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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7/04/28 01:12:43
Name 곰돌이우유
Subject [일반] 나는 왜 취미가 없을까(2)
https://cdn.pgr21.com/pb/pb.php?id=freedom&no=71497
지난 4월 19일에 '나는 왜 취미가 없을까'라는 제목으로 글쓴적이 있어요.

지난 글의 요지는,
1) 취미란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행하게 되고 마냥 즐거운 것'이다.
2) 나에게 취미란 위와 같이 정의되며, 그러한 기준으로 볼 때 나에게 취미란 없다. 모두 일일뿐이다.
였어요.

위와 같은 생각을 시작한건 2월 말 즈음이었고,취미없이 살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래서 저는 3월부터 최근까지 다음과 같은 실험을 시작했답니다.

1) 지금까지 행하던, 습관적으로 하던 모든 일들을(모든게 일이기때문에) 잊어버리거나 STOP한다.
- 컴퓨터와 핸드폰을 초기화해본다.
- 알람을 없앤다.
- 독서를 하지 않는다.
- 게임도 안한다.
- 운동도 안한다
- 모임도 안간다
- 등등
2) 자연스럽고 즐겁게 행해지는 것들이 생길때까지 나를 방치한다.  
- 아침에 눈을뜨면 그냥 있는다. (어쩔수 없이 일은 가지만)
- 지하철에서 그냥 있는다. 뭔가 하고싶을때까지 기다린다.
- 집에서 그냥 앉아있는다. 뭔가 하고싶을때까지 기다린다.
- 핸드폰을 켜되 하고싶은 어플이 생길때가지 기다린다.
- 등등

===================

한 달간 위와 같이 생활했을 때에 제게 주어진 결과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1) 운동 안하고 식생활 엉망으로 무기력 및 건강악화
2) 게임만 하거나 게임TV만 봄
3) 무의미하게 술을 먹음
4) 계획없이 돈을 씀
5) 가끔 폭식도 하거나 굶거나
6) 핸드폰 게임하느라 맨날 늦게 잠
7) 지각하기 직전까지 누워있다가 일하러 감
8) 그동안 활동하던 모임이나 활동 등에 극도로 수동적, 혹은 미참석


내가 원했던 것은 자연스럽고 즐겁게 행하게 되는 취미가 생기는 것이었는데, 결과는 무기력하고 빨리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이었어요. 미래가 없고 현실도 피폐해진 삶을 살고 있더군요. 불과 한달만에 말이죠. 곰곰이 생각해 보았어요.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인가. 그래서 pgr에 글도 써보고 주위 사람들에게 조언도 얻을 수 있었어요. '더 다양한 경험을 해 보아야 한다', '목적이 있어야 취미냐?', '재미있으면 취미다', '감정을 느끼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등등이요.

그중 제게 가장 큰 영감을 준 답변은 바로 이거에요. '취미의 정의가 잘못되었다'라는 말이죠. 제가 기존에 정의했던 취미가 너무 이상적이라는거에요. 어떻게 즐거움만 있을 수 있냔 말이죠. 예를들어 따뜻함은 차가움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느낌이고 밝음은 어두움이 있어야 느낄 수 있어요. 그러므로 즐거움 또한 고통 혹은 즐겁지 않은 감정의 반대급부로서 존재하지 홀로 존재할 수 있다는 이야기에요.

그렇게 되면 취미는 두 가지의 종류가 생기더라구요. 단순히 즐겁기만한 취미와, 즐겁기도하지만 즐겁지도 않음이 동시에 존재하는 취미 말이죠. 단순히 즐겁기만한(한 방향으로만 흐르는)취미는 내가 한 달 동안 경험했던 게임, 술과 같은 끝이 보이는, 혹은 죽음에 이르는 취미이고, 반대급부가 존재하는 취미는 내가 기존에 행하던(혹은 취미라고 생각하던)것들이더라구요. 책읽기를 하며 즐거움도 느끼지만 때로는 활자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아 고통스러울 때도 있고, 달리기를 하러갈 때에 귀찮기도 하지만 막상 달리기를 하면 오히려 상쾌하기도 했구요. 이렇게 생각하면 방을 치우는 것도 취미가 될 수 있겠더라구요. 치우려고 시작할때의 마음은 귀찬지만 막상 치우는 동안, 그리고 다 치웠을때의 뿌듯함은 제게 즐거움을 줘요.

요약하면 다음과 같아요. 취미는 두 가지가 있다. 지속가능한 취미와, 죽음에 이르는 취미. 지속가능한 취미는 쾌와 불쾌가 동시에 존재하지만 죽음에 이르는 취미는 쾌만이 존재한다.    
그런데 저는 죽음에 이르는 일방적인 취미만을 취미로 여겼던 것 같아요. 그러나 마음속으로는으로 게임, 술먹는걸 취미라고 인정하진 않았던 것이죠. 앞으론 죽음에 이르는 취미도 가끔 즐기고 보통은 지속가능한 취미도 많이 즐기고 싶어요.

결론이 좀 이상해보이지만? 이 생각을 당분간 밀고 나아가 볼게요. 그러다 또 엎어지면 그때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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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ovelyHye
17/04/28 02:13
수정 아이콘
게임이 단순히 즐겁기만 하다니 능력자시군요.
전 스트레스 풀려고 게임 켰다가 스트레스 더 받는 경우도 종종 있는지라 부럽습니다.
17/04/28 07:34
수정 아이콘
불교 수행을 하시고 계시네요
거기서 직장도 때려치우시면 출가입니다.
곰돌이우유
17/04/28 17:59
수정 아이콘
저 스스로는 실험이라 표현하지만 수행으로 보이기도 하는군요.
17/04/28 18:19
수정 아이콘
석가모니가 한것도 다른사람들이 살기 힘든데 어떡해야되냐고하니까 이것저것 실험해본겁니다
굶어봤다가 고행해봤다가 심리공간 조작 등 여러가지 해본거지요
상계동 신선
17/04/28 07:50
수정 아이콘
제 경우, 예전에는 뭔가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어야 취미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최소 지출로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돈이 너무 든다든지 즐겁지 않은 기분이 들면 거기서 스탑)' 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취미활동이 즐겁지 않은 기분이 들어도 계속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는데 지금은 안땡기면 안하고 땡기면 하니 좀 편해지네요.
몰랑이
17/04/28 09:48
수정 아이콘
닉네임이랑 댓글의 조화다 오묘하네요 크크
stowaway
17/04/28 10:07
수정 아이콘
좀 더 바빠지시면 살기위해 취미를 찾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주변을 보면 바쁠실수록 취미활동 들을 전투적으로 하시더라고요.
곰돌이우유
17/04/28 18:04
수정 아이콘
그래서 다시 바빠지려 노력하고 있답니다
피아노
17/04/28 11:16
수정 아이콘
제가 생각하는 [취미의 조건]
1. 생존을 위한 경제활동 등의 억지로 해야하는 모든 시간 소비 활동을 제외한, 내가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모든 시간 소비 행위를 전제로 한다.
2. 그 행위의 반복이 나와 내 가족, 내 주변 등 사회적 피해를 주지 않는다.(건강을 잃는 행위, 경제적 빈곤에 빠질 고위험 행위 등 신체적, 정신적 손해를 모두 포함)

[좋은 취미]의 조건은 옵션이 되는데 제 기준에서
1. 위에 나열한 취미의 조건을 만족하며, 행위 반복의 만족도가 매우 높고 쉽게 질리지 않아 장기간(길면 길수록 좋음) 즐길 수 있다.
2. 건강, 부수입 등 나의 수명 연장에 도움이 된다.
3. 오랜 시간을 투자했을 때 실력 성장의 가능성이 있고 그 한계치가 매우 높다.
4. 행위 숙련도가 올라갔을 때, 타인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가능성이 있다.

이정도 느낌이네요. 조건을 더 만들려면 더 만들수 있고, 관점을 다르게 조건을 쓰려면 또 쓸 수 있겠습니다만..

[취미에대한 인생 전략]이라면 본문에 말씀하신 것처럼 항상 만족감을 주는 취미를 찾기 힘들고, 극도의 만족감을 주는 취미가 고통을 수반하기도 하고 각잡고 생각하면 나름 복잡한 문제라고 봅니다. 저는 위의 조건을 만족하는 여러 경험들을 해보고 취미의 후보군을 형성한 뒤 병렬 프로세스로 즐기는 전략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본문처럼 아무것도 안하면서 내 순수한 열정을 찾아보는 행위도 매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곰돌이우유
17/04/28 18:06
수정 아이콘
답변 감사드립니다.
엘룬연금술사
17/04/28 14:07
수정 아이콘
저는 제가 언제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가에 대해 자주 고민해왔는데, 조용한 환경, 잔잔한 음악, 흥미로운 읽을거리, 시원한 음료가 갖춰지면 몇시간이고 행복하더군요. 그래서 언젠가부터 누군가 제게 "취미가 뭐냐?"고 물으면 집에서 음악 틀어놓고 웹질하기라고 답합니다. 사실, 여전히 야구장도 자주 가고 극장도 자주 가고, 맛집도 찾아다니고 하긴 하는데... 그보다 집에서 혼자 음악 틀어놓고 웹질하는게 훨씬 행복하니 그게 제 취미인 것 같아요. 제3자 입장에선 참 재미없는 녀석이죠 흐흐
17/04/29 00:47
수정 아이콘
인간은 본래 연역적으로 사유하는 존재인데 그것을 타인에게 설명하고 납득시키기 위해 귀납적으로 이유를 제시하려 하기 때문에, 원래 자신이 연역적 사유를 통해 느꼈던 것에서 멀어지는 어떤 간극이 생기고 따라서 그것이 자연스러운 나의 것은 아니라고 느낀다는 얘기인 것 같아요.

그래서 그것은 온전한 의미의 나의 취미가 아니라는 얘기인 거죠? 그냥 아무 이유 없이 할 수 있는 것이 취미였으면 좋겠는데, 늘 그것을 하려면 근거를 대야하고 그것을 하는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것이 결국 그것은 취미가 아닌 일과 다를 바 없는 것이 돼버리는 거겠죠.

취미 얘기하는데도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요즘 세대들은 일에 치여서 사는 세대인가보다 싶어서 씁쓸하기도 하네요.

그런데 어쩌면 여기에는 생각해볼 만한 중요한 점이 있기는 해요. 흔히 귀납적 사유는 사후적으로 자신의 직관을 합리적인 지식인 것처럼 가장하는 것으로 기능하거든요. 그것은 분명 거짓이지만 나름의 합리성이 있으므로 효용성이 있다고 생각하죠. 그런데도 여전히 진실과는 거리가 멀고요. 그런데 그 진실이라는 것이 때때로 몹시 괴이하게 느껴져서 당혹스러워지고, 이게 정말 진실이란 말이야? 하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이런 거죠. 우리는 진실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게 없어요. 우리는 진실의 일부분을 포착하기도 하지만 그 전체 그림을 알지 못해요. 그래서 거짓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것에 합리성을 가장한 가치를 부여하는 거죠. 우리는 고대 그리스인처럼 사유하고 싶지만, 그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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