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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08 01:08
북벌 이전에 이릉에 방통이나 제갈량 한명이라도 유비 곁에 있을수 있었겠죠. 아니면 형주에 관우 곁에 있었거나.
차이가 없을수도 있지만 삼국 정립의 형태가 바뀔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19/10/08 01:50
방통이 살았다면
가장 높은 확률인 경우의 수는 미방 대신 제갈량이 형주에 남고 관우는 보급에 부족함 없이 북벌을 진행했다... 가 아닐까 하네요. 이거 참 궁금한 가정이긴 하군요...
19/10/08 02:04
방통이 형주로 갔을수도 있습니다.
방통은 형주에서 유명한 가문 출신이고 동오 인사들과도 친교가 있었고 서촉은 양주에 익주에 형주까지 다 몰려있던터라 그걸 관리하고 정리하려면 제갈량이 더 적합했던지라 저는 제갈량 입촉은 당연하고 방통이 살았다면 형주를 관우와 관리 법정이 서촉 전장에서 책사 임무를 수행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19/10/08 01:11
글을 읽다가 든 생각인데 방통이 조조 쪽으로 갔다면 곽가 롤을 잘 할 수 있었을 것도 같네요. 조승상에게 거슬리지 않고 잘 맞았을지는 의문이지만...
19/10/08 01:22
촉빠 입장에서...
방통 36세 법정 45세 제갈량 54세 이 3명이 단명한 것이 너무 아쉽더라고요. 사마의 만큼만 오래살아주면 삼국지가 더 재미있어을것 같아서요.
19/10/08 03:43
방통은 전사지만, 촉나라 관리들은 과로 탓으로 죄다 단명했습니다. 오히려 제갈량 체력이 좋아서 오래 버텼다고 봐야.
사람 갈아서 돌아가는 중소기업 사원들의 비애죠..
19/10/08 09:59
근데 사마의가 그렇게 살면 제갈량은 빨리 죽을 거라는게 연의 정도에 언급이 있어서..
그 시대 사람들도 저렇게 살면 죽어! 라는걸 아는데 제갈량이 몰랐겠나 싶더라구요.
19/10/08 11:01
제갈량 이후로 장완-비의-동윤 라인도 단명하는것 보면... (중간에 암살이 있기는하지만)
제갈량이 결정권자가 너무 혹사 시스템을 만들어 두고 간것이 아닌가 싶기는 합니다;;
19/10/08 10:57
빨리 죽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 평균수가 작살나는 바람에 그렇지, 전사나 병사가 아닌 자연사의 경우 꽤 오래 살았습니다. 75살에 자식을 본 종요라든지...
19/10/08 10:59
그렇게 알고 있기는한데, 영유아 사망률이 높아서 평균수명이 낮은거지...
그 이후로는 지금만큼은 아니어도 오래살았다는 말은 있더라고요. 평균의 함정?
19/10/08 01:39
방통이 아쉬운 순간은 딱 2가지더군요.
관우를 형주에서 컨트롤 할 사람이 없었을 때 그리고 1차북벌에서 방통이든 법정이든 있었다면 그냥 촉빠입장에서 입촉하면서 이릉대전까지 급작스럽게 촉의 핵심들이 우수수 죽어나간게 참 아쉬울따름입니다.
19/10/08 02:35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여기서도 이름이 나오는 노숙.. 이양반은 어릴적 연의 읽었을 때는 호구(?) 비슷한 이미지였는데.. 요즘 삼국지 관련 썰을 정독할때마다 평가가 올라가네요..
19/10/08 07:46
제갈량이 내치를 바탕으로 세력 확장하여 국력을 신장시키는 행정가 스타일이라면, 방통은 외부 확장을 통해 확보한 인력과 물자들로 내치를 안정시키는 전략가 스타일인 것 같아요.
두 사람이 정반대의 성향을 가졌지만 엄청난 시너지를 일으키기 딱 좋은... 방통 : 갈량아 내가 땅따먹기 할테니 보고만 있어 제갈량 : 형 알았으니 너무 무리 말고 살살 좀.. 유비가 방통 말 듣고 성도 공략해서 익주 먹었으면 한중공방전 같은 북벌의 시기도 더 빨라졌을 테고 형주에 방통을 보내 관우와 함께 외형 확장을 통한 국력 강화도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싶죠.
19/10/08 11:04
본문에도 썼지만 성도 급습은 뒤탈이 꽤 있을 수밖에 없는지라... 저는 유비의 선택이 옳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제갈량과 방통에 대한 평가는 저도 완전 동감입니다. 시너지가 아주 좋았을 텐데 말이지요.
19/10/08 09:38
방통과 함께 초장왕의 기세로 양양 먹고 남양 허창으로 진격하는 관우와 제갈량의 보좌를 받으며 유방의 재림인듯 관중으로 진격하는 유비의 모습은 게임속에서만....
19/10/08 10:42
제가 너무 정치에 과몰입했는지.... 방통위를 까는 글인줄 알았네요. 순간 (오독한) 제목과 글쓴이 보고 아니 이분이 이런글을 왜쓰지? 했습니다.
19/10/08 11:42
흔히 왕위 찬탈을 하려고 할 때 부하가 '제발 하늘의 뜻을 받들어 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해주시옵소서 어쩌구저쩌구' 하면 우두머리가 계속 사양하다가 못이기는 척 받아들이듯이, 방통의 계책은 그 자체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것이지만, 일단 극단적인 발언을 해놓음으로써 은근슬쩍 그 다음행보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역할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런 역할을 관장조/ 간손미가 한다면 '야 유비 믿고 있었는데 간손미나 유비나 관장조나 다 똑같은 놈들이었네' 할텐데 굴러들어온 돌이 해주니까 유비 이미지는 안 떨어지면서 실리는 다 챙길 수 있었던거 아닌가 싶기도..
19/10/08 12:37
고패와 양회를 죽이고 유비가 잔치를 열면서 기뻐했고 방통은 이에 처음엔 태클을 걸다가 험악해지자 군신이 같이 잘못했다고 하여 분위기 전환을 했다는 에피소드를 생각해 보면 윗 해석이 타당하다고 봅니다.
19/10/08 12:47
유비가 정말 인물인게 보통 방통같은 인물은 진즉에 뎅겅엔딩인데 그걸 포용하고 시너지를 낼수 있는 군주였다는게..
근데 (성품은 전혀 달랐어도)비슷한 배경에 비슷한 인재활용능력을 가졌던 유방은 성공했으나 유비는 실패한걸 보면 결국 진인사대천명 운칠기삼이 맞는듯..
19/10/08 13:52
갠적으론 유비와 유방의 차이는 조조와 항우의 차이가 아니라 유비와 유방의 출발선 차이라고 봅니다
초한전 당시 유방은 항씨를 제외하면 명실공히 2위권 군웅이었죠. 하지만 유비 앞에는 원소 조조 원술 공손찬 여포 등이 있었고 유표 유언 이각 마등 등에 비해서도 나은 세력을 가진 적이 없었습니다. 삼국지에서 유방과 같은 출발선에 있었던 군웅이라면 그 쬬란 말이죠. 개인적으로 항우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생각도 드는게, 이 사람 죽을 때가 35세였습니다. 유비가 서주에서 자기 허벅지 각선미 보고 탄식하던 게 46세였던 걸 생각하면 너무 일찍 펴서 제대로 군주다운 삶을 배울 기회가 없는 상태에서 군주에 올랐던 게 죄라고 봐야죠.
19/10/08 13:12
유비가 아직 서촉 공략을 한창 하고 있는 중인데 그 사이 조조는 이미 한 발 앞서 옹주 양주 한중을 정리하면서 시간적 여유가 없다고 판단하여 방통이 익주 공략에 있어서 마음이 급해져서 전선 최전선에서 지휘하다 변을 당한게 아닐까 싶네요.
19/10/08 15:19
전에도 비슷한 리플을 달았던 적이 있는데, 제갈량, 법정, 방통이 사마의만큼 살았으면 과연 역사가 바뀌었을까요?
사마의 179년 생 251년 몰 제갈량 181년 생 253년 몰 법정 176년 생 248년 몰 방통 179년 생 251년 몰 적어도 이릉 전투는 없었겠지요. 아니 하다못해 가정에 등산은 안했겠지요!!!
19/10/09 00:48
정말 안타까운 인물입니다.
연의도 좀 더 기이하게 이야기를 꾸몄을 뿐, 오히려 그 재주에 대해서는 엄청난 꾸밈이 있지는 않았을 정도로 실제 실력도 뛰어난 인물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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