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성(性)이 아니다]
치열하고 맛난 투기장 하나를 기대하며 들어와보셨을 많은 분들께, 심심한 사과의 말을 전하고 싶다.
.
대학교 재학 시절, 교수님들은 명부를 보고 쭈르륵 출석을 부르시고, 그걸 가지고 점수를 매기곤 하셨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다. 나는 가나다순에서 항상 빨랐다. 성 때문이다. 내가 다니는 학과도 빨랐다. 첫 글자 때문에. 웃긴 건, 나중에 이중전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내 소속학과는 항상 입학한 본전공으로만 적더라는 것이다. 아니 그렇게 하는게 맞겠지. 뭐 하여튼간에.
물론 대다수, 아니 99%의 경우에는 그다지 문제거리도 아니었다. 어차피 출석 부르는 동안에 들어가면 체크해주신다. 아니 그게 아니더라도 수업 끝나고 말하면 됨. 아니 그걸 못해도 한 번 그렇게 되는 거 뭐가 대수임?
그리고 나는 지각을 잘한다. 일찍 일어나는 벌레가 잡아먹히고, 지각하는 벌레는 간발의 차로 살아난다는 게 나의 신념이라서 그렇다. 돈 받고 다니는 곳도 가끔은 5분,10분씩 늦는데, 돈 주고 다니는 학교를 그렇게 꼬박꼬박 다녀야 합니까?
진짜로 문제가 돼었던 것은, 진로 문제가 해결되고 복학해서 마지막 학기를 다닐 때였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놀려고 복학했다. 대략 한가하지만 뭔가 많이 해야할 것 같고, 살짝 뿌듯하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하루하루 돌아오지 못할 청춘을 소비하는 듯한 심정? 학교는 졸업만 무사히 치러내면 끝인데, 가장 큰 문제는 해결을 봤는데, 그 탓에 한없이 게을러지는 상황. 바로 그 시기에, 성차별의 희생양이 되었던 것이다. 이 내가.
전공수업을 들어야했다. 학점은 꽤 많이 남아있었고, 특히 전공학점이 비어있더라. 과거의 나를 줘패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뭐 어때. 그 때까지 일말의 위기감도 없었다. 원래 전공이라는 게 듣다보면 학점 이수를 위해 별의 별 강의를 다 듣게 마련이다. 학점을 다 채워넣다보니, 1교시를 넣게 되었다. 사실 저녁에 강의를 들으면 1교시는 뺄 수 있었지만, 놀려고 복학했는데 저녁에 캠퍼스 강의실에 있다니.. 당신이라면 그럴 수 있었겠습니까?
4학년은 수강신청이 대단히 쉽다.
그러나 수강한 걸 듣기가 어렵다.
그리고 수강정정이 없다.
월수 1교시 강의가 있었다. 교수님은 대단히 학구적이시며 전문성이 넘치시고 나이는 지긋한 분이셨다. 자로 잰 듯한 생활을 영위하시는 분이지만, 강의 때 출석은 부르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있는 분이셨다.
근데 갑자기 그 학기에 부르셨다. 아니? OT 때 출석 점수가 있다는 것은 확인했으나 이전에도 그 점수는 있었는데 그냥 다 줬다고 하더라.
네 번째 수업시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출석을 부르셨다. 아니? 그 게임사가 싫어하는 대처할 수 없는 방식의 강력함? 그리고 원체 자로 잰 듯한 분이셔서 그런지, 출석도 매 강의시간 시작 정각에부르셨다. 그리고 이름 순이었던 당시 명부에서 나는 이름도 참 일찍 부르고 싶은 이름이었기에 당당히 2번 타자. 참고로 자기가 이름을 불렀을 때 약 2초 이내에 대답이 나오지 않으면 일단 그으며, 안 부르셨습니다!는 지각이었다. 아직도 궁금한 건, 보통 출석을 부르면 학번도 같이 감안해서 학번 + 가나다인데 요상하게도 보자마자 슨배임 소리가 절로 나오는 분들이 내 뒤에 불렸다. 가나다신봉자 교수님.
1번 타자는 얼굴은 모르고 목소리가 중후한 분이었는데, 약 1개월 후쯤인가 하여간에 잘은 기억 안 나지만 그쯤 전후해서 자체종강을 하시고 더 이상 나오지 않으셨다.
교수님의 폴리시는 2회 결석까지 감점이요, 그 이상은 F이며 지각 2개는 결석 1개와 세미하다는 것이었다. 이걸 듣자마자 나는 온몸에 소름이 쭉 돋아, 심기가 대단히 편치 않았다. 아니 그럼 결국 지각 6개를 하는 순간 나의 졸업은 물건너간다는 것입니까? 그럼 그 직후 시작하는 나의 사회생활은 어떻게 됩니까? 게다가 5개도 안심할 수 없었다. 이 교수님이라면 어떻게 처리할지 알 수 없다는 예감이 들었다.
졸업반 학생들 특유의 '싸바싸바?' 차라리 총장님께 건의를 하지 이 교수님께는 그런 거 할 수가 없다.
아니 학교를 다니면서 이렇게 빡센 출석정책을 하필이면 가장 민감한 순간에 맞닥뜨리다니, 아니 도대체 뭐 이런 빡센 수업이 있담? 점수를 까는 거야 그렇다지만 자동 f라니, 아니 그리고 지각은 따로 처리!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이거 안 들었다! 차라리 학점 짜기로 유명한 다른 교수님 수업 듣고서 D 받았을거다!
솔직히 처음에는, 에이 설마 결석이 없음 됐지 지각 가지고 F 줌? 졸업학기인데? 생각했지만 중간고사와 퀴즈를 거치며 나의 생각은 달라졌다. 이 교수님, 진짜다.
그 이후로 나는 땡땡이는 꿈도 못 꿔보고 1시간씩 걸리는 통학길을 미리 가서, 강의실 앞 쇼파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각은 하나 둘 늘어났다. 모닝똥은 사치였고 아침밥은 꿈도 못 꾸는 걸 넘어서서 꿈에 나오면 보통 악몽이었다. 아직까지 학교에 남아있던 자취하는 친구에게 모종의 제안은 해 보았으나, 그 떄는 자기가 쳐자는데 뭘 어떻게 하냐는 말을 들었다.
그 녀석의 자취방을 몇 번 빌리긴 했는데, 걔도 더럽다고 생각했겠지만 나도 못할 일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그래도 코가 깨질 날에는 지각하게 되더라.
전날 술자리,데이트,LOL, 야심한 밤의 핸드폰 등등을 최대한 피했으나, 4가지 모두 솔직히 살다보면 완벽하게 통제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게다가 그 당시의 나는 진로를 위해 즐기지 못하는 생활을 거의 근 2년 이상 해왔던 상황임을 감안해야 한다. 하여간에. 그런 날들은 오히려 밤을 새서 학교에 가는 걸 택하곤 했는데, 웃긴 게 들어가려고 보니 문이 안 열리길래 잠깐 앉아있다가 졸아서 지각참사를 맞게된 날이 있었다. 차라리 교수님이 지나가시다 보셨더라면..
아 그리고 정말 살다살다 거의 보질 못했던 지하철 연착이 또 한 번 있었던 듯..? 나참, 세상이란 게. 뭐 내가 차가 없는 게 잘못, 아니 행운이었겠지 1교시인데...
솔직히 다른 방법도 생각은 해 보았지만, 나의 윤리의식, 그리고 그런 수작을 부렸다가 이 교수님이라면 정말로 내 졸업을 파토낼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나를 막았다.
정말 아직도 억울한 게, 그렇게 지각을 하는 동안 지각다운 지각은 1번인가밖에 해 보지 못한 점이었다. 늦으려면 남자답게 반쯤 째고 들어갔어야 하는데.
내가 들어가면 항상 특권을 가진 그 성씨들이 이름을 불리고 있더라. 아니 이렇게 불공평할 수가. 차,최,추,홍,한 따위로 시작하는 성을 물려받은 것이 왕후장상이요, 나는 단지 가나다순으로 나열했을 때 빠른 성을 물려받은 것이 천하고 상스럽다는 것인가? 같은 학교, 같은 수업 그러나 결승선은 달랐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 막 뛰어가는 나를 등뒤에서 비웃으며 여유롭게 걷는 음서출신 귀족들이 있었을 것이다. '낄낄 쟤 좀 봐. 어차피 뛰어봤자 쟤 순서면 늦었을 텐데 울면서 뛰고있어 크크"
[결과적으로 나는 '그 성씨'들이라면 1번쯤 했을 지각을, 5번을 하게 됐다. 기울어진 운동장의 경사 위에서 구르고 굴러 처박힌 경계석이 되어버린 것이다.]
[3루에서 태어난 사람은 자신이 3루타를 쳤다고 생각한다는 말이 있다. 맨 마지막에 불리는 사람도, 아마도 여유있게 강의실을 한번 둘러보고 착석하며, 그 부조리함을 1도 깨닫지 못할 것이다]
결과적으로야 잘 졸업했다. 만약 정말로 졸업을 하지 못했다면, 나는 지금쯤 사회에 대한 분노와 조상에 대한 분노가 합쳐져, 마치 이영도 소설에 나오는 시우쇠마냥 나와 내 주변을 모두 불태우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고서 아마 PGR에서 주로 의미없는 키배와 저질스러운 비꼬기와 질척질척한 저격을 계속 일삼다가 주기적으로 강등당하는 신세였을 것이다. 나의 무사 졸업 덕분에, 피지알 똥성애자분들도 수고를 하나 덜어낸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도 나는, 가끔 오줌색으로 물든 노을을 보며, 출석부가 학번,성씨에 구애받지 않고 만인이 평등하게 불리움당하는 세상을 꿈꿔본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졸업 직전 마지막 학기는 3학점 정도는 여유로 한과목 더 신청해 놓는게 좋습니다.
예상못한 이유로 수업 하나가 뭔가 뒤틀려도 과감히 손절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니까 말입니다.
어차피 졸업이니까 장학금 혜택을 받을 일도 없어서 한 과목 손절해서 F 받아도 크게 부담되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안전한 졸업을 위해서 일주일 세시간 정도 투자하는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텐데도, 이걸 간과하다가 곤란한 상황에 빠지는 경우는 참 안타깝더군요.
제가 나온 학교의 미생물학 수업교수님 수업은 조교형이 뒤에서 지정좌석을 확인하고 정시에 교수님이 수업을 시작하셨죠 지각 체크는 조교형이 해버리고 이러니까 아무도 진지하게 불만을 못올리고 시험과 레포트도 본인이름이 아닌 ID같은걸로 올리고 그 점수를 공개하곤 했죠 불만은 그걸 보고 하는걸로...
진지하게 모두가 빡세고 토나오는데 좋아한 수업이었습니다
대학에서 출석부르는 것 만큼 바보같은 짓거리 없다고 생각합니다.
시험쳐서 확인되면 성적이 나가는 겁니다. 출석을 성적에 반영하는 교수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시험 문제가 별로라는 겁니다. 출석을 하지 않으면 풀 수 없는 문제로
충분히 반영이 됩니다. 필기자료 달달 외운 것으로 문제를 내니까 출석을 챙기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