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같이 마주치는 아침 햇살따위를 소중하게 여기라고 해도, 당연히 찾아올 내일이 언젠가 없어질 지도 모른다고 해도 우리는 그것을 제대로 인지할 수도 , 이해할 수도 없다. 만약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이렇게 멍청하게 시간을 보낼 일 따위는 없을지도 모른다. 정말로 내게 중요한 것을 찾기 위해 발버둥 치는 매일과 어떤 것이 내게 진정으로 의미가 없는 것인지 찾고 또 찾는 일들이 반복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지난 기억은 미화되어 추억이란 이름으로 남고, 우리는 어제를 잊고, 과거는 달큰한 추억으로 보관한다. 덕분에 오늘이라는 날은 어제와 같은 습관으로 찾아온다. 아주 익숙한 얼굴의 손님이다.
하지만 추억이 되고 나서도 우리의 머릿속에 생긴 폴더는 끊임없이 작업을 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뇌는 광디스크나 하드디스크와는 구조가 다른지, 지나간 기억중에는 지워지는 것들이 있고 남겨둔 추억도 보관일자와 상관없이 점점 상해간다. 이것은 '망각'이라는 축복어린 이름으로 불린다고 한다. 달큰한 맛으로 변화한 추억도 언젠가는 이 빠진 퍼즐처럼 군데군데 숨풍숨풍 구멍이 나는 것이다. 그 회색의 빈 자리는 어느새 내가 가진 또 다른 기억의 이미지들이 밀고 들어와 뒤죽박죽이 되고 만다. 그래, 문제는 매일같이 기억을 머리속에 집어넣어야 한다는 점이다. 추억이 버틸 공간 따위는 별로 없다. 특히 젊은 날에는. 젊은날은 한껏 써도 모자라기만한데, 어쩐지 쓸데없이 길어서 수많은 것들을 꾸겨 넣어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빨리간다는건, 조금씩 매일을 관성화 시켜가며 머리속에 넣을 거리를 줄여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추억으로 만들일이 좀 줄어든다면, 그 기억들의 풍화가 조금 느려질까? 그건 모르겠지만, 아마 조금 더 감상적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만약 추억이 될 만한 기억들에 대해 그 기억을 증명해 줄 사진자료나 문서자료들이 없다면, 그러니까 증거가 없다면 그 추억이 오래 오래 삭혀진 뒤에 우리는 문득 그 사실을 의심할지도 모른다. 어느날 갑자기 낡은 그물망마냥 헤져버린 추억이 잠 안오는 밤에 떠오르면 그는 깨닫는다. "네 목소리가 기억이 나지 않아." 처음에 떠올렸던 기억이나 말투가 다른 누군가와 섞이기 시작한다. 그때의 상황들이 어렴풋하게 희미한 잔상과, 중간중간 인상깊었던 모습 몇 가지만 남으며 "어딘가에서 본 듯한" 그림과 엎치락뒤치락하며 헝클어진다. 이제는 그게 진짜였는지 그렇지 않았는지, 정말로 있었던 이야기인지도 모르게 될 지도 모른다. 물론 아직은 그것이 모두 있었던 일이라고 믿고있다. 그렇다. 추억은 이제 믿음의 영역으로 들어서 버렸다. 너랑 나눈 데이트 영수증이라도 없는 이상, 이제는 이게 거짓인지 참인지 알 수도 없게 되는 때가 오고야 말았다. 올 줄 몰랐던 그 날이다. 종말은 정말로 그들의 확신처럼 뜬금없이 찾아왔다. 아니, 사실은 뜬금없이 찾아온게 아니라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종말이 이어져 오다가 드디어 평화의 종전을 맞이할 날이 온 것일수도 있겠다.
때때로 이런 사람의 기억을 관찰하노라면 놀람을 감출 수 없다. 분명 헤어짐의 시점에서 우리는, 아니 적어도 나는 영원히 그 기억을 잊지 못하리라고. 이 입안을 가득 채우고도 비져나올 쓴 맛을, 가슴 한 가운데를 난도질 당한 것 같은 화끈거림을, 등골에 서리가 내린 듯 허전하게 식어버린 스스로를 잊지 못하리라고 괴로워했다. 그러나 그 괴로움은 이내 좋은 기억들이 자리를 잡고, 그 좋은 기억들 위에 또 다른 사람들의 기억들이 덧씌워지고, 나도 모르게 스쳐 지나가는 과거의 흔적들 사이로 새 인연의 길을 닦는다. 다를 것 없이 웃고, 영화보고 밥먹고 술마시는 닮은 꼴들의 나날들이 새롭게 즐거우면서도 지나고나면 그게 그것처럼 남겨져있다. 죄다 거기서 거기다. 그렇게 또 추억이 쌓이고, 점점 오래된 추억이 파편화된 기억으로 풍화되어간다. 난 정말 너를 사랑했었는가? 이제는 아무런 울림도 없다. 내 이야기가 아닌 것 처럼.
추억이 되어 액자에 걸린 너는 언제까지고 살아있을 줄 알았다. 나긋나긋 차분했던 말투도, 입을 가리고 웃던 습관도, 얇은 머리카락에 쉽게 배였던 나의 체취도. 그런데 이제는 그런 것들이 진짜였는지, 가짜였는지, 혹은 이게 너였는지, 아닌지도 헷갈린다. 너와 남겨둔 것들이 하나도 없어서 그때에 과연 네가 정말 실존하였는지, 혹은 반복된 꿈 속에서 있었던 일인지. 아니면 정말 잘 쓰여진 로맨틱 코메디 소설을 통해 만났었는지 알 수가 없다. 아니다. 너는 분명히 있었다. 나긋나긋 차분했던 말투도 입을 가리고 웃던 습관도 얇은 머리카락에 쉽게 배였던 나의 체취도 그리고 네 약간 차갑게 식은 손과, 그보다 훨씬 따뜻했던 너의 안이 분명히 있었다. 그렇게 믿고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너는 이미 뒤죽박죽이 되었다. 어쩌면 너는 '네'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오래되어 삭아버린 추억들과 함께 너는 또 다른 사람과 섞여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니 네게 미안했다. 물론 진심으로 미안하다기보단, 보통 이럴때는 미안하게 느끼는 편이 정상적이니까.. 이제 넌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다. 가만, 네 이름은 뭐였더라.. 아, 그래도 아직 이름은 금방 떠오른다. 만약 틀렸다고 해도 너는 그걸 지적할 수 없다. 우리는 남이니까.
그렇기에 네가 정말로 다시 살아있는 표정으로, 너를 풍화되기 이전의 추억으로 남겨두기 위해서 널 다시 만날 수는 없는 일이다. 미화된 이후의 기억이 닳고 닳아 언젠가 정말 그랬었나 싶을 만큼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게 되더라도, 타인이 된 지 오래인 우리는 계속해서 타인으로 있어야만 한다. 그게 우리의 거래였고 그게 우리의 계약이었다. 계약서 없이도 철저하게 지켜질 약속. 그래서 사라지는 기억을 붙잡을 수 없다. 이미 기억속의 너는 네가 아니다. 그러나 나는 네게 미안함을 느껴도 사과하지 않으리라. 이렇게 네가 또 다른 누군가와 합쳐져 소각로의 재처럼 희뿌연 먼지처럼 기억너머로 날아가 버리더라도 그걸 애써 담아두려 하지 않으리라. 타인이란 그런 것임이 분명하니까. 우리는 오랜 시간 후에 웃음으로 어색하게 마주할 이가 아닌, 서로의 삶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 처럼 그런 타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니 네게 사과할 일은 없을것이다. 그러니 너 또한 나를 그렇게 잊어간다면, 비록 그것을 내가 알 수는 없겠지만 나름 우리는 괜찮은 이별을 했노라고 누군가에게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때가 온다면, 너는 정말로 내게서 타인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