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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3/05/29 10:59:55 |
Name |
공룡 |
Subject |
[연재] 최면을 걸어요 (1) |
1. 새로운 인생
정민은 눈을 떴다. 통증이 몰려올 줄 알았는데, 왠지 상쾌했다.
‘아직 죽지 않았나?’
사방은 어두웠다. 정민은 문득 자신의 팔이 떨어져 나갔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다시 그쪽을 보았다. 칠흑 같은 어둠 속이어서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저 어둠이 있는 곳에 자신의 팔이 외로이 떨어져 있을 것이다. 무심코 머리를 쓸어 올리던 정민은 갑자기 “어?”하는 소리를 냈다. 무의식중에 머리를 쓸어 올리려 했지만 이미 떨어져나간 팔이 정민의 머리를 쓸어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그의 머리는 차분하게 쓸어 올려졌다. 놀라서 앞으로 가져간 손은 분명 자신의 손이었다. 정민은 두 손 모두 자신의 팔에 멀쩡하게 붙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럼 꿈을 꾸었던 것일까? 그냥 벽에 부딪힌 것이고 잠시 정신을 잃은 것일까?
정민은 상체를 일으켜 보았다. 멀쩡했다. 다친 곳이 없다. 하지만 왠지 이상했다. 정민은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문득 하늘을 보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달! 달이 없었다. 그저 어둠 뿐이다.
“여어, 드디어 깨어났군!”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정민은 깜짝 놀라 뒤돌아보았고, 어둠이 네모난 빛으로 갈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문이었고, 누군가가 문을 통해 정민이 있는 곳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누구세요?”
“음? 자네 설마 전혀 기억이 안 나는 것인가?”
“예?”
“흠, 역시나 충격이 컸나 보군.”
목소리의 주인공은 몇 걸음 걷더니 무언가를 딸깍거렸고, 그러자 주위는 환해졌다.
“아!”
정민은 달이 보이지 않은 이유를 알게 되었다. 정민이 있던 곳은 침실이었다. 형광등 빛에 적응을 하면서 긴장이 풀리자 그제서야 후각을 자극하는 포르말린 냄새가 느껴졌다. 그리고 앞에 있는 중년의 남자는 하얀 가운을 입고 있다. 베이지 색의 깨끗한 벽과 옷걸이처럼 생긴 링거걸이, 자신이 입고 있는 줄무늬 옷...... 분명 병원이다.
“자네, 무려 한 달 동안이나 정신을 잃고 있었어! 모두들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살았지. 그러더니 금세 상처를 회복하더군. 그래 이제 좀 나은가? 사고가 난 후 누가 지갑을 훔쳐갔는지 자네에 관련된 신분증이 하나도 없어서 참 답답했다네. 흠, 괜찮다면 지금 간호사를 불러서 몇 가지 검사를 하고 싶네만?”
“그...그러세요.”
정민은 갑자기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역시 후유증이 있는 것인가? 간호사가 들어왔고, 정민은 인사를 위해 고개를 돌렸다.
“아!”
“안녕하세요, 깨어난 것 축하드려요.”
“네? 네! 네!”
정민은 멍하게 대답했다. 정말 아름다운 간호사다. 어떻게 저렇게 예쁜 여자가 있을 수 있을까?
“자 그럼 몇 가지 검사를 하겠습니다. 괜찮겠죠?”
붉어진 정민의 얼굴을 보며 간호사가 생긋 웃었다.
“아참, 제 소개를 안했군요. 전 이소연이에요. 정신을 잃고 계신 동안 계속 간호해 왔죠.”
“예, 전 정민, 김정민이라고 합니다.”
더욱 붉어진 얼굴의 정민이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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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해......”
동수는 연신 고개를 저었다. 도경과 정석은 그런 동수를 보며 묵묵히 술잔을 비울 뿐이었다.
“너희는 이상하지 않아? 정민이가 갑자기 사라진 것 말이야.”
“그 이야기는 그만 해라. 요즘 나쁜 *끼들이 얼마나 많은데! 보나마나 그런 놈들이 치어놓고는 어디다 던져버렸겠지. *새*들!”
도경은 뭐 씹은 표정을 하며 직접 술잔에 술을 따라 벌컥벌컥 마셨다. 지금 그들은 오랜만에 만나 정민의 묘지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수사는 종결되었고, 시체를 찾지 못했다는 이유로 미련을 갖고 있었던 가족이나 지인들도 이제는 포기한 상태였다. 하지만 동수처럼 여전히 그를 잊지 못하고 어딘가 살아있을 거라는 생각을 가진 이들도 많았다.
“거기 일은 재미있어요?”
화재를 돌리기 위해 정석이 동수의 직장을 묻는다. 동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그는 여러 가지 도전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성공할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도경이 너 곧 군대 갈 거라며?”
이번에는 도경에 대한 동수의 질문이었다. 도경은 슬며시 웃으며 직접 자신의 잔에 술을 따랐다.
“응, 이제 나이도 있고 하니까. 이대로 계속 있다가 스타라는 게임의 인기가 사라지면 이것도 저것도 아니게 될 거 같아. 나도 너처럼 새로운 길을 개척해 봐야지.”
“그래도 좀 기다려보지 그래? 최근 뉴스 보니까 미국 쪽에서 혁신적인 발명들이 몇 있었나봐. 거의 구현이 어렵다고 말해졌던 가상현실, 가상시뮬레이션등의 기법에 혁명이 일어날 거라고 하던데? 그런 것이라면 우리 게이머들도 거기서 할 일이 있을 거야.”
동수의 말에 도경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게 우리나라까지 오는데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데 바라만 보고 있을 수는 없지. 아무튼 난 갈 거야.”
도경은 술잔을 들이키고는 화장실을 가기 위해 일어났다. 도경이 나가자 정석은 동수에게 잔을 권하며 말을 꺼냈다.
“도경이 형도 그동안 괴로웠나 봐요. 같이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그랬으니까...... 원래 군대 갈 생각이 조금은 있었는데, 정민이 형 때문에 확실히 결심을 굳힌 것 같아요.”
“음......”
동수는 정석과 건배를 하고는 술잔을 입속에 털어 넣었다.
‘정민이 녀석 정말 죽은 걸까? 그런데 왜 난 녀석이 죽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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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의 상태는 나날이 호전되어 갔다. 그리고 부모님과도 만날 수 있었다. 부모님은 정민이 죽은 줄 알았다며 눈물을 보이셨고, 친했던 동수, 도경 등도 소식을 듣고 매일처럼 찾아왔다. 하지만 그들이 자주 찾아오는 것은 정민을 담당한 간호사 이소연을 보기 위해서인 듯해서 정민은 여간 걸리는 것이 아니었다. 정민은 어느 사이에 그 간호사에게 사랑의 감정을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담당의사가 처음 보는 남자를 몇 명 데려왔다. 그것도 외국인이었다. 정민은 그들이 누구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이 입은 까만 티에는 블리자드라는 영문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던 것이다. 그 중 한 사람은 통역사인지 정민에게 이야기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블리자드사에서 왔습니다. 이번에 저희가 극비리에 스타크래프트 2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그리 달라진 것은 없지만 훨씬 섬세해진 그래픽과 3D 영상으로 매니아들을 사로잡을 계획인데요, 그러기 위해서는 밸런싱과 인터페이스등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프로게이머들의 테스트가 필요합니다. 쉬시는 동안 저희와 이 일을 해주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다른 게이머들 몇 명도 섭외한 상태입니다.”
정민은 쾌히 승낙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의 후속편을 가장 먼저 해볼 수 있다는 점은 매우 매력적인 일이었다. 노트북이 켜졌고, 정민은 인터페이스를 익히기 시작했다. 단축키도 거의 같았고, 유닛구성도 비슷했지만, 그래픽은 2D가 아닌 3D라서 정말 실감이 났다. 시나리오 모드가 한두 가지 뿐이어서 아쉬웠지만, 사람들에게 너무나 익숙한 게임인지라 블리자드에서 생략한 듯 했다. 곧바로 대전이 치러졌는데, 같이 왔던 외국인들이 외국 쪽의 게이머인 모양이었다. 굉장한 실력이다. 하지만 정민의 적수가 되지는 못했다. 원래 정민은 외국 선수들에게 굉장히 강했었다. 더구나 그들의 전략이라는 것이 너무 정공법만 고집했기에, 정민으로서는 워밍업을 하듯 간단히 그들 모두를 이길 수 있었다. 블리자드 관계자들은 감탄의 눈빛을 보냈다.
“역시 대단한 실력이로군요! 한 번도 겨뤄보지 않은 게이머들일 텐데 이렇게 간단히......”
“뭘요, 그런데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다는데 감각이 여전히 좋네요. 전 손이 굳어서 잘 안 될 줄 알았는데요.”
그랬다. 아무리 프로게이머라고 해도 일주일 정도만 연습을 안 하면 바로 표가 난다. 그런데 한 달 이상을 잠들어 있었다는 정민은 멀쩡할 뿐만 아니라 전보다 훨씬 감각적이 된 기분이었다.
“저기..... 저희가 제안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갑자기 진지해진 블리자드 관계자의 말에 정민은 어리둥절해졌다.“
“뭔데요?”
“저희가 당신의 스폰서가 되고 싶습니다. 당신에 대해서는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 슬럼프가 있긴 했지만 요즘 다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더군요. 스타크래프트2 홍보광고를 3회 찍는다는 조건을 포함해서 연간 20만불로 계약을 했으면 합니다만”
꿈같은 소리였다. 20만불이면 2억이 넘는 돈이다. 아무리 요즘 자신이 잘나가고 있다고는 해도 그만큼의 돈을 받는다는 것은 왠지 과한 느낌이었다.
“그...글쎄요. 하지만 저보다 더 나은 게이머들도 많을 텐데......”
“섭외했던 게이머들 모두 여기 있는 게이머들과 테스트를 해봤지만 당신처럼 완벽한 플레이를 펼친 선수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몇몇 게이머들은 이미 다른 곳과 계약이 끝난 상태입니다. 지금으로서 저희들에게 최선의 선택은 당신입니다.”
“... ...”
“죄송합니다. 갑작스러워서 대답하기 곤란하시다면 내일 다시 오지요. 긍정적인 검토를 기다리겠습니다.”
그들을 돌려보내고 나서 정민은 자신이 꿈을 꾸고 있나 볼을 꼬집어보았다. 무릎 위에는 선물이라며 주고 간 최신형 노트북이 스타크래프트2 화면을 보여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꿈은 아니다. 이 노트북만 해도 수백 만원은 할 것이다.
“뭘 그렇게 생각하세요? 와, 정말 예쁜 노트북이네요!”
간호사 소연이 들어오며 말을 건다. 참 친절한 아가씨였다. 이곳 병원이 처음인 초년생이라는데, 정말 싹싹하다. 나이도 정민이랑 같았다. 어느 사이에 많이 친해진 소연과 정민이었기에 정민은 방금 전 블리자드사 직원들과 나눈 이야기를 해줬다. 소연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기뻐했고, 축하한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아직 승낙하지 않았지만 부모님은 물론 다른 동료들도 다들 계약을 하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이제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이유도 생겼다.
“소연씨!”
“예?”
진지하게 바라보는 정민의 눈길이 부담스러운지 소연은 약간 볼을 붉혔다.
“우리...... 친구할래요?”
소연은 긴장했던 얼굴을 풀었다. 그리고 반대로 정민의 얼굴이 급격하게 붉어지기 시작했다.
“에이, 뭐예요? 우린 벌써 친구잖아요 호호!”
“아니...... 그런 친구 말구요.”
“......”
정민은 소연을 올려다볼 자신이 없었다. 처음으로 해본 사랑고백이었다. 하지만 어설펐다는 것은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소연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가슴은 방망이질을 쳐댔다. 역시 힘든 것인가? 침묵이 계속되자 정민은 씁쓸한 미소를 삼키며 고개를 들어 소연을 보며 말했다.
“하하, 역시 어렵겠죠? 그냥 흘려 들.......”
정민은 나머지 말을 목구멍 속으로 삼켰다. 소연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기쁜 얼굴로.
“나..... 나만 그런 감정을 가진 줄 알았어요. 그래서 정민씨가 퇴원하면 정말 슬플 것 같았는데.......”
눈물까지 보이는 소연의 모습에 정민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오늘처럼 행복한 날은 다시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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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뒤 정민은 다시 무대에 설 수 있었다. 그것도 스타크래프트2의 게이머로서 본선에 오른 상태였다. 정민은 승승장구 했고, 그 누구보다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다. 사람들은 모두 재기한 김정민에게 열렬한 응원을 해줬고, 블리자드의 직원들은 날이면 날마다 찾아와 그를 격려했다. 하지만 정민에겐 그보다 더 기쁜 일이 있었다. 그의 경기가 있을 때마다 꽃을 들고 찾아오는 아름다운 여성 때문이었다. 일부러 비번을 만들어 정민의 경기가 있을 때마다 찾아와서 앞자리에 앉아 그를 응원하는 여성... 소연이었다. 그녀가 보고 있는데 진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아니 절대 질 수가 없었다. 그녀의 환한 미소를 보기 위해서라면 정민은 그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결심은 항상 승리로 돌아왔고 경기가 끝나면 소연은 정민에게 그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달려오곤 했다.
“시간이 이대로 멈춰버렸으면......”
소연을 안으며 정민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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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살이로군요^^
이 글을 본 김정민 선수가 저 잡으러 오는 건 아닐지^^;;
이 글의 무단 퍼감을 금합니다. 도장 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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