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 시원히 목 넘길게 필요했던 7월의 어느 날 이었습니다.
코안의 혹과 여러 가지 원인으로 술을 마시면 코가 막히고 숨을 쉬기 힘들어했던 터라 그동안 술을 피했지만
지난겨울에 비강 쪽 수술들을 잘 마쳐서 남들처럼 무더운 여름에 시원한 맥주나 마시자며 친구와 함께 인근 대형마트에 들렀습니다.
즐겁게 처음 보는 세계 맥주들을 구경하며 4개에 만 원, 6개에 만 원짜리 맥주를 몇 세트 고르고 계산대에 갔는데
세트 구성을 잘못해 하나를 교환해 오라는 캐셔의 얘기에 친구와 함께 얼른 맥주 하나를
다른 맥주로 교환해서 계산대로 뛰어가 먼저 계산 중인 남자 한 분의 계산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남자는 키가 크진 않지만 다부진, 조금은 드센 표정의 얼굴로 캐셔에게 카드를 건넸고
계산대 밖에는 아내와 딸이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습니다.
마침 긁었던 카드로 계산이 안 되었는지 캐셔가 설명을 하고 다른 카드를 요구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평화롭던 날의 기분이 갑자기 부서진 건 그때였던 것 같습니다.
다른 카드를 꺼내기 전에 남자분이 계산대 위에 상식적이지 않은 힘으로 있는 힘껏 핸드폰을 던졌습니다.
'쾅'하며 대형마트에 울려 퍼지는 노래 따위는 귀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아주 큰 충돌음이 일순간 주위에 캐셔와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습니다.
왜 그 남자가 그렇게 화가 났는지 당연히 이해할 수 없었고 그 순간의 상황과 그 충돌음이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살면서 그렇게 일순간에 타인으로 인해 불쾌해져 본 적이 있나 싶을 정도의 감정이 일어났으나
이윽고 친구도 놀랐을까 걱정되어 계산대 바깥을 보려다 그 남자의 아내, 딸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제야 바라본 아내분의 모습은 예쁜 외모를 가졌지만, 어딘가 수척해 보이고 건조해 보였으며
마트에 장을 보러 와서 신이 나거나 즐거운 기분은 애초부터 없었다는 표정이었습니다.
남자가 핸드폰을 던지는 그 순간에도 잠시 무심하게 시선을 주었다가 이윽고 다른 곳으로 무표정한 얼굴로 시선을 돌립니다.
계산대 바깥에서 물건을 담으려고 기다리던 친구의 말로는
딸은 아빠가 핸드폰을 던지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고 자신의 핸드폰만을 뚫어져라 바라봤다고 합니다.
그 짧은 순간에도
'저 모녀는 이 풍경이 익숙하구나..'
일상적이지 않은 일이 빈번할 것 같은 가족의 모습이었습니다.
핸드폰을 던지고 다시 드는 짧은 순간이 지나고 남자가 핸드폰을 들면서 다른 카드를 꺼내기에
우연히 켜져 있던 그 남자의 핸드폰 바탕화면을 봤습니다.
본인의 문신 가득한 상반신 거울 셀카를 배경화면으로 눈 깔라는 텍스트를 적어놓았길래
조직폭력배와 그의 아내, 그의 딸이고 저 남자의 폭력성은 일상적이겠구나 하고 친구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렇게 날이 서는 듯한 불쾌함은 잊고 지냈었는데 며칠 전 그 남자의 핸드폰 바탕화면을 언론사를 통해 보게 되었고
그 뉴스 화면을 옆에 있던 친구에게 보여줬습니다.
http://www.ytn.co.kr/_ln/0103_201710102202181221
가뜩이나 그 사건으로 친구와 이야기를 자주 주고받던 중이라 무섭고 불쾌하며 소름이 돋은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