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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4/29 06:02
최근에 글쓰기에 관련된 책을 많이 읽고 있습니다. 거기에 나온 내용중에서 제알 중요한 두가지를 단순하게 조언해보겠습니다.
일단 첫 번째로 글이 너무 숨이 막힙니다. 글은 최대한 짧게 짧게 리드미컬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철수는 영희를 좋아하지만 미애 역시 좋아해서 철수는 영희와 미애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하다가 결국 영희에게 고백을 하기로 마음 먹다가 이내 포기를 했다.'라는 짧은 글을 읽으실 때 어떤가요? 중간 중간 끊기지 않아 숨쉴 틈이 없죠? 그래서 글 쓸때 최대한 간결하게 다.다.다로 끊어야 합니다. '철수는 영희를 좋아한다. 미애 역시 좋아한다. 철수는 영희와 미애를 사이에 두고 많은 고민한다. 결국 철수는 영희에게 고백을 하기로 마음먹었지만 이내 포기를 했다.'이런식이 훨씬 간결해보이고 리드미컬 한거 같지 않나요? 접속사를 쓰느니 다.로 끊으세요. 둘째, 글을 쓰고 입으로 소리내어 읽어 보세요. 입으로 쉽게 소리 내어 읽을 수 있는 글이 읽기도 쉬운 글입니다. 그러니 글을 쓰고 소리 내 읽어 보시고 어색한 부분은 고쳐 쓰시는게 좋습니다. 더 얘기하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서 이만.. 다른 분들이 더 조언 해줄겁니다.
17/04/29 07:29
글을 짧게 끊어 쓰게 되면 리드미컬해지는 장점이 있지만, 사고의 흐름 또한 지나치게 단순화 되게 되는 단점이 있죠. 예컨대 드신 예를 보죠.
<철수는 영희를 좋아한다. 미애 역시 좋아한다. 철수는 영희와 미애를 사이에 두고 고민한다.. 그러다 포기한다> 이런 식의 문장들은 이야기 안의 화자의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일종의 건조한 보고서처럼 느껴지지 않나요? 예시적으로 인용한 첫 문장은 자체가 비문이니 똑같은 문장을 제가 제 식으로 한 번 바꿔볼 께요. <철수는 영희를 좋아하지만, 미애도 철수를 마음에 두고 있다. 그 와중에 첱수의 마음은 돗단배처럼 끊임없이 영희와 미애 사이에서 흔들리고, 결국 철수는 미애에게 고백을 하기로 결심하지만, 나중엔 그 마음 조차 스스로 놓아 버리고 만다>. 어떤 가요? 문장은 길어 졌지만 글 속의 화자가 느낄 내면의 감정은 훨씬 더 생생하게 다가오지 않나요? 역으로 조언을 해 드리자면, 긴 문장의 글을 한 번 소리 내어 읽어 보세요.. 예를 들어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나 오비드의 변신 이야기 같은 것... 전혀 다른 경험이 다가올 겁니다. <글이 숨이 막힌다는> 말은, 비평자 스스로도 타인의 글에 대한 진지하고 깊은 이해를 전제로 해서나 던질 수 있는, 꺼내기 전 매우 신중해야 할 말이라고 생각해요. 죄송하지만 솔빈님의 멘트 안에는 독자로서의 그런 성실한 자세가 느껴지지 않네요. 여튼 조언 감사해요.
17/04/29 08:04
조언을 구했으면서 독자의 성실성 운운 하시는 건 좀 ... 게으른 독자의 이해를 끌어내는 게 쉬운 글쓰기의 장점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솔빈님의 조언은 글쓰기로 고민해봤던 사람이 보기에 정말 구구절절 좋은 조언 뿐이기도 합니다.
글이 숨이 막힌다는 게 꼭 심오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단순히 소리내어 읽었을 때 숨이 턱턱 막히게 호흡이 쉴 틈이 없어도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솔빈님의 막 문단을 고려할 시 그런 의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복문은 프로 글쟁이에게는 준 금기 사항입니다. 복문이 많으면 의미 전달력이 떨어집니디. 너무 잘게 쪼개어 딱딱하게 느껴지게 하는 게 아니라면 문장은 쪼갤 수록 의미가 분명해집니다. 예로 외국의 글을 드셨는데 이는 잘못된 예시입니다. 특히 영어의 경우 관계사 때문에 복문이 빈번하게 등장하고, 이 복문들이 문학적 깊이도 갖지요. 하지만 우리 말은 다릅니다. 특히 관계사 형식으로 "~하는 ...는" 식으로 쓰면 걍 지저분할 뿐입니다. 복문도 장점은 있습니다. 본래 단문으로만 된 글이 호흡이 가쁘고, 복문은 호흡을 늦춰주는 역할을 합니다. 단문이 연설문에 어울린다면, 복문은 독백에 어울린달까요. 다이나믹한 단문과 진중한 복문이라 생각하면 좋을 겁니다. 그런데 님의 글은 복문 위주인데도 되레 글의 호흡이 숨막힐 듯 느껴졌다고 합니다. 이런 경우 그 이유는 복문이 단문의 나열에 불과할 때가 많습니다. "나는 너를 좋아하고, 너는 나를 좋아하고, 우린 서로 좋아하는데도 그 누구도 말을 안 해요." 이런 느낌의 문장이란 거죠. 신문 사설이나, 프로 작가의 칼럼 같은 거 아무거나 골라서 복문과 단문의 비율이 얼마인지 세어보세요. 그러면 작가들이 얼마나 복문을 의도적으로 피하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사실 글 쓰는 입장에서는 복문이 편합니다. 복잡한 생각을 그대로 글로 직역하니까요. 그걸 단문으로 바꾸는 일은 단순히 문장을 둘로 쪼개는 게 아닙니다. 훨씬 복잡하고 난감한 일이죠. 복문이라서 깊이있고 생생한 문장인 게 아닙니다. 좋은 글쓴이는 단문이면서도 복문의 깊이를 담아낼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게 글쓴이가 고뇌해야 하는 이유일 겁니다.
17/04/29 08:32
충달님과는 이 주제에 관해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 번 별도의 대화를 나눠 보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프로 글쟁이' 의 기준에 신문 사설이나 프로 작가의 범주로만 스탠다드를 맞추는 것은 조금 편협한 시각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관계사가 있고 /없는 언어에 따라 좋은 문장의 기준 자체가 달라진다고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짧은 문장들로<만> 구성된 문단은 충달님의 말씀을 뒤집어 생각해 보면 바로 그렇게 정확하게 쪼개기가 어렵다는 이유 때문에, 제대로 잘못 쪼갰다가 그 자체로 글에 내재된 사유의 긴장도를 현저하게 떨어 뜨릴 위험이 매우 큽니다. 저는 칼럼 라이터들의 글은 잘 읽지 않으니 그 쪽 부분은 모르겠고, 제가 전공하고 있는 범위 안에서 그런 식으로 깊이 있는 생각을 평이한 언어로 풀어 놓을 수 있는 놀라운 재능을 가진 철학자는, 데이비드 흄 정도 밖에 알지 못합니다. 요컨대,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억지로 글을 짧게 쓰려는 시도 보다는 자신의 사유에 가장 자연스러운 글쓰기 스타일을 찾는게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17/04/29 10:10
말씀하신 고민은 문장의 길이 뿐만 아니라 쉬운 글 쓰기 전반에 관한 고민과도 일맥상통합니다. 따라서 쉬운 글 쓰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겠습니다.
저는 서양 철학사를 고대부터 쭈욱 일독해오다 하이데거에서 막혔습니다. 아니 포기했습니다. 당췌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가 어려웠거든요. 전공 수업도 바쁘고, 연애도 해야 하고, 게다가 진척의 기미도 보이지 않으니, 취미에 가까운 지적탐구는 손에서 멀어지기 마련이었지요. 그러다 글쓰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쉽게 쓰는 글쓰기에 매료되었습니다. (이를 추구하는 대표적 작가가 마광수입니다. 하지만 정작 수업 들을 때는 별 생각이 없었다는 게 함정... 되레 그의 글이 너무 심심하다 비판했는데, 나중에서야 그가 쉽게 쓰기 위해 노력한다는 걸 깨달았네요) 그러고나니 문득 하이데거가 떠오르더군요. 내가 이해하지 못한 것이 과연 내 탓일까? 하이데거라는 작가 탓이 아닐까? 그러나 제 생각은 보기좋게 빗나갔습니다. 하이데거를 가급적 쉽게 풀어 쓴 비평서를 보아도 그의 철학은 쉽게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거든요.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아무리 쉽게 풀어 쓴다 한들 제가 알아먹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처럼 내용 자체가 어려워 어쩔 수 없이 어려워지는 글이 있습니다. 저는 이런 글까지 쉽게 쓰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한 부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일부러 어렵게 쓴다면? 이건 비판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지적 허영에 불과하고, 글의 가치를 떨어뜨릴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억지로" 쉽게 쓰라는 말이 아니라, "될 수 있으면" 쉽게 쓰라는 말입니다. 내용이 어려워 어렵게 썼다면 독자가 이해해줘야 합니다. 미묘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복문을 썼다면 이 또한 독자가 이해해줘야 합니다. 이렇게 정당한 사유가 있는게 아니라면 모든 글은 더 쉽게 쓰여져야 옳습니다. 그러나 쉽게 쓴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단순히 단어만 바꾸거나, 문장을 쪼갠다고 쉬워지는 게 아니죠.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습니다. "미적 판단에도 도덕적 성향이 있다면 이는 선험적 경험에 의존한다." 이 문장은 제가 미학 수업 레포트로 쓴 글입니다. 그때는 이렇게 쓰는 게 멋있다고 생각했었을지도요. 하지만 지금이라면 다음과 같이 씁니다. "올바른 것을 좋아하고, 나쁜 것을 싫어하는 인간의 성향은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타고나는 것으로 봐야한다." 아예 문장 구조 자체가 바뀌었죠. 아주 다른 내용의 글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하지만 내용은 같습니다. 보시다시피 내용 자체가 철학적이고 어렵더라도 좀 더 쉽게 쓰려는 노력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러니 "될 수 있다면" 쉽게 쓰는 게 좋겠죠. 그런 면에서 최악은 별 내용도 없으면서 문장만 베베 꼬아 어렵게 보이게 만드는 글이겠죠. 작가가 쉽게 쓰고자하는 노력을 보이지 않는 글도 차악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대로 자연스러운 글쓰기 스타일을 찾는 게 좋습니다. 그렇다면 자연스러운 와중에 전달력까지 좋은 쉬운 글을 만들면 더더더 좋겠죠. 물론 굳이 순위를 매기자면 억지로 쉬운 글을 쓰는 것 보다는 어렵더라도 자연스러운 글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글을 쓰는 사람이 쉬운 글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그건 직무유기입니다. 지향하는 바는 쉽고 전달력 좋은 글로 두어야 합니다. 이를 좇지 못할 때 자신의 능력 부족을 탓해야 발전할 수 있겠죠. 어렵고, 복잡한 구조의 글을 써 놓고 "이것보다 자연스러울 순 없어."라고 생각한다면 글 실력은 언제나 그 수준에 머물 거라 생각합니다. 억지로 쉬운 글을 쓸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쉬운 글을 쓰려는 고민을 놓으면 안 됩니다. 저는 글에 들어간 복문을 자연스러운 단문으로 바꾸려고 이틀을 고민한 적도 있습니다. 이렇게 집착하듯 고민할 필욘 없지만, 최소 하루 정도는 복문을 단문으로 바꾸는 퇴고의 시간을 갖는 게 좋지 않을까 합니다.
17/04/29 12:00
1. 사족 먼저. 만약 하이데거에 대해서 관심이 다시 생기신 다면 두 가지 책을 추천합니다: 하나는 뤼디거 자프란스키(사트란스키) 의 하이데거 평전입니다. 자프란스키 자체가 독일 최고의 에세이스트에 속하며, 하이데거에 관한 책으로 극찬을 받을 책입니다. 저는 아직 읽어보지 않았지만, 다들 좋다고 하는 책이니 한 번 손에 잡고 정독할 만합니다. 그리고 두번째 책으로는, 하이데거가 쓴 <예술 작품의 근원> 이라는 논문을 한 번 읽어보세요. 우리말 번역이 나와 있습니다. 고흐의 그림을 주제로 하이데거 특유의 관점에서 예술 존재 일반에 대한 해명을 시도하는 책입니다. 저는 하이데거 입문서로 이 두 권을 추천합니다. 그리고 존재와 시간 자체는 하이데거의 주저이기도 하고 사실 다른 철학서들에 비해 더 난해하다고 보긴 어렵지만, 혼자서 읽기엔 좀 벅찬 감이 아무래도 있습니다. 그 책은 지인들과 조그맣게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서 천천히 함께 읽어 보시는 것을 권합니다. 오래 전에 그렇게 스터디를 하면서 하이데거를 매우 즐겁게 접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2. <미적 판단에도 도덕적 성향이 있다면 이는 선험적 경험에 의존한다> : <선험적 경험> 이라는 말은 형용 모순이지요. 경험 <이전에> 인간의 일반적 인식을 구성하는 정신적 , <초월적> 범주를 뜻하는 술어가 <선험적> 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첫 문장이 어떻게 언급하신 두 번째 문장과 어떻게 의미론적으로 동치가 되나요? <올바른 것을 좋아하고 나쁜 것을 싫어하는 인간의 성향> 은 그냥 <인간의 도덕적인 판단>이지요. 즉 이 두 명제는 다음과 같이 바뀌어야 합니다. 가. 도덕적 판단을 내리려는 인간의 성향은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이다. 나. 올바른 것을 좋아하고, 나쁜 것을 싫어하는 인간의 성향은 타고나는 것이다. 그런데, 엄밀히 말해 이 문장은 같은 의미를 가진 것이 아닙니다. 전자는 인간의 도덕 판단에로의 경향은 경험에 앞서 존재하는 인간의 인식 능력에 의존한다는 단정적인 표현이지만, 여기서 말하는 <경험에 앞서는 인간의 인식 능력>이란, 도덕적 유전자 같은- 그런 것이 과연 있는지는 별론으로 하고 - 물리적이고 생물학적인 인자가 결코 아닙니다. 그런데 두번째 문장 <인간의 성향은 타고 나는 것이다> 는 명제는- 물론 반박의 여지는 있지만 - 제가 보기엔 매우 강하게 이런 도덕적 유전자설 비스무레 한 것을 연상시킵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왜 이렇게 장황하게 하는고 하면, 반복해서 말씀 드리자만, 정말 중요한 것은 스타일이나 문체의 간결함이 아니라, 사유, 생각의 엄밀함, 정확함이라는 것입니다. 철학자들이 괜히 일상적인 어법을 피하고 다소 일상어들과 생경하게 떨어진 어휘들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부분 일상어만으로 생각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즉 어떤 사태 안에는 일상적인 어법으로는 엄밀하게 붙잡아 낼 수 없는 미묘한 측면이 분명히 있고, 그것을 포착하기 위해서 그런 개념어들을 쓰는 것입니다. 다소 가독성이 떨어지더라도 지식인들이 그런 현학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어법을 쓰는 이유가 분명히 있습니다. 여기가 학문적인 담론의 사이트가 아닌 이상, 피지알의 모든 분들에게 그런 엄밀한 독해를 요구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그러고 싶지도 않구요. 하지만 적어도 엄밀하게 쓰여진 글이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는 감식안은 갖춘 분들에게는, 저자에게 <읽히기 쉬운 글을> 요구하기 이전에, 독자의 입장에서 본인 스스로에게 한 번 쯤은 요구해 볼 만하다는 것이지요. 더더군다나 저자가 독자들과 진지하고 숙고된 대화를 원하고 있을 때는 더더욱.
17/04/29 12:26
제가 저 문장을 예시로 들기 좋아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지적하신 바와 같이 오류를 내포하는 문장이기 때문이지요. 선험적 경험은 일종의 동어반복이니까요. 더불어 저는, 이과 출신이라 그런지, 경험에 앞서는 인간의 인식 능력으로 유전자의 영향 이외에는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수정한 문장이 보다 제 생각과 어울리는 셈이죠. 즉,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온전히 전하려 했다면 괜히 어려운 단어를 남용할 게 아니라 그냥 쉽게 쓰는 게 더 정확했습니다. 그래서 예시로 쓰길 즐깁니다. 어렵게 쓰는 게 더 정확한 것도 아니라는 증거로 활용할 수 있거든요.
나아가 이 문장을 예시로 들어 조언을 구하는 사람의 생각을 유추해보기도 합니다. 이 문장의 정합성을 따지는 건 제가 드리는 조언의 요지를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이 문장에 어떻게 반응하느냐를 보면 이 사람이 정말 글쓰기 조언을 갈구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 글이 뭐가 문제냐고 따지는 것인지... 뭐 그런 상대의 태도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긴 하더라고요. 사유의 정확함, 엄밀함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은 동의합니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이라는 단서가 붙은 겁니다. 논리적 정합성을 위해 쉬운 글을 포기해야 한다면 포기하는 게 맞죠. 그래서 제가 하이데거라는 작가 탓을 할 수 없었던 겁니다. 그런데 작가가 이런 이유를 대며 "어렵게 쓸 수 밖에 없으니깐..."이라고 말하는 건 변명이고 직무유기라는 거죠. 작가가 지향하는 바 즉, 좋은 글의 이데아는 쉬운 글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새벽의길님의 말씀을 보노라면 지향하는 바에 '쉬운 글'이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문장을 보면 좀 더 쉽게 쓸 여지가 많아보이고요.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쉽게 써보도록 하세요. 그래도 글이 어렵다고 사람들이 항의한다면 그건 징징거리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때는 독자의 게으름을 탓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님의 글이 그 정도로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는 글인가요? 더 이상 쉽고, 간결하고, 명확하게 쓸 수 없는 글인가요? 지금 이 댓글에만 해도 스타일과 문체라는 일종의 동어 반복이 담겨 있습니다. 이런 동어반복만 없어도 가독성이 좋아집니다. 이런 것을 퇴고하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 수준인데 사유의 정확함과 엄밀함을 내세우는 건 핑계에 불과할 뿐입니다.
17/04/29 08:59
지금 본인이 쓰신 글이 문학적 글이 아닌데 문학적 독해를 하라고 하시면 어쩝니까.
그리고 철학자는 철학자지 글 잘 쓰는 사람이 아니죠. 얼마나 철학적 사유가 높으신지는 제 알 도리 없지만, 솔직히 지금 이 글의 태도는 그야말로 스노비즘의 전형입니다.
17/04/29 09:02
음... 조언을 구하셔서 조언을 해드렸더니 역으로 조언을 듣는 이런 경험은 처음이네요. 저 혼자 체득한 글쓰기 방법이 아닌 평생 글을 써온 프로 작가와 기자들의 글쓰기 책에서 제일 먼저 강조하는게 문장 문장을 짧게 끊어서 리듬감 있게 쓰라는거였습니다. 글을 중언부언 하고 싶은 얘기를 끊임 없이 쓰는건 누구에게나 쉽습니다. 그런데 그 글을 나 혼자 쓰고 읽는 일기장에 쓰는 글이 아닌 열린 공간에 쓰신다면, 최소한 모두에게 읽기 쉽게 쓰는게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조언이라고 했는데, 이거 참.. 여하튼 알겠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첨언 하자면 여러운 한자말이나, 용어는 최대한 쉽게 풀어쓰는 것은 공개된 게시판에 글을 쓰는 기본중에 가장 기본입니다. 물론 전문용어는 따로 주석을 다시거나 유시민 작가가 하듯이 용어 뒤에 설명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글을 읽다가 모르는 단어를 찾기 위해 검색엔진을 올리는건 호흡이 끊겨서 좋지 않거든요. 뭐.. 이만
17/04/29 09:26
아, 분명 선의의 조언이셨을 텐데 불쾌하셨다면 죄송해요. 단지 제가 그 역 조언을 드리게 된 이유가 솔빈님에게 유감이 있었다기 보다는, <좋은 글(이라면) 무조건 짧게 끊어 써야 한다> 는 생각 속에, 저 스스로를 불편하게 하는 어떤 이데올로기가 느껴져셔 그렇습니다. 예컨대 글쓴이가 글을 쓰면서 테마 자체를 통해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타인의 시선을 먼저 의식하는 그런 느낌.. 혹시 그런 느낌 받아본 적 없으세요? 사태 자체를 파악하는 것보다 내 글이 먼저 대중에게 이해 받아야 한다는 강박.. 저는 <짧고 간단한 글쓰기 신화> 속에 그런 시선이 들어가 있다고 봐요.. 우리나라 저널리즘의 <주류> 라이터들이 바로 그런 신화를 퍼트려온 사람들이고...
그렇다고 제가 쉽고 리드미컬한 글쓰기를 무조건 배척하는 것은 아니구요.. 앞에서도 어떤 분께 말씀 드렸지만 테마가 담고 있는 사태의 성격에 따라 달라진다고 봐요.. 정말이지 나중에 <좋은 글 쓰기란 무엇인가?> 에 대해 이야기해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레퍼런스를 두고 대화해 보면 좋은 토론 혹은 논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조언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17/04/29 06:13
이 이슈에 대해 나름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입장에서도 읽기 편한 글은 아니었습니다. 어려운 용어는 최대한 사용을 줄이거나 풀어써야 한다고 봐요. 아니면 각주를 따로 달거나. <> 등의 괄호도 가독성을 해치구요. 이게 보통 꼭 이해하고 넘어가주었으면 하는 것들에 대해서 쓰이는데 너무 많을 필요가 없죠.
이를테면 그 글의 ' 일정한 조건이 충족되는 경우에, 동성애를 합리적으로 <반대>할 수 있다.'라는 문장에서 '반대'라는 단어를 굳이 강조할 정도로 독자를 신뢰하지 못한다면 글을 쓰는 게 무의미하지 않나요? 또 1,2 등으로 단락을 나누셨지만 그 단락 내부에서도 조금 엔터를 사용하셨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글은 학구적으로 쓰였는데 문장은 의식의 흐름대로 쓰여서 너무 만연해보여요.
17/04/29 07:54
각주를 다는 것은 제일 좋은 방법이겠지만, 제가 과문해서 그런지 몰라도 우리나라 인터넷 커뮤니티 어디에서도 그런 식의 글 타래를 본적이 없어서 그 방식은 처음부터 고려하지 않았어요. 또, 제 그 글에서 제가 가장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동성애 문제에서 취향의 문제가 아닌 찬반의 문제로 규정되는 국면이 분명이 있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여튼 그런 면을 제 글에서 이미 충분히 이해하며 내려 가셨던 독자들께서는 강조의 <과잉>으로 느끼셨을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조언 감사합니다.
17/04/29 06:59
음... 이런 댓글, 동감은 좀 당혹 스럽네요. 제 아랫 글을 읽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 글의 <제목>만 보고서도 그런 생각이 든다고요? 이 말을 제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17/04/29 07:07
음, 글 쓰신 분의 의도는 그게 아닌 것 같긴 한데 (저번 글 잘 읽었습니다), 글 제목을 읽기에 따라서는 '당신의 지적 수준에는 좀 어려웠습니까?' 라는 뉘앙스로 읽힐 수도 있겠습니다. 말이란 게 아 다르고 어 다르니까요.
17/04/29 07:31
아.. 제 글 제목이 그런 식으로도 이해될 수 있군요? 흠.. 그럼 어떻게 바꿔야 하나.. 그런 의도는 단 1 퍼센트도 들어가 있지 않은데. 정말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어본 거예요.
17/04/29 07:33
그러니까 이 글의 본문을 보면 '내가 지난 글을 서툴게 써서 잘 안 읽혔을까 걱정 된다.'는 느낌인데 제목에서 가장 먼저 닿는 느낌이 '왜 다들 이 정도도 이해를 못하지?' 거든요.
17/04/29 07:49
음... 저는 사실 제 그 글이 <서툴게 쓰여진 글> 이라는 생각은 별로 안 드는데요.. 그렇게 되면 정작 제가 제 글 자체에 대해 솔직하지 못한 겸양을 떠는 것이 되겠지요. 여튼 조언 감사 드립니다. :)
17/04/29 07:46
제가 댓글을 달고서도 밑도 끝도 없이 공격적인 내용만 쓴 것 같아 저도 이해하기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혹스럽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저는 이 글을 다른 것 없이 순수하게 제목만 봤을 때 어그로성 글인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편협한 생각일 수도 있지만, 저는 이 글을 읽고서 새벽의길님이 '나는 니들 수준에 맞춰서 글 쓰려고 이정도로 노력을 해줬는데도 이해를 못하는데 내가 뭘 더 어떻게 해야되냐?'라고 주장하시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이해하기 좋은 글을 쓰시는 사람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네요. 아마 똑같은 글이더라도 제목이 달랐다면 제가 다르게 받아들였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17/04/29 07:24
외래어 관련 지적은 제가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국역이 가능한 단어를 굳이 외래어를 습관적으로 유식해보이기위해 쓰는 사람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랬던 것이니 그 건에 대해 기분이 상하셨다면 사과를 드립니다. 글을 어렵게 쓰는건 사실 어렵지않은데 많은 사람들이 유식해보이기위해 외래어를 남용하여 어렵게 쓰려는 경향이 있거든요. 정말 좋은 글은 누구라도 이해하기 쉽게 쓰는 글이라 생각합니다. 글읽기가 좀 쉽지않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글수준은 괜찮았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제목을 뽑을때 제 기준에선 1. 관심 끌기 위한 방법 2. 있는그대로 3. 대충 뭐 이렇게 쓰는 편인데 저는 글을 잘쓰지못하는 편이라 감히 지적하는 것은 아니고 그냥 일부 첨언해보았습니다. 사실 작문이란게 읽는 사람은 대충 읽고 지적하지만 쓰는 입장에선 이것저것 생각할게 많더군요. 그래서 정성을 들일수록 지적이나 비판에 예민해지는 감도 있는것 같아요. 일단 자료조사나 글을 쓰실때 많은 정성을 들인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는 사람이 조언해서 느끼게된 것이 있는데 인터넷에 글을 올린다는건 많은 공격을 받을 각오로 올리는 것이라 하더군요. 저의 경우 덧글로 대화를 해봤을때 영 생각이 다르거나 태도가 글러먹었거나 일부러 트집잡는 사람은 최대한 피하는 편입니다.
17/04/29 07:37
청룡님께서 사과하실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구요. 지적 자체는 객관적으로 충분히 할 만했다고 봐요. 단 이 글 본문에도 적었다시피 저의 경우는 유식해 보이기 위해서 뭐 그런 의도는 전혀 없었고, 제 뜻을 그대로 독자들에게 오해하지 않게 전달하기 위함이었고, 또 독자들도 모노가미, 폴리가미의 뜻은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라고.. (뭐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제가 간접적으로 유식을 떤 것이 되나요?? 쩝..) 여튼 그렇습니다.
17/04/29 08:06
이것도 비꼬는 것이 아니고 정말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어 보고 싶은 것인데요.. 제가 제 그 글 댓글에 다음과 같은 영어 위키 구절을 긁어 왔어요..
< ... they do not believe that it is the result of any one factor. They generally believe that it is determined by biological and environmental factors; they state that most people's sexual orientation is determined at an early age, and sexual orientation development involves a complex interplay between nature and nurture.> 와인 하우스님은 이렇게 영어로 된 단락을 인용하고 싶을 때마다 일일히 인용자가 직접 번역도 해주는 것이 기본 에티켓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17/04/29 11:18
누구나 영어 해석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한국에서 영어 글줄 줄줄 써 놔봐야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건 사실 설명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기본적인 얘기입니다.
어떻게 보면 본인 주위가 그렇지 않아서 실감을 못 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다르게 보면 어떻게 저런 발상을 하지 어디서 살다 왔길래 싶기도 하네요.
17/04/29 08:47
쓰셨던 글은 추천드렸는데 이 글을 보면서 든 생각은 많이 답답하네요. 간접적으로 유식을 떤다기보다는 직접적으로 지적허세를 부리시는거고 전에 썼던 글 피드백이시라기엔 댓글에 대한 반응도 답정너식이고, 무례하고요. 영어도 아닌 독어/불어단어를 아예 직접적으로 아 이건 당연히 다들 아는거아냐 라고 말씀하시니 원. 저는 이 글과 댓글들을 읽고 진지한 피드백을 할 생각이 전혀들지 않습니다.
무슨 에러인지 똑같은 댓글이 여러개 달렸습니다..좋은 소리도 아니었는데 보기 불편하셨을거 같아 죄송합니다. 지난번글은 좋은 글이었고 잘 읽었습니다.
17/04/29 07:58
이 말은 전형적으로 글쓰는 사람이 자기입장만 생각하고 상대입장을 예단하고 그 예단한입장에 대해 글쓰는 경우인데...상대입장이 그렇게 쉽게예측이 안되죠.안맞는경우가 허다함. 물건 팔때도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 퀄리티가 수준이 각기 다른데 그 경우 파는사람은 최대한 많은 소비자가 원하는수준의 퀄리티를 맞추는것처럼 이 글도 다양한 사람들이 알아듣게 쓰는게 좋을듯.
물론 글의 성격과 상황마다 다르긴 합니다
17/04/29 08:20
저는 윗분들이랑은 의견이 좀 달라요. 이전에 쓰신 글은 못 쓴 글이 아닙니다. 주제 전달을 잘하셨어요. 중간에 약간의 주제 일탈이 있는 것 같지만, 논리적 흐름을 헤칠 정도는 아니라고 봅니다. 한마디로 유익했어요. 기술적으로만 뛰어난 글 보다는 훨씬 나은 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새벽의길님께서 문장 단위의 피드백을 원하시는 것 같기에 부족한 재주로 굳이 적습니다. 딱, 처음 세 문장만요. 문장 1: 요즘 핫한 이슈인, 동성애 관련 각국 위키 피디아의 해당 항목 중심으로 구글링을 해보면서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동성애적인 성향을 보이거나 자신이 갖고 있는 생물학적인 성(sex) 과는 다른 성(gender)을 인지하는 사춘기 청소년들의 자살률이, 같은 나이대의 일반 청소년들의 자살률에 비해 서너배나 높다는 현실이었다. 수정 1: 요즘 핫한 이슈인 동성애에 관해 각국 위키피디아를 중심으로 구글링해보니 몹시 마음이 아팠다. 동성애 성향을 보이거나 생물학적 성(sex)과 사회적 성(gender)이 다르다고 인지하는 사춘기 청소년의 자살률이 일반 청소년의 자살률에 비해 서너 배나 높았기 때문이다. 의견1: ‘것’이라는 표현을 가급적 줄여보세요. 쓸 수밖에 없다면, 하다못해 ‘게’나 ‘건’ 같은 식으로라도 바꿔보세요. 것을 많이 쓰는 건 영어식 표현(소위 말하는 번역투)의 영향입니다. 번역투 좀 써도 문제될 건 없지만, 번역투는 보통 가독성을 떨어뜨립니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라는 책을 한번 읽어보세요. ‘갖고 있는’ 같은 표현은 굳이 쓸 이유가 없는 표현입니다. ‘가진’으로 족해요. 나아가 한국어의 ‘갖다’는 영어와 달리 쓰임의 폭이 좁습니다. 이 부분에선 애초에 갖다는 표현을 할 필요가 없어요. ‘생물학적인 성’에서 ‘인’은 불필요합니다. 사족이에요. sex를 풀어주셨으니 gender도 ‘사회적 성’으로 풀어주시면 좋을 듯합니다. 사춘기 청소년으로 집단을 한정하셨으니, 논리적으로 ‘같은 나이대의’과 같은 말은 불필요할 듯합니다. 그리고 ‘나잇대’가 바릅니다. 문장 2: 사람들의 관심의 양지에서 세상에 관한 건강한 호기심에 둘러 쌓여 구김살 없이 마음껏 세상과 자신의 행복한 결합이라는 나르시시즘에 취해 있을 나이에, 그들은 자기가 붙잡고 있던 세상과의 영원한 결별이라는 선택을 했다. 의견: 이 문장은 솔직히 말씀드리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기 ‘많이’ 어렵습니다. ‘많이 어렵다’는 표현 자체가 그리 자연스럽지 않아서 굳이 강조했습니다. collocation으로 한번 구글링해 보세요. 어떤 언어든지 말에는 서로 어울리는 말과 그렇지 않은 말이 있습니다. ‘관심의 양지’라던지 ‘세상과 자신의 행복한 결합’, ‘자기가 붙잡고 있던 세상’이라는 표현은 논리적으로 무슨 의미인지 이 문장만 봐서는 알 수 없다고 봅니다. ‘건강한 호기심’은 건강한이란 말이 과연 호기심을 수식하기에 적절한 표현인지 고민해 보셔야 할 것 같고요. 문장 단위에서 어떻게 교정을 볼지는 그다음이라고 봅니다. 문장 3, 4: 세상에 어느 누가 자신이 가진 <취향> 때문에 그 오랜 시간 동안 번민하고,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나? 동성애가 단순히 <각자의 지향 혹은 프라이버시> 의 문제라면 왜 그 많은 동성애자들이 내, 외적인 <커밍 아웃> - 즉 자기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세상에 고지하는 것 - 이라는 것을 하나? 수정 3, 4: 세상에 어느 누가 <취향> 때문에 그토록 번민하고, 그토록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가? 동성애가 단순히 각자의 <지향 혹은 프라이버시>의 문제라면, 왜 수많은 동성애자가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정체성을 세상에 고지하는 <커밍아웃>을 하는가? 의견: 첫 문장과 비슷한 맥락인데 한국어는 영어와 아주 다른 언어입니다. 영어에서는 명사적 표현이 자연스럽지만 한국어에선 부사적 표현이 자연스러울 때가 많아요. ‘것’과 같은 말을 자주 쓰면 명사적 표현을 자주 쓸 수밖에 없습니다. 것의 사용을 가급적 자제하라는 말씀은 것을 쓰지 않고 풀었을 때 더 자연스러운 한국어로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 외적인’은 별로 필요하지 않은 듯합니다.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받아들이는 게 내적 커밍아웃일 거고, 세상에 고지하는 게 외적 커밍아웃이니까요. 나아가 ‘커밍 out’인데 내적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릴지 고민하셔야 할 듯합니다. -제 말이 실제로 도움이 될지 어쩔지 모르겠습니다. 선한 의도로 적었으니, 혹여 마음 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는 아주 얇은 책이니까 부담 없이 한번 읽어보시고요. 글을 쓰신 다음에 부산대 한국어 맞춤법/문법 검사기를 한번 돌려보세요. 도움이 많이 되실 겁니다. http://speller.cs.pusan.ac.kr/PnuWebSpeller/lib/check.asp
17/04/30 03:32
논문 쓰고 싶으시면 글을 저널에, 아니면 적어도 학술 포럼에 내시지 왜 애꿎은 프로게이머 랭킹사이트 자유게시판에 그런 글을 쓰시는지...?
이 댓글을 보니 정말 심각한 분이라는 생각이 풀풀 듭니다.
17/04/29 09:00
글알못입니다만, 저같은 글알못이 어떤 생각을 갖느냐도 중요할 것 같아서 지나가다 한마디 적어봅니다.
처음 읽어보고 든 생각은' 토익이나 수능에서 보던 영어 독해 해석해 놓은 것 같다' 였습니다. 문장 구조 자체가 그래요. 한국말 같지가 않고 영어를 번역해 놓은 것 같습니다. 그것도 시험식 영어를요.
17/04/29 09:02
/Lasid
아, 제가 원했던 첫 피드백이네요! 우선 성의 있는 댓글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피드백에 대해 제 코멘트를 드리자면, 1. 내 외적인 커밍 아웃을 제가 구분했던 이유는, 제가 조사해 본 위키 항목에서 하나 같이 커밍 아웃이 두 단계로, 즉 자기 자신에 대한 커밍 아웃과 세상에 대한 커밍 이웃으로 이루어 진다는 점을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봐도 이런 첫번째 단계에서의 자신에 대한 커밍 아웃 - 즉 성장기를 통해 무의식적으로 자신에게 입혀진 정체성이 본래적인 자기와는 맞지 않는다는 고통적인 자각 - 이 오히려 외적인 커밍 아웃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보여졌어요. 그래서 그 부분을 분명히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다시 말해 이것은 스타일의 문제라고 보다는 내용적인 고려에서 나온 것이예요. 2. ~것, 이라는 것을 많이 쓰고 있었다는 <것은> :> 제가 미쳐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부분이네요. 이 부분 지적 감사합니다. 다른 댓글에서 적었지만 제가 오랫동안 외국 문헌들만 접하고, 외국어로 논문을 써왔기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사실 또 다르게 생각해 보면, 그 이전에라도 제 안에 그런 언어 감각이 내재되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여튼 그렇습니다. 근데 이런 표현이 다른 분들이 보기에도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나요? 이 부분은 다른 분들 견해도 좀 들어 보고 싶네요. 3. <사람들의 관심의 양지에서 세상에 관한 건강한 호기심에 둘러 쌓여 구김살 없이 마음껏 세상과 자신의 행복한 결합이라는 나르시시즘에 취해 있을 나이에, 그들은 자기가 붙잡고 있던 세상과의 영원한 결별이라는 선택을 했다.> 이 문장은 사실 제가 적으면서 뭔가 자랑스럽다? 는 느낌을 가지고 쓴 부분인데.. 하하하 (여긴 초성체가 금지되어 있군요) 이 문장이 같은 모국어를 쓰는 분에게 안 와닿았다고 하는게 제일 의외네요. 그럼 쉼표 하나를 찍어 보면 어떨까요? 이렇게. <사람들의 관심의 양지에서 세상에 관한 건강한 호기심에 둘러 쌓여, 구김살 없이 마음껏 세상과 자신의 행복한 결합이라는 나르시시즘에 취해 있을 나이에, 그들은 ... 선택을 했다.> 이렇게 써도 안 와닿으시나요?
17/04/29 09:41
1. 글쎄요. 내적인 커밍아웃은 저는 그냥 아이덴티티 이슈로만 알고 있는 부분인데 말이죠. 그냥 그 부분을 링크로 보여주시면 얘기가 빠를 듯하네요.
2. 네. 딱 보기에 외국 문언을 주로 접하신 분 같았습니다. 언어 감각 말씀도 이해해요. 국내에 들어오는 번역서나 전공서들이 주로 그러한 감각으로 쓰였기 때문이죠. 그런데 일본어나 중국어를 번역한 내용을 한번 읽어보세요. 가독성이 상당히 떨어진다고 느끼실 겁니다. 요즘은 누구나 다 번역투를 써요. 어느 나라 말의 번역투를 쓰냐가 다를 뿐이죠. 3. 쉼표 말씀을 드릴까 말까 했었는데...한국어의 쉼표와 영어의 콤마는 보기엔 같아도 쓰임새가 다릅니다. 영어에는 콤마 자체도 많이 쓰지만, 콤마를 보조하는 수많은 문장 부호가 있죠. 콜론, 세미콜론, 대시, 일립시스에...심지어 대소문자나 이탤릭체를 가지고도 구분을 할 수 있죠. 근데 한국어에는 쉼표밖에 없어요. 영어에서 여러 문장 부호가 하는 기능을 한국어에선 쉼표가 도맡아서 합니다. 그런데도 콤마대 쉼표만 놓고 봐도 쉼표의 사용이 훨씬 적어요. 영어와 한국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전에 쓰신 글은 쉼표의 사용이 너무 과할뿐더러 대단히 어색합니다. 가독성을 해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해당 표현을 쉼표 하나 추가한다고, 혹은 덜한다고 와닿게 만드시긴 어려울 듯합니다. 언어 사용은 약속이에요. 흔히 쓰는 말이 있는데, 지금 쓰신 표현은 문자 그대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표현은 새벽의길님의 머릿속에만 있는 표현이니까요. 조언을 드리자면 '의'라는 표현도 가급적 줄여보세요. 이건 영어보다는 일본어 번역투에 가깝습니다. 왜냐고 물으신다면, '의'는 정말 여러 가지로 해석이 되서 그래요. 그런데 사람들'의' 관심'의' 양지에서 라는 말씀은 얼핏 보기에는 그냥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정도의 의미인 듯하고요. 세상에 관한 건강한 호기심에 둘러싸여는...세상에 관한 호기심에 가득 차서? 정도로 보이는데 호기심에 둘러 쌓였다는 말은 의미상 어색하죠. 저런 표현을 쓰려면 타인의 호기심에 둘러 쌓여 정도로 써야 하지 않을까요? 나르시시즘을 세상과 자신의 행복한 결합이라고 표현하신 것 같은데...이 부분은 그냥 와 닿지 않네요. 구김살이 없다는 말이 나르시시즘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생각이 들지 않고요. 그들은...선택을 했다 부분에서 굳이 쉼표로 구분을 하셨으니까 '그들은'은 생략하셔도 좋을 듯합니다. 위에 쓰신 댓글을 보니까 철학과 관련된 분야에서 연구하시는 듯합니다. 그런데 조금 의아해요. 모노가미나 폴리가미 같은 말이 일상적인 말이라고 하더라도 모노가미와 일부일처제를, 폴리가미와 일부다처제를 구분해서 쓰고 싶으시다면 논문이라면 당연히 어떤 형태로라도 본문에서 언급하셨을 거라고 봅니다. 실례지만 계피와 시나몬이 뭔지 아시나요? 그리고 둘의 차이를 아시나요? 아주 단순한 말이지만 해당 분야의 전공자가 아니라면 둘이 어떻게 다른지 구체적으로 모르실 겁니다. 이런 부분은 프로 글쟁이라면 당연히 설명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원어를 '그냥' 노출하고 독자가 잘 이해하리라 기대하는 건 아마추어만 누릴 수 있는 호사라고 봐요.
17/04/29 10:57
다른 분이 답을 주시면 좋을 듯해요 :) 과분한 말씀과 달리 저는 글을 그리 잘 쓰지도 못하고...해당 분야를 전공하지도 않았습니다. 지금도 계속 공부하고 있고요.
17/04/29 10:02
작문실력 미천하지만 국어교육 전공자입장에서 그 문장에 대해 짧게 답변해드리겠습니다.
-의의 중복, 쉼표사이에 다른 문장이 끼어드는 것, 그리고 수식어구가 길어지는 것 전부 대표적인 번역체입니다. 위에 다른분도 말씀하셨는데 단어 선택이 어렵게 꼬아놓은 수능 영어지문 보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평범한 한국어 화자가 와닿을 수식관계는 아니라고 봅니다. 유시민 작가가 썰전에서 헌법재판소 탄핵인용문을 극찬한 이유는 법률에 무지한 시민도 읽기 쉽게 인용문이 작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전반적으로 글이 너무 어렵습니다. 모노가미에 대해 말씀하신 것으로 보아 당연히 알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범위가 높게 잡히신 것 같습니다. 독자가 배경지식이 전무해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글이 좋은 글입니다. 저는 전의 글을 초반부만 읽고 숨막혀서 내렸는데 이 글 보고 다시 읽고 왔습니다. 숨막혔던 이유는 다른 분들이 잘 설명하셨으니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17/04/29 09:16
글 내용에 대한 평은 하지 않겠습니다.
1. 문장이 너무 깁니다. [요즘 핫한 이슈인, 동성애 관련 각국 위키 피디아의 해당 항목 중심으로 구글링을 해보면서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동성애적인 성향을 보이거나 자신이 갖고 있는 생물학적인 성(sex) 과는 다른 성(gender)을 인지하는 사춘기 청소년들의 자살률이, 같은 나이대의 일반 청소년들의 자살률에 비해 서너배나 높다는 현실이었다.] 해당 글의 첫 문장입니다. 이 문장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문장이 너무 길어요. 위에 비슷한 걸 지적하신 분에게 단 댓글을 보면 긴 문장에 대해 나름의 의견을 갖고 계신 듯한데... 문장길이는 그냥 글솜씨입니다. 문학에서야 만연체로 표현의 묘미를 살리는 작가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논설문이나 칼럼식 글에서 만연체는 쥐약이에요. 일반적으로 내용에 대한 소화가 덜 된 상태에서 글을 썼을 때 나타납니다.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어설프게 배운 내용으로 쓴 레포트는 난해하기 그지없지만, 같은 내용을 교수는 훨씬 쉬운 말 몇 마디로 정리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지요. 이건 독자의 지적수준이나 성실성과는 별 관련이 없습니다. 그냥 읽는 사람에게 얼만큼의 짜증을 불러 일으키느냐의 문제입니다. +문장을 바꾼다면 저라면 이렇게 할 것 같습니다. [동성애 성향을 보이거나, 생물학적인 성(sex) 과 사회적 성(gender)이 일치하지 않는 사춘기 청소년들의 자살률은 같은 나이대의 일반 청소년들보다 세 배 이상 높다. 요즘 핫한 이슈인 동성애 관련 자료를 각국 위키피디아를 구글링하다 발견한 가슴아픈 사실이다.] 2. 문장부호 사용이 난잡합니다. 쉼표가 너무 자주 등장하고, 본인이 강조하고 싶은 내용은 전부 다 <괄호> 처리하고, 줄표로 내용을 삽입하는 경우가 잦습니다. 쉼표 사용은 문장의 길이를 줄이고 꼭 필요한 경우에만 사용하세요. 괄호 역시 괄호로 내용을 강조하기보다는 문단 구성을 통해 강조하도록 하세요. 줄표 역시 최소화하고 글 안에 해당 내용이 녹아들어가게 쓰세요. 그게 불가능한 경우는 사실 그 글에 별로 필요없는 내용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3. 외래어 사용에 기준이 없습니다. 물론 모노가미나 폴리아모리 같은 용어야 그대로 사용하는게 맞습니다. 그러나 엑스 보이 프렌드, 엑스 걸 프렌드 같은 단어를 굳이 영어로 적을 필요는 없죠. 4.주술목 관계에 대해 좀 더 신경을 쓰셔야할 것 같습니다. 예를 들자면 [공동체는 개인의 삶에 내재한 그 슬픔을 함께 직시해주고 공감해 줌으로서 다시 한 번 공동체가 된다.] 같은 문장에서 '개인의 삶에 내재한' 이 아니라 '개인의 삶에 내재된' 내지는 '개인의 삶이 내재한'이 되어야 합니다. 사소한 부분이지만 이런 부분들도 신경써야 합니다. 특히 어휘는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들보다 비교적 어려운 걸 쓰려고 하면서 문장의 기본 요소들이 체크가 안되어 있으면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습니다. 개인적으로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라는 책을의 일독을 권합니다. 저자가 교정교열 일을 하시던 분이 라 사람들이 쉽게 저지르는 문장구조와 표현의 문제들을 제대로 짚어주거든요.
17/04/29 09:22
일단 노력과 정성이 들어간 글이라 생각합니다.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은 송신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수신자가 온전히 수용했느냐입니다. 특히 온라인에 올리실 거라면 독자의 눈과 머리가 내 논리를 스무스하게 따라올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아니면 글을 읽힐 기회조차 안 주고 뭔소리야? 뒤로! 누르고 끝나거든요. 주제가 어렵고 쉽고의 문제가 아니라, 복잡한 논리 전개일지라도 리드미컬하게 긴장을 늦추지 않고 따라올 수 있도록 하는 글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에서 성실하지 않은 독자라는 이야기를 하셨는데요. 독자는 님의 글을 열심히 읽어 주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어요. 어떤 지적 인사이트를 얻을 만한 게 아니라면 복잡한 글을 굳이 내 수고 들여서 읽을 필요가 있을까요. '내가 이 글을 쓰는데 얼마나 노력을 들였는데 너희는 꽁으로 읽으려고 하나?'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그러시면 혼자 쓰고 읽어야죠. 내 사유에 맞는 글쓰기 방식을 찾는 건 좋으나 독자들은 그리 관대하지 않습니다. 조언을 하기 위해서라는 목적이 없었다면 저는 이 글을 끝까지 읽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부터 예시/부연이니 바로 끝으로 넘어가셔도 됩니다. --------------------- 잠시 비교해볼까요. 1은 제가 작년에 이 곳에서 가장 주의깊게 보았던 글의 일부를 발췌했습니다. (https://cdn.pgr21.com/pb/pb.php?id=freedom&no=67004&divpage=15&sn=on&ss=on&sc=on&keyword=평등주의의) 2는 새벽의길 님이 올려주신 본문 중의 내용입니다. 1. 그러나 공산당 선언이 나올 때쯤이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산당 선언을 발표한 1848년은, 아이러니하게도 유사 이래로 영국의 임금이 가장 높았던, 흑사병 직후의 임금을 돌파한 첫 해였습니다. 상황이 바뀌고 있던 것입니다. 산업의 성장이 폭발적으로 시작되고, 더 생산성 있는 노동자와 군인을 만들기 위한 교육의 보급, 그리고 노동자들 본인의 조직화로 인하여 이들이 힘을 갖게 되었습니다. 조직화된 노동자들은 자본가들을 상대로 파업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선보일 수 있었습니다. 더하여, 노동자들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들은 이직이라는 다른 형태로 공장을 위협할 수 있었는데 본격적으로 노사 간의 교섭이 시작되는 노동시장이 탄생하게 될 전조였습니다. 즉, 마르크스의 그 호소력 있는 명문장들이 노동자를 각성시킨 게 아닙니다. 그저 이전에는 없던 힘을 갖게 된 노동자들이 그저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시켜줄 호소력 있는 명문장을 필요로하게 된 겁니다. 산업혁명의 파급과 그로 인한 산업구조의 변화도 이런 흐름을 부추겼습니다. 19세기 좌파 운동의 가장 강력한 진앙지가 독일이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영국에서 대서양 건너 미국과 유럽 대륙으로 건너간 산업혁명의 물결에 제일 잘 적응한 두 나라 중 하나가 독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역으로 독일인들은(더불어 다른 하나였던 미국인들은) 영국에서 배워온 산업혁명의 정수들을 자신들의 정치 사회적 상황에 맞추어 진화시켰는데 바로 2차 산업혁명에 발동을 건 것입니다. 국가 주도 하의 국민교육은 기술교육을 잘 받은 효율 좋은 인적자원을 공장에서 찍어내듯 만들어냈습니다. 지금껏 세계의 학교를 규정짓는 프로이센 교육 모델이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소규모 기업들이 아닌 콘체른이라는 형태의 기업집단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를 주도한 건 전기, 화학이라는 신산업이었고 특히 전기가 가지고 온 동력 상의 새로운 혁명은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규모의 거대한 작업장을, 그것도 고도의 자본이 집적된 기계화된 공장을 탄생하게 합니다. 대기업이 중심이 된, 굴뚝에서 매연이 뿜어져 나오는 거대한 공단은 그렇게 독일과 미국에서 만들어졌습니다. 2. 주류 이성애자의 관점에서 보든, 혹은 사회 전반의 가족 정책이나 출산율 저하에 따른 노동 인구 감소를 걱정해야 하는 정책 입안자의 관점에서 보든, 동성애를 인정하고 소수자의 성적 정체성에 관한 권리를 찬성하게 될 때의 결과가 이런 식의 자기 성적 정체성에 대한 위협이나 혹은 전통적인 가족 제도의 해체로 나아가는 길을 여는 것이라면, 그들이 동성애자들의 인정 투쟁에 대해 거부하거나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충분히 합리적인 것이다. 그래서 그런 경향이 나타나는지 통계적인 진실을 살펴 보기로 했다. 요컨대, 동성애에 대한 편견이 불식되어 있고 동성 커플을 혼인제도 안의 합법적인 형태로 인정해 주는, 이런 쪽으로 서구의 가장 개방적인 국가들 - 사실 이 국가들 조차 이런 개방적인 자유와 관용의 길로 들어선지 한 세대가 채 지나지 않았다 - 에게서 동성혼인제도가 시행된 이후에 (혹은 동성혼이 제도화 되기 이전이라 할지라도, 관용에 토대를 둔 자유화 기조가 확고한 사회 풍토가 된 이후에) LGBT 의 비율이 그 사회 내에서 의미 심장하게 증가했는지를 살펴 보았다. 구글 번역기를 이용해서 각국 위키 항목을 참고한 지극히 제한적인 수준에서 내린 결론은, 통계적인 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예컨대 이 항목에 관한 가장 상세한 통계학적 지표를 제시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 1990년대 이후 30년간 이뤄진 조사들에서 LGBT 의 비율은 3 퍼센트 수준에서 큰 변동이 없이 대동소이했다. 독일이나,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의 경우를 봐도 그렇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사회가 동성애를 적극적으로 인정해 주는 풍토로 바뀐 이후에도 성적 소수자들의 비율이 큰 변화가 없다는 것은, 일부 주류 이성애자들이 가질 수도 있는 정체성 변동 포비아(identity-change-phobia) - 호모 포비아도 넓은 의미로 이 범주 안에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 가 과장된 염려일 수 있다는 점을 강하게 시사한다. ---------------------- 첨부한 글은 노동자 계층이 이전보다 산업혁명 파급과 구조의 변화에 따라 어떻게 힘을 갖게 되었는지 리드미컬하게 보여줍니다. 주제로 요약했습니다만 그 안에 세부적인 흐름이 들어 있지요. - 1의 첫 단락. 2차 산업혁명의 파급 : 산업규모 성장과 노동자 계층의 조직화로 인한 노사관계 교섭력 강화 - 1의 둘째 단락. 산업구조의 변화 : 국가 주도 국민교육의 활성화 + 전기/화학 신산업의 발전으로 인한 대공장 체계의 태동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본문 글은 별 내용도 없는데 보기에 피곤합니다. 굳이 이 정도를 말하고 싶은데 위처럼 길고 복잡하며 가독성 떨어지도록 문장을 구성해야 했나 싶습니다. - 2의 첫 단락. 동성혼인제도가 시행된 뒤 LGBT의 비율이 눈에 띄게 늘어났을까? - 2의 둘째 단락. 응 아니야~ 3%로 대동소이해 과장된 염려야~ 1과 2는 단락의 길이에서 큰 차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독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컨텐츠는 1이 훨씬 많아요. 2는 본인께서 완결성을 위해 이것저것 부연해 주셨다는 노력은 알겠습니다만 사실 허탈한 마음이 듭니다. 일단 읽을 때에는 문장을 이해하기도 힘든데 막상 읽고 나면 대단한 것도 아니거든요. 뻔하고 별거 없는데 복잡하고 길게 써놨어요. 그럼 독자는 시간 낭비한 거죠 그냥. 1은 각 잡고 앉아서 한 40분 읽어도 한 번 잡으면 끝까지 쉬지 않고 읽게 됩니다. 그런데 2는 마음 먹고 3분만 읽으면 되는데 중간에 읽기가 싫어져요. 다 읽고도 지적 인사이트를 얻는 것도 별로 없고 시간 아깝습니다.
17/04/29 10:42
일반적인 지적엔 공감합니다. 특히 이 부분.. <복잡한 논리 전개일지라도 리드미컬하게 긴장을 늦추지 않고 따라올 수 있도록 하는 글이 좋은 글> 이라는 부분이요. 근데 아이러니컬한 게, 밑에 제 글과 비교 예시해 주신 <평등주의의 종말에 관한 글>, 사실 그 글은 저도 주제 자체에 끌려서 클릭해 들어갔다가 5분을 못 버티고 다시 클릭해 나왔던 글이라는 거.. 그 글에 대해 잠깐 인상평을 해보자면, 일단 문제 의식 자체는 좋았는데 결정적으로 <평등 주의>가 도대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언급이 나와 있지 않더군요. 처음에는 19세기 유럽의 공산 주의가 처한 상황을 얘기하는 걸로 봐서 그것을 지칭하는 것인가 싶었는데, 나중에 보니 포드주의, 러스트 벨트, 기술 혁명 이야기도 나오고.. 한 마디로, 평등주의라는 개념 안에 어떻게 이 많은 요소들, 이야기들이 버무려 질 수 있는지에 대한 언급이 없더군요. (혹시 아시면 설명해 주시면 저야 고맙겠습니다.) 너무나도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저는 중간에 읽다가 5분을 못 버티고 스크롤 한 글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글쓴 분 자체의 정성과 노력을 폄하하는 것은 결코 아니구요. 그냥 제 스타일과는 잘 맞지 않았던 글이라는 것이지요. 쩝.. 바꿘 말해 저는 그 글에 대해서는 불성실한 독자 였던 셈입니다. 예시해 주신 부분도 사실 핵심 골자는 <마르크스의 지적인 영도를 받아 공산주의적 평등주의가 발아 한 것이 아니라 그 당시의 시대적, 산업 전반의 평등주의적인 흐름을 마르크스가 잘 받아 표현해 낸 것일 뿐> 이 한 문장 아닌가요? 한 마디로 <그 시대의 경제 구조 자체가 시대의 지적인 흐름을 결정한다>는, 일종의 지적 유물론인 셈이지요. 나머지는 다 여기에 대한 역사적 부연 설명일 뿐이고요.. 사실 제가 그 글의 작성자였다면 역사적 사실의 기술 보다는, 평등주의가 그 당시의 대립했던 혹은 유사하게 경쟁했던 사조들, 예컨대 자유주의, 혹은 공산주의의 개념적으로 어떤 관련을 맺고 있었는지를 먼저 보여 주었을 것 같습니다.
제 글에 대한 코멘트에서 관한 제 리피드백은, 그냥 생략하겠습니다. 이렇게 제 글을 단순화 시켜서 이해해 버릴 수 있다는게 좀 놀랍네요- 긍정적, 부정적인 의미 모두에서요! 이 글에서 제가 타겟팅을 했던 주요 대상은 동성혼인제도가 아니라 동성애 자체 입니다. (물론 뒤에 모노가미 붕괴 위험성을 간접적으로 언급하면서 잠깐 언급하긴 했지요.) 더 정확히 말해, <인간의 성적 정체성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상황에 따라 구성되고 변동하는 것이라고 할 때, 이성애자들이 동성애자들에 대해 갖는 공포심이 과연 비합리적인 것인가?> 하는 것이구요. 만약 아이라이트 님이 이 문제에 대한 고민을 이 전에 깊이 해보셨다면 <뭐야 싱겁네~> 하고 제 글 가볍게 스킵하시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만약 그것이 아니라면, 그리고 아이라이트님이 동성애에 관해 진지한 관심을 가져본 적이 있으신 분이라면, 한 번 정도는 성실한 독자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아이라이트님과의 생각과는 달리, 성실한 글을 쓰려고 하는 사람은 독자들에게도 성실한 태도를 요구할 어느 정도의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독자들을 상정하지 않으면 제가 굳이 제 시간을 빼내어 공부를 하고 고민을 하고, 또 그 생각을 고심하며 글로 옮길 이유가 없으니까요. 좋은 독자층을 전제하기 때문에 성실한 글이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피지알이 성실한 독자층이 많은 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제가 그 글을 이곳에 올린 것이구요. 이곳에서 <글쓰기 클릭 버튼의 무거움> 이라는게 결국 그런 맥락에서 나온 말이 아니었던가요? 여하튼, 제 이 글에 대한 성실한 코멘트에 대해서는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17/04/29 15:05
좀 더 스트레이트하게 덧붙입니다.
비교에 대해 지극히 개인적인 소감을 말씀드릴게요. 님께서 불성실한 독자였다고 고백하신 1번 글보다 님의 2번 글은 해석하기 더 불편하고 내용도 그다지 볼만한 게 없어요. 애초에 성실한 독자는 없습니다. 독자가 뭐하러 알아서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열심히 읽겠습니까. 그 게으른 사람들에게 재미든, 교훈이든, 깨우침이든 줘서 제대로 읽게 만드는 게 필자가 할 일이죠. 결론은 독자가 특별히 게으른 게 아니고 님께서 불성실한 필자였다는 겁니다. 잘 썼다고 칭찬받고 싶으면 그 마인드부터 바꾸셔야 될 겁니다. 내가 성실하게 글을 썼으니 독자가 심혈을 기울여 읽어야 한다. 입장을 바꿔 봅시다. 그러시면서 왜 1번 글을 대충 읽다가 관두셨나요? 그 필자분은 그나마도 쉽게 쓰려고 님의 수십 배 수고를 들였을 겁니다. 독자들은 게으른데, 심사기준은 엄격해요. 읽다가 껐다는 건요. 딱 까놓고 읽다 보니 글이 구리더란 얘깁니다. 댓글에선 성실하고 잘 쓴 글이라는 자신감이 묻어납니다. 그거야말로 자뻑입니다. 글에서 보여준 인사이트가 그다지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문장뿐 아니라 내용도 별로에요. 어려워도 읽고 나서 그만한 쾌감과 만족과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면 괜찮아요. 그런데 별로 대단하지 않은 뻔한 이야기 정신없이 써놓으니 그저 지루하단 얘기죠. '1. 동성애가 후천적인 영향으로 만연하진 않을 것 같더라 + 2. 내가 위키 찾아보니 동성애에 우호적인 국가인지 여부가 크게 상관없는 것 같거든' 이게 끝이죠. 논문 수준의 집중도를 요구하고 싶었거든 더 치밀하게 핵심 내용을 구성했어야 하는데 과대포장만 되어 있지 읽을 게 없어요. 님은 제가 단순화해서 이해했다고 하시는데 제가 보기엔 글에 불필요한 쓰레기 버리고 필요한 것만 남겨둔 겁니다. 가치 있고 나에게 도움 되는 부연이었으면 수고 들여 끝까지 읽습니다. 처음 드렸던 말씀을 마지막에 다시 더하네요.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은 내가 무엇을 썼느냐 가 아니라 독자가 어떻게 읽었느냐 입니다. 많이들 지적하면 내가 잘못 쓴 게 아닌가 먼저 고민해보는 게 순리죠. 일기장에 쓰실 거면 상관없습니다. 굳이 공개된 게시판에 쓰셔 놓고도 조언을 구하고 수용을 안하시는 지금의 태도는 유아스럽다고 보여요. 온전히 담아낼 그릇의 세밀함을 걱정해야 할 만큼 글의 통찰이 깊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17/04/29 09:25
조언을 구하셨으니 주제넘습니다만 한마디 할게요. 글에, 특히나 제목에 '음...' 같은 말이 들어가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문학적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만, 그런 용도는 전혀 아니니까요. '구어체', '문어체'라는 말이 있는 이유는 말에 어울리는 말과 글에 어울리는 말이 있기 때문이죠. 현재 바꾸신 제목은 '글'에는 그리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문장으로 쓰실거라면 [제 글에 대한 피드백을 부탁드립니다] 같은 형태로 끝을 맺어주시는 것이 좋은 것 같아요. '글'로 구어체에 가까운 말을 보면 이 사람이 아직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채로 말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어서 글에 신뢰감이 떨어집니다.
17/04/29 09:56
그 아래 글을 읽어 봤습니다.
그 글은 거칠게 요약하자면- 동성애는 후천적인 것이 아니다. 그 근거는 동성애에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된 서구 국가들의 동성애자 비율이 (늘어나지 않고)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걸로 보이는데요. 일단 그 각 국의 통계 자료를 적당히 가공해서, 하다못해 링크라도 첨부를 해주셨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글쓴이가 미리 결론을 내리고 통계를 자의적으로 해석했는지 독자는 알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그 글은 그 통계가 알파이자 오메가거든요. 그리고 자연히 이런 의문이 따라 옵니다."'그런, 단 하나의 근거로 논파될수 있는 명쾌한 사안에 왜 아직도 합의된 결론이 나오지 않았을까." 동성애의 '유전자' 문제는 서구에서도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라고 압니다. 말하자면 그 글은 한 편의 논문에서 두 세 문단 정도에 해당되는 내용으로 보여요.
17/04/29 10:57
음... 저도 일목 요연한 자료를 구할 수 있었으면 그렇게 했겠죠. 근데 그런 자료를 구하기 어렵더군요. 위키 항목에서도 통계 수치에 관해서는 표로 아니라 주로 나열 형식으로 나와 있고. 시간 한계상 그런 작업은 생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 글을 쓰면서 얻은 생각은 그와는 다른 방향의 것이었습니다. 즉, 단 하나의 논거로 논파될 수 있는 명쾌한 사안이 결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성애 담론에서 아직 제대로 부각되지 않은 - 물론 제가 보기엔 - 중요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지요. 이런 <동성애자들의 이성애자들에 대한 상호간의 인정/반인정 투쟁> 으로서의 성격을 부각시켜 보자가 그 글의 밑바닥에 깔려 있습니다. .
17/04/29 12:00
글 앞부분에, 동성애에 반대하는 이성애자들이 내세울 논리적 근거는 하나의 예외를 제외하면 없다고 하셨고 그게 바로 '동성애가 후천적인 것일 경우' 입니다. 그리고 후천적인 것이 아니라는 근거로 그 통계를 드셨구요. (LGBT, 희박하다 등등은 논점을 흐리니 일단 무시하겠습니다.) 저는 이게 현실과는 좀 동떨어져있는데다 논리적 비약이 있으면서 근거는 빈약하다고 느꼈습니다.
내용 보다는 표현에 대해 지적하길 바란다고 쓰셨으니 이런 얘기를 하는게 잘못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문장을 잘 쓰지 못합니다. (위에 지적하신 분들의 글에서 많이 배웠습니다. 또한 님이 쓴 리플에도 위에 지적된 사항들이 재현되는걸 보면서 흥미를 느끼기도 합니다.) 제가 그래서 그런지, 그 글의 가독성이 떨어지는건 맞지만 그냥 원래 이런 식으로 글을 쓰는 분인가 보다 생각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읽어갈 수 있었습니다. 저한테 그 글이 종합적으로 좋지 않다고 느껴지게 된데에 문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별로 안됩니다. 동성애의 선척적/후천적 요인을 판단할 근거로 통계를 제시한 부분은 참신했고 새로운 사고를 할 수 있게 이끄는 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선천적/후천적 논쟁 자체는 진부한 얘기이며 그 글에도 별로 새로운게 없었습니다. 그리고 근거가 너무 희박합니다. 지금 제시한 통계만으로는 이런 해석도 가능합니다. [연령에 따라 성정체성의 비율이 달라진다는 갤럽 통계] 이 부분은 말씀하신대로 일부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성정체성이 변화한다고 해석할 수 있지만 ("또한 젠더 정체성이 삶의 주기에 따라 변동한다는 생각도 아래의 2012년 미국 갤럽의 광범위한 조사 결과를 봐도 비합리적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 통계야말로 현재 동성애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증거로 보입니다. 사회에 관용적인 분위기가 형성된 이후 세대부터 동성애자 비율이 증가했다고 할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이게 오독으로 보이실 수도 있는데 제시된 자료가 그게 전부이니까요. 통계가 일목요연하지 않고 그냥 나열식이건 뭐건간에 종합적으로 그렇게 판단하실만한 구체적인 수치들은 있었다는 거잖아요. 그걸 읽는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게 정리하시는건 불가능한 일은 아닐거라고 생각합니다. 꼭 그래야 한다는게 아니고 그랬다면 적어도 저의 평가는 달랐을거라는 겁니다.
17/04/30 01:47
제 글의 주장은 지금 젤라니님이 제시하신 것보다는 좀 더 정교한 기술을 필요로 합니다. 저는 그 글에서 <동성애가 후천적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 라는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지금 하신 말을 뒤집어 보면 결국 동성애는 선천적으로 결정된다는 뜻인데, 제가 찾아본 어떤 자료에서도 유전자 같은 선천적 변수가 지배적 이라는 주장을 하는 요즘 학자는 없었습니다.
제 주장을 다시 한 번 요약해 드립니다. 1. 동성애가 구성원간의 사회적인 상호 작용을 통해 <만약> 후천적으로 변동해 나갈 수 있는 것이라면, 즉 동성애를 통해 일부 배타적 이성애자들이 가진 양성애 기질이 발현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동성애자들의 증가로부터 이성애자들이 자신의 성적인 정체성을 지키고 싶다는 욕구를 지니게 되는 것은 일견 합리적인 것이다. 2. 그래서 이 <만약> 이라는 변수를 살펴 보기로 한다: 이를 위해 동성혼 제도를 이미 허용한 서구 국가들에게서 동성애자 비율이 유의미하게 증가했다는 통계가 있는지 살펴 보았다. 3. 그 결과 그런 통계적인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 4. 따라서 현재 상태의, 내가 수집한 통계적 사실만으론 이성애자들이 갖는 정체성 변동 공포가 합리적이라고 볼 수 없다. 요 정도 까지의 주장이고, 이 주장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통계적인 사실에 근거한 약한 주장입니다. (본 글에서도 이런 유보적인 조건을 명시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새로운 통계적인 증거가 발견된다면 언제든지 반박 가능한 주장이라는 것이지요. 지적하신 대로, 제 주장의 근거가 희박하다는 것에 매우 동의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 주장은 매우 유보적인 조건 하에서만 유효한 진리 주장인 것이지요. 제대로 제 글을 이해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갤럽 통계 역시 젤라니님의 주장대로 <현재 동성애자가 점점 늘어가고 있다는> 증거로도 분명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도 처음에는 일종의 경악 속에 동성애 인정론에 대한 회의적인 글을 준비해보려고 했었으나 다른 나라의 해당 위키 항목들을 둘러 보면서 생각을 바꾸게 된 것입니다. 이 부분에 관해 절라니님의 지적 대로 통계학적인 수치들을 더 구체적으로 일목 요연하게 표로 제시할 수 있었다면 훨씬 좋았을 거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유감스럽게도 그 부분에 관해 저의 내적인 요구를 충족시켜주는 자료를 찾을 수가 없어서 비록 부족한 형태로마나 그런 의미의 약한 주장을 한 것입니다. 여담 입니다만 젤라니님이야 말로 제가 기대하고 있던, <성실한 독자> 에 해당하는 분이라고 생각 합니다. 던져주신 질문들 모두가, 제 글을 집중력 있게 읽어 주는 독자가 아니면 던질 수 없었던 좋은 질문이었습니다.
17/04/29 10:12
제 개인적인 느낌입니다.
1. 쉼표의 남용. 왜 여기에 쉼표가 있는지 모르겠는 게 너무 많아요. 쉼표는 문장이 길다고 한 번씩 써주는 게 아닌데, 그런 느낌으로 쓰여져 있는 것들이 꽤 있네요. 2. 개인적으로 불특정 다수를 향해 쓴 글에서 외래어를 직접적으로 쓰는 글 치고 잘 쓴 글은 못 본 것 같아요. 고유명사를 제외하고 외래어는 가급적 배제하는 게 옳다고 봅니다. 논문이거나 전문잡지에 실린 기고이라면 얘기는 달라지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조금만 어려워도 이건 모른다라고 전제하는 편이 맞죠. 본문에 언급되어 있지 않은 LGBT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죠. 이런 게 본인 기준에서는 상식일지 몰라도 외국어는 가장 많이 쓰이는 영어라 해도 직관적일 수가 없습니다. 이런 경우는 주석을 달아주는 편이 옳겠죠.
17/04/29 10:34
글을 잘 쓰지는 못하지만 문학 관련 과를 나와서 딱 하나 배운 게 있다면 어떤 면에서는 글을 어렵게 쓰는 것이 잘 읽히게 쓰는 것보다 쉬울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순수문학을 배우고 장르문학을 보다 보면 특히 그런 생각이 많이 들죠. 문학적인 관점으로 보자면야 장르문학의 문체는 제대로 성립되었다고 보기도 힘들거니와 맞춤법도 안 맞는다거나... 같은 것 일상다반사입니다. 그래도 배울 게 있다면 그치들은 글을 일부러 어렵게 꼬지 않는다는 거지요. 보통 제가 다니는 과는 글월을 먹다 보니 학년이 올라갈수록 문장이 길어지고 비유와 함의가 많인지는 현상이 많이 일어나는데 이건 자기가 깨닫기 전에는 고칠 수 없는 악마의 늪 같은 거지요 ㅠ 그렇기에 잘 쓰는 사람들은 문장이 길어지고 어려워지다가도 다시 짧아지고 가벼워지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장르소설 이야기를 한 김에 무협에 빗대자면 극에 이를 수록 단순하지만 그 칼에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극의가 담겼더라~같은 느낌이 되겠지요.
생각없이 글을 적다 보니 뻘소리가 길어졌네요 ㅠ 사실 하고 싶은 말은 지금부터 나오는 단문이 끝일 텐데도 불구하고 ㅠ 새벽의 길님께 한 말씀 드리자면, 독자들이 글이 어렵다고, 읽기 벅차다고 하면 그들의 말에는 그들의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독자들은 생각보다 이해력이 딸리지 않아요. 제가 다녔던 과에서 학우가 쓴 글에 대해서 합평을 할 때 한번씩 나오는 말이 있어요. '이 글은 문체가 쓸데없이 어렵고 복잡한 데다 문장에 어떤 함의가 있는지 읽기 쉽지 않다~' 이런 류의 말이지요. 그러면 꼭 자기 작품에 대한 해설로 반박을 하는 학우가 나옵니다. '이 문장에는 이런 뜻이 있고 이 부분은 뒤의 어느 부분에 대한 복선이~'류의 반박이지요.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그 학우의 글을 대충 읽은 것이 아니라 깊게 읽은 후에 나오는 합평임에도 독자를 매도하는 것입니다. 독자가 자기보다 그 방면에 대해서 지식이 부족한 사람이더라도 같은 말이 여러 번 나온다면 그건 자기 글을 되돌아봐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한마디로 끝나도 될 댓글이 이리 길어진 걸 보면 저도 아직 하나도 고치지 못했나 봅니다 ㅠ 더 쓰고 싶은 것도 있지만 급히 줄입니다
17/04/29 10:54
지난 글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마지막 문단을 첨삭해드리겠습니다. 향후 글을 쓰실 때 참고하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원문 : 퀴어 퍼레이드에서 벌어지는 희화화와 조롱의 난장이라든지, 커플 커밍 아웃시 남자가 새빨간 립스틱을 칠하고 면사포를 쓴 신부 입장으로 동성 파트너와 입장을 한다든지 하는 것은 젠더 정체성과 감수성을 노멀하게 받아들여온 - 물론 여기서 노멀하다는 것은 완전히 가치 중립적으로 쓴 것이다 - 나를 포함한 주류 이성애자들에게는 분명 모욕감을 수반한 어떤 불편함을 준다. 수정 : 퀴어 퍼레이드에서 벌어지는 성적 조롱. 게이 남성이 새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면사포를 뒤집어 쓴 채 신부처럼 행동하는 모습. 젠더 정체성과 감수성을 가치 중립적으로 받아들여온 평범한 사람들 즉, 주류 이성애자들은 이런 모습에서 모욕감을 수반한 불편함을 느낀다. 의견 : 희화화와 조롱은 동어 반복입니다. 난장이라는 불명확한 단어보다는 구체적인 단어가 좋습니다. 다만 의미를 알 수 없어 "성적 조롱"으로 유추해 썼습니다. 다른 내용이라면 다른 구체적 단어를 쓰면 됩니다. 부연 설명 문장을 따로 두기 보다 아예 본 문장에 포함시켜 쓰는 게 낫습니다. "나를 포함한"이란 부분은 굳이 쓸 필요가 없습니다. 노멀하다는 말은 평범하다, 보통이다로 바꾸는 게 좋습니다. 수동형 문장은 외래어 번역의 영향입니다. 능동형으로 "주류 이성애자"를 주어로 두고 동사를 "느낀다"로 바꾸었습니다. 원문 : 성적인 정체성을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옷차림이나 말투, 태도 등에 자연스럽게 묻어 있는 여성성과 남성성의 어떤 소중한 의미들, 상징등을 공격하는 것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이런 의미에서 일부 성소수자 단체의 이런 레토릭은 분명 비난받을 부분이 있다고 본다. 수정 : 성적인 정체성을 인정해 달라는 요구가 옷차림이나 말투, 태도 등에 자연스럽게 묻어 있는 여성성과 남성성의 소중한 의미와 상징을 공격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이런 의미에서 일부 성소수자 단체의 표현 방식은 분명 비난 받을 부분이 있다고 본다. 의견 : '~하는 것'이란 표현은 되도록 지양하도록 합니다. 레토릭이란 말은 무분별하게 남용되는 대표적인 외래어입니다. 본 뜻도 수사학을 뜻하는 만큼 이 상황에 적확한 단어라 보기도 어렵습니다. 수사법으로 순화하거나 표현 방식이라는 더 쉽고 직관적인 단어로 수정해야 합니다. 원문 :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성애 찬반 담론의 밑바닥에는 그런 레토릭이나 공적인 정치인에 대한 무례하고 거친 태도 때문에 감정적인 비난을 통해 삭혀 버리기엔 너무나도 숭고하고 무거운 슬픔이 있다. 수정 :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성애 찬반 담론의 밑바닥에는 표현 방식을 탓하기엔 너무나도 숭고하고 무거운 슬픔이 있다. 의견 : '하지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굳이 연이어 쓸 필요는 없습니다. 공적인 정치인의 무례하고 거친 태도에 관한 언급은 논점 일탈의 위험성이 있습니다. 하고자 하는 말에 집중하는 게 좋습니다. 원문 : 공동체는 개인의 삶에 내재한 그 슬픔을 함께 직시해주고 공감해 줌으로서 다시 한 번 공동체가 된다. 상처 받은 개인들 역시 공동체 안에서 살아온 다수의 구성원들의 삶을 소프트하게 규정하고 있는, 젠더 안에 들어 있는 여러 의미들, 상징들을 그 자체로 존중해 줄 때 그들의 목표가 단순히 그들만의 목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목표로 합당하게 이행해 나 갈 수 있다. 수정 : 공동체는 개인의 삶에 내재한 슬픔을 함께 직시하고 공감하면서 다시 한 번 공동체가 된다. 소수자라 상처받은 사람일지라도 다수 구성원의 삶을 규정하는 상징들을 그 자체로 존중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들의 목표가 우리의 목표가 될 수 있다. 의견 : 첫 문장의 길이는 적절했습니다. 수동적 표현만 능동형으로 바꾸었습니다. 뒤의 문장은 전형적인 영어의 관계대명사형 문장입니다. 우리말에 어울리지 않는 구조이죠. 주술목을 분명히 하여 능동형 문장으로 수정했습니다. 마지막 문장은 목표라는 단어가 중복 등장하여 읽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이행한다는 말도 쉬운 단어로 순화하는 게 좋습니다. 원문 : 따로 또 같이 어울려 가는 건강한 사회는 이렇게 소수가 다수라는 타자들 안에서 소외 되어 머물게 내버려 두는 사회가 아니라, 모두가 타자 안에 자신을 발견하면서, 그 타자를 자기 안으로 순치해 나가는 사회다. 수정 : 따로 또 같이 어울려 가는 사회는 소수가 다수라는 타자들 사이에서 소외되도록 내버려 두어선 안 된다. 모두가 타자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면서, 그 타자를 자기 안으로 포용해 나가야 한다. 의견 : 병치형 구조라 단순하게 문장을 둘로 나눠도 되는 문장이었습니다. 이럴 경우 그냥 나누는 게 낫습니다. 순치하다는 말은 어려운 단어일 뿐만 아니라 정확한 사용도 아닙니다. 포용으로 바꾸었습니다. 전체적 의견 : 지속적으로 언급해야 할 부분이라 한 번에 이곳에 쓰겠습니다. 많은 문장이 번역체입니다. 수동/능동의 문제 뿐만 아니라 문체 자체가 번역투가 깊이 배어있습니다. 그리고 수식어가 많습니다. 부사와 형용사는 의미를 바꾸지 않는 한 빼는 것이 좋습니다.
17/04/29 13:57
소중한 시간 내서 어드바이스 해주신 충달님께 정말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지적 하신 부분의 많은 것들어 저에게 잘 와닿지 않는군요.
1. <희화화>와 <조롱>이 어떻게 동어 반복인지요? 희화화= 익살 맞고 우스꽝스러운 것이 되게 함, 조롱= 깔보거나 비웃으며 놀림. 전 이 구 단어가 비슷한 베이스에서 출발하고 있긴 있지만 분명 다른 측면을 가진, 다른 단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은가요? 난장이라는 말도 사전에 안 나와 있는 단어도 아니고, 충분히 구체적인 단어 입니다. 난장 1: 한데에 난전을 벌여 놓고 물건을 사고 파는 장, 2. 지난 날, 과거를 보러 온 선비들로 북적이던 시험장을 이르던 말. 저는 분명의 1의 뜻으로 쓴 것인데 뭐가 불명확하다는 것인지? 퀴어 축제에서 이런 이미지가 안 그려지세요? <~ 한다는 것은 나를 포함한... 이성애자들에게는...불편함을 준다> 이 문장이 어떻게 수동형 문장이예요? 충달님은 그냥 긴 주어를 가진 능동형 문장을 둘로 쪼갠거잖아요. 2. 레토릭을 <표현 방식>으로 바꾼 것은 받아들일 만 하지만, 이것이 무분별한 외래어라는 말은 수긍하기가 어렵네요. 그리고 레토릭 안에는: 수사학 이라는 뜻 뿐만 아니라, 수사법이라는 뜻도 있다는 거, 정말 모르신거예요? 3. <공적인 정치인의 무례한 태도에 대한 언급은 논점 일탈의 위험성이 있다> : 전혀 동의할 수 없네요. 문재인에 대한 일부 동성애 단체의 무례하고 거친 태도로 인해 동성애라는 문제 자체의 순리적 해결이라는, 본질과 멀어지는 작금의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 바로 이 글을 쓴 결정적 계기 였는데, 충달님이 저라면 그 부분을 삭제할 수 있겠어요? 이 문장의 포인트는 충달님이 삭제하신 바로 그 부분, 즉 <그런 레토릭이나 공적인 정치인에 대한 무례하고 거친 태도 때문에 감정적인 비난을 통해 삭혀 버리기엔> 이라는 문구에 담겨 있다고 전 생각해요. 4. <공동체 안에서 살아온 다수의 구성원들의 삶을 소프트하게 규정하고 있는, 젠더 안에 들어 있는 여러 의미들, 상징들을 그 자체로 존중해 줄 때 ~> 요 부분을 <다수 구성원의 삶을 규정하는 상징들을 그 자체로 존중해 주어야 한다.> 요렇게 바꾸셨네요. 이렇게 함축해서 쓰면 명료하긴 한데, 정작 이 문장에서 지시하고 있는 사태의 외연이 불필요하게 너무나 넓어지는 부작용이 있어요. 저는 퀴어 축제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행태들, 예컨대 엉덩이를 까뒤집고 남자들이 팬티만 걸친 채 진한 립스틱을 바르며 괴성을 지르고, 이런 일련의 행동들의 남녀 간의 의복 구분에 함축된 남성/여성성의 상징적 의미들을 공격하는 기제로 보고 이 단락을 쓴 것인데.. 뜬금 없이 <다수 구성원들의 삶을 규정하는 상징들> (하나 못해 젠더 상징들도 아니고), 이라고 해버리면 이런 함축들이 모두 증발을 해버리게 되죠. (이런 직관적인 예시를 빼버린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문장들을 좀 더 압축하기 위함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굳이 그런 예시를 집어 넣지 않더라도 그 글을 따라온 독자들이라면 쉽게 연상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유 였어요.) 여튼, 얼른 생각 나는, 언뜻 충달님의 조언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들을 적어 보았어요. 솔직히 말하면 글쓰기 스타일이 저와는 너무 다른 것 같고, 제 입장에서는 되도록 쉽게 써야 한다는 자기 교열을 하지 않은 - 제가 이런 표현을 쓴 이유는, 충달님 본인 스스로도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고 말씀하셔서예요 - 충달님의 문장들을 - 아마도 피지알에는 없겠죠? -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충달님 스스로가 이미 그런 스타일을 자기 것으로 만드셨다면 더 이상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문장 전체가 길고 호흡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 충달님을 포함한 - 여러 다른 분들의 지적에는 동의하고 공감하는 바이나 이것이 난삽하고 현학적이이라던지, 생각 자체를 종잡을 수 없다던지, 또는 부정확하다는 지적에는 언뜻 수긍이 가지 않습니다. 여튼 제가 충달님께 드리고 싶은 말은 어쩌면 글을 어렵게 보이게 써야 한다는 현학적 욕구만큼 쉬운 글을 써야 한다는 욕구 또한 어쩌면 글이 담아내는 사태를 지나치게 단순화 시킬 수 있다는, 만만치 않은 크기의 위험을 동반한다는 점이예요. (뭐 이런 말 하면서 또 제 문장이 길어 졌네요. 하하하.) 여튼 첫 글을 읽어주시고 호평 해주시고, 이렇게 긴 코멘트를 남겨 주신 것은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17/04/29 14:50
1. 희화화와 조롱의 미묘한 차이를 굳이 이 글에서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나요? 없다면 동어반복입니다. 하나만 써도 의미를 전달하기에는 충분하죠. 난장이 구체적이지 못한 이유는 이게 앞서 언급한 희화화나 조롱을 구체화하는 단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저 퀴어 축제가 어지럽다는 의미만 더할 뿐이죠. 정확히 지목해야 할 대상을 표현할 단어가 있음에도 두루뭉슬한 단어를 쓴다면 이건 구체적이지 못한 겁니다.
불편함을 느끼는 주체가 누구일까요? "사람들이 OOO을 불편해 한다." 혹은 "사람들이 OOO에 불편함을 느낀다."라고 써야 능동형이 되죠. "OOO이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준다." 혹은 "OOO이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라고 말하면 수동형이 되는 겁니다. 설마 능동형과 수동형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건 아니죠? 2. 설마요. 그럼 성소수자들이 쓴 "이런 레토릭"이 정확히 어떤 수사법을 말씀하신 거려나요? 그들의 표현의 과격함을 포괄할 수 있는 수사법이랄게 있긴 합니까? 그런 게 없다면 남용하신 거죠. 3. 한 문장에 하나의 의미. 한 문단에 하나의 주장. 한 글에 하나의 결론. 이게 글쓰기의 기본 정석 중 하나입니다. 뜻하신 바를 넣고 싶으셨다면 문장을 나누어 다른 문장으로 썼어야 합니다. 4. 이렇게 명료하게 줄일 수 있는 이유는 본문의 앞선 내용 덕분입니다. 결말에 해당하는 부분인지라 중언부언 하지 않아도 독자들은 하고자 하는 바를 충분히 유추할 수 있습니다. 5. 글을 쉽게 써야 한다는 건 욕구가 아닙니다. 의무죠. 독자를 위한 의무입니다. 저는 뭐 글을 쉽게 쓰는 게 좋아서 쉽게 쓰는 줄 아십니까;;; 저도 퇴고 안 거치고 막 써내려가면 외래어 마구 튀어나오고, 복문 남발하고 그렇습니다. 순화하고 퇴고하고 그러니 바뀌는 거죠. 이 모든 노력의 이유는 하나입니다. 독자를 위한 배려입니다. 사색할 때는 고고해도 됩니다. 하지만 글을 쓸 때는 독자를 배려해야 합니다. 등대를 짓는 사람은 외로워도 괜찮지만, 등대를 다루는 사람은 뱃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저는 지난 번 글에 훌륭한 내용의 글이라고 칭찬 댓글도 달았고, 그 글을 추천한 17사람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 좋은 내용이 좋은 표현까지 동반했다면 더 많은 추천을 받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니, 지금 상태로도 더 많은 추천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내용과 결론이 쏙 맘에 드는 글이었습니다. 몇몇 글쓰기 기본 정석만 적용하여 퇴고해도 더 많은 호응을 끌어낼 수 있는 글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글쓰기의 정석을 조언하는데도 본인만의 확고한 사상을 근거로 거부하고 계십니다. 뭐 저야 똑같이 인터넷에 글 싸지르는 형편이지만, 제가 한 조언 특히, 복문을 피하라는 주문은 모든 글쓰기 교재에 등장하는 조언입니다. 그걸 거부할 정도로 완벽한 문장을 구사한 글이었나요? 정석조차 해내지 못하는 사람이 정석을 거부하면... 그저 치기어린 모습으로 비춰질 뿐입니다. 제 예전 문장을 보고 싶으시면 닉네임 검색으로 "충달" 치시면 됩니다. 여기 다 있습니다.
17/04/29 17:53
와우... 속이 뻥 뚫리는 첨삭이네요. 한국어 글쓰기에 그동안 얼마나 많은 고민과 노력을 하셨는지 바로 알겠습니다.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17/04/29 11:19
제가 이 쪽으로는 무지한 편이기에 조언할 자격은 안되는거 같고, 글과 댓글을 보고 느낀 점에 대해서만 말씀드릴게요.
1. 내용 및 문장이 너무 어렵습니다. 전문가를 위한 글이 아니라면 일반인들이 보기에도 읽기 쉽게 쓰여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도는 아니시겠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유식함을 자랑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2. 대댓글 달아놓으신거 보면 본인의 마음에 들지 않는 댓글에는 부정적 마음으로 답하신게 느껴집니다. 불필요한 사족도 많이 달려있어서 좋은 마음으로 조언해주신 분들이 기분 나빠할수도 있겠네요. 1,2번 모두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하시더라도 독자가 그렇게 느껴진다면 문제가 될수 있다고 생각하셨으면 좋겠어요. 다른 분들의 조언을 토대로 앞으로 양질의 글 많이 기대하겠습니다.
17/04/29 11:48
글쓴이가 대댓글 단 것을 보니까 대학 때, 문학비평 시간의 후배들이 생각나네요.
글을 쓰면서 겪어봤기에 잘 보이는 잘못된 부분들을 지적하면 '이런 부분은 고쳐야겠다.'라고 생각하는 후배들은 없더군요. '네가 뭔데 내가 이렇게 고민해서 쓴 글을 폄하해?'라는 눈초리가 훨씬 많았습니다. 수업의 일환이라면 모르겠지만 열린 커뮤니티에서 조언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피드백을 구하는 이유를 모르겠네요.
17/04/29 12:52
음.. 그렇게 보여셨나요? 그냥 일반적인 발제글이 었으면 그냥 넘어가겠는데, 제가 스스로 피드백을 요청한 글이라, 이 글에 달리는 모든 덧글에는 원칙적으로 재피드백을 해주는게 나름 예의라고 생각해서 그리하였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부정적인 피드백들 뿐이라, 이 부분에 대해 뭔가 제 나름대로 해명을 해 볼 필요성을 더 느끼기도 했구요.
17/04/29 12:56
당연히 부정적인 피드백이 달리겠죠.. 글 잘읽었습니다. 라는걸 달아달라고 쓴 글이 아니잖아요..
그 부정적인 피드백을 해달라고 올리신 글인데 정작 그 피드백에 대해서 '이건 이래서 아니고 저건 저래서 아니야' 라고 반박하면 피드백을 해주는 사람들 입장에선 이게 뭐야.. 싶은 느낌이 들죠..
17/04/29 12:48
스스로의 글에 뿌듯해하는 거야 너무나 흔해빠진 일이죠. 자부심도 생기고, 만족스럽기도 하고, 자랑하고 싶기도 합니다. 저도 종종 그런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읽는이가 글쓴이의 그런 기분에 공감해주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자기 마음에 드는 글이니 당연히 상대의 마음에도 들 것이라는 건, 그저 오만입니다.
17/04/29 13:25
헙;;; 저는 글 쓰는 제일 큰 이유가 그겁니다. 제가 쓴 글이 넘나 맘에 들어요 ㅠ,ㅠ 응가 싸거나 버스 탔을 때 블로그에 쌓아둔 글 보고 있으면 시간 금방 지나갈 정도로 재밌게 몰입해서 봅니다. 무려 제가 직접 쓴 글인데!!!
글을 쓰려면 그런 자기 만족감이랄까, 자신감이랄까, 혹은 오만일 수도 있는 그런 자의식도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물론 퇴고나 첨삭을 요구할 때 들이댈 감성은 아니긴 합니다.
17/04/29 14:05
그런가요... 저는 정반댑니다. 제가 예전에 쓴 글을 꺼내서 다시 읽다 보면 얼굴이 미칠듯 화끈거려서 컴퓨터 폭파시킨 후 도망치고 싶더라고요
17/04/29 12:49
일단 아래 글이 이틀전꺼니 링크부터 달아주셔야...독자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건 모르겠고 모노가미 폴리가미는 태어나서 처음 듣네요...백그라운드가 궁금합니다;;; 나름 그래도 잘난 집단+ 생물학 전공자들인데 아무도 몰라서요. 아 인간쪽 생물학이 아니라 그럴까요. 특정 용어를 쓰시면서 이렇게 해석해주겠지 ~라는 의도를 가지셨다고 하는데 의도는 명확히 밝히지 않으면 몰라요.
17/04/29 13:00
글이야 어찌되었건 읽혀지기 위해서 쓰는 것이므로,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 말씀드리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여 댓글을 조금 남깁니다. 새벽의길 님의 글은 읽기가 쉽지 않습니다. 한 문장의 뜻을 받아들이기도 어렵고, 당연히 한 문단은 더 어렵고, 글 전체로 보면 더 어렵습니다. 어려운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일단 어려운 단어를 쓰시고, 문장을 너무 길게 쓰십니다. 글이야 쓰는 사람 마음이지만 올바로 읽히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읽는 사람의 입장을 고려해서 쓰는 것이 맞지 않나 생각합니다.
17/04/29 13:13
재미있네요. 고치기 전의 제목은 모르겠지만, 댓글에 대한 글쓴분 반응을 보면 또 고치셔야 할 것 같은데요.
'죄송하지만 솔빈님의 멘트 안에는 독자로서의 그런 성실한 자세가 느껴지지 않네요. 여튼 조언 감사해요.' 여튼 조언 감사해요라니. 크으...
17/04/29 13:20
;; 무슨 대문호라도 어지간하면 자기 글 읽고 비평하는 사람한테 '독자로서의 성실한 자세' 운운 할거 같진 않은데....
기술적인 문제가 먼저가 아니고 마인드부터 바꿔야 하는거 아닙니까?;
17/04/29 13:53
댓글로 너무...비꼬실 필요는 없는 듯합니다.
모난 부분도 있겠지만, 시간과 공을 들여서 쓰신 글이잖아요. 이런 글에 애착이 생기는 건 너무나 당연합니다. 읽기 쉽냐 어렵냐와 별개로 유익한 글이었어요. 단순한 스노비즘이나 자기과시용 지적유희라는 건 너무 나간 비난 같습니다. 본인이 세우신 3원칙이 있으시고, 훌륭한 원칙으로 보입니다. 그 원칙을 조금 더 강하게 적용하신다면 더 전달력있게 글을 쓰실 수 있을 듯해요.
17/04/29 13:55
질게로 가는게 맞는 글 같습니다.
글쓴이의 태도가 영 좋지 않은데도 좋은 댓글을 달아주신 분들이 많네요. 덕분에 저도 많이 배워갑니다.
17/04/29 14:01
조언 주신 분들 감사드리고 저는 이만 퇴청하겠습니다. 이 다음에 걸리는 덧글에 대해서는 피드백 못해드리는 거는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덧>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글쓴이는 댓글 잠금 기능을 사용할 수가 없나 보네요. 그렇담 운영진께서 그렇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7/04/29 14:11
정말 안타까워서 글 남깁니다..
듣기 좋은 피드백과 듣기 싫은 피드백은 항상 공존할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인터넷에서 받는 건 듣기 싫은 피드백일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듣기 편한 말만 듣고 싶으시다면 피드백을 구하는 방법이 잘못되지 않았나 싶고, 피드백을 바라는 글을 쓰셨으면서 피드백에 대해 굉장히 방어적이거나 비꼬는 태도를 보이시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타래에서도, 첫 문장은 안쓰시는 게 좋았을 것이고, '여튼' 이라는 단어도 안쓰시는게 낫지 않나.. 생각합니다.
17/04/30 11:24
댓글잠금 운운까지 크크 답이 없네요 어차피 개선의 여지도 없어보이고 그냥 본인블로그에만 쓰세요. 남얘기 듣지도 않을껀데 왜 밖에 나와서 스트레스 받아가면서 피드백 받는척 하시는지 이해가 안되네요
17/04/29 15:17
알람 떠서 하는 말인데요. 성실한 독자는 없습니다. 다들 게으르고, 무지 합니다. 그걸 유념 해서 글을 써야 합니다. 나무늘보 같은 독자가 흥미를 느끼고 적극적으로 글을 읽게 만드는게 글쓰기 기술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아무것도 하기 싫고 귀찮은 아이에게 느닷없이 존 스튜어스 밀의'자유론'을 읽으라고 주면 무리 없이 잘 읽고 받아 들일까요. 아니면 어린이용으로 쉽게 풀어서 써놓은 '어린이 자유론'을 더 잘 읽을까요. 조금만 생각해보면 아이는 어린이용 책을 더 잘 읽고 잘 받아 들일 수 있을거라는건 누구나 판단 할수 있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특정 지식인들이 읽는 전공 논문이 아닌 이상, 공개된 게시판에 많은 사람들이 보는 글은 쉬워야 합니다. 누군들 여려운 한자말 써가며, 한껏 폼나는 글을 못써서 안쓰는게 아닙니다. 다만 그런 글쓰기는 자기만족에 영역이고, 허세끼 가득한 자아도취에 불과합니다.
17/04/29 15:42
이거 진리죠. 성실한 독자를 가정하고 글 써봤자 돌아오는 건 무플 뿐... 독자를 배려하지 않는 글에 돌아오는 건 무관심 뿐입니다. 이거 글쓰는 사람 입장에서 엄청 무섭고 엄정한 진리입니다. ㅠ,ㅠ
17/04/30 00:35
글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 이렇다할 피드백은 드릴 수 없습니다만, 댓글에서 많이 언급된 불성실한 독자에 제가 적합하지 않을까 싶어 댓글을 님깁니다. 댓글에 달린 요약된 문장들을 읽고서 느낀점은 비문학적 내용을 굉장히 문학적으로 쓴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도 전문용어가 상당히 많이 들어간 번역체로요.
제 전공책을 예로 들어보자면 "하중은 물체에 가해지는 힘을 말한다."라는 건조한 느낌의 간결한 문체로 표현할 수 있는 문장임에도 "하중은 물체에 가해지는 힘을 가르키곤 하지만, 그것은 마치 첫사랑의 입에서 뱉어져나오는 거절의 <메세지>가 마음을 무겁게 누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만드는, 물리적이고도 자연적인 힘이라고도 볼 수 있는것이다." 라고 쓰여있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글의 맞고 틀림을 생각하기 이전에 너무 이해하기가 어려워서 2번, 3번 읽어야 이해가 됩니다. 또 나름 동성애 문제에 관심이 있는 편 임에도 불구하고 이해할 수 없는 용어들이 꽤 나오더군요. 동성애에 관련된 용어인지 아닌지조차 파악할 수 없는 용어도 있었구요. 내용 자체는 좋았다고 생각되지만 어렵다고 느껴지는건 어쩔 수가 없네요.
17/04/30 21:05
댓글 다시는걸 보면서 느낀건데, 손님이 짜다면 짠겁니다.
쉐프가 아무리 맛의 밸런스니 뭐니 설명을 해봐야 많은 손님이 짜다고 느끼면 그건 그냥 음식이 짠거예요. 유럽의 유명한 요리학교에서 수학한것도 알겠고 실력도 있는건 알겠는데, 현지 입맛에 맞지도 않는 요리를 내놓으면 그 가게는 문 닫아야합니다. 쉐프들의 자신감은 손님들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데에서 나와야지, 본인에게만 맛있는 요리를 만든다는 데에서 나오면 안됩니다.
17/05/01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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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마치 내가 쓴 어썸하고 쿨한 글을 읽었는데 왜 니들끼리 싸우고 있는거야? 빨리 멋지다고 말해! 넘나 자랑스러운 것! 같은 감정이 느껴집니다.
17/05/04 17:09
댓글을 보다보니 원글 작성자의 진의가 뭔지 궁금해지는데요.
용어나 문장이 어렵다는 지적에 대해서, '어렵게 쓰는 것도 하나의 스타일이다 존중해달라' 라는 반박과 '이게 뭐가 어렵냐'는 식의 반문을 번갈아가며 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혼란스러웠습니다. '난 어렵게 쓸테야'가 글쓴이의 진의라면 글이 어려워서 숨막힌다는 지적에 대해 수긍을 해야하지 않을까요? 그런 탓에 읽을 흥미나 욕구가 생기지 않는다는 독자의 반응 역시 감수해야겠죠. 그런데 원글 작성자의 태도는 어려워도 내 글을 끝까지 성의있게 읽는 성실한 독자가 되어라, 에 가까워 보입니다. 한낱 동호 커뮤니티의 불특정 다수 독자들이 대체 왜 그래야 하죠? 원글이 무슨 교양을 위한 필독고전이나 시험에 나오는 예문도 아닌데요. '이 정도는 어려운 글이 아니야'가 원 작성자의 진의라면, 그건 적절치 못한 반박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용어의 난해함과 문장의 만연함으로 어렵다고들 하잖아요. 원작성자가 바라는 독자 입장에서의 피드백이란, 결국 일독 후 소감의 조회가 아니던가요? 그렇다면 그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현상의 문제에 가깝습니다. 독자들의 대체적 반응이 읽기에 어렵다는 것이라면, 거기에 대고 저자가 어렵지 않다고 우겨봤자 아무 의미가 없는 거죠. 글쓴이가 피드백에 어떠한 감정을 느꼈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스스로 댓글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기도 하고요. 댓글러들이 별로 자신의 글을 정성껏 읽어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도 않은 것 같고, 그렇다고 절대적으로 나보다 글쓰기라는 분야에서 우위에 있는 자도 아닌 것 같은데 부정적인 표현을 써 가며 내려다보듯 조언하는 느낌 자체가 불쾌할 수 있겠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미묘한 불쾌감은 과도하게 어려운 용어와 불필요한 현학적 표현으로 독자를 배려하지 않은 글을 읽는 독자의 소감과도 비슷합니다. 왜 가능하면 쉽게 글을 써야 하는지에 대한 답도 될 수 있겠죠. 역지사지로 생각해보시면 될 듯 합니다. 더욱이 먼저 피드백을 구한 건 본인입니다. "언제 식사나 한 번 하시죠" 라고 말하면 "네. 저는 언제가 편한데, 어떠신가요?"라는 대답은 충분히 나올 법한 반응입니다. 본인이 그렇게까지 적극적인 대답을 기대한 건 아니라 하더라도요. 그런데 분명 먼저 식사 한 번 하자 해놓고 상대방의 저런 대답에 대해 "아니 저는 그냥 의례적으로 한 말이고 식사할 의사도 시간도 없는데요. 여튼 감사합니다" 라는 식으로 대꾸한다면, 대화의 통상적인 범주를 벗어난 사람은 오히려 최초 발화자가 됩니다. 댓글의 반응이 점차적으로 냉정해지는 것은 그러한 감정적 흐름이 아닐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댓글에 쓰여진 문장들을 볼 때, 글쓴이가 글을 꽤 잘 쓰는 분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동성애에 관한 원글보다 훨씬요. 오히려 힘을 빼고 상대방에 대한 명확한 "전달"의 의도로 글을 쓰실 때 더 이해하기 쉽고, 문장의 리듬도 경쾌하게 읽힙니다. 사실 긴 글 역시 전달과 소통을 위한 다소 상세한 발화에 불과하다고 본다면, 전달수단으로서의 효율성과 상대에 대한 배려를 생각하며 글을 써야 한다는 게 결코 공격적인 피드백이라거나 또다른 위험한 신화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그걸 포기한다면 자신의 글에 대해 소통과 이해 수단으로서의 기능 역시 포기하고 자기만족 수단으로 남겨야겠죠. 끝으로 제가 글을 쓸 때 수칙으로 삼는 한 가지는, 문단의 첫 문장, 최소한 글의 첫 문장은 무조건 간결해야 한다는 겁니다. 참고할지 말지는 글쓴분의 자유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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