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KBS 1TV에서 토요일 오후 7시마다 배우 김영철씨가 출연하는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를 즐겨보고 있습니다.
늘상 유튜브에서 궁예나 김두한으로만 만나오던 중견배우 김영철씨가 메인 MC로 나오는 프로그램입니다.
소탈하게 걸어서 동네를 돌아다니며 사람 사는 이야기, 동네마다 쌓인 역사를 돌아보는 게 전부인데, 그게 참 여러모로 요즘 시대에 느끼기 힘든 따뜻함을 전해주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파일럿 방영할 때부터 매 회차 즐겁게 보고 있습니다.
어느덧 최불암씨의 한국인의 밥상과 더불어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아 버렸네요.
엊그제, 문득 날씨가 간만에 괜찮길래, 저도 김영철씨처럼 걸어서 동네 한 바퀴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와봤습니다, 노량진 사육신공원.
집이 용산이긴 한데, 종종 자전거 타고 노량진까지 놀러나오곤 합니다.
지나치면서 곁눈질로 보기는 많이 봤는데, 정작 공원 안에 들어가 볼 생각을 한 건 이 날이 처음이었어요.
공원에 들어서자마자 맞아주는 큰 홍살문이 보여서 찰칵.
나뭇가지에 누군가 날리던 연이 걸려 있는게 인상 깊었습니다.
이 곳이 사육신공원이라 불리는 이유는, 조선시대부터 사육신을 기리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조카에게서 왕위를 찬탈한 세조 즉위 후에도, 단종에 대한 충성을 잊지 않은 이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단종 복위를 위한 거사를 모의했지만 다들 익히 아시듯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죠.
이들 중 대표격인 6명을 사육신이라 부르는데, 그 선정을 두고 유응부와 김문기 중 누가 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이 있었고, 결과적으로는 성삼문, 유응부,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김문기까지 7분 모두를 사육신으로 인정하게 됩니다.
성삼문, 유응부, 하위지, 이개, 김문기 5명은 거열형으로 사형당했고, 박팽년은 고문 끝에 옥사, 유성원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이후 새남터에 버려져 있던 이들의 시신을 매월당 김시습이 수습하여 노량진에 안장했고, 이게 지금 사육신공원의 시초라고 합니다.
7분의 무덤이 이곳에 모여 있는데, 그 중 성삼문, 유응부, 박팽년, 이개의 묘는 진짜 묘이고, 하위지, 유성원, 김문기의 묘는 가묘입니다.
사육신 개개인의 약력입니다.
충신불사이군의 정신을 스스로 몸소 실천하신 분들답게, 시호에 모두 충성 충(忠)자가 들어있는게 인상적이었습니다.
불이문과 의절사의 전경입니다.
두 군주를 섬기지 않는 뜻과, 의와 절개를 지켰다는 뜻을 각각 담고 있는 것 같네요.
의절사 안에는 7분의 위패를 모셔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에는 이렇게 향을 올릴 수 있도록 향로가 놓여져 있더라고요.
오랜만에 저도 성냥을 켜서 조상님들에게 향 한 개피 피워 올렸습니다.
의절사 뒤편으로 돌아가면 사육신묘가 있습니다.
이건 성삼문, 유응부, 박팽년, 이개 네 신하의 무덤입니다.
무덤 앞에는 작은 비석 하나만이 세워져 있는데, 그나마도 성씨의 묘, 유씨의 묘처럼 이름도 다 적혀있지 않아서 처연하게 느껴졌습니다.
이쪽은 하위지, 유성원, 김문기 세 분의 묘역.
이 무덤들은 가묘라서 따로 위치를 둔 것 같더라고요.
묘역을 한바퀴 빙 돌 수 있어서 무덤 뒤쪽으로도 가보았는데, 묘하게도 무덤 석물로 자주 보이는 문인석이 땅에 반쯤 묻혀 있었습니다.
도대체 왜 무덤 옆이 아니라 저런 곳에 묻혀 있는지 궁금한데 어디 물어볼데가 없네요...
의절사를 나와 조금 더 올라가보니 사육신 역사관이 보입니다.
여기를 또 안 들어가 볼 수가 없죠.
작은 전시관이지만 당시 상황과 사육신의 충의, 그리고 이들의 복권 과정까지 상세하게 다룬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원래부터 역사에 관심도 많고 박물관 돌아보는 것도 좋아하는데, 상당히 충실하게 잘 만들어 뒀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사육신공원에 방문하실 일이 있다면 이곳 역사관도 꼭 들러보셨으면 좋겠네요.
이렇게 칼과 차꼬를 직접 차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체험존도 있습니다.
저는 혼자 갔기 때문에 사진을 찍을 수 없었습니다 따흐흑...
여러분은 꼭 누구 한명 데리고 가세요 ㅠㅠ
사육신 역사관을 나와 왼켠으로 약간 더 올라가면 조망명소가 있습니다.
이 사진은 새 휴대폰을 산 김에 탑재된 기능인 파노라마로 찍어봤습니다.
왼편에는 63 빌딩이, 오른편 강 너머에는 서울타워가 보이는 탁 트인 멋진 뷰에요.
앞에 군 부대가 있어서 철조망이 있는건 살짝 아쉽지만, 한강철교를 따라 전철이 달리는 걸 보면 왠지 즐거워집니다.
돌아오는 길, 꽃봉오리를 맺은 목련과, 밑둥이 텅 비었음에도 끈질기게 살아가고 있는 고목을 마주했습니다.
새삼 생명의 위대함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늘 추운 겨울인 줄만 알았는데, 어느덧 봄은 다가오고 있네요.
집에 오면서는 서울시 공공 자전거 따릉이를 타고 한강대교를 건넜습니다.
따릉이 완전 좋아요 서울시의 자랑입니다 히히
강을 넘어오면서, 이 날의 여정은 마무리했습니다.
평소 가봐야겠다 가봐야겠다 생각만 하던 사육신공원을 돌아볼 수 있었고, 간만에 날도 좀 맑았던 터라 마음도 깨끗해지는 기분이었어요.
나도 따라 동네 한 바퀴, 즐거웠습니다.
다음에 또 날이 맑은 날, 주변 동네를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되네요.
이건 덤 같은 느낌으로, 이 날 본 낮달과 마주친 고양이입니다 흐흐.
돌아다니다 보면 가끔 이렇게 생각지 못한 즐거움이 있어서 행복해지는 것 같아요.
여러분도 날이 맑은 날, 동네 한 바퀴 돌아보시는 여유를 가지시는 건 어떨까요?
오늘 저녁 7시에 방영될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도 감상하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