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있어서 무언가를 싫어하는 것은 감정이 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물론 이유가 필요한 건 아니다. 인간은 논리에 앞서 자신의 감정이 우선되어 판단하는 경우가 있고 그 자체는 자연스러운 사고의 일환이다.
그러나 문제는 내가 싫어하는 것이 곧 나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무언가를 싫어하는 감정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하여 싫어하기 때문에 나쁜 것이라는 사고의 흐름은 많은 오류를 파생시킨다.
하지만 인간이란 교활하여 내가 싫어하는 것이 그저 감정에 앞서 이유없이 싫어한다고 비춰지는 것이라고 여겨지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싫어하는 것은 그것이 나쁘기 때문에 싫어한다라고 하는 프레임을 만들기 위하여
싫어하는 대상을 나쁘게 만들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억지로 만들어진 프레임과 끊임없이 싸우고 있는 것이다.
게임을 싫어하는 사람들, 특히나 우리가 꼰대라고 잘 일컫는 기성세대에게 게임은 그저 악의 일환일 뿐이라고 생각되어진다.
하지만 게임이 사실상 그 기성세대들에게 어떤 커다란 해를 끼치거나 손실을 입히지 않았다. 그렇다 하여도 게임은 싫어하기 때문에
내 아이가, 내 주위가 게임을 하고 있는 모습은 정말 보기 싫기에, 게임은 나쁜 것이라는 프레임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게임중독이라고 표현되며 게임을 사회악이라고 선동하며, 머리가 좋고 높은 자리에 계신 분들은 어려운 법률을 만들어가며
게임에 관한 것들을 제한하려 하기 위해 애를 쓴다. 하지만 사실 그들에게 게임은 피해를 준 적이 없다. 되려 한편으로는 그 게임을 이용해서
상업적인 가치를 올리는 기성세대들이 말이다.
프레임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한다.
내가 싫어하기 때문에, 하지만 그냥 이유없이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라는 자신의 정당성을 옹호하기 위한 프레임을 만들어 내기 위하여
내가 싫어하는 것은 나쁘기 때문에 싫어한다라는 억지로 쥐어짜는 프레임의 생산은 지금 비단 게임 뿐만 아니다.
우리 와이프는 쉬는 날 집에 있는 것을 죽기 보다 싫어한다. 날이 이리도 더워서 나가면 땀이 삐질삐질 흘리고
어딜 가나 붐벼 사람에 치이고 불쾌지수가 높아짐에도 불구하고 쉬는 날에 집에 있는 것을 싫어한다. 나가 놀아야 한다.
내가 일주일 동안 이 시간만을 얼마나 기다려 왔는지는 안중에 있을리 없다.
이 프레임은, 본인이 밖에 나가 놀고 싶은 정당한 프레임을 만들기 위하여, 아이를 끌어들인다.
아이가 저렇게 놀고 싶어하는데 집에 있는 것이 불쌍하다 라는 극악무도한 프레임 설정에 들어간다.
내가 보기에 아이는 집안에서도 충분히 즐겁게 놀고 있다. 그 많은 장난감과, 여름을 대비해 작년에 대영이 삼촌에게 받는 실내용 풀,
또한 각종 파워레인저 DVD, 냉장고만 열면 충분히 있는 먹을 것과 마실 것, 집안을 시원하게 해주는 사랑스러운 에어콘.
나 역시 이 쾌적한 집안에서 아들 녀석과 신나게 놀아줄 마음의 준비는 항상 충만하다.
하지만 일요일에 집에 있기 싫다, 나가 놀고 싶다라는 프레임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아이를 끌어들이는 극악무도함.
어쩔 수 없지만 일개 가족구성원에 불과한 나는 그 프레임에 매번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다.
쉬는 날은, 쉬는 날이다. 쉬는 날은 쉬는 날이기 때문에 쉬어야 한다. 쉬는 날은 노는 날이 아니다.
나는 오늘도 프레임과의 전쟁을 치르며 일요일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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