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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님. 말씀하신 생일 선물. 솔직히 좀 부담스러워요.
사실 전 그런 선물은 남자친구 아닌 이상 남자한테 받는 스타일이 아니랍니다.
선배님은 좋은 선배님이니까요. 마음만 받을께요. 정말 감사해요. 다음 수업에서 뵈요!"
뭔가를 이성에게 선물하는 흐뭇-한 타인의 생일파티를 보내고 싶었다. 버스정류장 옆 이마트에 들어가서 알만한 이름있는 여성화장품을 골라도 될 정도로 열심히 아르바이트도 해서 용돈은 두둑했었고. 근데, 뭐. 너무 예상대로의 전개. 지극히 예측가능한 반응과 결말. 지난학기 한 여자후배와 나는 좀 친해졌다 생각했고 동기생들도 후배들도 '선배님은 겨울없이 바로 봄으로 가십니다?" 라며 콜라캔으로 샴페인놀이도 하던터에. 그래. 나도 좀 오바했지. 그럴리없지.
나란 남자. 오늘은 반지하 자취방에서 게리 무어(Gary Moore)의 스틸 갓 더 블루스(Still got the blues)를 크게 틀어놓고 창밖 도시 야경을 보며 삼페인놀이하던 콜라에 취하고 싶군. 아름다운 야경속 지나가는 용달차 바퀴를 보며 쿨한 도시 남자 느낌나게 답변을 보내줬다.
"아. 맞아. 내가 생각해도 좀 부담스러워할꺼같았어. 미안. 학교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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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을 다 마치고 자취방으로 오는 길. 습관적으로 SNS를 켰다. 아. 그 후배는 한 동아리에 들어간거 같았다. 아. 저 동아리는 별론데. 뭐. 그래도 즐거워보이네. 확대해서 좀 봐볼. 아악. 좋아요 눌렀다. 제기랄. 퍼거슨 감독. 당신 말이 옳소. 인생의 낭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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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단톡방 카톡이 울렸다.
"저희 연극의 이해 수업 과제중 연극관람은 이번주 금요일에 이거로 하죠?"
나름 나도 바쁘게, 여초사이트이며 클린한 사이트인 피*알21에 가서 최신정보 "연애학개론"을 진지하게 복습중이던터였는데. 뭐지. 아 그래. 여전히 이녀석 활달한 후배로구만. 난 미련을 남기지 않는 쿨한 남자. 기꺼이 카톡에 대답은 안해주고 그날 아르바이트는 미리 사장님께 말씀드려야겠구만. 아르바이트를 비우고 모든 나의 시간과 동선을 그 후배가 이야기한 연극과 소극장에 맞췄다. 왜냐. 나는 미련을 남기지 않는 쿨한 남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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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오며 연극관람문에 대한 정리를 머리속으로 했다. 나름 내 독후감이나 리포트가 조교형들의 칭찬을 많이 받은터라 생각의 정리-브.레.인.스.톰. 하지만, 오늘은 뭔가 정리가 되지 않았다.
왜 그 후배와 나만 온거냐. 서먹하게. 그 후배는 내 시선을 그리도 피하던데. 아. 그렇다면 나도 예의상 편하게 해줘야되는데 상황 참 웃기게 화장실입구에서 만날껀 또 뭐냐. 그거에 그 후배. 내가 뭐 그리 부담스러운건지. 입구에서 움찔하고선 유턴하다가 입간판을 쓰러트리기도 했다.
말했듯 나는 차가운 도시남자. 어릴때 손자애교로 할아버지 할머니께 용돈을 받았던 애교 스킬을 사용하며 찡그리던 수위아저씨의 눈빛을 녹였다. 긴 염색머리, 은은한 샴푸향, 아기자기한 무늬의 원피스, 오즈의 마법사에서 본듯한 뾰죡 애나멜 구두. 여전히 매력적이야. 아. 안돼. 나는 차가운 도시남자. 정신차리자.
"안녕하세요."
"어? 어. 안녕하세요."
나는 복학후 완전 절친 아니면 후배일지라도 말을 절대 편하게 안한다. 그래도, '괜찮으세요?', '어디 뭐 묻진 않으셨죠?' 정도는 더 말해도 됐을껄 그랬나. 독후감도 정리 안되고. 생각도 정리 안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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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배는 그날이후 조모임쪽과 학과에 친한 사람들에게 뭔가 오해가 생겼나보다. 주변을 피해다닌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음. 뭔가 생각이 정리가 안되기 시작하는군. 도시야경을 보며 다시 분위기 전환을 해볼까 싶어 창문을 열었 야이 고양이들 저리가. 훠훳! 며칠뒤 그 후배는 SNS에 몇장의 사진을 올렸다. 생일파티 사진이었다. 아. 동아리 핵인싸들과 나와도 친한 학과동기생 몇명을 불렀구나. 생일 선물도 많이 받았네. 와. 잘됐다. 나는 연락 못받았는데... 이번엔 조심조심 스마트폰 화면을 만졌다. 또 좋아요를 누르는 실수를 하진 않아!!! 그치. 핵인싸인 후배인데. 생일을 조용히 보낼리 없지. 마시던 만원에 4캔하는 편의점 맥주를 그 후배네 집쪽으로.
"그리고, 그녀의 눈동자에 건배.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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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계속해서 내내 나는 무시당했지만 뭐 크게 상관없었다. 내가 뭘 어찌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교수님은 리포트를 또 주셨다.
"지난번엔 너무 친한 사람들끼리 만나서 여러분들이 제출해주신 것에 눈에 들어오는게 없었어요. 그래서 이번엔 제가 임의로 섞어서 조금 더 다양한 시각과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게 하겠습니다."
젠장. 지난번에 가볍게 산 복권 1000원 하나 맞더만. 지지리 운도 없지. 나만 일면식 없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조가 되었다.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자리에 앉았다. 음? 낯익은 음악이 들린다.
"까를로스 산타나(Santana)의 유로파(Europa)인가..."
"어? 이 곡 아세요?"
단발머리, 잘 어울리는 청바지, 가벼운 니트티. 어. 지갑은 샤넬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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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차가운 도시 남자. 단발머리 그녀에게 무시당하고 있다...
by Lunatic 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