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조커> 내용 일부를 암시하는 글입니다.
미국에서 영화 ‘조커’가 연일 화제다. 상영을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표현의 폭력성을 떠나 너무도, 너무도 현실적으로 그려냈기 때문이다. 스크린 속에 갇히지 않고 삶에서 충분히 발견될 수 있는 내러티브. 그 음울한 메시지는 영화가 끝나고도 사람들의 뒤를 쫓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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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생일 겸 모임을 마친 뒤 이야기다. 막차시간에 일단 올라탄 버스가 집 방향과 달라 내리게 된 곳은 약간 낯선 동네였다. 카카오택시를 불러야 하나, 잠시 망설이고 있는데 교차로 건너편에 빈차등을 켜놓고 신호 대기 중인 택시가 한 대 보인다. 금요일 밤의 콜상황을 고려하자면 이 기회를 놓치면 귀가시간은 기약할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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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쫓아가 뒷좌석에 올라타 목적지를 말했다. 끽해야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젊은 기사는 아마도 직진을 고려 중이었던 것 같다. 좌회전을 요구하자 순간적으로 뭔가 구시렁대는 음성을 들은 듯했으나, 서울의 택시기사에게 으레 들을 수 있는 정도의 내용이었겠거니. 생각하며 그저 가방 속 에어팟을 꺼내 귀에 꽂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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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이 기사 약간 이상하다. 거치대에 놓인 휴대전화를 조작하길래 목적지를 입력하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라, 보고 있던 유튜브 화면 속 실시간 채팅에 참여하고 있었다. 채팅 행위는 운전 중에도 계속되었고, 나는 이 사람의 멀티태스킹 능력의 피실험자가 되고 있었다. 처음에 나는 그가 그저 모 극우사이트 컨텐츠에 심하게 매료된 사람 정도일 것으로 생각했다. 음악 볼륨을 뚫고 들어온 목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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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차량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고개를 들었다. 택시는 넓지 않은 4차선 거리에서 굉장히 무리한 움직임으로 과속과 칼치기를 시도하고 있었다. 무리한 끼어들기에, 옆 택시가 신경질적인 가로막기를 시전하자 대뜸 쌍욕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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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씨x, 개xx. 아 쫓아가서 받아버릴까. 내려서 죽여버릴까? 진짜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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듬성듬성 들리는 음성엔 분명 참을 수 없는 감정이 담겨 있었다. 별것 아닌 일에 분을 삭이지 못하는 모습. 마침 엊그제 영화 조커를 본 탓이었을까? 흔들리는 차의 움직임에 맞춰 내 심장도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분명 덩치는 내가 더 큰데도, 운전석에서 내뿜는 광기는 이미 차 안을 압도하고 있었다. 지금 이 사람을 멈추는 것은 좋지 않다. 그저 손잡이를 꽉 잡고 이 시간이 흐르길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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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내려달라고 말을 할까?’ ‘아니지, 더 화가 나서 나한테 화풀이를 하면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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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삼거리를 지나 택시가 언덕을 오르기 시작하자 이번엔 오토바이가 문제였다. 우리 앞의 오토바이는 정상속도를 지키며 주행 하고 있었으나, ‘그의 택시’는 오토바이 바로 뒤에 바짝 붙은 속도로 위협적인 배기음을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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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씨x, 확 받아버릴까 아이 씨x. 바빠죽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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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욕설. 계속해서 이어지는 뜻모를 읖조림. 손잡이를 잡은 손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집까지 두 블록 정도 더 꺾어 들어가야 하는데, 나는 큰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하차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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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얼른 카드를 찍어 하차하려는 순간, 그는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운전석의 문을 열어젖히더니 차를 두고 미친 듯이 뛰어가는 것이 아닌가! 나는 처음에 누군가(나를 포함한)를 해칠 목적으로 무기를 찾으러 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드는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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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그 장소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전거리를 확보한 모퉁이에서 잠시 그가 차로 돌아올 때까지 지켜보았다. 그 반사회적인 행동을 보이는 운전자의 소재를 파악하기 전에 뭔가 나의 뒷덜미를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감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그는 다시 차량으로 돌아와 유유히 사라졌다. 큰일이 벌어진 것 같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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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3~4분의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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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 운전사를 쫓아 뛰어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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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그저 분노로 가득 찬 감정을 잠시 달리며 쏟아낼 목적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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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허가를 받은 운전기사는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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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들어오고 나서도 흥분한 심장 때문에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했다. 건장한 남성으로서도 굉장한 긴장감을 느꼈는데, 만약 그날 밤 내 자리에 여자 승객이 탔다면 어땠을까? 실제로 내게 위해를 가한 가하 바는 없지만, 나는 이러한 상황에서 어떤 조처를 했어야 하나? 부디 내가 영화 속 광기 어린 주인공의 잔상 때문에, 사실 별것 아닌 에피소드를 과대해석한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당분간은 택시를 자제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