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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30 03:00
중국이 당시 전세계 GDP의 1/2을 차지하던 시절이군요. 심지어 석탄까지 널리 활용되었으니. 인건비가 조금만 비쌌어도 산업혁명이 일어날 기세였는데....
아 X발 몽골. 진짜 로마제국의 오파츠스러움을 생각하면 13세기에 아시아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어도 전혀 이상할게 없었는데 말이지요.
18/11/30 09:26
전 좀 다르게 생각하는게
송대에 자본주의 터지고 산업혁명 일어났으면 조선은 영국-아일랜드나 미국-멕시코 관계처럼 직접, 혹은 경제적 식민지가 되었을거 같아요. 아무리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자본주의가 해온게 그런것들이라....
18/11/30 09:35
송대에 석탄을 사용하고 여러 기계장치들이 만들어졌습니다만
그 유물들이 몽골맨과 홍위맨들에게 영영 사라져 버렸죠. 근데 중국은 기계로 할 일을 인민들이 해버리던 나라라 영국이 방직기로 대량생산하던 면직물이 청나라 가내수공업 면직물의 가격경쟁력에서 밀려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었습니다.
18/11/30 10:53
중국쪽에서 많이 나오는 의견입니다.
학계 주류 의견은 산업혁명은 단순히 석탄을 쓰거나, 생산력이 증대됐다고 나온 게 아니기 때문에 송대에 산업혁명은 무리다 정도..
18/11/30 08:17
테이크아웃 차(茶)에 택시 비슷했을 인력거 서비스에 버스킹(?) 공연까지 지금 있는 것들 중 웬만한 것은 다 있네요. 좋은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18/11/30 09:31
등불을 사용했습니다. 본문에도 나와 있지만 일개 주점들 하나하나가 다 등불 정도는 기본으로 가지고 있어서 밤은 물론이고 어스름한 새벽에도 등불을 키고 새벽에 일찍 거리로 나오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팔았습니다.
18/11/30 09:22
몽골놈이 말아먹은 문명의 기반을 생각하면 정말 갈아마셔도 시원찮죠. 일제보다도 2배 악랄한 놈들이었는데. 그냥 워낙 옛날이라 묻히는 것뿐.
18/11/30 12:26
몽골제국의 최초 정복시기의 잔인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직접 지배하는 영역에서는 그랬습니다.
(고려의 대몽골 항쟁기를 이야기 하신다면 일제보다 가혹한건 인정하는데, 그건 전쟁이었으니까 비교대상이 아니라고 봅니다. 몽골의 속국이 된 이후에는 고려왕들이 수탈의 직접정범이라서 몽골탓만 하기도 어렵죠.) 원제국 때로 접어들어 대도시의 풍경은 본문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중국의 문물과 아랍권 나아가 서양의 문물이 빈번하게 교류된 덕분에 더 융성했다고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몽골의 지배는 동서양교류의 물꼬를 열었고 그결과 근대화의 길이 뚫렸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동서양의 역사학자들이 뽑은 11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위인중 가장 중요한 인물 순위에서 징키즈칸이 압도적 1위를 하는 이유도 그러한 평가에 기초하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문명의 기반을 말아먹은 자는 주원장입니다. 교류는 발전의 어머니이고 쇄국은 망국의 첩경입니다. 명의 중화사상에 기초한 세계질서 정립으로 중국이 몰락한 것이지요.
18/11/30 10:30
남경이 작살난거면 몰라도 개봉의 영화가 끝난건
몽골이랑 관련이 1도 없죠 개봉이 금에게 함락당한게 1126년인데 칭키스칸 아버지인 예수게이가 아직 태어나기도 전입니다 그 대단한 경제력과는 별개로 나름 괜찮은 군주였다는 태종, 인종시절에도 요, 서하에 먼저 공격을 들어가고도 실패해서 굴욕적인 강화를 맺었고 금에게 나라 반토막나기 전에도 이미 여기에 바치는 조공이 슬슬 나라 재정에 압박을 주고 있었습니다 방랍같은 대규모 반란도 일어났고 수호전의 배경도 이 시절이고 삼협오의의 포청천은 허구언날 탐관오리를 모가지 댕강하던 시절이죠
18/11/30 16:50
좋은 댓글이네요.
근데 정강의 변 이후에도 개봉은 꽤 큰 도시 아니었나요? 금 말기 몽골의 압박을 받자 연경에서 개봉으로 천도했었고, 결국 거기서 금이 망했으니까요.
18/11/30 17:17
컸긴 했을텐데 본문의 모습은 아니었을겁니다
대신 남경이 엄청 번화했죠 세계 gdp의 절반을 차지했다는게 북송이 아니라 남송 시절일겁니다
18/11/30 11:10
항상 좋은 글 잘 읽습니다. 근데 송나라의 경제력이란게, 뭐 커브를 타면 계속 더 흥성하기야 하겠지만 처음 모멘텀이 돼었던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군요.
18/11/30 12:08
수당 시절 이뤄진 양쯔강 이남 개발이죠. 수양제가 만든 대운하가 나라를 말아먹긴 했지만 장기적으로는 강남으로의 물류와 인구이동을 촉진시키며 발전의 기폭제가 되었죠. 당 현종 시기에 이르러선 전통적인 중국의 중심 화북일대와 함께 중국의 경제력을 책임지는 양대 축이었습니다. 안사의 난으로 화북 일대가 초토화되고는 실질적으로 중국을 책임지는 지역이었고, 송나라 건국 이후 만개하여 항저우와 수저우가 풍년이면 천하가 족하다는 표현까지 등장할 만큼 풍요로운 땅이 되죠. 남송이 몽골에 40년 간 항전한 까닭도 강남 일대를 점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뿜어내는 엄청난 경제력이 몽골의 침공도 견딜만큼 대단했다는 반증이죠.
18/11/30 12:18
더 무서운 건 송대는 양쯔강 하류의 개발이 완료되었다 정도고, 시간이 지날수록 중상류로 농업지대가 이동하게 됩니다. 하류 일대는 상품 작물 재배로의 전환을 이뤄냈고 송대에도, 청대에도 여전히 중국의 경제 특구 노릇을 했죠.
18/11/30 13:19
저 때는 심지어 기후도 지금보다 따뜻한 편이라 온갖 과일, 화초 재배도 편했죠. 진짜 5호 16국으로 그렇게 개판이었는데도 태조, 태종 2대만 안정시키니 폭발하는 생산력을 보면 중국의 힘은 무시무시할 따름입니다. 망할 문혁만 아니었어도 저런 묘사자료 10배는 더 있었을텐데..
18/11/30 13:43
북송 전성기의 개봉이나 동로마 전성기의 콘스탄티노플은 정말 타임머신이 있다면 가서 보고 싶은 곳들입니다.
천년 전에 저렇게 상업이 발달하고 인구가 몰린 도시들이 있었다는 게...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융성한 옛 도시를 보는 듯한 느낌이랄지...
18/12/02 17:15
10~15년 정도 지나면 실제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의 느낌으로 VR로 탐험할 수 있을꺼라 생각됩니다. 건강과 돈을 챙기며 존버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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