라 이야기 했다...
그 때 이후로 벌써 6년이 더 지났지만 지금 생각해도 그 때의 난 미쳐있었다..
스물 일곱 요즘 시기엔 결코 늦다고 할 수 없는 나이에 나는 결혼을 했다.
이러 저러한 사정을 겪고 스물 넷에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고졸 이후 바로 취업해서 이름좀 있다는 회사 엔지니어로 몇년 일하다 개인 사정으로 그만 둔 후
군 문제를 해결하고 (그 사이 대학도 들어갔다가 때려쳤다..;;)다시 시작하는 사회 생활이었다..
호락호락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못 할 일도 아니었다. 학부모 상대로 영어로 상담 몇마디 하고 애들 영어 실력 체크하고..
등급 매겨주고 회원으로 입회시키면 되는 뭐 일종의 상담사였다..
근데 일을 하다보니 내가 너무 몰랐다.. 영어도 잘 몰랐고 교육도 잘 몰랐고 어떤어떤게 아이들에게 좋은지 몰랐다..
알 수가 있나... 영어 몇마디 하던거 말고 암것도 모르는데...;; 점점 내 자신의 부족에 속이 상하고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 일상생활에 무료함과 매너리즘까지 겹쳐 의욕이 없어졌다...;;
그 때 친한 친구가 영어 공부한다고 호주로 떠났다.. 가보니 좋단다.. 영어 공부도 잘 된다니 나도 가고싶다는 생각이 막 들었다.
그래서 친구에게 숙소만 찾아주면 알아서 하겠다고 나도 가고싶다고 졸랐다.
알아서 하란다.. 대신 챙겨주지 못해도 원망 말란다.. 아싸 하고 티켓을 알아봤다. 편도 60만원??정도에 편도 티켓을 끊었다..-_-;;
적응 못하고 돌아올 수 없다는 각오랄까?? 다니던 xx지사를 그만두고 비행기를 탔다.
그 때 내 주머니에는 40만원이 있었다... 어짜피 가족들 지원은 기대 할 수 없었다. 물론 기대 하지도 않았다..
걱정하시는 어머니께 걱정 말라고.. 절대 타국에서 굶어죽지 않는다고.. 그렇게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호주에 갔다. 친구가 있던 유닛에 방값 반 내고 얹혀 살며 일을 알아보고 일자리를 구해서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호주의 삶이 시작됬다..
내 주머니의 40만원은 처음 두주간 방세와 생활비로 20만원을 쓴 이후 단 한번도 40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었다..
돈에 환장한 것도 아니었고 누구 말처럼 농장 뛰어서 때돈을 번 것도 아니었다.
그저 먹고 살만큼 벌었고 조금 더 벌면 저축했고 피곤하기 전에 돌아와서 영어 공부를 하는게 일상이었다.
같이 쉐어하던 호주 친구에게 맨 첨엔 한마디도 못하다가 어느 순간은 서로 일상 대화는 나눌 정도는 되었다..
그러다 내 친구와 호주 친구가 다른 도시로 떠나버렸다.. 나만 두고... 잉잉ㅜ_ㅜ;;
나만 이 도시에 혼자다... 라는 생각에 울적해 졌다..
그런데 그 시기에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잠깐 알고 지내던 누나들이 세컨 비자를 따야하는 언니가 있으니
내가 사는 곳으로 보내려 한다고 여차저차하니 생활을 좀 살펴주면 좋겠단다...
뭘 믿고 나에게 그런 일을 맡기는지 몰랐다.. 실제로도 뭘 믿고 그렇게 무턱대고 사람을 보내느냐고 따져 물었다..
어찌됬건 그 통화가 끝난지 2주후 그 분이 오셨다...
그 분을 태우러 가는 날 나는 완전 거지 꼴이었다... 온 몸에 흙투성이로 고구마를 캐고 집에 돌아와서 샤워도 제대로 못하고
기차역으로 데리러 갔으니.. 가서 보니 다행이 내가 굳이 잘 보일 필요는 없어보였다.. 내 스탈 아니니까-_-;;;
구해놓은 숙소로 데려가며 여차저차 설명을 했다. 장 보러 가고싶으면 연락 하고 가끔 필요할 때 부르시고 등등
직장은 변변치는 않지만 세컨비자 딸 정도는 되는 농장을 알아봐줬다. 지금 생각해도 그 농장은 진짜 최악이었지만...
아직도 후회된다...;;; 그 딴 농장을 소개시켜주다니..;;;
무튼 서로 소개하고 가끔 장보러 가거나 뭐 사먹거나 할 때 만날 수 밖에 없었다..
그 분이 아는 한국인은 그 동네에 나밖에 없었으니..;;;
그렇게 1~2주 지났나?? 같이 장을 보고 집에 가는데 이 분이 전화 통화를 하는데 중국어를 쓴다...;; 중국 사람인줄 알았다..
사실 영어도 이미 수준급으로 구사하고 있던 분이라 다시 쳐다보게 됬다..
사실 내 이상형은 똑똑한 사람이었다...;;; 그 때부터 갑자기 이 사람이 이뻐보인다...;;;; 왜 이러지-_-;;;
영어도 잘하고 중국어도 잘하네??
사실 이 분을 처음 만난 저녁에 어머니와 통화하면서 여차저차 해서 이 분이 내 동네로 와서 내가 도와주게 되었다고 이야기 하니
내심 걱정이 되신 모양이길래 안심시켜드렸다..
어머니 근데 이 분은 나보다 나이도 네살이나 많고 내 스타일도 아니라서 걱정할 일 없으실 거에요.. (나중에 이 이야기를 이 분께 해드렸더니
깔깔 대며 난리가 났다)
그리고 2주뒤 다시 어머니와 통화를 하며 말이 바뀐다..
어머니 이 분은 나이도 많고 내 스타일이 아니라서 만나고 싶지는 않은데 내 또래에 저렇게 똑똑하고 이쁜 친구 있으면 그런 친구랑 만나면
좋을거 같아요..
어머니와 누나는 이미 그 때 눈치를 채셨다고 한다..;;;
그렇게 내 멋대로 관심 없었다 관심이 생겼다 하고 난리가 난지도 한달이 지났다..
여전히 서로 친하긴 하지만 그저 누나 동생 사이로 지내고 있었다..
어느날 일 끝나고 장 보러 같이 갔다가 돌아오면서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사서 동네 호숫가에 가서 나눠 먹으며 이야기 했다.
난 똑똑한 사람이 이상형이라고...
그러자 그 분은 보통 남자들은 똑똑한 여자 안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자기는 자기보다 똑똑한 남자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을 이끌어 줘야 한다고...;;
대충 각을 재보니 도저히 난 그 분보다 똑똑해질 자신이 없었다..-_-;; 이미 나는 아득히 초월한 분이었다..(당시의 내 생각에는...)
그래서 난 나보다 똑똑한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을 따라잡기위해 많은 노력을 할 준비는 되있다고 대답했다...;; 더 똑똑해질 수는 없으니..;;
최소 동급은 맞추려고 노력해보겠다는 취지였지.....
그 말은 말 그대로 말이었고 여전히 난 그 분의 눈에 부족할거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났다.. 그 날은 마트에서 장을 보고 KFC치킨을 사들고 룰루랄라 숙소로 오던 날이었다..
난 그 분이 좋아하는 치킨을 사서 기분이 무척 좋았다..
내가 만든 특제 소스를 발라서 후라이드를 양념으로 변신시켜줄 생각에 들떠있었다고 해야하나... (그 분의 최애 음식이 치킨이다.. 그 중 양념치킨..)
차안에서 그 분이 물었다.. 혹시 나 좋아하냐고....
가슴이 철렁했다... 뭐 좋아는 한다고 대답했다...
그 분은 말이 없었다.. 그러다 싫다고 했다.. 앞으로 최대한 연락하지 말자고 했다...
나는 싫다고 했던거 같기도 하고...;; 서로 옥신각신 했다..
그 분은 왜 우리가 만나서는 안되는지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 했다.. 그리고 나는 왜 그 분의 이야기가 말이 안되는지에 대해서
열심히 이야기 했다.. 결국 그 분의 마음을 절반정도 돌려놓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분이 차에서 내리기 전에 맨 끝에 한 말...;; 그럼 부모님께 말씀드려서 허락을 받아오세요. 그럼 만날게요... 부모님 허락없이는 절대 안돼요..
그리고 그 날 저녁에 난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가 전화를 받으시자 이야기 드렸다.. 나 이 분 좋다고.. 이 분하고 만나고 싶으니 그렇게 아시라고.. 허락 안하면 못만나니까 허락해달라고....
어머니는 거짓말 안 보태고 1초의 고민도 없이 이야기 하셨다...
"니가 좋으면 그렇게 해라"
나나 그 분이나 굉장히 보수적이서서 결혼을 전제로 만나지 않으면 만날 생각이 없었다..
어머니도 그 점을 아셨다.. 어머니는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아가씨를 내 베필로 받아들이셔도 상관이 없으셨나보다...
그 때를 회상하며 어머니께 한 번 물어본 적이 있다.. 그 때 어머니의 대답은 이랬다..
"너라면 절대 그런 이야기를 쉽게하지 않을거라 생각했다. 넌 항상 여자 보는 안목이 있었거든.. 널 그만큼 믿었으니까.."
믿어주셔서 감사하다.. 반대했으면 바로 끝날 상황이었으니까..
그리고 다음 날 이미 내 마음속엔 여친님이 되신 그 분께 이야기 했다. 우리 오늘부터 1일이라고...;;;
그 분은 당황했다. 어머니가 허락하실줄 몰랐나보다...
나중에 물어보니 돌려서 거절하려 한 거였단다..
네살이나 많은 아가씨를 심지어 얼굴 한 번 안 보고 타국에서 만난 아가씨를 어머니가 교제하게 허락해줄리가 없다고 생각했단다..
근데 허락을 받아왔으니.. 그리고 보통 그렇게 이야기 하면 남자측에서 굉장히 고민하는 얼굴을 하며 근심하며 떠나는데 나는 생글생글 웃으며
떠나길래 좀 모자라거나 아예 초월한 줄 알았단다...
난 어머니가 허락안할거란 생각을 단 1%도 안 했었는데.. 그 분의 세련된 승낙이라 생각했다-_-;;
결극 그렇게 난 내 이상형의 여친을 사귀었다..
무일푼으로 호주에 와서 하려던 영어공부는 안하고 여친님과 신나게 놀았다..
아주 건전한 방식으로...;; 같이 수영도 하고 같이 농장도 가고 같이 밤 하늘에 별도 보고 같이 드라이브도 하고 같이 요리도 하고...
매일매일을 만났다...
그리고 매일 밤마다 헤어졌다.. 매일매일 밤마다 헤어지는게 슬펐지만 우리는 약속을 했고 그 약속을 어기고싶지 않았다..
그래도 너무 너무 행복했다.. 똑똑하고 이쁘고 센스도 있는 내 여친님.. 그리고 아기처럼 장난꾸러기던 나를 조금씩 어른으로 만들어주었다.
그렇게 행복한 시간도 잠시...
어느덧 여친님이 세컨비자 신청자격을 충족시키는 농장 근로일 수를 다 채웠다.. (아마 92일정도 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떠나야한단다... 내가 있던 곳이랑 2000km 떨어져있었다.. 다시 돌아갈 곳은 멜번.. 같이 골드코스트에서
다른 친구들과 여행을 하고 비행기 태워 보냈다.. 눈물나게 슬펐다.. 진짜 눈물이 났다...
왠지 지금 헤어지면 영영 헤어질 것만 같았다...
내가 있던 곳으로 돌아오는 내내 슬펐다... 차안에서도 계속 울었던 기억이... 난다-_ㅜ.. 난 울보였다...
2주가 지났다.. 매일 매일 휴대폰을 붙잡고 살았다. 하루에 한두시간은 전화기를 잡고 보고싶다를 연발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내가 너무 사랑하는 이 도시를 떠나 내가 훠~~~~얼~~~~씬 사랑하는 내 여친님 곁으로 가기로...
그 내용을 담은 글을 PGR에 7년전쯤 썼던 기억이 난다-_-;; 아 부끄러...
2000KM를 3일만에 주파했다..
내 현대 유로엑센트로... 거의 다 부셔져갈듯한 차였지만 3일동안 단 한번도 퍼지지 않고 달려주었다.. 너무 감사했다..
난 내 사랑에 너무나도 미쳐있었다... 잃고싶지 않았다...
난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을 믿는다... 그래서 내 마음이 식기전에.. 여친님의 마음이 식기전에...
하루라도 더 빨리 여친님께 가고싶었다...
난 독신으로서 이루고싶은 꿈이 있었다. 많았다.. 하지만 그 모든걸 뛰어넘을만큼 이 분은 나에게 특별했고 소중했다...
그렇게 많은 걸 포기하고 멜번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밤 10시에 도착해서 그녀를 만났을 때 너무 너무 기뻤다..
행복했다.. 서로 얼싸안고 10년만에 상봉하는 이산가족마냥 발을 동동 굴렀다...
멜번에서 새로운 숙소를 찾아야 했고, 직장을 찾아야 했다..
너무 힘들고 어려웠지만 내 여친님과 함께여서 이겨낼 수 있었다...
정말 내 모든걸 내 사랑에 걸었다.. 모든 인생 플랜을 갈아 엎고 다시 설계해야했다..
그리고 나의 스물 일곱의 겨울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내 수중엔 딱 천 만원이 있었다.. 사십만원 들고가서 천만원이 되어 돌아왔지만 그게 다였다..
서른 하나가 되어버린 내 여친님은 내 전재산이 고작 그거밖에 없었음에도 같이 한국으로 돌아와주었다.
날 떠나지도 않았고 날 버리지도 않았다.. 그 돈으로 우리는 결혼을 했다..
온전히 나를 믿었고 나 하나에 자신의 인생을 걸었다...
그 때의 난 정말 미쳐있었다.. 내 사랑에.. 놓치지 않기위해... 붙잡았다
필사적으로 붙잡고 놓지 않았다.. 그 천 만원으로 결혼식을 올리고 다시 호주로 돌아왔다..
돌아올 때 어머니가 축의금으로 들어온 돈을 다시 돌려주셨다...
호주에서의 삶은 무척 행복했다.. 나쁘지 않은 직장을 나는 잘도 구했다..
멜번에서 다시금 1년을 보낼 수 있었다.. 이제는 나의 아내님과...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호주에 계속 살까 돌아올까 고민 하던 차에 아는 형님이 자신의 사업을
같이 해보자고 제안했다.. 나는 그 말을 믿었고 한국으로 돌아왔고 그 형님과 같이 쫄딱 망했다...
결혼 후 호주에서 모아온 돈은 수도권 원룸 한 칸을 얻기에도 버거웠다...
형님은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사업을 접었다.. 내 삶도 접혀지는 것 같았다..;;;
내 아내에게 너무 미안했고 눈물이 났다.. 한달에 60만원도 못 벌어 간적이 양손으로 꼽을수 있었다..
신혼 초기에... 호주에서 나쁘지 않게 지내다 내 말만 듣고 한국으로 돌아왔더니..
좋아지기는 커녕 생활이 쪼그라쪼그라쪼그라 들었다.. 너무 너무 나 자신에게 화가 나고 아내님께 미안했다..
눈물이 났다.. 한국에서의 취직은 정말 힘들었다...
그러던 차에 잠시 스쳐간 회사에서 내 글 가장 첫머리에 나온 질문을 던졌다..
무언가에 정말로 미쳐본적이 있느냐고...
그랬다.. 난 내 아내님에게 미쳐있었고 그 때도 여전히 미쳐있었다..
내 아내님이 그 시기에 나에게 해주었던 헌신과 사랑으로 난 버텼다..
그 시기에 아내님이 나에게 항상 해주던 말이 있다..
여보. 밖에 나가면 어깨 피세요.. 아무리 힘들어도 당당해야해요.. 내 남편이잖아요..
당신 곁엔 내가 있잖아요.. 우린 잘 될거에요.. 그러니 어깨 축 늘어뜨리지 말아요..
내가 미쳐있던 내 아내님은 나보다 더 나에게 미쳐있었나보다..
그래서 내가 버틸수 있었나보다..
그 시기 차를 타고 출근을 하다보면 이런 생각이 들고는 했다.
지금 내가 맞은편 트럭에 뛰어들면 어떨까?
내가 죽더라도 내 사망보험금이 나와서 내 아내는 그래도 덜 힘들지 않을까?
이렇게 고생시키느니 차라리 그게 좋을 수도 있겠다...
스물 여덟의 나에겐 너무나 가혹한 시기였던 것 같다.. 준비되지 않은 가장의 말로가 이런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 삶에 더 힘든 시기가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그 때는 혼자였다.. 굶어도 혼자 굶으면 그만이었고 기름이 없으면 춥게 자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더이상 그게 아니었다. 눈물이 났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아내님은 울면서 제발 그런 이야기 하지 말라고 했다.. 밥 한끼 굶어도 살지만 나 없으면 못산다고 울었다.
더 좋은 사람 만날수 있었는데 나 때문에 고생만 하고 있었다. 한국에 오면 더 행복하고 편안하게 해줄 줄 알았는데 당장 공과금, 식비 걱정을
할 처지였다...
매일매일 내일은 어떻게 하나 하는 고민에 서로 끌어안고 울기도 엄청 울었다..
하지만 미쳐있어서 버틸 수 있었다.. 내 사랑하는 아내님에게..
그 시기에 많이 느꼈다.. 자중심을 지키지 못하면 한 번에 무너져내릴 수 있다는 것도..
사람의 마음이란 보기보다 굉장히 약하다는 것을...
나의 가치를 올리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도 느꼈던 것 같다..
그 뒤로 어찌저찌 되어서 지금은 이렇게 키보드 두드리며 잠든 아내와 아들 녀석을 볼 수 있는 상황이 되기는 했지만...
벌써 6년이 지났다... 어떻게 버텨왔는지 모르겠다...
그저 미쳐있어서 버틸 수 있었다... 내 가족에게 미쳐있었다..
그 힘든 시기에 임신을 해서 벌써 다섯살이 되어버린 아들 녀석도 있고.... 사랑하는 아내님도 있다...
아내가 임신을 했을 때 했던 약속이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게 모든 관심을 쏟아서 부부간에 관계가 소홀해 진다고..
그래서 서로 아이에 정신 팔려 서로 이전보다 멀어질 수도 있다는데 어떻게 할 거냐고..
그리고 내가 이렇게 이야기 했다
부모가 자식을 덜 사랑할 수는 없으니 나는 아내님을 6 아들을 4 사랑하고 아내님은 나를 6 아들을 4 사랑하자고
그럼 우리 둘은 서로 6씩 사랑하지만 아들은 우리 둘 몫으로 8을 받으니 우리 가족 중에 가장 사랑 받는 아이가 될거라고
그리고 우리는 각자 6씩 서로를 사랑하고 있으니 아이 때문에 서로에게 소홀히 되지 않을거라고...
이미 제법 시간이 지났지만 그 말은 아직도 지켜지고 있는 것 같다.. (내 생각으로만인가??)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너무너무 사랑하고 아들 역시도 너무너무 사랑받는다...
시련은 무언가에 미쳐있음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 같다.. 혹시 그 무언가가 사랑이라면 더 악착같이 극복할 수 있을지도...;;
난 여전히 미쳐있다... 미쳐있었고 미쳐있고 앞으로도 미쳐있을거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렇다고 집착 같은거 아닙니다. 흠흠.. 정상적인 사람이라구요)
하.... 이렇게 쓰고보니 어찌 마무리를 해야 할지...;;
그 사이사이 글을 쓰자니 너무 글이 길어진다... 일단 잘라야겠다...
문득 옛날 생각이 났습니다. 한 번 글로 남겨보고 싶었어요.. 기왕 글로 쓸거면 일기장보다는 PGR에 쓰고 싶었습니다.
그러라고 있는 자유게시판이니까요...
아내는 제가 PGR에 너무 오래 접속해있는걸 싫어해서 사실 길게 글을 쓸 수가 없었고 저도 너무 장문의 글은 피곤해서 쓰기가 힘들었네요.
항상 생각만 했었는데..
새벽에 무리해서 쓰긴 했는데...;;;
이제 자야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들 푹 쉬세요...
P.s 오늘 덧글 달아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일 하느라 못 달지만 집가는데로 모든 분께 감사 덧글 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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