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에 만들어진 니블러라는 게임이 있다. 게임은 단순히 우주에서 뱀을 조종해서 화면 안에 모든 점을 먹으면 스테이지가 클리어가 되는 게임이다. 점을 먹는 동안 뱀의 길이는 점점 길어지며 스테이지를 넘길수록 뱀의 속도가 빨라져 뱀의 컨트롤이 점점 어려워진다. 게임은 목숨이 다할 때까지 끝나지 않으며 영원히 반복된다. 게임의 끝은 라이프가 다 없어지거나 게이머의 체력이 한계에 다다를 때다. 게임은 특이하게 10억 점이 넘으면 점수가 0으로 되돌아간다.
1984년 게임 제작사는 10억점을 세우는 사람에게 니블러 게임기와 세계 챔피언이라는 명예를 주겠다고 공언했다. 16살의 팀 맥베리는 이틀 밤낮을 지새우며 10억 점을 넘겨 세계 챔피언의 왕좌에 앉았다. 팀이 세운 기록이 도전자에 의해 깨어지고 다시 30년이 지나서 다시 세계 챔피언의 왕좌에 앉기 위해 도전하는 과정이 담긴 다큐멘터리를 봤다.
오락실을 가보지 않은 사람은 그깟 게임 점수가 뭐라고 할 수 있겠지만, 아케이드 키드로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십분 공감이 갔다.
어린 시절 오락실에 가면 고수가 어려운 게임을 클리어하고 이니셜을 남기지 않고 홀연히 자리를 떠나면 내 이니셜을 남겨 마치 내가 클리어 한 것처럼 의기양양했던 적, 어렵기로 소문난 게임을 클리어하기 위해 도전하다 갑자기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게임이 적들의 움직임이 예측되고 무의식중에 신들린 플레이를 하고 있으면 어느새 한둘씩 내 뒤로 갤러리들이 모여 내 플레이에 감탄하는 걸 등 뒤로 느낀 적이 있다. 그때의 고양감과 흥분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황홀했던 기억이 있다.
단순히 좁은 동네 오락실에서 잠깐의 주목으로도 그런 감정을 느꼈는데, 세계 챔피언이라는 명예를 얻었을 때 팀은 뿌듯함과 환희는 마치 머릿속에 빅뱅이 일어난 것 격정적이고 흥분했을 것이다. 그리고 세계 챔피언의 명예는 팀의 평생 자랑거리이자 자신을 게이머로서 자신을 규정해주는 상징이었다. 그런데 그 기록이 깨어지다니, 팀은 당연히 챔피언은 자신이므로 챔피언의 자리를 되찾겠다고 공언한다.
어느새 배불뚝이 중년이 되어버린 팀은 다시 왕좌를 탈환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쉽지가 않다. 오랜 시간 번쩍이는 화면을 보고 있노라면 환각이 보이고 레버를 잡은 손은 퉁퉁 부어 주먹도 쥐어지지 않는다. 몇 번의 실패 이후 팀은 2011년 마지막 도전을 트위치를 통해 전 세계에 방송한다.
다큐멘터리를 보는 내내 너무나 공감되는 장면들이 많았다. 오래전에 손을 놓아버린 게임이라 할지라도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는 자신만만한 팀을 보면서 나도 한때는 그랬던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나 괴수들이 많기에 그런 자만은 하지 않지만 말이다. 또한, 무료하고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팀이 콘솔 게임을 즐기는 모습에 마치 내 모습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한번 게이머는 영원한 게이머란 말인가. 게다가 중간에 나타난 천재형 라이벌의 출현은 팀에게 위협이 되기도 했다. 모든 게임을 잘하는 천재형 게이머는 언제 봐도 재능이 너무 부럽고 탐나기 그지없다.
백 원짜리 몇 개면 하루종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오락실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돈이 떨어져도 남이 하는 게임을 보면서 머릿속으로 게임의 패턴을 외우고 숨겨진 아이템이나 보스를 만나는 방법을 배웠던 기억이 난다. 어린 시절의 오락실에 대한 향수와 추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팀을 보면서 팀과 나는 별로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게임 하는데 뭔 이유가 필요한가? 그냥 재미있으니까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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