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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27 15:32
친영파의 의견도 궁금하네요.
이거 분명 당시 러시아 대세였을 친영파 겨냥한 문건 같은데 말이지요... 친영파들이 이런 사실을 몰라서 영국과 친했다기 보다는, 그들의 노림수가 다른 곳에 있었을 것 같습니다. 별개로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18/11/27 15:36
이건 뭐 타임머신 타고 갔다온 다음에 썼다해도 과언이 아닌 정도...
다만, 지나치게 영독관계에 집중해 서술한 감은 있네요. 결국 로시아의 당시 이해관계가 발칸에 쏠려있었다는 점은 좀 간과한 듯. 이게 오스트리아와 끊임없는 갈등의 원인이 되었고, 나아가 오스트리아 배후의 독일과도 긴장요소였으며, 비스마르크가 살아있던 시절에도 오스트리아와 로시아사이의 이해관계 조정이 비스마르크 정권의 가장 큰 과제중 하나였는디. 그 때문에 반대로 독일측에서는 로시아에 대한 예방전쟁이 끊임없는 화두였는데 말이죠. 대개 자국은 피해자이고 다른 나라를 가해자로 설정하는 것은 흔히 벌어지는 일이긴 하지만서두. 사실 그래서 제가 잘 모르면서 궁금한 부분은 어떻게 러일전쟁직전까지는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던 영러간 관계가 갑작스레 협상으로 전환되었는지 이긴 합니다. 러일전쟁에 패하고 영국과 협상했다, 라기엔 그 동안의 관계도 그렇고 서로 정리할 게 많을텐데 갑작스럽게 손잡고 독일하고 대항했다, 라니 무무슨. 그런 점에서 보자면 윗 문단과 결부해 볼 때, 로시아는 영국과도 독일과도 심각한 이해관계충돌과 상호위협을 지니고 있었는데... 일단 러일전쟁에서 패함으로서 남하정책은 전 전선에서 좌절되었고, 그로 인해 영국과의 이해관계충돌은 끝났죠. 반대로, 발칸 오스트리아 문제로 독일과의 이해관계 충돌은 지속되었고. 이런 상황에서 로시아가 자국의 입장만으로 중립정책등을 표방할 경우, 예방전쟁을 넘어 생활공간 문제(단지 히틀러 시절에 처음 나온 문제가 아닌)때문에 독일의 위협에 홀로 맞서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었다는 점이 문제겠죠. 물론 그 떄문에 프랑스와의 협상이 있었던거긴 하지만, 영국의 개입없이 프랑스와의 협력만을 믿는다는 것은, 불안하기에, 독일로부터 세 나라 영프러 모두가 위협받고 있다는 점이 협상구성의 원인이 되었다고는 볼 수 있겠습니다만. 독일이 바다를 향하고 있다고 하지만, 구체적으로 독일인의 생활공간은 동방에서 구하려고 했다는 점이 간과된 것은 좀 아쉬운 분석이지 않나 싶네요. 물론 이거야 진짜 미래인의 입장에서 쓰는 이야기지만.
18/11/27 16:01
와 이거 물어봐주시는 분이 있네요 후후~
https://namu.wiki/w/%EC%95%A0%EA%B5%AD%EC%A0%84%EB%8C%80%20%EB%8C%80%EC%9D%BC%EB%B3%B8 이런 노래가 있어요. 제목과는 달리, 일본의 군국주의를 패러디하는 노래인데, 저 노래의 시작부분 가사가 만약에 일본이 약해진다면 러시아가 다짜고짜 쳐들어올거야~ 인데 여기서 일본 특유의 외래어 발음때문에 러시아를 로시아라고 발음하거든요. 그 발음이 재밌어서 로시아라고 부릅니다^^ 로시아가 다치마치 세메테쿠루~
18/11/27 19:23
일본어 로시아는 러시아어 Россия(Rossiya)를 가타카나로, 한국어 러시아는 영어 Russia를 한글로 표기한거라 이 경우는 일본어 쪽이 원어에 더 가까워요.
18/11/27 15:37
토인비가 그의 저서에서 제정러시아 상황을 적으며 저보고서를 언급한걸로 아는데
토인비자신이 적었지만 제정러시아의 썩어빠진 왕족,귀족나부랭이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순박한 러시아 농민을 수탈하는 능력외에는 오직 먹고 마시며 오입질하는것 외에는 관심이 없었다 식으로 아주 극렬히 힐난했던걸로 기억합니다
18/11/27 15:38
[이탈리아는, 만약 그 나라가 자기나라의 국익을 이해하고 있다면, 독일 편에 서지 않을 것이다.]
예측을 잘못한건지... 아니면 예측을 잘했는데 이탈리아가 바보라서 자폭을 한건지... 둘중에 하나겠네요.
18/11/27 21:28
이탈리아가 전쟁 전까진 독일과 함께하는 삼국 동맹을 맺었는데,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동맹쪽 참전을 거부하고 간보다가 오히려 중간에 연합국쪽으로 참전했지요.
하지만 오스트리아 욕심내서 쳐들어갔다가 독일에게 털려서 전쟁중엔 큰 소득이 없던 걸로....
18/11/27 15:40
https://en.wikipedia.org/wiki/Pyotr_Durnovo
자연사한 마지막 러시아 제국 내무부장관이었다는 대목이 인상적이네요;;
18/11/27 15:40
이하생략 아랫부분이 추가된거 같은데 맞나요? 내가 헛봤나...
독일과 협력하려면 발칸문제가 정리되어야 한다는 전제를 간과했다는 점에서, 중간까지 좋은데 마지막이 좀 문제가 된 글이라고는 볼 수 있겠습니다. 갈등이 없는 영국과 맞서기 위해 갈등이 있는 독일과 협력해야 한다, 라고 한다면 좀 문제가 있죠. 여러 날카로운 부분이 있음에도, 결국 근원적인 대립선을 잘못 파악한 글이라고 봅니다. 오스트리아가 마이너 열강이었다 하더라도, 열강은 열강인데, 오스트리아를 없는 것인양 썼다는 점은 문제가 좀 있네요. 아무리 초강국들이 중요하다해도, 그 아랫국가들도 나름의 입장과 이해관계를 갖고 있고, 인력이란건 항상 만유하다는 점은 중요하죠.
18/11/27 16:09
굳이 첨언해보자믄, 로시아에도 당연히 노선갈등이 있고 친독파와 친영파가 있었을건디, 이 글은 친독파가 쓴 글이라고 볼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18/11/27 16:21
원문에는 발칸에 대한 이야기도 좀 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발칸반도에 대한 러시아,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와의 이해관계가 좀 언급되는데 어쨌든 중요한 요지는 영국과의 협력이 러시아에 이득이 되지 않는다는 보고서입니다. 발칸 문제를 포함하더라도...
18/11/27 16:53
이방인의 언어를 배우는 것은 매국의 길이죠!
사실 나름 유명한 보고서라 양키형들 사이에선 꽤 돌아다녔습니다. 밀덕들 중엔 전문 읽어본 분도 꽤 있을 거에요. 그리고 원문에도 발칸 관련 내용이 많지는 않습니다(...)
18/11/27 15:54
만약 1차 세계 대전 때 러시아가 추축 편에 섰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동부전선은 금새 정리되었을거고 프랑스 쪽에 집중하면 상황이 많이 달라졌을 것 같은데
18/11/27 16:02
반농반진으로 말하자면, 독일이 로시아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일 외교력이 있었다면, 애초에 1차대전이 일어나지 않았을 겝니다. 그 비스마르크도 로시아를 중립화하는 이상으로는 못했으니까요
글구, 추축은 2차대전때 표현이고 1차대전때 표현은 중구열강(central power)이라고 합니다. 원래 3국동맹이었는디, 이탈리아가 이탈해서 3국동맹이 아니게 되어버렷...
18/11/27 16:49
몇가지 맥락이 있는데...
일단 독일도 로시아를 위협으로 여겼습니다. 로시아가 낙후되어 있기야 하지만, 1890년대 이후 산업화속도가 빨라지면서 독일의 2배넘는 인구의 로시아가 산업화가 완료될 경우 심각한 위협이니, 그 전에 미리 조져놔야 하는거 아니냐? 이게 군부를 중심으로 한 예방전쟁파의 대표적 논리중 하나였고... 이것도 결국 나중에 스탈린 동지의 산업화 성공으로 인해 증명이 되기도 하구요. 2차대전에서 독일 말아먹은건 결국 쏘오련군이니 당시 독일정계의 중추는 역시 동프로이센을 기반으로 하는 융커들이었는데, 이들이 바로 접경해있는 로시아으 군사력을 위협으로 느꼈던 부분도 있죠. 이 부분은 실제로 1차대전 당시, 로시아군이 예상보다 빨리 동프로이센으로 침입해들어오니, 슐리펜 작전에 동원되던 서부전선으 군대를 당장 돌리라고, 압박하는 것으로 현실화되었고... 물론, 결과적으로는 서부전선의 지원군이 오기전에 동부방면대만으로 로시아군을 제압(탄넨베르크 전투)하는 바람에, 서부전선의 압력만 약화시키고 전략적으로 쓸모없는 짓이 되어버린 후일담이 있긴 합니다만 거기에, 위에도 이야기한 생활권 문제도 있습니다. 아실지도 모르겠는데, 지금도 미국에서 앵글로색슨계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게 독일계일 정도로 당시 독일은 인구과잉이라 여겨졌고,(유럽대륙내의 나라로서 최초로 인구 5천만돌파를 넘어 6천만 달성. 오늘날 6천만과는 전혀 다른게, 그 당시에 6천만이면 전 세계 인구의 3%이상입니다.) 그 인구를 부양할 토지를 얻어야 허는디, 남은 알프스고 서의 프랑스도 인구 많긴 마찬가지고 결국 동으로 가야한다는 인식이 상당했었죠. 이런 것이 직접적인 외교정책등으로 표현되진 않았으나, 그런 여론이나 분위기가 양국사이에 상당한 위화감을 발휘... 더하여 당시의 민족주의 분위기에서 가장 첨예하게 대립한건 범게르만 VS 범슬라브고, 그 대립의 장이 발칸이었다는 점이 문젭니다. 이거는 오스트리아의 입장이 중요한데, 오스트리아는 이탈리아 남독일에서 세력을 잃었고 해양국가가 아닌지라 해외진출도 여의치 않아 결국 남쪽의 발칸밖에 진출로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보스니아를 합병했고, 이게 세르비아와의 갈등으로 차후 1차대전의 직접원인이 되는데... 문제는 보스니아도 그렇고 세르비아도 그렇고 이들이 남슬라브인이라는거죠. 당연히 범슬라브주의의 보호대상이었기에, 로시아 입장에서 발칸에서 물러난다는 것은 열강으로서의 체면과 지위 자체에 문제가 되는 것이었던지라, 끊임없이 갈등의 원인이되었죠. 이런 여러 원인들로인해 현실적으로 1900년을 전후한 시점에서 독일과 로시아는 협력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적대관계가 되지 않도록 관리한 비스마르크가 그저 갓갓이었을 뿐
18/11/27 16:05
슬라브 인종청소하고 레벤스라움 세우는 이야기는 히틀러때 갑툭튀한게 아니라 19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독일인들의 유구한 망상이었습니다. 독일의 해양세력화를 예상하는건 지나치게 낙관적인 바램으로 보이네요.
18/11/27 16:58
추론을 담아 말해보자믄, 로시아도 당연히 해방파와 육방파가 있었겠죠. 본문의 작성자는 육방파라 바다같은건 필요없는데스! 라고 생각한 거 같은데...
아이러니컬하게도 해방파입장에서도 저 시점에서 부동항은 별로 필요없어졌다고 봅니다. 왜냐면 결국 영국과의 세계패권경쟁을 위해 바다로의 창구가 필요한건디, 영국과으 대결을 포기하고 독일에 맞서 협력하기로 한 시점에 부동항을 노리는 외교정책을 펼칠 필요는 없어진... 러시아가 유럽 열강이 된건 표트르 대제때부터이지만, 유럽정세를 좌지우지하는 두 축이 된건 나폴레옹전쟁떄으 일이고, 그 뒤로 19세기는 내내 영러간의 패권경쟁의 세기였거든요. 그게 패배로 낙착된 이상, 공세를 취하기보다는 수세를 취하게 된 면이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18/11/27 18:27
정말 타임머신 타고가서 1차 대전 발발 후 10년을 경험하고와서 쓴 것같은 내용이네요. 다만 독일 입장에서 러시아를 어떻게 봤을지도 궁금하네요. 거의 유일한 열강 동맹국인 오스트리아와 러시아가 계속 앙숙관계인 이상 독일이 못 미덥고 위험한 상대인 러시아와 손잡긴 힘들지 않았을까요?
사실 1차 세계대전 즈음 이러한 세력 구도의 근본적인 원인은 독일이 너무 세졌기 때문일 것같습니다. 1914년 당시 독일의 생산력은 세계2위 유럽 1위에 해군력 세계 2위, 육군력은 단연 세계 최강인 초강대국이었으니까요. 이걸 견제하기 위해서 영국, 프랑스, 러시아는 복잡한 자기들 간의 이해관계는 제쳐두고 일단 독일부터 막아야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을거라 봅니다. 가장 센 놈 편먹고 때리는 게 유럽 전통이기도 하고요.
18/11/27 19:16
지금도 독일은 EU를 버리고, 언제든 러시아 세력권과
조율할 수 있는 지정학을 가지고 있지요. 그런데 그래서 크게 이득을 볼만한 상황이 안 만들어진다는 것이 문제지요. 돌려받아도 프로이센이지, 말메디 약간 돌려받자고 서유럽이랑 단체로 척을 질 수도 없고... 러시아와 독일이 1차때 서로 중립지켜봤자 결국은 시한폭탄이 아니었을까요... 오스트리아 입장에선 날릴거 다 날리고, 보스니아 좀금만 먹자는데 그걸 이해 못해주고. 러시아 입장에선 날릴거 다 날리고, 세르비아 같은 슬라브 애들 조금만 자존심 채워주자는 것을 이해 못해준다는 것이었으니... 발칸은 정말 동로마가 망할 정도로 마계입니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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