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저녁 장사를 개시했을 때였다. 한 커플이 가게로 들어섰다. 남자는 자주 보던 얼굴이다. 까무잡잡한 피부와 매끄러운 턱선이 인상적인 미남이었다. 여자도 만만찮았다. 새하얀 다리는 쭉 뻗었고 오똑한 콧날 위로 주먹만 한 눈망울이 그렁그렁 달렸다. 잘 생기고 이쁜 것들이다. 누가 찌르지도 않았건만, 허전한 옆구리가 콕콕 쑤셔왔다.
여자는 두리번거리며 미심쩍은 시선으로 가게를 훑었다.
"자기 여기 와 봤어?"
"여기 진짜 맛있다니깐."
남자는 우리 식당을 좋아했다. 사실 우리 음식이 맛있기도 했지만, 남자는 계산할 때마다 "여기 정말 맛있어요."라는 말을 연발했다. 몇 번 보지 않았음에도 내가 그의 얼굴을 기억하는 이유였다.
"몇 번 와봤나 보네?"
"두어 번?"
"누구랑 왔는데?"
"음... 혼자 왔지."
"식당을 혼자 왔다고? 이런 곳을?"
"혼자 올 수도 있지."
남자의 목소리에서 얇은 긴장을 느낄 수 있었다.
"전에 통화하면서 정말 맛있다고 한 데가 여기 아니야?"
"어! 맞아. 거기가 여기야."
"그때 혼자 아니었는데? 친구랑 같이 있었다고 그랬는데?"
"어? 마... 맞다. 그때 또 왔었어. 정현이랑 왔었...나?"
얇은 긴장은 묵직한 혼란이 되어 남자의 말문을 턱턱 가로막았다.
"정현이? 여자야?"
"아니야. 남자애야. 왜 그... 통통한 후배 있잖아. 머리 짧고 턱살 있고."
남자는 땀을 뻘뻘 흘리며 손짓 발짓을 나불거렸다.
"진짜야?"
여자는 아까보다 더 미심쩍은 표정으로 남자를 노려보았다. 남자의 얼굴이 잿빛으로 썩어갔다.
나는 그 모습이 안쓰러워 구원의 손길을 건네주기로 했다. 물을 따라주는 척하며 은근슬쩍 말을 걸었다.
"처음에는 혼자 오셨고, 그다음에 남자분하고 같이 오셨죠."
내가 깜빡이도 켜지 않고 끼어들자 여자가 의뭉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항상 오셔서 정말 맛있다고, 잘 먹었다고 하셔서 제가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제서야 여자의 눈에서 힘이 풀렸다. 레이저를 쏟아내던 눈동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푸근한 색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남자는 죽다 살아난 표정으로 천장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여자의 뒤에 서서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둘은 이내 평범한 대화를 이어갔다. 더는 남자의 목소리에서 조금의 긴장도 느낄 수 없었다. 여자가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뒤적거렸고, 그제서야 남자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나를 바라보는 눈빛과 미묘하게 끄덕이는 고개에서 그의 심정을 느낄 수 있었다. 나 또한 그를 바라보며 소리 없이 눈으로 대답할 뿐이었다.
'남자끼리 돕고 살아야죠.'
Written by 충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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