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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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픽션의 비속어 기준을 몰라 그냥 xx로 처리했습니다.
3. 술을 마시고 써서 맞춤법은 잘 모르겠네요.
4. 영어로 제목을 지으면 멋있을 거 같았습니다.
"인간은 자기 조상들을 닮은 것보다 자신의 시대를 더욱 닮는다."
- 기 드보르
숙취와 감기에서 가장 빨리 벗어나는 방법은 아마 기상알람 소리일 것이다. 그렇지만 토요일 아침임을 알람 소리로 아는 건 유쾌하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손을 뻗어 휴대폰을 집어 최대한 침대 가장자리로 던졌다. 훌륭한 솜씨였지만 바보 같은 짓이었다. 휴대폰은 갓난아기처럼 계속 울어댔다. 따뜻한 스프와 극세사로 된 이불이 필요했다. 나는 포기하고 샤워와 면도를 하고 직장으로 향했다.
아침에 할 일들을 대충 마치자 그제서야 담배를 피울 기회가 났다. 담배를 한 모금 빨자 머리가 핑핑 도는 것 같았다. 이주임은 오늘따라 기분이 좋아보였다. 어쩌면 나에게도 행운이 따르는 날일 지 모를 일이었다.
"주임님."
"왜 불러?"
"몸이 좋지 않아서 그러는데 잠깐 병원 좀 다녀와도 되겠습니까?"
의외로 주임은 흔쾌히 허락했다. 어쨌든 아르바이트를 오래 하면 이런 일도 생기는 법이다.
병원은 꽤 멀리 떨어져 있었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검정치마의 2집 앨범을 들으며 걸었다. 목가적이고 평화로운 주말이었다. 병원은 2층에 위치해 있었다. 담배를 한 대 더 피우고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접수대에는 2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머리를 묶은 귀여운 여자가 있었다. 나는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주고 기다렸다. 잠시 후 접수대의 여자가 내 이름을 불렀다.
의사는 40세 중반의 혈색이 좋은 남자였다.
"자 볼까요?" 그가 종이 넘어로 나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머리와 목이 아파요. 담배도 못할 정도죠."
그는 노란색 나무 스틱으로 내 입속을 이곳저곳 살펴보더니 말했다.
"며칠은 담배를 피우지 마셔야죠. 인후가 부었군요. 열도 나고. 항생제랑 소염제를 처방해 드릴테니, 주사도 맞고 가세요."
"아 그런데......"
"왜 그러시죠?"
"몸에 기운이 없어서 그러는데 수액도 좀 맞고 갈 수 있을까요?"
"한 시간 정도 시간이 걸립니다."
"좋습니다."
수액의 가격은 내 하루 일당에 맞먹었다. 계산을 하고 접수대 뒤로 돌아가자 환자용 침상이 세 개 있었다. 가운데에는 30대 중반의 남자가 오른팔에 수액을 맞고 있었다. 나는 오른쪽 침대에 누웠다. 접수대에 앉아있던 여자가 내 왼팔에 주사 바늘을 찔러놓고, 뒤쪽에 있는 두꺼운 커튼을 치고 나갔다. 나는 눈을 감으려고 했다.
"한번에 성공하셨네요." 옆에 누워있던 남자가 말했다.
"네?"
"저 멍청한 여자가 제 팔에 세번이나 바늘을 잘못 찔렀어요."
그가 자기 팔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어딜 가나 멍청이들은 있죠. 그렇지만 여기서 일하는 멍청이는 그래도 귀여운데요."
"두 번째까지는 저도 그렇게 생각했죠."
그가 미소를 지었다.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이어폰이 도움이 됐다.
30분 쯤 침대에 누워있으려니 전화가 울렸다. 이주임이었다. 이주임은 나 대신 다른 알바가 일하러 오는 걸로 했으니, 오늘은 쉬는 날로 쳐줄테니 푹 쉬라고 했다. 내가 말을 잘랐다.
"그런데 주임님, 교통비는요?"
"무슨 교통비?"
"여기까지 온 버스비 말입니다."
"아픈데 무슨 일을 한다는 거야? 그냥 푹 쉬고 내일 나와."
머리가 다시 아파오고 있었다. 어쨌든 술을 마시려면 직장을 벗어날 필요가 있었다.
"알겠습니다. 내일 나오겠습니다."
"네가 아프대서 내가 사정 봐주는 거야."
병원을 나오며 처방전을 구겨 던졌다. 다시 종이를 주워 성냥으로 불을 붙여 다시 담배에 불을 붙였다. 긴장을 푸는 데는 도움이 됐다.
가방을 가지러 가게로 다시 돌아갔다. 이 주임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다시 왔네?"
"가방을 놔두고 갔습니다."
"아프면 푹 쉬어야지. 오늘 하는 일도 많을텐데."
"그야 주임님 말씀이 맞겠죠."
"그런데......"
그는 순박해 보이는 눈을 두 번 깜빡였다.
"급한 일 없으면, 식사하고 와야하니까 한 시 반까지만 있어줄래?"
시계를 보니 열 시 반이었다. 나는 그의 낯짝과 내 주먹 중 어느 쪽이 두꺼울 지 잠시 고민했다. 어쨌든 대답은 한 가지였다.
"그럴게요."
한 시 반이 됐다. 아무도 오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내 가방과 담배갑을 집어들었다. 어쨌든 두 가지를 동시에 얻는 건 힘든 일이다. 거리로 나오니 햇볕이 더 뜨거워져 있었다. 아침에 버스비를 공연히 낭비했으니 집까지는 걷기로 했다. 땀이 비오듯 흘렀다. 편의점에 들러 맥주를 한 캔 들고 계산대로 갔다. 40살 쯤 되는 여자가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카드로 계산해 주세요."
"그런데 키가 굉장히 크시네요?" 그녀가 말했다.
"그려려던 의도는 없었습니다."
편의점을 나와 맥주를 마시며 걸었다. 맥주로는 식힐 수 없는 더위였다.
버스를 타려고 하는데 친구 주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가 받자마자 그는 다짜고짜 말했다.
"나 여자친구 생겼다."
"뭐? 누구?"
"내가 저번에 카톡한다던 여자 있잖아."
"여름이 오나봐."
"야, 내가 여자친구 생겼다고."
그는 아직 말을 몇마디밖에 배우지 못한 앵무새처럼 굴었다.
"어쩌라고."
"나 여자친구 생겼다니깐!"
"어쩌라고 씨x!"
나는 전화를 끊었다. 통화를 다시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그가 잘못한 건 없었다. 다시 주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 전화를 왜 갑자기 끊냐?" 나는 다시 전화를 끊었다.
집 앞 탐앤탐스에 들어가 아이스커피를 주문했다. 흡연실로 들어가 담배를 꺼내 물고 인혜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는 곧이어 음성메시지함으로 넘어갔다. 나는 탐앤탐스에서 기다리겠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마저 담배를 빨았다.
인혜가 오기까지는 90분이 걸렸다. 연두색 카라 티셔츠와 하늘색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구하기도 힘든 컬러야. 나는 인혜가 티셔츠를 어디서 샀을 지 궁금했다. 그녀는 며칠 새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
"무슨 일로 불렀어?" 그녀가 물었다.
"미안해."
"미안......하다니?"
"그 동안 페미니즘을 공부했거든."
그녀의 미간이 살짝 올라갔다.
"어쨌든 술이나 마시러 가자." 나는 여자 표정 같은 건 잘 읽을 줄 모른다.
"공부해야 돼."
"할 말이 있어서 그래." 나는 주형을 떠올렸다.
"나는 안 마실거야."
"나 혼자 마실게." 우리는 가게를 나섰다. 해가 지려면 아직 두 시간은 남았다.
반쯤 빈 막걸리와 전을 앞에 두고 나는 인혜가 우는 모습을 지켜봤다. 혼자 있을 때보다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내 탓이 아냐." 내가 무슨 말을 하는 지도 모르는 채 말했다.
"그건 알지만......"
나는 그녀의 대답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래도. 막 화가 나."
"그럼 화를 내면 되잖아."
"화를 내고 싶다는 게 아니란 말야."
인혜가 막걸리를 마시면서 말했다. 나는 담배와 술잔 중에서 간신히 술잔을 손에 쥐는 데 성공했다.
"어쨌든 그만 마셔. 공부해야 한다며"
"조금만 더 있으면 안 돼?"
"안 돼. 나도 내일 출근해야 한다고.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
그녀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만 원만 내고 가. 술이 남았으니까 내가 마저 먹고 계산하고 갈게. 아, 바래다 줄까?"
"별로 안 마셨어."
"알았어." 나는 살짝 미소지었다.
인혜가 나가고 나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출근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남은 술을 천천히 마셨다. 만 팔천원이 나왔다.
초저녁부터 건대입구는 사람들로 붐볐다. 혼자 있고 싶지 않았다. 아예 멀쩡한 정신으로 있거나, 완전히 취하고 싶었다. 나는 친구 한 명을 불러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자정이 넘어 친구와 헤어졌다.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고 집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얼마쯤 걸어가다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담배가 없었다. 욕지거리가 나왔다. 걸었던 길을 다시 되돌아갔다.
"꺅!"
편의점 앞에 거의 다달았을 무렵 비명 소리가 들렸다. 편의점 앞 공중전화였다. 술에 취한 덩치 큰 남자 한 명이 여자 머리채를 잡고 때리고 있었다. 여자 얼굴에는 멍이 여러 군데 나 있었다.
"여기서 이러시면 어떡합니까?" 내가 정중하게 물었다.
"씨x 내 여자친구인데 니가 무슨 상관이야?" 덩치의 굵은 팔뚝 위로 그림이 보였지만 그는 미술을 전공한 것 같진 않았다.
"괜찮으세요?" 나는 여자에게 물었다.
"네...... 괜찮아요. 제발 그냥 가세요." 여자가 울면서 말했다.
"개xx야 그냥 가라고." 덩치가 말했다.
"미친놈. 너한테 짖으라고 한적 없는데." 술이다. 술이 나를 망쳤다.
"죽고 싶어 환장했냐? 너 따라와."
덩치는 위협적으로 공중전화 위에 있는 포카리스웨트 캔을 집어들었다. 누군가 덩치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생각을 하니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제발 그냥 가세요." 여자가 울면서 말했다. 무언가 굉장히 슬픈 일이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포카리스웨트 캔과 어울리는 물건은 찾을 수 없었다.
"정말 그냥 가도 괜찮겠어요?"
"예, 전 괜찮으니까 제발 가세요."
"너 빨리 안 꺼지면 진짜 죽는다." 인내를 모르는 남자였다.
"개xx야 나 안 취했을 때 보자."
마지막으로 내가 말했다. 나는 취하지 않고는 건대입구를 돌아다니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그들을 지나쳐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편의점 알바는 20대 중반쯤 되어보이는 남자였다. 나는 혹시 놓고 간 담배가 없는지 물었다. 알바는 보지 못했다고 했다. 나는 혹시 몰라 진열대 바닥까지 꼼꼼히 뒤졌다. 담배는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편의점을 나왔다. 남녀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담배를 영영 찾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인혜도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 나는 생각했다. 주형이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낮동안 나를 괴롭히던 더운 기운은 사라지고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