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도시의 야경]을 언덕 위에서 내려보는 것은 참으로 센티멘털한 경험입니다.
새벽 늦게까지 인생을 즐기고, 별가루가 모래시계처럼 흐르던 시간 속에서 갑자기 정신이 드는 것이지요.
마지막 지나간 시간 사이 내려앉은 어둠이 마을의 불빛을 뽐내게 만들고 있구만,
나른하게 몸 안에 취해있던 새벽감성이 예쁜 자태를 고치고, '너 지금 뭐 하냐?' 라고 물어봅니다.
위스키 냄새가 여린입천장에서 느껴지려는 환멸과 우수에 젖어있으려는 순간
갑자기 잘 알지도 못하는 친구의 친구가 던진 말이, 뇌에 응급신호를 보냅니다:
술김에 되는대로 꼬부랑 영어를 하던 정신이 맑은 공기에 깨기 시작한 것이지요:
"Are you 헐링 anything? | 알유 헐링 애니띵?"
헐!
헐은 또 뭐람.
갑자기 정신이 말짱해지면서 동시에 아득해집니다.
뇌의 시냅스가 활성화되고, 알콜을 방청소하며, 오버클락을 공랭식으로 돌리기 시작합니다.
좋아 지금 여기가 어디지?
기숙사에서 15분 정도 걸어서 떨어져 있는 캠퍼스 안의 언덕,
[콜라와 위스키를 방금까지 섞어 먹다가], 바보 같은 짓도 할 겸, 힘도 남아도는 겸,
다 같이 룰루랄라 어깨동무를 하면서 네 발로 기어 나왔습니다.
다섯 명입니다.
저는 영어를 좀 한다고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근데, 헐. 지금 헐이 무슨 말인지 도저히 감이 오지 않습니다.
일단, 철자를 모르겠네요? 그러면 사전은 일단 못씁니다.
머리를 굴려봅니다. 도대체 저런 발음을 가진 단어가 뭐가 있지.
Hurl 아니면 Haul입니다.
엄밀히는 같은 발음이 아니지만, 제가 무슨 토익리스닝 테스트를 하는 것도 아니고,
아니 요즘 토익 테스트 조차도 한번만 들려주잖아요.
거기에 대고, 잠깐만 한번더 말해줘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얼링 애니띵"
아이고 두뇌가 돌아가는 사이에 그 친구가 단어를 반복했군요.
저는 집중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원어민을 불편하게 하는 방법이 여러가지가 있는데요.
대표적으로 같은 말을 여러번하게 만들면 됩니다. 물론 이건 한국에서도 자주 일어나듯이,
원어민끼리의 대화에서도 일어나는 현상이지만, 적어도 이런 경우에는 그 불행한 원어민에게
"당신은 지금 원어민과 대화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헤헤! 답답하지!"라는 것을 다시 한반 각인시켜 줄 수 있습니다.
후, 그 사이에 좀 더 피부에 돋는 추운 닭살과 함께 주변 풍경이 조금 더 정리가 되는군요.
이 친구는 기숙사에 지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차를 몰아서 집에 가야한다고 혼자서 술을 덜 마셨어요.
그리고 우리는 어쩌다보니 언덕을 넘어서 이 친구 자가용 바로 옆까지 왔네요.
열린 트렁크를 가리키면서 친구가 말합니다:
"Are you 헐링 anything? | 알유 헐링 애니띵?"
"I don't get it. What? | 뭔 말인지 모르겠다, 응?"
꼬부랑 질문을 해보지만, 이 친구는 취객 사이에서 홀로 낀 정상인이 해야 할 반응을 합니다.
"Fiiiine. Hop in. | 어휴... 타."
미국인들은 안주를 마시지 않는다는 것을 아시나요?
미국인이 안주를 마시게 하는 한민족으로서의 팁은, 바로 이들이 늦게까지 술을 마시게 하는 것입니다.
늦게까지 깨어 있으면 배가 고파서, 야식은 먹고 자게 되어 있거든요.
그렇게 우리는
[24시간 영업에 4달라에 오케이 땡큐한 메뉴를 파는 Denny's 프랜차이스]의 새벽 고정손님이 되었답니다.
물론 메뉴 사진에 비하자면 실물은 말라비틀어져 있고, 기름 덩어리이지만, 비지떡은 싼 것이겠지요?
아무튼간에, 아 임 파인 앤 유!의 짧은 파인이 아니라
파아아인이라는 한숨이 섞인 표현의 뜻은 미묘하지만, 또 매우 한국적입니다.
"아서라!", "됐다.", "어휴!" 정도의 뜻이지요. 취한 사람에게 설명해주기 싫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그렇게 '헐'의 미스터리는 Denny's로 향하는 자동차의 뒷자석으로 이동하게 되었답니다.
도대체 헐이 무엇일까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론|Theory는 "Hurl"입니다.
아마 친구는 "Are you 'hurling' anything?" 이라고 물어본 것이겠지요.
특이합니다. 제가 뭘 집어던질까요?
저는
[영어 단어를 컴퓨터 게임을 즐기려고, 11살부터] 스타크래프트 저글링 블러드를 하면서 깊게 다짐하였고,
사실 영어 실력과 나루토 랜덤 블러드의 승률이 상관없다는 것을 깨달은 다음에도 요긴하게 영어를 써먹었습니다.
Clash of the Dragons라는 카드게임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도 그렇지만 저는 카드 게임을 아주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 게임의 모험모드에는 꼬꼬마 저를 가로막았던 '통곡의 벽'이 하나 있었습니다.
[Oroc Hurler]라는 수정 골렘 NPC였지요.
그렇습니다.
게임에서 Hurl이라는 단어는 보통 돌맹이나 더 한 것을 데미지를 입히는 방식으로 집어던지는 행위를 뜻하는 동사입니다.
제가 제 친구 트렁크에 돌댕이라고 던져서 데미지가 붉은 글씨 숫자로 떠오르기라도 해야했다는 것일까요?
흠, 일단 첫번째 가능성에 대해서는 이 정도만 정리하고,
저는 다시 두번째 가능성을 향해서 두뇌를 맹회전시켰습니다.
[Haul]
그래요. 이것도 헐이라는 동사이지요.
엄밀히는 'a'와 'u'라는 두 개의 모음을 가진 이중모음(=Dipthong=딮똥≠깊은 똥)이지만,
'허울'이라고 적는 '허울'을 범하면, 한글의 특징상 2박자(=Mora=모라)이 되어버리니,
헐이라고 칩시다.
그래요. Haul이라는 단어가 저의 머리 속에...
일단 스카이림을 포함한 온갖 모드들의 Overhaul이 생각나는데,
전문용어인 오버홀은 뜻이 오버홀이지 적어도 이 맥락에서 그 뜻은 아닌 것 같더라고요.
[흠]...
일단 림월드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게임에서는 '옮기다'라는 의미로 haul을 썼습니다.
그러면 "여엉차"하고 가슴 높이까지 자기 앞에 물건을 한 아름드리 껴안고 캐릭터들이 움직였지요.]
아마 친구는 "Are you 'hauling' anything?" 이라고 물어본 것이겠지요.
[흐으음...]
근데 저는 제 가슴팍에 아무런 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걸요.
어떤 지점 A에서 지점 B까지 물건을 옮기고 있던 것도 아니었고요.
그러면 다른 단어였던 것일까요?
동사일테니까 명사인 밑바닥 Hull은 아니겠지요.
너가 밑바닥이니? 라고 물어볼 생각이었어도 문장이 그렇게 나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도대체 이 '헐'은 어떻게 탄생한 것이었을까요?]
이 정도는 해야지, 지구 반대편 대륙에 와서 취해있는 학부생의 위신이 서지 않겠습니까!
워낙 이 재미있는 게임과 영어 속의 추억의 세계에 빠져 있다 보니,
수업에서 메고 온 가방을 어디 적당한 곳에 내려놓는 것도 까먹고,
되는대로 3명이나 들어있어 좁은 뒷좌석에서 앞에 책가방을 껴안으면서 상념에 잠겨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더 깊은 내면의 성찰을 하기 전에, 자동차는 멈추었고.
우리는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헐"의 정체는 저 만의 과제였습니다.
절대로 물어볼 수 없었습니다. 사실 더 시시콜콜하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베이컨과 함께 흘러가기도 했고요.
그런데, 스포일러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서빙되는 물 잔을 세 번씩은 비우고 화장실을 번갈아서 들리고 있으니,
제가 어쩌다 보니 가장 차에 늦게 도착했는데, 봐서는 안 되는 것을 보고만 것이었지요.
"Are you hauling anything?"
이라고 또 물어보는 또 그 운전하는 친구와,
그 말을 들은 다른 친구가 대답 없이,
등에 메고 있던 배낭을 앞으로 풀어서 트렁크로 집어서 던지는 모습을요.
[헐!]
제가 억!하고 놀란 이유는 아직도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
정답의 코 앞까지 와서 "게임에서 그런 예를 본적이 없다"라고 말한 그 단호함이 어처구니가 없어서일까요.
아니면, 영어가 됬던, 한국어가 되었던, 정말 '눈치'는 하나라도 없는 응용력 때문일까요.
아무튼 저는 참 저 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앞으로도 게임을 열심히 살면서 영어 공부 열심히 하겠습니다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