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하룻날 식전에, 나는 난생처음 맞춘 정장을 입고 구두를 신었다. 밤이 길다보니 아직도 일출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었다. 혹여나 주무시던 어머니가 깰까, 불도 켜지 않고 서투르게 이리저리 손을 놀리다보니 평소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마침내 복착이 끝나자 나는 캐리어 가방 하나를 조심스레 들고 나섰다. 마악 현관문을 나가려는 찰나,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 니 역까지 태워줄까?"
언제부터 깨어계셨는지, 피곤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로 어머니가 물어보셨다.
"됐다. 걸어가도 얼마 안 멀다."
당신께서는 잠깐 기다려보라더니 베란다로 나가 이 과일, 저 과자, 그 반찬을 주섬주섬 포장하기 시작했다. 나는 급히 손사래쳤다.
"그거 가가도 하나도 안 먹는다. 걍 냅둬라."
여느 때나, 어느 가정에나 있는 실랑이였다. 한사코 행장의 무게를 100 그램이라도 늘리려는 어머니와 어떻게든 줄이려는 자식, 정말 익숙하다.
그렇게 김치를 빼고, 가죽나물을 빼고, 자몽을 빼고, 견과류를 빼다 보니 이제는 정말 검은 봉투 안에 든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나 이제 갈게. 잘 있으래이."
흥정이 다시 시작되기 전에 서두르려했지만 어머니가 조금 더 빨랐다.
"이거라도 가가서 먹어라."
당신께서 내민 것은 세 개의 귤이었다. 나는 귤을 봉투에 담고 몸을 돌렸다.
어두운 새벽, 컴컴한 현관에서 집을 나서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었다. 애초에 고향에서는 수학한 적이 거의 없었으니, 수시로 학교와 고향을 왕복해야만 했다.
하지만 어린이는 소년이 되고, 대학교를 나와, 차츰 어른이 되어간다. 학교 다음에는 또 다른 학교가 줄지어 서있지만, 대학 다음에는 학생 신분이 이어지지 않는다.
나는 불현듯 시간의 경과를 느꼈다. 고향 내려오라는 전화를 받아도 항상 차일피일 연기하며 느지막이 내려와 일 주일도 채 머무르지 않던 날들. 학생이기에 썩어도는 여윳시간을 풍요롭게 방에서 뒹구르며 보냈던 날들. 이 문을 여는 순간 그런 날들이 다시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문 밖으로 나서는 순간, 한가한 학생이 아니라 바쁜 일정에 짓눌리는 직장인으로 변할 것 같았다.
그제서야 아련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날들이 영원하지 않았구나. 거실에 엎드려 모바일 게임을 하며 과일을 축내는 생활, 어머니가 배드민턴을 치자고 해도 귀찮다고 도망가던 생활,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해도 재미 없다고 소설을 읽던 생활. 항상 다음에 치면 되지, 다음에 보면 되지, 다음에 이야기하면 되지, 변명하며 미뤄왔지만, 그 수많은 '다음'의 약속들을 충족하기 전에, 나는 이미 내 시간을 어머니가 아니라 일자리에 저당 잡혀버렸다.
"우리 아들 멋지다. 어서 가라."
기차 안에서 나는 봉투 안의 귤을 만지작거렸다.
그간 지키지 못했던 약속들에 대한 섭섭함이 쌓여 15층은 되었으려만, 어머니는 끝내 그저 격려하는 말들 뿐이었다. 막 채용되었던 날, 고작해야 인턴 직급인데도 불구하고 친척에 직장에, 사방팔방으로 자랑하시던 생각이 났다. 경사가 났는데 이 정도는 해줄 수 있다며 색깔별로 여러 벌의 정장을 마구 담으시던 생각이 났다. 점심코스 가격이 수 만원을 호가하는 한정식집에서 식당 종업원에게까지 아들이 취직해서 식사하러 왔다고 자랑하던 생각이 났다. 그 때 나는 정갈하지만 자극적이지 못한 음식이 맛 없다며 불평했었다.
두 가족 사이의 사랑이 어떻게 이렇게 일방적일 수가 있는지.
자취방에 도착해 귤 세 개를 책상 위에 나란히 놓고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별 특별할 것이 없는, 보통 귤이다.
아직 나의 청춘은 다하지 않았으니, 이 세 개의 귤을 다시 돌려드릴 날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귤 하나에 추억과
귤 하나에 사랑과
귤 하나에 쓸쓸함과
귤 하나에 동경과
귤 하나에 시와
귤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귤 잘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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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참에 고향이나 한번 내려가봐야겠네요. 저도 얼른 철이 들어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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