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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9/02/09 22:49:04
Name 유쾌한보살
Subject [일반] 어찌 그 때를 잊으랴...... 콧물 편. (수정됨)
국민학교 시절을 이야기 하자면, 떠올릴 수 있는 기억은 한 줌밖에 안 되는데,
그 한 줌의 기억이 너무나 소중해서, 무슨 이야기부터 꺼내야할 지 늘 두서가 없습니다.
같이 겪은 일도 더듬다 보면, 친구들마다 내용이 제각각이고요.
기억도 결국은 상상력의 결과일까요.
보물같은 일기장이 생존해 계시다면야 얼마나 좋을까만,
지속적으로 썼을 리 만무하고, 그나마 방학숙제용 급조일기도 오래 전에 당연히 분실해 먹었습니다.





60년대 중 후반에 초등학교를 다닌 우리 세대.
그 땐 다들 어찌나 가난했었던지.... 절대 다수가 빈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겨울날...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맡 자릿끼가 얼어있고,
방문을 열면 앞집 기와지붕 처마엔 고드름이 주렁주렁 했다.
그 추위에도 변변찮은 내복 한 벌에 겨우 교복 윗도리 하나 걸치고 장갑도 없이 학교에 가곤 했다.
얼어터진 손등이 짝짝 갈라져 피가 배어도 그 손으로 찬물에 걸레 빨아 교실청소를 했었고....



한 학년 10개 반, 한 반 70여명.
도시락을 못 싸와 강냉이빵(4학년때부터 2배 크기의 밀가루식빵으로 바뀌었음) 받는 친구 40여명,
그나마 집에서 빵을 기다리는 동생들 땜에 반도 먹지 못했다.

비 오면 우산이 없어서 결석하는 친구 10여명, 주로 여학생인데
비바람 불면 찢어지는 비닐우산마저도 제몫이 없어, 아버지와 오빠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겨울에도 양말 못 신고 오는 친구 10여명,
양말도 못 신었는데... 신발은 검정고무신.
운동장 조례 시간에 발이 시려워서 오른발 왼발 번갈아 가며 발등에 올리고 있기도 했었다.

공책 연필 필통 지우개 책받침...절대 부족 친구 10여명,
몽당연필을 볼펜똥고에 끼워쓰기는 기본, 공책 표지 안쪽부터 필기, 심지어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쓰기도 했다.

동생 업고 오는 친구 1명,
온갖 눈치 받아가며 동생을 달래가며 교실 뒤쪽에 서서 수업을 받던, 그 친구를 잊기는 힘들겠지.

까까머리에 부스럼 난 남학생 10여명,
또 여학생 대부분은 머리에 이가 있었기에
일년에 두어 번 골마루에 나가 일렬로 서서 단체로 디디티 가루를 뒤집어썼었다.

채변봉투 검사로 기생충 있는 친구 40여명은 선생님 앞에서 약을 먹었고,
며칠 후 선생님이 공개적으로 기생충 박멸 실적을 조사하셨는데
촌충 요충 편충 .. 십이지장충까지 다양하게 우리 체내에 서식하고 있었다.

연례행사였었나...치과의사샘이 학년별로 날 잡아 와서
서편 골마루 끝에서 종일 썩은이와 앓는이를 뽑았다.
종일 비명과 선생님의 고함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4,5,6학년 전교생이 운동장에서 치른 일제고사.
각자 자기 걸상을 들고 나가 책상 삼아 시험을 쳤다. 7월 불볕 더위 아래에서.
초등 동창 대부분은 그 운동장 시험을 잊지 않고 있었다.
시 단위였는지 도 단위였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교육청 고위인사가 감독 차 나왔으니  
아마도 학교간 비교 경쟁의 시험이 아니었던가 싶다.

가장 가슴 아린 기억은, 월사금 제때 못 내는 친구 20여명의 모습이다.
교실 앞으로 불려나와 고개를 푹 수그리고
언제 가져올 수 있냐는 선생님의 채근에 어물거리고만 있던 그들.
6학년 때 담임샘은 집으로 돌려 보내기도 했었다....



아......그리고 노상, 계절에 관계없이
그러나 겨울에 더욱 심하게 콧물을 흘려대던 남학생들.
어디 화장지가 있었나~
손수건을 아무나 가질 수 있었나~
죽으나 사나 그 놈의 교복 소매 끝으로 쓰윽~닦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소맷부리는 찐득허니 더께가 앉아 늘 빤질빤질 했었다.

녀석들은 연신 코를 훌쩍이며,
딱지치기나 구슬치기 제기차기, 그리고 여학생 고무줄 끊어먹기를 하고 놀았다.
그 중에서도 유난히 인중이 길고 콧물을 많이 흘렸던 K.
재작년 총동창회 때 참석하여 실로 48년만에 녀석을 만났는데,
코밑이 말끔하여 어쩐지 녀석같지가 않았다.

녀석의 콧물 색깔은 다른 남자애들과 확연히 구분되었었다.
K를 제외한 남자애들의 콧물은, 그냥 희끄무리 하거나 누렇거나...하며,  좀 묽은 편이었다고나 할까.
근데 녀석의 그것은 싯누런 상태를 넘어서 푸른 빛마저 띄었는데,
아마 농도는 꿀보다 더 진했던 것 같다.

두 줄기 연두빛 콧물은, 입술을 향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려왔다.
나를 포함한 여학생 두엇은, 정말이지 안 보려고 안 보려고
무지 애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어느샌가 눈길이 가는 걸 어쩌지 못했다.
그 진득한 두 줄기 연두빛이 윗입술 위 1㎜ 지점까지 내려왔을 때,
우리는 긴장감으로 침을 꿀꺽 삼키기도 했었다.

드디어 입술에 닿으려는 순간 !!!!
녀석은 마치 그 절묘한 타이밍을 기다렸다는 듯,
후루루루룩~~~~ 들여마셨다...... -_-;;
우리는 언제나 콧물이 입술에 닿는 그 순간만을 기다리며 지켜보았지만,
두 줄기 연두빛은  끝내 우리의 기대를 저버렸다.

그랬기 때문에....나는 K에게 그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었다.
48년 만에 만났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후....K는 동창회에 나오지 않았다.




요즘 세계금융위기와 경제위기에 관한 예측 보도를 자주 접합니다.
불과 50년 전에 겪었던 저 궁핍을,
윗세대로부터 들은들 믿기지도 않는, 저 상상조차 못할 가난을,
우리의 풍요로운 80년대 이후 출생 세대는 과연 그 10분의 1인들 버텨낼 수 있을 것인가.. 싶습니다.
설마 그 가난이 다시 올 리 만무하고,  그럴 가능성은 1나노그램도 없지만,
자식세대를 바라보노라면  그저 걱정스러울 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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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토니쵸파
19/02/09 22:57
수정 아이콘
강민이야기인줄...ㅜ
유쾌한보살
19/02/10 00:51
수정 아이콘
강민이야기가 궁금하군요.
돼지도살자
19/02/09 23:21
수정 아이콘
강민2 ㅜㅜ
초짜장
19/02/09 23:23
수정 아이콘
콧물 맛있죠 그립읍니다
유쾌한보살
19/02/10 00:53
수정 아이콘
하하 ... 초등 저학년생 중에는 드물지만 코딱지를 파서 입에 넣는 어린이가 있다고 하더군요.
초짜장
19/02/10 01:33
수정 아이콘
한 학년에 꼭 하나씩은 있었죠. 콧물은 맛있읍니다만 코딱지는 초큼...
시설관리짱
19/02/09 23:50
수정 아이콘
요즘 애들 감기걸려서 코빨아주는데... 짭조름하더군요
19/02/10 00:49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19/02/10 01:14
수정 아이콘
대충 원글자분에 비해 15 년정도 늦게 국민학교를 다녔는데, 손이 얼어서 피나는 것, 디디티, 볼펜 똥꼬는 공유하는 기억이되, 월사금 못 내거나 기생충 있다고 앞에서 공개적으로 망신주는 일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살림이 피면서 저런 것들부터 없어졌나보네요.

그나저나 K 님께는 너무하셨어요 흑흑;;;;
유쾌한보살
19/02/10 07:43
수정 아이콘
디디티를 1980년 언저리에도 여전히 뿌렸었군요. 아마도 그 때까지 머릿니가 있었을 겁니다.
학교에 가서 주로 옮아 왔으니까요. 수업시간에 앞에 앉은 친구 어깨 위로 유유히 기어가는 머릿니를 더러 발견하곤 했죠.
샴푸 사용이 일반화되고부터 완전 사라진 것 같아요.

K.... 제가 무슨 짓을 저질렀나를 깨닫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지요....
Flyboard
19/02/10 09:00
수정 아이콘
제가 알러지가 있어서 맑은 콧물이 갑자기 물처럼 주윽 흐를 때가 있는데... 어쩔 수 없이 들이켜야 합니다...
며칠 전 학교 수업에서 제 바로 옆에 어린 여자애가 앉았는데 하필 그 때 콧물이 흐르기 시작해서 2시간 내내 한손으로 코와 입을 막고 들이켰었습니다. 전 당연히 몰랐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 얘기를 들은 아내가 "콧물 마실 때 소리가 꽤 크더라."라고 해서 절망을...ㅠㅠ 전 아마 2시간 내내 콧물 마시는 사람으로 소문이...
一言 蓋世
19/02/10 10:08
수정 아이콘
저희 세대도 겪어보지 못한 가난이군요.
예전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그냥 그랬는데, 요즘은 생각이 좀 바뀌었습니다.
자신들이 부모 세대보다 더 고생한다는 참신한 불만을, 그것도 한두사람의 흰소리가 아니라 사회적 담론으로 나오는 꼴을 보고 나니까,
다른 건 몰라도 제 부모가 무슨 고생을 하고 살았는지는 아는 게 이 시대에 필요한 교육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유쾌한보살
19/02/10 18:14
수정 아이콘
제 의도가 통했군요.
만약, 60년대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는 비극이 발생한다면?
이런 말을 입밖으로 드러낸다는 것 자체가 의미 없지만, 아마도 우리 자식 세대는 차라리 죽음을 택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부모 세대와는 달리, 이미 풍요를 누려왔기에 이런 가정이 무리이긴 합니다만,
자신들이 읊어오고 있는 `헬 조선`이 바로 !!! 천국이란 걸 깨닫게 되겠지요.
doberman
19/02/10 11:54
수정 아이콘
제 윗세대지만 일부는 공감합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위생관념이란게 부족했죠. 그만큼 먹고 살기도 힘들었던 시대이니까요.
우리 아이들이 태어나자마자 수세식 화장실에서 비데 없이는 용변 보기도 힘들어하고 외출하고 돌아오면 꼭 손세정제로 손을 씻는데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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