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으로 파리에 왔는데, 시간에 여유가 있는지라 당일치기로 독일 아헨에 왔습니다. 역사덕후인 저로서는 꼭 가보고 싶었던 도시인데, 다행히 아내도 무척 만족해서 기쁘네요
아헨은 오늘날 아주 작은 소도시에 불과하지만, 사실 아주 긴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유서 깊은 곳입니다. 이곳은 카를대제, 프랑크 왕국의 왕, 그리고 신성로마제국의 초대 황제가 수도로 삼은 곳이며, 그가 건설한 제국으로부터 프랑스, 독일, 그리고 이탈리아가 파생되었습니다.
따라서 아헨의 주요 볼거리는 당연 카를대제가 건설한 “아헨대성당”입니다. 아헨성당은 알프스 이북에 건립된 최초의 석조 대성당으로, 서기 805년에 완공되는데요 당시 알프스 이북에는 이렇다할 석조 건물이 없었는데, 카를대제는 이탈리아에서 로마시대의 대리석 기둥을 가져오고, 로마의 기술자들을 불러 웅장하고 화려한, 이탈리아나 동로마(비잔틴)에 뒤지지 않는 성당을 짓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는 카를 본인이 속한 프랑크족을 포함한 미개한 북쪽의 야만족들로 하여금 경외심을 품게 만들 목적으로 건설된 정치적 프로파간다였죠.
그래서 아헨대성당의 모양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서유럽의 다른 고딕성당들과 다릅니다. 아헨대성당은 팔각형의 중심부를 따라 비잔틴 양식의 아치가 세워져있고, 거대한 돔이 그 위에 놓여있다. 또한 천장은 불빛이 없어도 실내를 밝게 비출 것만 같은 금박 모자이크와 성화들로 가득한데 사실 이런 황금 모자이크는 동로마제국 고유의 양식으로, 오늘날 배네치아, 라벤나, 그리고 이스탄불(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카를대제는 아헨대성당을 통해 자신이 로마의 후계자임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입니다. 로마의 기둥을 알프스 이북 저 멀리 아헨까지 가져왔고, 이탈리아에서나 볼 수 있던 모자이크를 모방하였으며 또 외형과 내부 디자인까지 로마의 그것을 답습하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시대는 중세였고, 로마와의 연속성 못지 않게 중요했던 것은 바로 종교, 신앙이었습니다. 그리고 카를대제는 본인이 로마의 후계자일뿐만 아니라 기독교세계의 수호자임을 드러내고자 했고, 그 상징물 또한 이곳 아헨대성당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바로 카를대제의 “왕좌”입니다. 그냥 보기엔 아주 심플하기 그지 없는 왕좌입니다. 그냥 맨돌이 아닌가? 볼품없는 모습을 하고 있고 화려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에게 이 왕좌는 그 어떤 금은보화와도 바꿀 수 없는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왜?
사실 이 볼품없는 왕좌는 예루살렘에 위치한 예수의 성묘(holy sepulchre)에서 가져온 돌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실제로 학자들이 분석한 결과 이 돌은 정말로 중동에서 가지고 온 것이라고 합니다. 이 왕좌는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곳에 앉는 이는 기독교 세계를 관장할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제국과 기독교의 연속성을 상징하는 아헨성당, 과연 카를대제의 성당이라 할 만합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프랑스와 독일이 화해하고 또 미래를 약조한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본래 하나였던 프랑스와 독일을 상징하는 도시, 로마 이후 중세 서유럽의 발상지라 하는 이 도시에서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와 독일은 서로 화해하고 미래를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올해 1월에 양국은 이곳에서 아헨조약을 체결하여 그 우정을 재확인했습니다
아헨.
당일치기로 보기에 약간 아쉽지만, 분명 매력적인 도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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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덕이나 교회사, 건축에 관심 많은 분들에겐 가볼만한 곳이죠. 그렇지 않은 일반 관광객은 하루짜리 유럽 어느 소도시 코스구요.
그리고 여기가 벨기에, 네덜란드 국경이 모인 곳이라 핸드폰 기지국이 네덜란드로 잡히다 독일로 잡히다 오락가락 하는 곳입니다.
독일 유심 멀쩡한데 갑자기 네덜란드로 로밍됬다는 문자가 와서 황당했었죠 크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