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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Farce입니다. 지금 저는 겨울방학을 맞아 미국 미네소타 주의 미니애폴리스(Minneapolis) 근처에서 머물고 있습니다. 눈도 안 오고 따뜻한 캘리포니아 주의 기숙사를 마다하고, 크리스마스 코앞에서 춥디추운 캐나다 밑동네로 여행을 온 이유는,
[5년 만에 인터넷 친구(을)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리그 오브 레전드, 오버워치, 팔라딘스, 배틀라이트 같은 속칭 '인싸게임'을 가끔 같이하던 미국인 친구입니다. 아마 맨 처음이 워크래프트3 유즈맵을 하다가 만났나 그랬고, 곧 펜팔같이 메시지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한 일 년쯤 전부터는 심심하면 서로 영상통화도 하고, 재미있는 걸 인터넷에서 찾으면 링크를 돌릴 정도로 친근했지만 사실 한 번도 직접 본 적은 없었습니다.
저야 이제 군대를 다녀온 한국인이고, 그 친구야 미국 북방에 거주하는 토박이니까요.
[미니애폴리스는 인싸들의 도시입니다.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규모의 쇼핑몰이 있습니다.] 심지어 안에 니켈로디언 놀이기구가 있어요.
우와, 미니애폴리스-세인트폴 국제공항에 내리자마자 바로 그 유명한 쇼핑몰 "몰 오브 아메리카 (Mall of America)"를 구경시켜준다고 가서, 오후 5시에 하루 두 번째 끼니 (즉 "점심")을 감자튀김도 없는 햄버거 하나만 시켜 먹는 친구를, 흰 마요네즈가 묻은 얼굴로 쳐다보며, '이 친구는 '진짜'다!'라고 감이 왔습니다. 심지어 음료수도 코카콜라도 펩시도 아니고 게이머의 소울, 마운틴 듀를 리필해서 마시는 것을 보면서 감탄했습니다!
[그리고서는 친구가 말하길: "'몰 오브 아메리카'는 쩔어. 포켓몬스터 고를 하기에 너무 좋아.] 포켓스탑이 엄청 많아. 포켓몬스터 고 이벤트도 자주 하고."
오늘은 그날 이후, 두 번째 날입니다. 친구는 저를 근처 쇼핑몰에 내려놓고 또 다른 근처 쇼핑몰에 출근하러 갔습니다. 다행이네요. 도서관이랑 서점이 근처에 있어서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저녁 늦게까지 있었습니다. 추운 바람이 부는 미네소타는 따뜻한 난방이 있는 도서관에서 뜻깊은 독서를 하기 좋은 동네입니다.
친구네 집에 도착하니 9시. 오다가 주유소 편의점에서 사 온 몬스터 에너지 드링크를 깠습니다. 그리고는 반년 전부터 만나서 틀기로 예정되어있던 바로 그 영화를, "부두(Vudu, 월마트에서 서비스하는 스트리밍 사이트)"로 틀었습니다.
[플레이어 1번, 준비하세요.]
일단 이 영화를 컴퓨터 모니터로 가정집에서 봤다는 것이 정말 좋았습니다. 이야기는 정말 더 이상 진부할 수 없을 정도로 뻔하고 예측 가능합니다.
한 가상현실 게임, 그것도 대규모 온라인게임이 크게 성공한 시대. 이미 세상을 떠난 제작자가 서버에 숨겨둔 아주 강력한 보물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건 심지어 몇 명만 아는 비밀도 아닙니다. 제작자는 그걸 세상에 다 크게 공개하고 숨졌지요. 물론 작품이 시작되었으니, 한 명의 주인공이, 아직 현실에서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미성숙한 소년이지만, 친구들과 사랑과 우정의 힘을 깨닫고, 마침내 최후의 승자가 되리라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으아 스포일러! ^~^)
[아무리 관심이 없어도 영화와 비슷한 줄거리 가진 요즘 작품을 하나도 모르기는 힘듭니다.]
제가 태어났을 때, 세상에는 이미 TV 애니메이션이 존재했습니다. 애들보고 보라고 존재하고 있었지요. "레카", "구슬동자", "부메랑파이터", "탑블레이드", "포켓몬", "디지몬 어드벤처", "이누야샤" 저는 정말 이런 이야기를 좋아했습니다.
철부지 꼬마가 세상에서 찾아낼 자기 위치가 있다고 말해주는 작품들이요. 악당들아 기다려라, 이 작품의 주인공은 절대 지지 않아! 역경의 끝에서, 결국 7세 이용가의 7세 꼬마, 12세 이용가 12세 소년은 세상의 인정을 받고 끝나지요, 세상을 구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짜식, 쓸 때가 있고. 뭔가 이루는 게 있구나"라는 마을 사람들의 인정이 더 중요하지요.
[이 얼마나 보기 좋은 광경입니까.]
그런데 부모님 속을 썩이는 것밖에 모르는 요즘 10대 초반의 아이가, 21세기에 세상을 악의 세력으로부터 구할 수도 없으니, '세상에서 자기 자리 찾아가기'는 사실 좀 더 다른 방법으로 빠르게 깨닫게 된다고 봐요.
[바로 "컴퓨터 게임"입니다.]
지금 아직 대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제가 지금 가정과 사회의 훌륭한 일원으로 자리 잡았는지, 하늘을 우러러보고 질문을 가지면 부모님께 부끄러운 마음뿐입니다만, 지금은 다 까먹었을지언정, "붉은보석", "다크에덴", "얍카", "군주 온라인", "트릭스터", "마스터 오브 판타지 (판마 아닙니다!)" 그때 그 서버로 돌아가면, 정말 1인분 이상을 보여드릴 수 있는 기량과 아이디가 있었습니다.
"서든어택"은 정말 못했지만, "카르마 온라인 (미래전)", "울프팀", "오퍼레이션7"은 데스매치하며 손맛까지 느껴봤지요. "월드 오브 워십",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Z...)", "엘소드" 정도는 지금도 편안하게 즐길 수는 있는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떤 게임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는 것은, 머리 한구석에는 그 게임 세계에 필요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 남자가 게임 세계에서 살아남는 방법: (게임 속에서) 무술을 연마한다.]
예를 들어, 대략적인 국민템 시세라던가, 게임내부 화폐 및 경험치를 파밍할 방법, 상대 캐릭터 약점 부위, 스킬 패치노트, 커뮤니티에서 유명한 농담 (밈/드립), 인맥, 개발/패치 주기 및 방향 등등 말입니다.
게임이라고 다 같은 게임이 아니기도 합니다. 제가 기억하는 제 성장기는 RTS가 흥하면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온라인 RPG 게임에서 직업 패치노트 하나에 수많은 사람들이 탄식하고, 서로 싸우듯이, RTS에서 진영 하나가 조금이라도 개발사가 건드는 날에는 암호문이 새로 바뀐 스파이 같은 신세가 되었습니다. 뭔가를 외우는데, 다른 사람은 알 필요도 없고, 알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신세 말이에요. 마치 세상을 향해 서서히 죽어가는 원시 부족의 기도문 같은 신세요.
[한솔아, 너는 디지털 세계를 구해! 나는 내 패치노트의 평화를 지켜야겠어!]
제가 친구들과 RTS 팀플레이를 참 좋아했는데요. 전부 패치따라 올인조합 날빌을 좋아하는 괴상한 녀석이었습니다. (한국인이 없으면 가레나, IRC등으로 외국인들과 했는데, 지금도 어떻게 했는지 도통 감조차 오지 않네요.)
던 오브 워 1은 임페리얼 가드 진영으로 패스트 카르스킨 테크, 즉처 중첩 연사뽕맛과 바실리스크 어스쉐이커로 본진 테러, 센티넬로 점령지 갉아먹기로 졸렬의 극치를 보여줬고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는 영국 브랜브랜브랜 로열 아틸러리 건물 테러나 미-보병-(오프맵)레인저-파이어업 바주카 테러에, 독일군으로는 항상 방독-좀국척-손만 우주방어, 근데 네펠베르퍼가 성능보다 너무 멋있어서 많이 만드는 바람에, MG나 PAK 1~2개 모자라서 본진이 밀리기도 했지요. 그러면 판엘하던 절친한 친구가 기척 5분대씩 뭉쳐돌려 구멍을 막다, 피곤해서 짜증을 냈습니다. 항상요. 크크크....
여러분도 이런 [게임]>[기타]에 해당하는 지나간 그런 것들 있지 않으신가요? 그 던전, 그 아이템, 그 파티원, 그 조합, 그 카드, 그 종족, 그 사건, 그 패치...
버스 라디오에서 가끔 들리는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처럼, 이런 것을 기록하고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조금씩 잊혀집니다. 분명 믹스마스터, 디지몬알피지, 스톤에이지 펫 조합 다 알았을텐데, 기억이 나지 않네요. 빅뱅 패치 이전의 메이플이 잘 기억나지 않으려고 해요.
[욕설 주의 ("X"이 가사에 한 번 등장합니다.)] [아쉬웠던 연애, 영화 제목, 컴퓨터 게임 이름, 들어본 음악이 가사인 "사랑은 재방송"을 들었을 때 울컥했거든요.]
저는 제가 세상을 걸어 다니는 것을 포기하고, 한 우물을 파고 처박힌 것을 택한 외톨이일지도 모른다고 걱정하기도 했지요. 사실 제가 지나온 세상은 결코 외로운 세상이 아니었는데도 말이에요. 어떻게 보면 참 뻔한 세상이죠? 아니 하다못해, 그 시절에는 좋아하는 플래시 게임 하나씩 있으셨잖아요. 읽으시는 분도 저랑 같은 걸 좋아하실지도 몰라요.
레디 플레이어 원도 참 아쉬운 점이 많고, 결말도 아쉽고, 그 와중에 또 영화가 끝난 게 아쉬운 복잡미묘한 작품이었지만, "사랑은 재방송"을 처음 들었을 때, 세상이 저에게 넓어지는 느낌을 다시 받은 것 같아서 너무 좋았어요. 이 노래의 끝부분은 "Kiss"라는 단어를 반복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어떤 것에 대한 사랑, 저만 하는 것 아니잖아요?
그래서 저는 이런 주제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한번 챙겨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킹콩, 고질라를 보니까 너무 좋아요. 트레이서랑 레이너가 나와줘서 고마워요.
사실 스토리도 보면, 대기업 사장님의 인싸짓 VS. 겜쟁이 파밍/모험꾼들의 서버지키기잖아요? 가상현실게임 서버가 뭐 그리 중요하다고, 현실의 대기업이 기업의 사활을 걸고 가상세계에 과투자를 하냐, 무슨 현피를 뜨자고 현실에서 해코지를 하고 그러냐는 '의구심'이 드신다면,
["유희왕"을 열심히 보지 않을 수 있던 세대셨군요. "어이, 듀--얼하자".]
세상의 대기업들이, 요즘 IP를 엮어냅니다. 자기회사 작품들의 '올스타'를 추구해요. 아니 오히려 다른 회사하고도 규격이 맞다 싶으면 한번 섞어보기까지도 하지요. 이제 어떤 시리즈의 상징이 잠시 다른 곳에서 얼굴을 비추면, 모두가 열광하는 21세기가 왔습니다. 이 영화는 이런 세상이 좋다고 말해주려고 하네요.
저는 이 영화가 이 바닥에서 흔한 '패러디'가 아니라는 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자본이 저를 인정해주네요. 그 문화산업의 사장님들이 저를 인정해주네요. 마치 어릴 적에 소년이 마지막 화에 마을에 돌아오듯이요.
마블 영화도 비슷할 테지만 솔직히,막 그 만화책 자체가 제 어린 시절은 아니라서, 이런 느낌은 못 받았거든요. 그런데 이 영화는 정말, 뭐 제가 나이가 많지도 않은데, 그 앞선 시간을 인정해주네요.
만화를 본 시간, 게임을 한 시간, 그 모든 '공부'와 '세상 짓기'는 헛된 것이 아니었다고. 솔직히 대신 공부를 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솔직히 딴짓은 어떻게든 했을 거에요.
요즘에는 세상이 좋아져서 "애들 만화"를 보기 쉬어진 것도 너무나도 맘에 들어요. 아직도 이런 흔한 주제의식을 전달하려는 만화들이 계속 나온다는 것이 참 대단하지 않나요? (합작이지만) 국산인, "레이디버그", "몬카트", "런닝맨"은 유튜브에 공개되어있습니다. 외국은 한국보다 합법 스트리밍이, 애니메이션은 또 따로 잘 구축되어있어서, 지나간 시리즈인 "슈팅 바쿠간", "베이블레이드", "이니즈마 일레븐"을 찾아보는 맛이 좋네요.
[사랑과 우정의 힘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스포츠 경기가 악당에게 빼앗기지 않게 싸우는 흔한 모습이, 너무 좋습니다.]
혹시나 레디 플레이어 원을 보시고 아쉬우셨거나, 보고 싶으시지만 평가가 자꾸 아쉽다고 해서, 보기 꺼려지시는 분에게는, "스콧 필그림 VS. 더 월드 (Scott Pilgrim VS. The World)"이라는 2010년 영화를 강력추천합니다. 인싸 영화관 대중들에게 맞춰줄 생각이 전혀 없는 진한 국물 맛을 느껴볼 수 있습니다.
[제 한줄평은 "흥행을 못 한 것이 너무나도 아쉬운 영화이면서, 왜 흥행을 못 했는지 알 것 같은 반-인싸 영화!"]
흰 눈이 가득한 캐나다를 배경으로, 한 롹커 지망생은 사랑하는 그녀를 만나고, 그녀를 얻기 위해서는 어떤 게임대회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물론 스콧 필그림은 성공하겠지요. 하하! 하지만 정말 '뜬금없는 사건'을 마구 집어던지는 이야기를 소화시키는 화려한 연출력, 선을 넘는 패러디와 오마주로 가득합니다. 레디 플레이어 원을 보신다면 정말 영화가 비슷하면서 다르다 싶으실 거에요.
그럼 이만 물러나 보겠습니다. 미네소타는 정말 좋은 동네입니다. 3일 차가 기대되네요. 친구와 크리스마스를 준비해야겠네요. 눈도 치우고, 흐흐...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도 주인공 레일리가 그러잖아요.
["미네소타가 그리워요." "나는 캘리포니아가 싫어요."] 크크크크크....
여러분, 인연이 있는 크리스마스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설마 제가 이렇게 지나간 만화/게임 꼼꼼히 적어놓고 가는데 인연을 안 주시는 것은 아니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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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중간에 작가가 작붕이 와서 온갖 밈만 두서없이 막 쑤셔넣다가 분량만 잡아먹은게 많죠. 연재될때도 독자들한테 욕 많이 먹었다는...차라리 영화가 낫습니다.
가상현실배경 소설은 우리나라 소설이 올타임 넘버원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옥스타칼니스의 아이들. 이 소설 할리우드에서 한번 영화화해주면 좋겠네요. 장르문학 역대급 떡밥회수신이 있어서... 대박날것 같은데
어후 제가 레디 플레이어원을 보면서 느낀 행복감의 원천이 뭔지 콕 짚어주셨네요.
여친이랑 같이 봤는데, 여친은 눈이 즐겁고 신기해서 좋아했다면 (다른거 하나도 모르는데 건담은 알더군요 흐흐)
저는 지금까지 살아온 겜돌이 인생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그것또한 진한 추억이며 나아가 인생의 일부이고 세계의 일부라는 메세지를 받은 듯한 느낌이었다고 할수 있겠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