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지속적으로 만나온 동창 애들 중 몇몇이 주말에 등산 모임을 따로 가지고 있는지 오래다.
등산이란 걸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지라 저 녀석들 올라갔다 내려와서 밥 먹고 술 먹는게 목적이겠지 라는 편견으로 난 안 한다 손사레를 쳤던 게 오래, 하산하며 저녁 먹는 시간에 따로 초대 되어 밥만 먹고 오는게 몇 번인게 미안해서 못 이기는 척 산행을 처음 다녀온게 한달 쯤 전이다.
그랬는데 웬걸, 울창한 나무 숲 사이의 그 공기가 아 이런게 있구나 싶을 정도로 좋고,
적당히 난이도가 있는 상행 하행이 은근한 매력으로 다가와 이거 계속 해야겠구나 싶은 생각이 바로 들더라.
“OO아 오빠가 할 말이 있는데, 여차 저차 저차 여차 해서 토요일에 가끔 같이 못 갈 것 같은데 괜찮겠니?”
별 일 없으면 거의 매주 토요일에는 처가에 가는게 일상이기에 아내에게 양해를 구했더니, 표정은 좀 뾰로통한데 등산 다녀오고 좋았던 걸 대충 듣고, 또 나란 사람이 무언가에 꽂혀 이거 해야겠다 하는게 그리 흔하지 않은 일이라는 걸 충분히 아는 사람이기에 비교적 흔쾌히 동의를 얻었다.
“오빠, 나무에서 피톤치드라는게 나오는데 그게 몸에 그렇게 좋대요”
“피톤.. 어.. 뭐 들어는 본 것 같네.. 그럼 그 좋은 기분이 그것 땜에 그런가?”
두어 번 산행을 하고 나니 당연히 아내와도 함께 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같이 갈래?”
“내가 푼수야? 남의 동창 모임에 가게?”
하긴 그렇지.
“그럼 우리 따로 시간 내서 가자. 그럼 너도 또 체력 좀 길러야지.”
“......”
긴가민가 한가 보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 했다고 겪어 보지 않으면 모를 일은 아는 사람이 어떻게든 시동을 걸어줘야겠기에,
지난 주 나름 코스를 잡아 트랙킹 계획을 세웠다.
5년 전 즈음 운동 제대로 배우고 한참을 열심히 하더니 싫증날 때도 되고 이제 뭔가 나이 때문에 체력에 한계를 느끼는지 요새 한참 운동에 소원해 지더라. 워낙 건강한 체질이 아니라 걱정은 되고, 뭐라도 새로운 동력이 생겨야 하나 하던 차에 적절한 기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녀오고 나서 결과가 좋으면 나름대로 뭔가 변화를 가지겠지.
토요일의 하늘은 너무도 적절했다.
가시거리는 요즘 맑은 날엔 늘 그런 편이듯 보고자만 하면 어디까지든 보일 듯 했고,
기온이 은근 높았지만 그때 그때 알맞게 불어주는 미풍은 절로 입꼬리가 올라가게 하기에 충분했다.
“와 날씨 좋다...!!”
“아 시원하다......!!”
“강아지 풀 좀 봐! 진짜 오랜만에 본다!!!”
“꽃 색깔 봐 너무 예쁘다!!!”
연신 뭔가가 눈에 들어올 때 마다 몸이 느낄 때 마다 조잘조잘 재잘재잘 쉬지를 않는다.
반환점에서 계획했던 대로 어느 다리를 통제하고 열리는 축제도 적절히 구경하고,
사진찍기를 싫어하는 사람인데 찍자는 말에 바로 바로 응대도 한다.
웬만해서는 사진 찍자고 폰 들이대면 얼굴 가리거나 고개 홱 돌려버리는 사람이 적당한 포즈 요구에도 하는 척을 한다. 똥 씹은 표정이긴 한데 맛 있는 똥을 씹는 표정이랄까.
둘이 함께 이렇게 저렇게 셀카를 찍는 와중에 그 모습을 지나가다 보고 아내와 눈을 마주친 한 여인이 ‘잘 어울려요’ 한마디 건넨다.
“아하..예...”
“하하.. 감사합니다아~~~”
부부가 동시에 답례를 한다. 아내의 기분이 최고다.
‘와.. 아주머니 어디 정부에서 푼 알바세요? 어쨌든 감사합니다’
“너무 좋지?”
“응”
“체력 좀 길러서 오빠랑 같이 등산 할래? 서서히 적응할 수 있도록 오빠가 계획 짜 놓은 건 있어”
“응”
“그 동안 왜 이걸 몰랐나 싶지?”
“응!!!”
아직 집까지 도착하려면 적잖이 걸어야 하지만 늘 보던 동네가 눈에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이미 집에 도착하고도 남는 기분이다.
생각해 두었던 곳에서 맛있게 저녁도 함께 먹고,
또 이런 저런 얘기 도란 도란, 남은 길 마저 걸어오며 하루 계획을 마무리 지었다.
.
.
.
며칠 전 문득 폰에 저장돼 있던 결혼 초기 함께 찍은 사진을 무심코 꺼내 보고, 아니 내가 이렇게 생겼었나 싶을 만큼 지금의 얼굴과 다른 모습이 놀라워 아내에게 카톡으로 보낸 적이 있다.
‘둘 다 애기네’
그러고는 우는 이모티콘을 연달아 보낸다.
나도 울고 싶은데 여자인 이 사람이야 오죽하랴.
언젠가 ‘나 너무 늙었지’라고 물어보는 그 심정에 너무 공감해 짠했던 적이 있다.
이제 앞으로는 더더욱 그런 생각 들 날만 남았는데
같이 늙어가는 사람 둘이 이렇게 저렇게 나름 바쁜 시간을 보내다가 이제 다시 둘이 함께 할 시간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하는 이 시기에,
서로 무언가를 같이 하려는 노력이 가능하다는 것이 고맙고,
같이 할 무언가가 우연찮게 찾아졌다는 것 또한 너무 고맙다.
8년 전 즈음, 결혼 10년이 된 어느 날의 소회를 몇 자 끄적이면서
또 10년 후에도 이런 글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했다.
그 동안 그 10년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힘든 일이 많았지만,
다시 10년이 가까이 오는 즈음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글을 쓸 수 있어 다행이다.
40여 년 살아 보니 인생이란 건 지날수록 힘이 든 놈(?)인 것 같다.
자식이 둘씩이나 앞으로 창창한 날들을 남겨놓고 있으니
앞으로도 어떻게든 더 힘들 일이 많을 것이 뻔하다.
그러나
결혼생활의 과정이 복잡하고 다난할 지라도
그 중간 즈음의 어느 날 내 반려자란 사람에게서
오빠 되게 미안한데 나보다 하루라도 더 살아. 난 딴 건 모르겠는데 오빠 없으면 안될 것 같아. 진짜 미안해.
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거 아닌가.
저런 낯간지러운 축에 속하는 말은 웬만하면 하지 않는 아내라는 사람에게서 들은 말이라 반 농담으로 받아치긴 했어도
아내라는 사람의 흔치 않은 부탁에 그 날부터 더 열심히 운동하는 게 나란 사람이면 그걸로 된 거 아닌가.
.
.
.
아직 잠들어 있는 아내의 코를 살짝 건드려 오늘도 아침인사를 한다.
“에이 씨!!!!”
꿈자리가 시끄러웠나 눈도 못 뜨고 비몽사몽 간에 엄청 살벌한 반응이다.
에라이~ 정이 뚝 떨어진다 이놈아 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긴 했지만
그래도 난 너그러운 사람이니
너보다 하루라도 더 살겠다는 약속은 꼭 지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