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누군가에게 서운함을 털어놓는 일이 그렇게 힘들다. 그것이 내 가족이든, 연인이든, 친구이든, 직장동료이든 그 누구이든지 간에. 초중고 학창시절, 대학교, 군대, 직장 등을 거치면서 점점 인맥은 넓어지고 내가 아는 사람들의 풀(Pool)은 제법 풍성해지는데 반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지인의 숫자는 점점 줄어드는 느낌이다. 인생을 살아갈수록, 산다는 것은 결국 누군가를 얻는 일이기 보단 점차 누군가를 조금씩 지워가고 잃어가는 일은 아닐까.
감수성이 예민했던 10대 시절, 그리고 매사에 적극적이고 혈기왕성했던 20대 때는 사랑뿐만 아니라 우정도 연애처럼 그렇게 뜨거웠던 것 같다. 한창 다음 한메일이 새롭게 생겨나 이메일에 가입하는 게 유행이던 십대 시절에는 친구들과 종종 재미로 이메일을 주고받기도 했다. 물론 그 대부분의 내용들은 별 쓰잘데기 없는 장난이나 상투적인 농담으로 채워지기 일쑤였지만, 가끔은 짐짓 목소리를 깔고 오글거리지만 진지한 어투로 우정에 관해, 혹은 불안한 현재와 미래에 관해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또 아직은(?) 순수했던 대학시절에는 어느 날 학교 앞 술집에서 술에 만취한 채로 야밤에 남영역에 있는 동기녀석 자취방 앞엘 찾아가 집 앞에서 고래고래 승질을 있는 대로 부리며 그동안 못했던 말들을 털어놓다가 급기야는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다 쭈그려 앉아 엉엉 울며 찌질하게 질질 짜기도 했다. 사내놈이 사내놈 앞에서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진상도 그런 진상이 없었는데 그래도 이제와 떠올려보면 '그때는 나도 참 순수했구나..' 싶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진심으로 친구들을 사랑했다. 그 시절에는 연애만 뜨거웠던 것이 아니라, 친구들과의 의리와 우정도 한겨울밤의 화롯불처럼 훈훈하고 뜨거웠다. 나는 그렇게, 내 친구들이 좋았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각자 군대를 제대한 후 대학을 졸업하고 혹독한 취업시장에 내몰려 각자도생(各自圖生) 하기 바쁜 시기를 거쳐 누군가는 직장인으로서 자리를 잡고 또 누군가는 결혼을 하고 또 누군가는 지방엘 내려가고 또 누군가는 늦은 취업 준비와 이직 등으로 힘들어하는 시기를 거치면서 나는 내 친구에게 이메일은커녕 진지한 카톡이나 문자 한번 진솔하게 보내본 적이 언제인지, 친구 앞에서 서운함을 있는 그대로 토로해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냥 나는 언제부터인가 서운함을 말하지 않는데 익숙해져버렸다. 서운함을 말하지 않는 대신 내가 하는 일은 그 친구와 조금씩 벽을 쌓고 마음의 거리를 두는 일. '나중에 내 결혼식 때 사회도, 축가도, 하객도 없이 나 혼자 덩그러니 사진을 찍을 순 없는 일이니..' 라는 얄팍한 생각에 아예 칼같이 인연을 끊거나 의절을 하거나 하진 않지만 서로 간에 말하기 어려운 사소한 문제나 서운하고 속상한 감정이 들 때마다 딱 그만큼의 '마음의 벽돌'이 그 친구와 나 사이에 생겨나는 것 같다. 아마 이러한 답답함과 외로움은 나뿐만 아니라 내 주변의 많은 이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냥 어느 순간에 나도 모르게, '관계 회복'이라고 이름 붙일만한 그 모든 행위들이 피로하고 부담스럽고, 왠지 모르게 어렵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따지고 보면 주변 지인들과의 관계가 이렇게 변모하게 된 데에는 내 나름의 알량한 자존심과 귀차니즘, 그리고 방구석과 이불 속을 좋아하는 생활패턴 등 여러 가지들이 복잡하게 뒤섞여 작용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서 내게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은, '나에게만 중요한 일일 것 같은 창피함과 두려움'이다. 기실 이런 것들이 나를 가장 작게 만든다. 즉, 내 친한 친구에게 그동안에 말하지 못했던 서운함이나 속상함을 망설임과 고심 끝에 어렵게 어렵게 토로했을 때, 그 진심을 무겁게 이해해주며 공감해주기 보다는 "어? 내가 그랬었나?"라고 가볍게 응답하고 말거나, "에이 뭐 그런 일로 서운해 하고 그러냐~"라며 내 어깨를 툭 치고 넘어갈까봐 나는 그런 게 두렵다. 이렇듯 '나에게만 중요한 일일 것 같은 두려움'은 그대로 한 장 한 장의 벽돌이 되어 어느새 내 주변에 차곡차곡 빼곡히 쌓이고, 어느 순간에는 나 스스로를 사방으로부터 가두게 만들었다.
그러던 최근의 어느 날, 가장 친한 베프인 고등학교 친구 하나에게 그동안 숨겨왔던 그 친구에 대한 서운함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불편함의 요지는 '어느 순간부터 그 친구를 만나도 시시껄렁한 농담 따먹기나 하게 되고, 실제로 털어놓고 싶은 마음 속 고민과 힘든 일들은 한마디도 꺼내지 못한 채 귀가 버스를 타는 일을 반복하게 된 내 모습'이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그 친구를 만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마저 하게 돼버렸다. 이것은 내게 내 자신의 내밀한 성격의 문제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나를 대하는 친구의 태도와도 결부된 문제이기도 했다. 그리고 사실 난 그 친구가 어느 정도 이러한 내 불편한 감정에 대해 감지하고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친구는 전혀 몰랐다는 듯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전혀 의외의 내 얘기에 처음엔 다소 충격을 받은 모양이기는 했으나, 이내 친구는 마음 깊이 미안함을 표해주었다. 더불어 지금 생각해보니 본인 또한 이러이러한 이유로 그런 태도를 보인 것 같다며 나에게 이해를 구함과 동시에 고민을 털어놓을 수 없게 만든 점에 대해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나는 내 마음이 편하자고 친구에게 괜한 충격을 준 것은 아닌가하는 걱정에 미안함과 고마움이 교차했다. 그 고마움은 그날의 대화를, 내 마음 속에서 그 친구를 더 이상 밀어내지 않고 어떻게든 붙잡기 위한 나름의 노력과 몸부림의 일환으로 이해해준 친구의 마음씀씀이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물론 그날 이후로 둘 사이에 눈에 확 띄는 큰 변화가 표면적으로 생긴 건 아니지만, 앞으로 또 속상하고 서운한 일이 생기게 된다면 이전보다는 조금 더 편안하고 약간은 더 자유롭게 서로에게 털어놓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게 된 점은 다행스럽다. 나처럼 마음의 빗장을 꽁꽁 닫고 점차 남들 모르게 투명한 마음의 벽돌을 하나둘 쌓아가는 이들의 행위에는 반대로 그 누군가가 그 벽을 과감히 허물고 먼저 손을 내밀어주길 바라는 간절함이 담겨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내게 필요한 건, 수동적으로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기 이전에 그들에게 먼저 손 내밀고 '서운함을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아닐까. 나는 이제라도 조금씩 그렇게 연습을 해보고싶다. 그래서 그룹 자두는 그렇게도 열심히 '대화가 필요해'라고 노래를 불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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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상담. 카운셀링을 하던 중에 상담이 맘에 들지 않아 한 며칠간은 끙끙 앓았던 적이 있습니다. 상담은 특성상 고민 털어놓는 곳인데, 고민이 상담이 도움이 안되요 이니 아예 말 할 수가 없었죠. 오늘 어쩌다 어렵게 얘기를 꺼내보았는데, 뭐 제 생각을 온전히 다 전달하지도 못했고 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관계가 나아졌습니다. 속이 후련함은 덤이구요. 참고로 상담 선생님도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서 안그래도 말을 하려고 생각 하셨다는 군요. 사람 느끼는건 다 똑같은 것 같습니다. 다만 표현하느냐 마냐의 차이일뿐. 먼저 오히려 맘에 안든다고 말해줘서 고맙다고 하시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