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영알못입니다. 가끔 x알못이라는 단어가 ‘나는 x나 쩔지만 왠지 겸손함을 표현하고 싶어. 그러니까 빨리 내 말을 부정해 달란 말이야’라는 뜻으로 오용되는 경우가 있지만, 저는 아닙니다. 이번에는 진짜라고요. 제가 감상 남길 깜냥이 안된다는 걸 알고 있지만 ‘곡성’은 보고 나면 뭔가 배설하고 싶어지는 영화라서 조금 끄적여 봤습니다. 영화 관객 500만 정도 넘기면 저 같은 어중이떠중이들도 엉덩이 긁적이면서 보러가는 법이죠.
제가 영화 고르는 기준은 참 단순합니다. 지인이 ~~봤는데 재밌다더라 하는 얘기가 들리면 봅니다. 5~60대 부모님들 하고 패턴이 일치합니다.... 영화볼 때 아무 생각 없이 보는 편이고 평소엔 그냥 돈 많이 바른 할리우드 영화를 주로 봐요. 곡성에 대해서도 재밌다. 무섭다. 귀신 나온다. 이 세 마디 듣고 갔습니다. 명작을 봤을 때의 기쁨은 더하고 망작을 봤을 때의 절망감은 나누어야 하는 만큼 희생양으로 아버지를 모시고 롯데시네마로 갔습니다. 영화표가 10000원에서 11000원으로 올랐더라고요? 1패하고 시작했습니다.
일단 연출은 제 취향 저격이였습니다.
추격자는 초반부 빼고 밋밋하다고 느꼈는데 곡성은 2시간반짜리 롤러코스터를 타는 느낌이였네요. 놀이기구를 타는 것 같은 짜릿함?
좀비 씬은 참... 좀비가 현실에 나타난다면 딱 저런 느낌일 것 같았어요.
좀비가 달려들어 깜짝 놀라 후려 패다가 아 죽이면 안 되는데? 잠깐 멈춘 사이 좀비가 다시 달려들어서 후려패고, 이쯤 때리면 죽었겠지 했는데 살아서 끝까지 달려들고, 그 모습에 질려 다수가 쪽을 못 쓰고 슬금슬금 도망가고....
그 외 굿하는 장면이나 무명이 등장하는 모든 장면, 외지인이 카메라 찍는 씬, 어지럽혀지고 핏자국이 만연한 사건 현장 등등 연출에 놀라서 감탄하면서 봤습니다. 그리고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자꾸 실소가 나오더라고요. 초반부에 계속 개그요소를 넣어서 그런지 진지한 장면도 이상하게 웃기게 느껴지더군요. 영화 볼 때는 이유가 있어서 웃었는데 지금은 이유가 기억이 안나요. 옆자리 앉은 분한테 죄송하네요. 미친놈 보듯이 쳐다보시던데... 하긴 후줄근하게 입은 아저씨가 입 벌리고 영화 보다가 피튀기는 장면에서 갑자기 피식거리면 저라도 무서웠을 거에요..
배우들 연기도 미쳤고요. 다만 영화관 탓인지는 모르겠는데 초반에 사투리가 잘 안 들렸습니다. 별로 중요한 내용은 아닌 것 같긴 하지만.
제가 상상력이 구려서 숨은 의도 같은 건 있어도 못 보고, 봤더라도 일부러 머릿속에서 지우고 보는 편입니다. 수능 문학 읽는 것처럼요. 그래서 그런지 스토리는 조금 답답하더라고요. 제발 그딴 거 숨겨놓고 못 찾으면 이해 못 하게 만들지 말란 말이야 엉엉
왜 사진을 봤는데 잡았다 요놈! 을 시전하지 않았는지, 버섯은 전혀 관련도 없는 내용인데 생각하기 귀찮게 왜 계속 잡아주나? 그리고 마지막 부분이 조금 짜증 났었습니다. 누가 나쁜 놈이냐는 건 별로 궁금하지도 않고, 또 아무나 한 명 골라서 나쁜 놈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도 않은데 시간을 자꾸 끌어서요. 아니 그래서 애가 죽냐고 안 죽냐고? 만 되뇌었습니다. 세계평화하고 가족사랑은 언제 보여 주는거야? 앙?
영화끝나고 핸드폰으로 pgr이랑 네이버 리뷰를 읽어보긴 했는데 그럴 수도 있다는 추측에는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았습니다.
만약 신부지망생이 사짜였다면 외지인이 자꾸 헛소리할 때 낫으로 정수리를 찍어 버렸을테니 뇌수가 흩날리면서 해피엔딩.
신부가 실패했으니 주인공이 선택할 것은 A를 믿느냐 B를 믿느냐인데 주어진 조건 하에서는 결론이 안 나오니까 최대한 머리 굴려서 이거다 싶은 걸 선택했지만 실패하고 모든 걸 잃어버렸죠... 역시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건 반반입니다. 쓸데없이 희망을 주거든요. 바카라가 이렇게 무섭습니다 여러분. 바카라에 법칙 따위는 없고 그냥 운빨x망겜이니까 머리 굴리지 마세요.
영화 보고 나오니 6시길래 아버지랑 반반 치킨 뜯어 먹고 집에 왔습니다. 아버지는 일광이 존나 세련된 나쁜 놈이라고 하더군요. 돈 받아먹고 그걸 이용해 돈 준 놈 죽이는 차도살인지계를 이용해 일석이조를 얻었다고요. 적을 공격하는 것은 분산시키느니만 못하고, 공개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비밀리에 공격하느니만 못한데, 외지인은 어그로를 너무 끌어 적을 집결시켰고, 그 바람에 궁지에 몰려 절벽에서 구른 거랍니다. 저는 둘이 처음부터 짜고 친 거고 외지인이 탱커고 일광이 딜러라고 그랬는데, 그 부분은 아직 결론을 못 내렸습니다. 혹시 아시는 분은 댓글로 참교육 좀 해주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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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에서 이미 언급되었지만 감독과의 대화에서 외지인과 일광의 관계를 감독 본인이 말했죠.
저는 일광의 훈도시에서 어? 했는데, 마지막에 카메라 보고 '아, 같은 편이구나!'를 한참 후에야 알았지만요;;
여담으로 '일광이 존나 세련된 나쁜 놈'이라는 표현은 정말 적절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