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이여 세상이 너를 몰라보고 지나칠 때
작은 우월감에 도취되며 마음 속 메아리로만 네 이름을 되뇌였음을
이제는 고백해야겠다.
비린내 가득한 땅에서 자라나 세상을 안다했던 나였으므로
이 곳 심성에 조야하지 않은 것이 있겠냐며
으레 너를 깔보았으나
하얀 살결 위에 싱그러운 과실을 품고 나타난 너의 빨간 방점이
그토록 설레였다고 이제는 고백해야겠다.
나약한 사람은 불을 품고 살 수 없더라
너의 교훈. 너의 추억. 바다내음이 향기로운 것임을 이젠 아는데
더 이상 가슴에 빨간 무엇을 삼킬 수 없음이라고
수 많은 고통 속에 네 이름 세상에 뱉기로 하였음을
끝끝내 끝끝내 고백해야만 하겠다.
저는 부산 사람이지만 회로 만든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회를 먹으려면 그냥 회만 먹는거지. 회백반 회덮밥 회냉면 물회. 전부 다 이해가 안가는 음식이었습니다. 결국 초장맛 아녀? 특히 부산에는 10년 넘게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물회 가게가 세 군데 쯤 있고, 저는 아버지를 따라 세 군데를 다 다녀봤는데 전부 별로였어요.
그러다 재작년에 아버지께서 문득 데려가신 곳이 '송원 물회' 입니다. 해동 용궁사 근처에 위치한 물회 가게인데요. 이 곳도 상당히 오래 영업 중인, 알만한 사람은 아는 가게입니다. 10년 전에 한참 데리고 다니실 때는 일언반구도 없으시더니 외할머니를 모시고 용궁사에 간 날 갑자기 들르시더군요.
물회는 육수를 듬뿍 붓는 방식과 회덮밥처럼 육수가 없는 방식 두 가지가 있습니다. 물회의 대명사가 되어있는 포항식은 육수를 안 붓는다고도 하는데 송원 물회는 포항식을 추천합니다. 메뉴판에 회덮밥과 물회 두 가지로 나뉘어서 주문을 받는데, 물회를 시켜도 육수를 물통에 따로 준비해서 주며 일단 먹어보고 웬만하면 많이 붓지 말라고 설명해줍니다. 앞서 썼듯이 저는 회덮밥도 싫어하기에 육수가 있든 없든 물회에 시큰둥했는데 송원 물회는 달랐습니다.
신맛 단맛이 강하지 않은 초장에 아삭아삭한 채소와 고슬고슬하게 지은 밥이 비벼지니 일반 비빔밥처럼 맛깔스럽고. 어항에서 바로 건져내 눈 앞에서 회치는 광어와 우럭, 밀치의 숙성되지 않은 쫄깃함. 마치 두툼한 소고기 육회를 씹는듯한 식감에 고소한 향으로 비린내를 살포시 덮는 참깨의 마무리. 육수가 없으니 밥이랑 회가 육회 비빔밥처럼 잘 어울리더라고요
사실 어딜가나 비빔밥은 비빔밥이듯이 여기 물회도 눈이 번쩍 뜨이는 특별함을 지니고 있지는 않습니다. 육수를 덜 부어서 양념맛이 강하지 않다 정도. 이 가게의 진가는 다른 반찬에 있는데, 1인분이 주문이 안되는 대신 2인분 이상 시키면 에피타이저로 파래죽-파래전이 차례로 나온 뒤 몇가지 밑반찬과 매운탕이 나옵니다.
이 매운탕이 정말 정말 맛있어요. 저처럼 물회에 별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은 분이라면 일단 물회맛을 보고 매운탕으로 보험처리 하시면 됩니다. 저는 물회를 회덮밥 스타일로 한 그릇 비운 뒤에 매운탕으로 공기밥 두 그릇을 더 먹었어요. 맛의 비결은 곰탕처럼 생선뼈를 아주 오래 끓이는 거라고 합니다.
어찌보면 매운탕 한 그릇으로 특징적인 경남권 음식의 맛을 체험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매운탕에 초피가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제가 알기로 훠궈나 중국 음식으로 처음 접한 분들이 더 많을 만큼 다른 지역에서는 잘 안쓰이는 향신료인데 경상도에서는 생선요리에 종종 들어가거든요. 추어탕에 흔히 들어가고 심지어 초피로 나물을 해먹는 집안도 있습니다.
위치도 좋지 않습니까? 용궁사를 둘러봐도 좋고 송정 해수욕장으로 빠져도 좋고. 여름 관광으로 다른 지역에서 오실 분들에게 절묘하죠. 괜찮은 집이긴 한데 유명 맛집만큼은 붐비지 않아서 스트레스 안 받으셔도 되고요. 제가 종종 지인들 데리고 가는 숨겨진 보물 같은 곳인데 다가오는 여름 시즌을 맞이하야 피지알에 공개합니다.
제가 백혈병 투병 중이라 날 것 먹기도 찜찜하고. 항암제를 먹기 시작한 이후에 장이 약해져서 고춧가루를 못 먹거든요. 이 식당 초장이 매운 편은 아닌데, 일반 김치를 먹어도 속이 뒤집힐 정도라 눈물을 머금고 송원 물회를 세상 밖으로 떠나보냅니다.
제목만 봐도 오그라드는 기운, 뜬금없이 시로 시작하는 황당함, 사진 없는 무성의함. 이 모든 것을 견디고 송원 물회를 알아낸 당신은!! 즐길 자격이 있습니다!!
아 찍어둔 사진이 없어서 뭘로 컨텐츠를 메꿀까 하다가 물회에 바치는 시를 썼어요. 앞서 썼지만 이미 영업을 오래한 맛집이기 때문에 구글에 송원 물회로 검색하시면 바로 뜹니다. 리뷰도 많고요. 제목은 왜 이따구로 썼냐고요? 부산 맛집 추천!! 이라고 대대적으로 쓰면 바이럴 같으니까요? 하하하. 무더운 여름에 날것 음식을 추천해도 되나 고민하는 마음으로 첫 구절을 썼습니다.
p.s 부산 오시면 많이 찾는 돼지국밥은 영진 국밥 추천합니다. 엄청 맛있어서가 아니라, 유명 국밥집들은 여름 휴가 시즌에 바글바글 폭발해버리는데 그런 고생을 안하면서 즐길 수 있는 체인이거든요. 찐득찐득하니 허연 국물이 설렁탕이나 순대국밥과는 다른 돼지국밥의 특징을 잘 품고 있다고 생각해서 특별한 경험을 하기에 좋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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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괜찮으시면 짤막하게 후기 부탁드립니다...댓글이든 쪽지든.. 추천할만한 곳 맞는지 검증받고 싶어서요. 부산 놀러오는 분들한테 계속 추천할 예정인데 저 떄문에 똥밟으시면 안되잖아요. 크크. 아 2인분 이상 주문 가능 꼭 유의하시고..평일이라는 장점으로 근처 용궁사 한 번 둘러보시는 것도..다른 때는 버글버글 북적북적 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