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은.>의 경우 말 그대로 뜬금없이 날린 홈런에 가까운 느낌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포스트 하야오에서 흥행 성적이란 측면은 호소다 마모루가 조금 더 앞선 측면이 있었거든요. 그걸 한방에 뒤엎어 버린 작품이 <너의 이름은.>이었습니다.
이 작품의 성공 이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 <날씨의 아이>가 개봉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정식 개봉을 할까, 개봉을 한다고 해도 와이드 개봉을 할까, 란 걱정 내지 의문이 들었는데 일단은 전국적으로 개봉한 모양새더라고요. 아침에 보고 왔습니다.
신카이 마코토의 최고 장점은 역시 작화입니다. 미묘한 색의 변화, 약간은 수채화 같은 느낌의 풍경과 배경. 특히나 이번에는 비가 내리는 도시가 중심이라 이 희미하게 번져나가는 빛의 묘사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솔직히 전작에서도 느꼈는데 인간을 지우거나 아예 먼 화면에 밀어 넣고 배경 중심의 묘사를 보는 게 훨씬 눈이 즐거운 거 같아요.
두 번째 장점은 음악입니다. 이번에도 Radwimps가 참여한 사운드트랙이 좋습니다. 굳이 따지면 전작이었던 <너의 이름은.>의 사운드 트랙을 더 즐겨 들을 것 같긴 하지만 이번 영화에도 꽤 자주 플레이할만한 음악들이 들어 있어요.
문제는 전작의 그림자가 너무 짙게 드리워져 있다는 점이겠죠. 그러니까 전작과 되게 유사한 흐름을 지니고 있어요. 소년이 소녀를 만나고, 재난을 겪고, 이를 초현실적 설정을 통해서 돌파한다. 이 구조에서 중요한 흐름을 따지자면 소년이 소녀를 만나는 지점과 이 모든 고난을 돌파하는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정을 쌓아올린 다음, 터뜨려버리는 구조인 셈이겠죠.
그런데 일단 기초 공사가 너무 비슷해요. 전반부에 깔아놓는 복선이나 장면들이 전작에서 그대로 본 것 같은 기시감이 조금 듭니다. 구도 자체가 유사하다 싶은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문을 들어서는 장면, 이세계로 넘어가는 장면, 낙하 장면 등등등이요.
두 번째는 감정이 정리되지 않았던 점이 있는 것 같은데, 이건 전작 얘기를 조금 더 해야 할 것 같네요.
<너의 이름은.>은 판타지였습니다. 그러니까 현실은 그러했지만, 그러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판타지요. 2011년 지진이라는 재난 앞에서 그랬다면 어땠을까를 그리는 판타지였고, 결국 영화의 주된 감정은 애절함과 그리움이 묻어 나왔습니다. 이 에너지가 동력 삼아서 후반부의 돌파가 그렇게 강렬했던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이 영화의 재난은 중반부까지 임팩트가 작고, 영화의 주된 감정도 조금은 산만합니다. 기본적으로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가 힘을 100% 받는 느낌도 아니고,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조금씩 끼어들면서 쌓아올려야 할 감정이 조금은 부족해요. 덕분에 후반부 돌파의 에너지도 조금은 미묘하게 부족합니다. 결정적으로 모든 에너지를 소모하지 못해서 뚫어내지 못하는 엔딩의 느낌도 듭니다.
자 여기서 조금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도록 하겠습니다.
거대한 재난이 지나갔습니다. 전작은 그 재난이 아예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에 가까운 판타지였습니다. 이번 영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엔딩에서 이야기의 책임은 서로 상충되는 두 대사로 정리됩니다. [너네 탓 아니야], 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 세계를 택했다]라고. 아저씨가 되어버린 어른 세대는 그 탓이 너희가 잘못한 게 아니라고 말하는 것과 주인공의 청소년 세대는 그래도 이 상황을 택했다고 말하는 거죠. 어쩌면 감독은 조금은 다른 뉘앙스의 응원을 하고 싶어 했던 건 아닐까 싶어요. 약간은 순응하고, 약간은 자포자기에 가깝지만, 그래도, 너희들의 잘못은 아니니 여기서 부대끼며 살아가 달라고. 그런 응원을요.
저에게 이 영화가 별로였냐 물으면 그건 아닌 것 같다,라고 대답할 거 같아요. 그런데 만약 이 영화를 보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전작을 보라고 대답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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