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아지프. 통칭 네크로노미콘. 미쳐버린 아랍인 압둘 알하자드의 저서를 비잔티움 제국의 테오도루스 필레타스가 그리스로 번역한 마도서. 전 세계에 몇 권 남아 있지 않은 이 희귀한 책을 구한 곳은 중고나라였다. 직거래를 조건으로 백만 원에 올라온 알 아지프 사본의 매물에는 수십 개의 악플이 달려 있었다. 그러나 나는 속는 셈치고 전화번호를 눌렀고, 그믐밤 자정에 가까운 시각에 종로 2가 뒷골목에서 이 물건을 손에 넣었다. 현금 백만 원을 건내주자 판매자는 돈을 낚아채듯 가져가 바삐 사라졌고, 내 손에 남은 것은 빛바랜 고서를 컬러로 촬영하여 프린트한 A4용지 묶음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가짜가 아니었다.
여덟 달에 걸친 연구 끝에 나는 마침내 악마를 불러내는 주문을 익혔다. 재료도 모두 갖추어졌다. 검은 양의 피. 무덤에서 파온 흙. 늪바닥의 진흙. 모기의 눈알. 이름모를 재료로 만들어진 향. 그리고 바로 이 책, 알 아지프. 네크로노미콘. 나는 붉은 피로 오망성을 그린 후 낮은 목소리로 주문을 읊기 시작했다.
"판글루 글루나파 크툴루 르뤼에 가나글 파탄......"
공기가 진동하며 살갗이 떨리더니 머리카락과 털이 바짝 곤두섰다. 공기의 무게가 늘어나며 순간적으로 공간의 균질감이 무너졌다. 그러나 나는 주문을 그치지 않았다. 잠시 후 불꽃이 튀고 짙은 유황 냄새가 나더니 어느 순간 그곳에 그 존재가 있었다. 나는 들고 있던 복사본을 내려놓고 시선을 앞으로 향했다. 그 존재가 나를 보았다. 검은 피부. 온몸에 난 털. 붉은 눈동자. 긴 꼬리.
악마가 소환되었다.
악마는 내게 다가오려 했다. 그러나 오망성으로 둘러쳐진 보이지 않는 벽을 의식한 듯 바로 발을 멈추었다. 그는 코를 킁킁대더니 입가에서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인간이여. 왜 나를 불렀나."
그 목소리에는 마력이 있어, 듣는 것만으로도 나는 하마터면 무릎을 꿇을 뻔했다. 그러나 나는 의지력으로 버티고 섰다. 여기까지 와서 무너질 수는 없었다. 나는 두 다리를 벌리고 서서 말했다.
"너와 계약을 맺고자 한다, 악마여."
악마가 혀를 낼름거리자 그곳에 옅은 불꽃이 일었다. 악마가 말했다.
"좋다. 조건은?"
나는 침을 꿀꺽 삼킨 후 말했다.
"세계를 지배할 권력과 영원한 부를 원한다."
"대가는?"
나는 다시 한 번 침을 삼키고, 대답했다.
"나의 영혼을 주겠다."
악마는 고개를 외로 꼬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교섭 결렬이다."
"......뭐라고?"
나는 당황해서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었다. 악마가 어깨를 으쓱이더니 말했다.
"인간이여. 네 영혼의 값어치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나?"
"아, 그, 글쎄?"
나는 당황했다. 그런 나를 보더니 악마는 다시 한 번 기나긴 한숨을 내쉬었다.
"지구상에는 육십 억이 넘는 인간이 있다. 그리고 지옥에는 이미 백삼십억 사천칠백육십사만 삼천일백구십두 개의 영혼이 있지. 너무 많아서 보관하기조차 곤란할 지경이다. 그런데 너 따위의 영혼이라니. 한심하군."
악마는 뒤춤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두두두두 소리를 내며 연신 두드렸다. 나는 그것이 계산기임을 뒤늦게 알아보았다. 숫자를 확인하던 악마가 말했다.
"지금 계산해 봤는데, 네 영혼의 대가로는 이 정도를 줄 수 있는 게 고작이다."
악마는 테X노마트 핸드폰가게 점원처럼 계산기를 내밀었다. 그곳에는 3,802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삼천팔백억 원인가?"
악마는 무슨 개소리를 하느냐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다 쏘듯이 말했다.
"삼백팔십만 이천원이다."
"거짓말 마라!"
나는 이를 악물고 외쳤다. 그러나 악마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 정도가 고작이라고. 말했다시피 요즘 인간의 영혼 따위는 흘러넘칠 지경이니까."
나는 밀려드는 좌절감에 몸부림쳤다. 그런 나를 싸늘하게 내려다보고 있던 악마가 말했다.
"아무래도 계약은 불가능한 모양이군."
"꺼져."
이를 앙다문 내 입술 사이로 말소리가 흘러나갔다. 나는 고개를 들지 않고 말했다.
"당장 지옥으로 꺼져버리라고."
그러나 악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후 나는 고개를 들었다.
"왜 안 가는 거지?"
악마가 잠자코 손을 내밀었다.
"출장비 내놔."
"......뭐?"
악마가 한숨을 쉬고 말했다.
"지옥에서 여기까지 오기가 쉬운 줄 아냐? 내 인건비는 또 어쩌고? 나도 비정규직이라서 말이지, 네 형편을 봐 줄 수 없다고."
빌어먹을. 나는 욕설을 내뱉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지갑을 꺼내 꼬깃꼬짓 접어 두었던 만 원짜리 석 장을 꺼냈다. 내가 오망성 안으로 손을 밀어넣자마자 악마는 그 돈을 낚아챘다. 내내 험악하던 그 얼굴에 마침내 만족감이 어리는 것을 나는 똑똑히 보았다.
악마가 고개를 숙이며 가식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객님!"
그리고 그녀는 사라졌다. 매캐한 유황 연기만을 남긴 채.
나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방에서 나와 부엌으로 갔다. 그리고 컵라면에 부을 물을 끓이며 생각했다.
내일부터는 공무원 시험 공부라도 시작해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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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영혼을 모아서 뭐에쓰나요?? 어떤 소설에서는 영혼을 연료로 쓰는 일종의 리액터가 있어서 업을 다 태울때까지 에너지를 방출한다는 얘기가 있던데..
설마 악마가 신한테 자랑하려고 모으는것 같지도 않고.. 그리고 지옥에 간 영혼과 팔린 영혼은 차이가 있을거 같아요~
드래곤 나이트는 요새 뭐하고 지내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