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왜 일찍 일어났을까. 평소처럼 알람도 못 듣고, 아무 소리도 못 듣고 쥐 죽은듯이 잤더라면 괜찮았을텐데, 왜 하필 그 울음소리를 들어버려서. 4월 1일 새벽 6시, 수많은 거짓말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수놓을 무렵 너를 만났다. 방방 뛰면서 앞집 문을 두드리던 너는 만우절이 뭔지 알까. 너를 잃어버렸는지, 버렸는지 모를 주인은 어디서 뭘 하고 있는걸까. 짜증에 못 이긴 내가 개를 데리고 들어오려니, 앞집 아저씨가 고개를 빼꼼 내민다.
"그거 그렇게 들고 가면 되는가?"
안 된다는 것처럼 말하는 그의 어조와 이 귀찮은 생물에게서 풀어질 수 있다는 기대감이 섞인 눈빛이 썩 모순적이었다.
"사람들 다 자는데, 이렇게 놔둘 수도 없잖아요."
"어유, 그게 내 개는 아니고 저기 산에서부터 쫓아와가지구.."
중언부언 개가 왜 여기 있을 수 밖에 없었는지, 자기는 왜 개를 데리고 들어갈 수 없는지 사실들을 방패처럼 꺼내드는 그에게 무슨 말을 하랴. 그는 능숙한 사회인이었다. 내가 따질 여지를 미리부터 차단하는 그의 솜씨에 놀라며 이 불편한 동거인 -너라고 하자- 을 들여왔다.
개는 영역 싸움이 강한 동물이라고 했던가. 순둥이라고 생각했던, 나에 대해서 영 관심없다고 생각했던 시츄 -퉁이- 는 내 옆에 찰싹 붙어있었다. 낯선 생물이 다가올 때 냄새를 조금 맡고선, 먹을게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으르렁댔다. 반대로 다른 시츄 -몽이-는 마찬가지로 먹을게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별 관심이 없어보였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몽이에게서 삶의 지혜를 배웠어야하는지도 모른다.
개 2마리는 인간 1명의 삶으론 버거웠다. 녀석들은 부족한 주인의 1견분(?) 어치 사랑 위에서 자신의 몫을 갈구했고, 부족한 주인의 시간 앞에서 산책할 시간을 필요로 했다. 강형욱씨 말을 빌자면, 난 개를 키워서는 안 되는 사람인 셈이다. 그런 내가 3마리째 개라니. 보호 센터란 곳이 있다던데 전화를 해봐야지. 간이 철제 펜스 안에 너를 가두고나자 마음이 좀 진정되었다. 적어도 넌 내 개는 아니니까. 펜스 안 쪽의 너는 펜스 바깥의 우리 개들과 다른 존재니까.
일어나니 늦은 아침을 먹을 무렵이었다. 피곤한 몸을 부여잡고 문을 닫자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귀를 찔렀다. 달려들기도 심하던데 짖기도 심한 개라니. 이래서 버려진건가 하는 몹쓸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공동체에는 지켜야할 규칙이 있다. 너도 예외가 아니다. 적어도 그 규칙 어딘가에는, 일요일 아침에 시끄러운 소리를 낸다면 따가운 눈초리 형에 처한다는 항목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난 너를 혼내주었다. 다시 나오자, 그 울음소리가 조금은 덜 날카로워진듯 했다. 내 기분 탓만은 아니리라.
아침을 먹으면서 확인한 센터는 일요일에 운영을 하지 않았다. 동물 병원도 다 문을 닫았다. 동네를 둘러보았지만 전단지 따윈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너의 주인을 찾으리라는 조그만 희망이 조금 더 작아지기 시작했다. 일단 오늘은 데리고 있어야만 했다.
반차를 쓰고오자 집은 엉망이었다. 퉁이와 몽이는 야만인을 보는듯한 눈길로 나를 질타했다. 똥오줌도 못 가리는 저 놈을 왜 데려와선, 우리의 보금자리를 요따구로 만든단 말이냐. 네가 화장실을 못 가린건 당연한 일이다. 처음 온 집에서 어떻게. 하지만 감정은 이성과 별개여서 화가 차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거칠게 너를 가방에 쑤셔넣고 여정을 나섰다. 이 좁은 도시 어딘가 너를 찾는 사람이 있기를 바라면서.
"혹시 인식 칩이 박혀있는지 확인하고 싶은데요." 얘한테 칩은 안 박혀있네요.
"혹시 동물 분실 신고 들어온거 있나요?" 아뇨, 저흰 없는데.
"이 친구 진료 보신 적 있으신가요?" 개라는게 워낙 비슷하게 생겨서. 저흰 잘 모르겠네요.
1시간이 조금 넘는 여정을 통해 몇 가지를 알아냈다. 네가 2~3살이 되었고, 종은 말티즈이고, 중성화 수술을 마친 암컷으로서 얼마 전까지 예쁨 받으며 자랐을 것이라는 것. 그리고 너의 주인은 동물병원에 연락과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것.
집으로 돌아오는 길, 관리 사무소에 생각이 닿았다. 일단 아파트 단지 내 방송이라도 가능하지 않을까.
"아휴, 우리 아파트 사람들이 개를 얼마나 싫어하는데. 그건 저희도 힘들어요."
개를 싫어하는 것과 개를 잃어버린 사람이 없는지 확인하는 것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우리 아파트 개라는 근거가 없잖아요? 아휴, 근거만 있으면 저희도 얼마든지 방송을 해드리겠는데."
내가 자는 사이 경비가 아파트 인식용 칩을 박아넣기라도 한건가. 우리 퉁이와 몽이에게도 아파트 개라는 표식이 있었다니, 놀랄 노자였다.
"그러게 왜 들고 오셔가지고. 쫓아내야죠, 그걸."
계속되는 핀잔에 짜증난 나의 "그럼 새벽에 삐익 울어대는데 그걸 냅둡니까" 말에 대한 답변. 그래, 너를 두들겨패서 쫓아냈어야했다. 그것이 현대 아파트라는 공동체 사회의 주민으로서 내가 했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러면 당일 아침 기분 좀 더럽고 말았을텐데.
방송이 안 된다던 그는 홍보 전단지도 못 부친다고 했다. 개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는, 금과옥조를 다시 내뱉으면서. 아파트 관리 사무소의 고충을 한 몸에 끌어안고서, 나같이 무례한 사람에게 인생의 진리를 가르쳐주는 사람에게 더 반박해보았자 얻을 것은 없어보였다. 길을 나왔고, 관리 센터에 전화했다. 일은 마무리 될 것이다. 너는 우리 집에서 없었던 것처럼 나가야하고, 센터에 갈테지만 주인을 찾을 것이다. 아마도.
너를 씻기고 잠에 들었다. 하루가 지났다. 그의 좀있다는 24시간이 넘는 모양이었다. 실례지만 먼저 전화를 해야겠지.
"안녕하세요, 어제 전화했었는데 폰을 수리 중이라고 하셨어서요."
"아이고, 어제 일이 밀려서 깜빡했네요. 선생님 그래서 어디서 찾으셨나요?"
전화기 너머 그를 상대로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너를 어디서 주웠고, 넌 종이 무엇이고, 왜 주웠는지. 그는 참으로 동감하기 능한 사람인 듯했다. 내가 하는 말마다 그렇군요, 그렇죠, 맞습니다 라는 말을 연신 들먹였다. 동물병원에 갔다왔다느니, 칩이 없었다느니 없는 말을 다 주워섬겨 꺼냈지만 그의 마지막 말은 "그러시군요" 였다. 문화인이라면 이제는 나의 용건을 알아차릴 때가 되지 않았나. 잠깐의 정적을 내가 깼다.
"그래서 얘를 좀 맡기려고 합니다."
"아 네.. 사장님 아파트에서 주우셨다고 하셨는데 내부 방송은 하셨나요?"
"요청은 했는데 좀 힘들다고 하네요."
"네? 이거 큰일날 사람들이네.. 선생님, 여기서 개를 꺼내갈라면 등록 비용이란걸 내야 하거든요? 이거 찾아가는 사람들이 항의를 그렇게 무작시럽게 해댑디다. 왜 그렇게 말도 없이 데리고 갔냐고. 사장님, 입장 바꿔놓고 개 키우신다고 생각하시면 그렇게 말도 없이 보낼 수 있겠어요?"
"제가 아무 말 없이 보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관리 사무소하고 싸울 수도 없는 일 아닙니까."
"그럼 전화번호 좀 알려주실 수 있으세요?"
사장님이 되었다가 선생님이 되었다가. 왔다갔다하는 나의 호칭만큼이나 그의 말투도 부산스러웠다. 하지만 마지막은 최악이었다. 모양새가 영 나빴다. 개 데리고 왔던 남자가 가고 나니 보호센터에서 전화가 걸려와 방송을 해줄 수 없다고 했다더라.. 차라리 내가 말하고 말지.
"그냥 제가 말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아 그러시겠어요? 저희도 이게 어쩔 수 없는거라.."
하지만 역시나가 역시나. 관리 사무소에선 자치회장에게 물어본댔고, 자치회장은 "아파트 개라는 근거가 어디 있냐?" 고 되물었다고 했으며, 군대에서 으레 겪었던 말이 나왔다.
"그냥, 방송한 거로 치시죠 사장님."
"영 기분이 거기 하시면, 사시는 동 앞에 전단지 붙이는 것은 하게 해드리겠습니다."
기분이 더러웠다. 내가 구걸하는건가? 키워줄 사람을 찾는 것도 아니고, 혹시 개 잃어버린 사람 있는지 물어보는게 그렇게 힘든 일인가? 아파트 동이 20개가 넘는데, 내가 사는 동 앞에 붙여보라고? 됐다고 했다. 끊고 나서 조금의 시간이 지났다. 동물 센터에 전화를 했고, 차마 방송을 했다는 거짓말은 못 하겠다는 알량한 자기 위안 앞에서 "방송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알고 있다" 고 말했다. 거짓말이지만, 어쨌든 방송을 했다는 거짓말은 아니다. 그렇게 거짓 위안을 했다.
동물 센터의 그는 알겠다며, 내일.. 그러니까 오늘 개를 데리러 가겠노라고 말했다. 끊자마자 관리 사무소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짜증이 났다. 대체 뭐 어쩌라는건가. 뒤늦게 위로라도 하는건가. 진작에 두드려패서 쫓아냈어야할 개가 이제야 사라져서 아쉽기라도 한건가. 방금 거짓말을 한터라 더욱 화가 났다.
"네, 제가 키우기 힘든건 맞는데, 뭐가 더 알고 싶으신데요?"
전화기 너머로 당황한 기척이 역력했다.
"아니 뭐 알고 싶은건 아니고... 그 강아지가 저희 아파트 개라는 근거도 없는데 방송도 힘들고.. 그래도 선생님이 거두셨는데 키우신건 힘드신건지 아휴 아닙니다. 그럼 고생하세요."
중언부언 쏟아내던 그가 습관처럼 내뱉는 한숨이 유난히 거슬렸다.
이제 모든 일은 끝났다. 짧으면 7시간, 길어봤자 10시간 안에 너는 집을 떠난다. 우리가 사는 사회란 무엇인가. 이 자그마한 공동체란 무엇인가. 혹시 개 잃어버린 사람이 없는지 묻는 방송을 하는데에 당췌 뭔지도 모를 "아파트 개"라는 근거가 필요한가. 개 싫어하는 사람이 학을 떼니 주인 찾는 방송도 해선 안 되는건가. 애초에 책임질 것도 아니었는데 관리사무소장 말마따나 그냥 쫓아냈어야했던건가. 온갖 물음을 껴안았다. 답은 없다. 내가 아는 한 가지는, 나도 너를 책임지지 못 하면서 데려왔고, 다른 사람들과 척지기 싫어서 싸우지도 못 하는 사람이란 것이다. 비참하다.
희한하지. 어제도 그저께도 잠을 잘자던 네가 오늘은 집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냄새를 맡는다.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리도 없는데. 오늘은 네가 나한테 달려들고 긁는 것도 조금은 참는다. 평소엔 안 샀던 소가죽 껌도 사서 주었다. 약 일주일 뒤면 보호센터에서 맞이할 '안락한' 죽음 전에 조금이라도 좋은 기억이 남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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