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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2/17 13:57
광주만 유독 전라도 광주 이렇게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경남 부산이나 충남 대전으로 표현하지 않는 것처럼 광주 역시 광역지자체라 그냥 광주 혹은 광주광역시라 부르는 게 맞는데 말이죠.
16/02/17 14:15
부산,대전과 다르게 광주는 두곳의 동명이시(?)가 있으니 서로 구분하려면 어쩔 수 없죠... 일상속 대화에서 "경기도 광주야 전라도 광주야?" 이렇게 말하면 바로 의미가 전달되는걸, "그냥 광주야 아님 광주광역시야?" 이렇게 물으면 질문의도가 한번에 전달이 안되어서 사족이 붙기 쉽죠.
16/02/17 14:44
경기도에도 광주가 있기 때문이죠.. 광주라고 하면 어디광주인데? 묻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 광주광역시라고 하는 것보다는 전라도쪽에 있는 광주라고 하는게 훨씬 더 직관적이죠. 대전 사람이지만 아마 다른 동명의 지역이 있는 경우라면 충청도 대전이라고 했을겁니다.
16/02/17 14:51
광주가 광역시 승격전엔 전라도에 포함되었기때문에 아직도 전라도 광주라는 말을 쓰는것같아요.
저도 광주살지만 광주광역시란 말보단 전라도 광주란 말이 입에 더 붙네요.
16/02/17 15:01
직할시 승격은 부산도 있었고(63년) 대구와 인천도 있었고(81년) 대전도 있었고(89년) 울산도 있었죠.(97년)
광주의 직할시 승격은 86년으로 벌써 30년이나 됐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광역시로의 명칭 변경은 95년에 이뤄졌고요.
16/02/17 15:36
쿨하게 넘기셔야되요 이러실수록 그들만? 더 흐믓할뿐; 저 학교다닐때도 광주출신끼리 이런이야기하면서 웃고 그랬는데 지금은 정말 민감해져버렸네요.. 슬픕니다.
16/02/17 15:41
정치적 관점에서 얘기한 건 아니었습니다.
다만, 타지방 사람들과 얘기하면 광주가 뭔가 낙후됐다는 인식이랄까 그런 게 확실히 느껴지더군요. 광주광역시에서 소수여론으로 광역지자체 반납하고 그냥 도에 편입되자, 이런 의견이 없는 건 아니지만 광역시와 도는 별개의 행정구역이니 분명히 나눠서 구분해야 하는 게 맞죠. 대구/인천과 광주 승격은 5년 차이인데 경북 대구라거나 경기도 인천이라고 하는 사람이 없는데 말이죠. 광주보다 3년 늦은 대전 역시 마찬가지고요.
16/02/17 15:51
그거야 부산이나 대구 인천등은 같은 명칭의 지역이 없으니까 굳이 앞에 지역을 안붙여도 되지요.
광주같은경우는 같은지역이 있고, 실제로 윗지방은 광주라고 하면 경기도 광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요. 보시다시피 이런이야기가 나오는것 자체가 아직도 그렇게 쓰고 계신분들이 많다는 반증이기도 하구요.
16/02/17 16:00
광주에 몇 번 내려갔는데 재밌었습니다.
금난로와 금난로공원이 특히 기억에 남고요. 음식이 맛있고 문화가 깊이 있고 안락해서 살기 좋은 도시란 생각이 들었어요. 낙후되었다는 인상은 안가봐서 그런듯. 한 번은 적대적인 분위기를 느꼈는데, 그건 제가 타지 사람 티가 너무 나서 그랬는지도요.
16/02/17 16:23
금남로입니다. :)
적대적인 분위기가 어떤 거였는지는 모르겠는데 지방을 가면 어느 정도는 그런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서울에 살면서 여기저기 지방 많이 다니는데, 딱 타지사람 분위기 나니까 바가지 씌우는 경험도 제법 겪었고;;
16/02/17 16:30
바보같이 입에 감기는대로 기억하고 있었네요 :)
그런거 같아요, 여러모로 지방문화에 적절히 어울려주는 센스가 필요한 거 같습니다.
16/02/17 18:09
하필 광주가 경기도 광주와 광주광역시 둘 다이다보니...
엄밀하게 말하면 광주광역시는 전라남도와 동급의 개별 광역자치단체이지만, 보통 사람들이 그렇게 철저히 구분 안하다보니.... 부산이 경상남도에서 독립한지 한참 됐지만 부산사람 보고 '경상도 사람이네?' '경상도에서 왔네?'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여겨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하여간 인터넷의 몇몇 무개념 악플러들과 일베놈들때문에 민감하지 않아할 문제가 민감해져버렀어요.
16/02/17 20:31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부터 방송에서 전라도 광주라고 지칭하는 빈도가 많아졌죠.
광주 광역시라는 단어와 글자 수도 같아서 언어의 경제성은 물론이고, 지명도는 경기도보다 넘사벽으로 높은데도 굳이 전라도 표현을 써요. 전에는 그냥 광주라고 했는데. 특히 맛집탐방에서 유독 많는데 그냥 맛의 고장 광주라고 하거나 그냥 광주라고 해도 다 알아듣죠. 특히 지난 대선 이후로 빈도가 더 높아진 것 같아요. 기분탓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아요. [여기에서라도 광주 광역시라는 표현을 쓰면 좋겠습니다.]
16/02/17 14:02
현실은 전혀 생각 못하고 하는 소리죠.. 그나마 종신제가 아니기 때문에 대법원/헌법재판소가 완전 보수로 짜여지진 않았던 겁니다.
만약 종신제였음 대법원/헌재 답이 없었을 겁니다. 미국 역시 결국 대통령이 뽑고 의회가 동의해주는 절차로 알고 있는데, 한국은 대통령/의회가 모두 민주당인 경우는 딱 한번 밖에 없었습니다.
16/02/17 14:28
대법관 종신제의 경우, 한 정당이 계속해서 선거에서 승리해서 권력을 독점하게 되면,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더라도 이전의 권력독점으로 인해서 대법원의 이념이 한쪽으로 쏠리게 되는 현상이 벌어집니다. 갠적으로 진짜 안좋은 제도라고 생각하고요.. 미국에서 종신제임에도 대법원이 제대로 돌아간 이유는 민주/공화당이 8년 간격으로 대통령을 번갈아가면서 했기 땜에 이념적으로 치우침 없이 보수/진보 인사가 적절히 배치되었기 때문입니다.
16/02/17 14:49
우리도 워터게이트 정도로 정권이 바뀌는 나라라면 모를까
국정원이 당당하게 대남공작하고 카톡해킹하는 나라에서 종신제 했다가는 대법관 암살해야 할겁니다
16/02/17 13:54
한편 제 생각처럼 긴급조치가 통치행위는 아니지만
긴급조치에 따른 국가행위엔 원칙적으로 귀책사유가 없다는 논리를 취하면 (정확히는 '긴급조치에 따랐다는 사정만으론 귀책사유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본문 기사의 사안에서 박정희의 고의&과실을 인정할 부가적인 사정이 추가되야 합니다. (참고로 통상 행정처분이 취소판결을 받은 경우의 국가배상 사안에서 이런 부가적인 사정을 인정해준 예가 거의 없습니다.) 본문 기사에 인용된 서울중앙지법 판결(작년 9월 선고 사건으로 이것도 대법원 판례에 도전한 것입니다)의 경우는 박정희가 대통령의 헌법수호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는 얘기를 하고 있는데 이런 게 한 예가 될 수 있습니다.
16/02/17 15:05
유신이 민주체제의 근간을 흐트러놓는것은 맞지만, 당시 국민투표에서 90퍼센트가 넘는 지지율로 통과가 되었고, 몇년후 재신임투표까지 해서 70프로가 넘는 지지율로 유지가 되었던 것이 유신체제입니다.
그리고 그 기간동안 중공업이 육성되어 포항제철과 조선소 등이 건설되어, 향후 제가 속한 세대를 비롯하여 후손이 수십년동안 먹고 살 동력을 일궜던 기간입니다. 유신과 같은 체제는 오늘날의 시각으로는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고 자칫 국가 하나를 쓰러뜨릴 수 있는 위험한 것이었으나 다행히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고 오히려 그 기간이 국가발전의 밑거름이 된 기간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박정희라는 인물의 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요행인거죠. 하지만 민주주의를 놓고 한 도박이었고, 그렇기에 앞으로는 바라지 말아야 할 과거의 요행입니다.
16/02/17 15:17
그당시 투표가 정당하게 이루어졌다고 한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 같습니다. 북한에서 김정일 지지율 99% 나오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던 시절이라고 생각해요.
16/02/17 15:22
축구공을 손에 들고가서 골을 10골을 100골을 넣어도 그건 인정이 되지 않습니다.
지지율이 얼마였던 방식자체가 문제가 있었다면 인정이 되지 않는게 맞는 것이겠죠.
16/02/17 16:04
유신 == 경제성장 이라는 말씀이신데 동의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유신은 이득뿐만 아니라 문제도 많이 일으켰습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승리수당이 아니라 피해보상 정도죠.
16/02/17 16:07
그건 동의하고 말고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 아닌가요? 그럼 저는 세종대왕이 한글창제 했다는 것과 1945년 우리나라가 일제에서 독립했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으렵니다.
16/02/17 16:09
유신이 경제적 성장에 영향을 주었음은 역사적 사실이지만 유신 때문에 경제적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 아닙니다.
사실 관계가 아닌것을 사실 관계처럼 호도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16/02/17 16:32
물론 박정희가 유신을 할때 울나라를 중공업 위주로 경제재편성을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는지 아닌지는 죽은사람한테 물어봐야 알 수 있는거지만 유신기간에 중공업 정책이 성공적으로 수립되고 이것이 향후 우리나라가 먹고 살 길을 열어준 것이라는 사실은 역사적 사실이지 않습니까
16/02/17 16:10
말씀하신 두 건은 역사적 사실의 영역에 있는 얘기가 맞는데,
'유신을 했기 때문에 경제적 성장이 가능했다' 이건 '사실'이 아니라 '해석'의 영역이죠.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매우 많은 해석이구요.
16/02/17 16:26
명제와 추론을 동일시 하시면 어쩌나요?
남자+여자=아기 를 동의하지 않는다고 1+1=2도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하시는건데요. 남자+여자=아기로 보는 사람도 미팅으로 보는 사람도 부부로 보는 사람도있고..등등 유신=경제성장을 명제로 인정하시는거면 동일기간 경제는 김일성>박정희 도 인정하실겁니까? 1970년말까지 북한이 더 잘살았는데....
16/02/17 16:57
후대에 와서 볼때 박정희+유신=중공업 경제개편 성공 은 해석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이란 말을 하는겁니다.
그리고 그 당시 말씀하신대로 북한의 국력이 더 강한 상황에다 다른 여러 안보위협 요인이 겹친것이 유신이 지지를 받은 이유고요.
16/02/17 17:14
유신이 경제를 발전시킨게 아니라 유신기간에 경제가 발전한겁니다. 이걸 호도하시면 곤란합니다. 애초에 유신은 경제정책이 아닙니다.
박정희가 유신를 했기 때문에 중공업 위주 개편을 성공해서 경제가 벌전한건지, 유신과 상관없이 그 기간에 발전요인이 있는지를 봐야죠. 그리고 유신이 높은 지지를 받은건 위의 이유와 함께 독재정권과 언론장악이 큽니다.
16/02/17 17:20
호도하는게 아니라, 저도 유신기간에 경제가 발전했다는 얘기를 하는겁니다. 그리고 중공업 위주 개편은 박정희를 빼놓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해선 반박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혹 반박 자료 있으시면 알려주세요.
그리고 국민의 높은 지지를 온전히 정권탓과 언론탓만 하는건 당시 국민을 너무 무시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16/02/17 17:44
북한 주민의 높은 지지를 온전히 김씨일가와 언론탓만 하는건 북한주민을 너무 무시하는거라고
생각하시나요? 북한과 빗대면 지금 하시는말들 상당수는 김씨일가를 비호하는거랑 다를바 없다고 생각안하시나요? 1970년대 말까지 김일성은 경제를 발전시켰고 북한 주민들의 높은 지지를 받았다.. 라는것은 양가님 말대로 역사적 사실이니까요.
16/02/17 17:46
양가 님// 너무 대놓고 물타려시는거 아닙니까 물도 좀 적당히 타시죠 유신기간에 대헤 이야기 하는데 은근슬쩍 임기전체로 범위를 넓히면서 반박자료를 요구하는 갓은 저열한 행위죠 제시하셔야 할건 유신과 경제발전의 상관관계입니다 남에게 요그할게 아니라
16/02/17 18:42
양가 님// 나이 인증하는 거 같아서 말안하려고 했는데 제가 어린 시절 박통치하였습니다, 아주 많은 기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것이 있습니다
당시는 국민학교라고 했었죠, 수업 시간에 담임 선생님이 북한에 대한 말씀을 하시다가 우리나라는 다행히 훌륭하고 위대하신 박정희 대통령 각하 때문에 북괴와 달리 어쩌고 저쩌고, 어린 마음에도 이상했었나 봅니다 집에 와서 집안 어른들에게 박정희대통령이 그렇게 훌륭하신 분이냐고 묻자 무슨 소리냐시기에 학교에서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하고 제가 들은 말을 들려주자 어른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서로 말씀을 잠시 나누시더니 제게 신신당부하셨습니다 나가서 누가 박정희대통령에 대해서 물으면 난 어려서 잘 모른다고 대답하라고요, 혹시 집안 어른들이 관련 이야기를 한 적이 있냐고 물어도 들은 적 없다고 하라고요, 얼마나 신신당부하시던지 어린 마음에 이 일은 기억에서 지워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잊혀지지 않은 에피소드입니다 당시는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아니 대통령 욕을 하는 것도 아니고 박정희대통령이 그렇게 훌륭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의 대통령이냐는 의구심조차 허용안되는 시절이었습니다 그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의 투표였습니다. 공포와 불안으로 다스리는 정치 속에서 자포자기한 투표, 이런 맥락을 아셔야 할 듯합니다 그리고 지금 양가님 논리대로라면 70대 말까지만 해도 북한 경제가 우리보다 발전하였고 북한 주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으니 당시만 놓고 보면 김일성은 박정희대통령보다 더 좋은 지도자였다고 말하는 것도 역사적 사실이겠네요
16/02/17 18:50
양가 님// 그리고 추가로 기억나는 일들을 적자면 학교 조례나 외부 강사 강연에서 이런 말이 빈번히 사용되었습니다. 위대한 지도자 박정희대통령의 통치 어쩌고 저쩌고, 그러면 정말 그 당시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냐 하면 아니었습니다
행여나 몰래 안좋은 말 하다가도 모르는 사람이 들을라 치면 입다물고 다른 일 하던 사람들 많이 봤었고요, 무엇보다 박대통령 시해 후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방송에 울고 불고 하는 모습이 나오면 당시 분들은 뭐가 그렇게 슬퍼서 저렇게 우냐고 빈정거리셨죠
16/02/17 15:30
유신투표 이전에 대선에서 박정희가 55퍼센트 김대중 45퍼센트 지지율이었습니다. 대선때 김대중에게 표를 줬던 사람들 대부분이 후에 유신투표에서는 찬성표를 던졌다는 얘깁니다.
16/02/17 15:32
그러니까, 박정희 정권 아래에서 시행되는 투표에서 나타나는 지지율 자체가 허수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입니다.
말씀하신 박정희 정권의 지지율 패턴은, 나치정권의 지지율 패턴과도 비슷하게 흘러갔는데요, 실제로 나치독일 성립시에 43.9퍼센트였던 득표율이, 나치정권이 진행되면서 90퍼센트를 넘게 됩니다. 그렇다고 나치독일이 정당화되던가요? 지금의 기준은 고사하고, 당시의 기준으로도 정당하지 않았죠.
16/02/17 15:37
모든 정치 활동이 금지되고 미디어가 통제된 계엄령 하에서 이뤄진 투표라는 점은 감아해야 할겁니다. 또한 유신이 안되면 전쟁날 것처럼 떠들었던 것도 한몫 하구요.
"만일 국민 여러분이 헌법 개정안에 찬성치 않는다면 나는 이것을 남북 대화를 원치 않는다는 국민의 의사 표시로 받아들이고 조국 통일에 대한 새로운 방안을 모색할 것임을 아울러 밝혀두는 바입니다." (박정희)
16/02/17 16:24
그럴리가요. 정반대로 이걸 돌려서 말씀드립니다.
제가 정말 양가님께서 이걸 선심이라고 생각하셨다고 해석했다고 보시는 건가요? 현재 양가님께서 이 건에 대해서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시면서 어떤 말씀을 하셔도 스스로의 말이 스스로의 말을 부정하는 상황이라는 걸 말씀드린 겁니다. 그래서 '자승자박'이라는 말씀을 드린 거구요.
16/02/17 16:54
양가 님// 1. 양가님께서는 "유신이 민주체제의 근간을 흐트러놓는것은 맞지만, 당시 국민투표에서 90퍼센트가 넘는 지지율로 통과가 되었고, 몇년후 재신임투표까지 해서 70프로가 넘는 지지율로 유지가 되었던 것이 유신체제입니다."라고 하시면서, (오늘날의 시각과는 별개로) 당시의 시각에서 유신이 정말로 국민지지를 받았던 것처럼 묘사하셨습니다.
2. 그러나 제가 독재정권에서의 지지율은 설득력이 없다는 반론을 드리자, "유신투표 이전에 대선에서 박정희가 55퍼센트 김대중 45퍼센트 지지율이었습니다. 대선때 김대중에게 표를 줬던 사람들 대부분이 후에 유신투표에서는 찬성표를 던졌다는 얘깁니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지지율의 증가가 실제로 국민의 지지의 증가를 나타내주는 것처럼 묘사하셨습니다. ----------------------------- '유신이 민주체재의 근간을 흐트러놓는 위헌적 조치'라는 평가는, '유신투표에 나타난 지지율이 국민의 지지율을 반영한다'는 평가와 동시에 성립할 수 없습니다. 유신이 위헌적 조치로 평가받는 이유는, 그 내용 이전에 유신투표가 이루어진 과정 그 자체가 위헌적이며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게 명백하게 양가님 스스로의 말씀이 스스로의 말씀을 반박하는 지점입니다.
16/02/17 17:32
jjohny=쿠마 님//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유신은 아시다시피 국민의 기본권등 민주원칙의 상당부분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에 민주체재를 흔드는 것이었다고 말한것이나, 그 내용에 국민의 동의가 있었기에 선포가 가능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저 역시도 유신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면이 있는 사람이거든요. 물론 이건 양날의 검이라 악용되면 큰일나는 것인데, 후대사람으로서 봤을때 양호했고, 나는 그때 덕을 봤다고 생각되기에 요행이라 표현한거구요. 당시 국민들의 지지를 독재정권의 공작에서만 원인을 찾는건 너무 단순화시킨 것이라 생각합니다.
16/02/17 17:00
참 나, 독재자와 독재시대에 대해서 해석의 차이를 두고 토론인데 쿠마님이 운영자 라는 말이 왜
나와요? 거기다 운영이나 벌점을 두고 못하네 재신임 얘기까지. 비열한 자세입니다. 운영자가 아니라 쿠마라는 회원으로서 지금 토론하는데 쿠마님 입을 막겠다. 이게 독재자의 방식이지요. 물론 요즘은 세련되서 물고문 전기구이 구타는 안하지만요.
16/02/17 17:46
양가 님// 운영자의 비판 좋은데 그건 운영자가 운영을 할 때 비판해야지 쿠마라는 회원이
독재자와 독재시대 토론하는데 벌점, 재신임 얘기가 왜 나와요. 흔히 물타기 라고 하더군요. 아시면서 모른척 하시는 건가요? 몰라서 이라는 건가요?
16/02/17 16:15
네 맞아요. 그게 독재의 수법이니까요.
북쪽에서 자주 하죠. 요즘은 많이 사라졌다고는 하던데 예전 군대에서도 비슷한 일 많았죠.
16/02/17 15:47
거의 본인말로 본인 말을 반박한 모양새...
실상 박근혜나 진심으로 할 법한 소리를 하고 계시네요. '쿠데타는 구국의 결단이었다'랑 비슷한 소리란 거죠. '유신으로 국가발전' '그당시에는 독재가 답' '그래서 사람들의 지지율이 55%에서 90%로 올라간 것이다' 맙소사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이런 건 역사적 인과관계 추론이나 어떤 해석이라고 부르지 않아요. '답 정해놓고 끼워맞추기'라 부르죠.
16/02/17 17:42
쿠데타는 구국의 결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유신으로 국가발전도 저는 동의 하구요. 독재가 답이라고는 생각 안하지만 반대파의 주장대로 포항제철 안짓고 농업중심 국가로 정책을 수립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보니 우울해지긴 하네요. 답을 정해놓고 끼워맞추는게 아니라 절대악vs절대선 이라는 인식의 틀에서 벗어나자는 거구요.
16/02/17 17:52
그래요? 그럼 지지율 55퍼센트 받던 사람이 35퍼센트나 올린 비결좀 말해주세요. 그것만 알려주시면 누가 잘못된 인식의 틀에 박혀 있는지 알수 있을겁니다. 한번 말해보세요.
16/02/17 19:00
양가 님// 하! 이게 바로 님이 말하는 '올바른 인식의 틀' 인가보군요?
https://namu.wiki/w/10%EC%9B%94%20%EC%9C%A0%EC%8B%A0 집권 직후, 우선 박정희는 1971년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 일명 국가보위법이 제정되었다. 그 후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는 국회를 해산하고(당시 헌법에는 대통령의 국회 해산권이 없었다) 모든 정치활동과 정당활동을 중단시켰다.[1] 그 뒤 조윤형, 이종남, 조연하, 김녹영, 김경인, 최형우, 이세규, 박종률, 강근호, 나석호, 류갑종, 김한수, 김상현 등 야당 국회의원들을 감금한 뒤 고문했다. 장소는 육군보안사령부(정동 분실과 서빙고 분실 등), 6관구 헌병중대, 5관구 헌병대 같은 곳들이다. 고문행위에는 침대각목으로 3일동안 전신구타하기, 알몸에다 구타하기, 찬물을 끼얹어 링게르주사를 준다음 구타하기, 거꾸로 매달아 난타하기, 물고문 따위들이다 그런데 대체 누가 흉악범인지 모르겠네요?
16/02/17 17:52
당장 포항제철 짓는 돈이 어디서 나왔을까요?
이 과정도 문제가 많지만 어쨌거나 받은 돈, 피해자에게 돌려져야 할 개인배상금을 별다른 사회적 합의도 없이 함부로 횡령한 것 아닙니까? 아니 시대적 상황을 감안해 그게 무리라면 TV연설, 이것도 무리라면 라디오연설이라도 좋습니다. 아무튼 박정희가 매스미디어든 뭐든 대국민담화를 통해 '우리나라가 이러이러하다, 그러니까 나중에 꼭 보상을 해드릴 테니 지금은 경제개발에 쓰겠다.' 이런 식으로라도 마스터플랜이라도 얘기한 적이 있습니까? 가끔 포철 등의 몇몇 사례를 들어 그 돈이라도 경제발전에 썼으니까 지금 우리가 이만큼 사는 게 아니냐는 분들이 있는데요. 왜 그렇게 해서까지 잘 살아야 하죠? 당장 자신의 돈이 아닌 것을 자신의 돈처럼 써놓고서요. 이걸 보고 도둑질이라고 하지 않나요? 박정희와 박태준의 얘기가 미화가 되어 포철 짓는 비용 1억불을 벌벌 떨면서 썼다고 하죠? 바다 앞에 빠져죽자는 둥 어쩐다는 둥 하면서요. 애초에 이건 어불성설이죠. 그 돈이 어떤 돈인데요.
16/02/17 18:00
그 돈은 일본한테 배상금 명목으로 받았죠. 그리고 그때 경제개발은 그렇게 까지 잘살아야 하나 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닙니다. 보릿고개가 닥치면 굶어죽냐 아니냐, 휴전중인 북쪽에게 잡아먹히냐 아니냐 의 목숨이 달린 문제였습니다.
일본배상금이 강압적으로 쓰인건 국가의 폭력이라면 폭력일 수 있지만, 후대사람으로서 하루3끼 밥걱정은 덜어준 경제발전에 고마워 할 수 있는거 아닌가요.
16/02/17 18:07
그래서 피해자한테 가야 할 돈을 마음대로 전용한 게 정당하고 합당하다는 거죠?
강탈이든 뭐든 피같은 돈을 멋대로 갖다 쓰는 게요? 물론 저도 그 당시 생활상이 어렵다는 건 알고 있어요. 그래서 윗 댓글에서도 언급했죠. 최소한 국민들에게 지금은 경제 발전을 해야 하니까 훗날 피해를 보상하겠다, 이런 표현은 해야 하지 않느냐고요. 그런 적이 있나요? 그리고 이걸 고마워해야 해요?
16/02/17 18:16
네, 고마워 할 수 있지 않나요? 피같은돈 받아서 자기 호주머니에 넣은거도 아니고 제철소 지어서 잘사는 나라 만들어줬는데. 말레이시아였나 딴나라는 똑같이 전쟁배상금 받아도 그런업적 못세우고 당시 우리보다 잘살다가 지금은 비교도 할 수 없는 국가로 역전당했는데요. 고마워 할 수 있는거 아닌가요?
16/02/17 19:09
양가 님// 자신이 피해자가 아니라고 그렇게 마음대로 말씀하지 마세요.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은 합리화할 수 없는 겁니다. 이건 위정자들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할 때 자주 부르짖는 표현이죠.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기 위해서~'라는 그럴 듯한 수식어 붙여가면서요. 착각하지 마세요. 한국이 지금보다 못산다고 그것이 불행과 연결되는 건 아닙니다.
16/02/17 18:36
양가 님// [피같은돈 받아서 자기 호주머니에 넣은거도 아니고]
? 자기 호주머니에 안 넣었다는 팩트는 어디서 끌어오신 건지? 그냥 개인적인 믿음이요 사람들 몇몇이 주고받는 말이 끝인 경우 아닌가요? 장학재단 강탈에 당시 금고에서 꺼낸 6억 등에다 여대생 끼고 시바스리갈 요정에서 마셔댄 것 생각하면 박정희는 결코 청렴하다고는 할 수 없는 인물입니다. '비리가 있을 거라고 말하는 게 음모론' '팩트만으로 말해라'는 식의 말로 피해가기엔 그냥 동서고금의 시대보정시 독재자 분류에 속하는 인물들은 거의가 횡령 및 축재에 몰두해왔고, 실제 드러난 일로도 박정희는 청렴과 거리가 멀어요.
16/02/17 18:48
양가 님// 어이구. 둘 다 말할 팩트나 근거를 가져올 수 없을 때, 이미 드러난 행적과 인물 성향, 또한 그 인물이 속하는 분류의 전형에 의해 각자 한 방향을 주장하려면 그쪽(양가 님)이 근거를 보다 더 가져와야 한다구요. 그냥 '넌 뭐 있냐?'그게 끝이라면 '내가(양가님이) 한 말은 아무 근거가 없었네요 인정합니다'를 말한 걸로 알겠습니다.
16/02/17 17:53
역사에서 가정법을 쓰지마세요.
그런 가정법이라면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키지 않았다면, 이승만이 대통령이 되지 않았다면 이런 가정법에서 논거 전개해도 인정하실겁니까? 그랬다면 6.25도 안일어났을수 있고, 통일이 되서 일본보다 더 잘나가는 동북아의 패자가 되어 있었을수도 있는겁니다. 나쁜방향으로 가정법을 사용하여 모든 만악의 근원은 박정희 라는 역사적 가정에는 동의하실수 없으실텐데요.
16/02/17 18:12
당시 야당후보의 주장이 저랬습니다. 중공업계획 백지화와 농업중심의 경제구조. 이건 충분히 비교가...아니 비교를 안할래야 안할수가 없는 혜안의 차이 아닌가요?
만약 야당후보가 공약은 저렇게 했어도 실제로는 중공업발전시키고 도로도 잘깔고 그랬을거다 라고 말하는게 가정법이죠.
16/02/17 18:49
유리한 부분에 가정법만 쓰시지 마시구요.
못한부분에도 가정법 쓰셔야죠. 그런식으로 가정법 쓰시면 야당후보가 당선된후 농업도 일찍 발전시키고 다른 산업도 균형있게 발전시키면서 전두환-노태우 군사정권이 없었을테니 민주주의도 한층 빨리 확립되서 지금보다 더 나은 대한민국이 됐을거라는 가정은 왜 안하시나요? 또 박정희의 그 정책을 혜안이라고 칭송하신다면 김대중의 imf극복을 위해 it 집중육성정책으로 imf를 단시간에 극복한 사례에 대해서도 혜안이라고 평가하실지 의문이네요. 김대중의 모든 정책적 실패는 다 눈감아주고 말이죠. 아마 그러시진 않으실거 같은데.. 역사에 만약에 란 말을 쓰는순간 한도 끝도 없습니다. 이 단순한 비판에도 자기 아집에 빠져서 만약에 라는 논거를 제시하시면 토론이 아니라 그냥 떼쓰기 밖에 안됩니다.
16/02/17 20:15
공약끼리 비교한걸 가정법이라고 하시면 안되죠. 그리고 김대중이 대통령이 된 후엔 과거에 주장하던 경제안을 많이 벗어던져서 다행이라 생각하구요. (그 때문에 원 경제스승한테 변절자 소리 들은걸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곳간이 넉넉하게 차 있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해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별도로 생각하는것도 안와닿구요.
16/02/17 21:35
공약자체가 가정인데 가정법 아니라고 우기시네요.
이명박이나,박근혜 공약대로 코스피가 3,4천에 국민소득 3,4만달러 됐을거라고 가정하시는거에요. 민주주의는 곳간이 넉넉하게 차있어야 가능하시다구요? 이말을 북한의 경우에 빗대면 또 김씨 정권을 옹호하시는건데... 박정희 독재를 옹호 하자고 북한에게 정당성을 부여하시는 무리수는 참 안타깝네요.
16/02/17 18:42
헣헣
프레이져 보고서 내용을 대강 기억하는 바 오히려 중공업 주도의 산업은 미국의 준 강권에 의해 진행되었다는 이야기를 읽었었는데요. 김대중이 오로지 농업을 목이 터져라 부르짖었다는 자료의 근거를 일단 대강이라도 말씀하셨으면 합니다. 궁금하면 알아서 구글링해봐라는 식으로 레퍼런스 없이 읊고 넘어가지 말구요. 그리고 절대악 대 절대선이라는 인식의 틀에서 벗어나자는 말이랑 님이 한 말이랑은 전혀 상관 없는데요? 대선때 김대중에게 표를 줬던 사람들 대부분이 후에 유신투표에서는 찬성표를 던진 이유란 독재의 강요일리가 없고 사람들이 절대악 절대선 인식의 틀에서 벗어나 이성적이기 짝이 없게 나라를 발전시킬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고 보는 건, 그냥 박정희 찬양입니다. 아니, 오히려 박정희 절대선론이겠죠. 그거 끼워맞추는 거 맞아요. 박정희 가카 말고는 나라의 앞날이 어둡기 짝이 없을 게 분명하고, 독재 좀 했지만 그게 뭐 어떠며, 나라발전은 박정희가 이루어냈고, 등등등. 이미 결론을 정해두니 독재정권 아래 투표가 90%가 나왔는데 강요란 없었다고 강변하는 거죠. 그런 걸 두고 인과관계 추론방법의 변화나 고찰이라고 하진 않죠. 자기세뇌라고 합니다.
16/02/17 19:04
애초에 금주법 실시해놓고 그 와중에 자신은 요정집에서 여대생 끼고 시바스 리갈 마신 분이니, 이미 초법적인 분이시죠. 아니 찬양의 대상인 데미갓이시니 당연한 걸지도. 어떻게 봐도 국가를 위한 행위는 아닌 것 같은데 그 돈을 자기 돈으로 냈을 거라 생각하시는 분들이 제법 계신 것 같더라고요.
16/02/17 20:29
글쎄요 저는 중공업 하려할때 해외전문가들도 다 가능성 없다고 했고 그래서 해외에서 차관 얻는데도 고생했다고 알고있는데요. 설령 미국이 강권했다고 해도, 부모가 아무리 잔소리해도 공부 안하는 놈은 안하지 않나요.
레퍼런스는 그의 공약이자 저작인 대중경제론으로 검색해보시구요. 독재니 뭐니 해도 제가 느끼기엔 정권의 강압성이 많이 과장되었다고 보고, 똑같이 식민지에서 독립했던 나라나 근방의 국가들과 비롯하면 충분히 A+를 줄만하다...아니 평가를 하기보단 고마움을 느낍니다.
16/02/17 21:36
살아봤어요 그시절에???
정권의 강압성이 많이 과장됫다고요?? 축소면 축소지 과장이라니.. 허허 유신시절 피해자 면전에서 말할 논거나 용기도 없으면 어린티 내지마시고 그만하세요 추해보임 반박 못하는 의견엔 제대로 반박은 하나도 안하고 자기 할말만 계속하거나 물타기밖에 할 줄 모르시는데 딱 댓글 수준이 모 사이트 회원수준이라 느낍니다 ^^
16/02/17 17:38
님 가면 갈수록 코메디가 늘어나는군요. 유신 투표 이전에 55퍼센트 받던 박정희가 유신 투표할때는 90퍼센트로 뛰었다니. 대체 박정희는 무러 했길래 지지율을 35퍼센트로 늘렸답니까? 이제 선거 그만두고 독재하자고 하니까 우리 국민들이 환호성 보내면서 박정희 지지했답니까? 아니면 궁정동에서 여대생 가슴 주무르면서 술퍼마시니 지지율이 35퍼센트나 올랐답니까? 박정희 딸이 선거의 여왕 소리 듣고 있는데 박정희는 여왕을 넘어서 완전 갓이네요. 님은 유신 투표 90퍼센트는 아무 의심없이 믿어도 북쪽에서 김일성 지지율 90퍼센트 나왔다고 하면 코웃음 치겠죠?
16/02/17 15:34
90퍼센트도 90퍼센트 나름이죠
계엄하에서 모든 매체가 유신의 정당성을 설파하고 찬반행위가 금지 되었으며 투개표시 정당참관인 제도도 폐지 됐죠 게다가 3일전에 행한 군 부재자 투표는 100퍼센트 입니다 크;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하시면서 박정희의 공만은 인정하자고 주장하시는데 이율배반적이라는 생각 안드세요? 양가님 말씀대로 그건 '요행'인데요
16/02/17 18:35
네, 요행이니깐 운이 좋았다는겁니다. 그럴일은 없지만 지금 유신하자고 투표를 하면 전 반대표 던질꺼거든요. 하지만 과거 유신은 후대사람으로서 봤을때 덕을 봤다고 생각하고 있구요,당시 모든매체가 떠들었다는 유신의 정당성에 상당부분 저도 동의를 하구요.
16/02/17 15:36
=========================
당시 학교의 '반공 교과서'에서는 북한의 선거제도에 대해 설명하며 후보는 한명이고 실질적으로 반대를 할 수 없으며, 항상 99% 이상의 투표율 및 찬성표가 나온다고 비판했다. 이 유인물에서는 앞면에 이 교과서의 내용을 그대로 써 놓은 뒤, 바로 뒷면에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99%의 투표율과 찬성표로 박정희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당시의 신문 기사를 그대로 써 놓았다. 조갑제도 이후 "유신시대에 나온 수많은 지하 유인물 중에서 이것만큼 간결하고 탁월하며 뚜렷한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하고 있는 것은 없다."라고 높이 평가할 정도이다. ========================== 라고 하죠. 유신의 의미를 탐구해 볼 수 있겠지만 우리가 무슨 북한도 아닌데 유신시대의 끝내주는 투표 찬성률 이야기는 유신에 대한 자해입니다.
16/02/17 15:54
유신은 민주화 운동의 격렬함과 횟수가 증폭된 계기입니다.
크리스천 아카데미, 김수환 추기경의 성탄미사에서의 발언, 부마항쟁 등은 유신 이후에 일어났죠. 하지만 유신 이전에 일어난 민주화 운동 관련 사건은 한일협정반대 시위 정도가 고작입니다. 즉, 당시 기준으로도 유신은 용납하기 어려운 체제였다는 거죠
16/02/17 17:30
글쎄요.. 그당시 90%의 지지율이라고 말씀하시는건 지금 김일성-김정일-김정은 국가도 민주국가라고 불려야겠죠.
모르긴몰라도 거기서 지금 김정은 투표하면 90%나올껄요?
16/02/17 18:57
속으로는 역시 pgr은 북한에는 관대하면서(이 분이 직접 한 표현입니다) 박정희 독재 좀 한 거에는 유난하다고 생각하고 있겠군요.
16/02/17 22:11
자신의 이득 때문이 아니고 진짜 저런 식견 가지고 있다면 참 미래가 암담하네요
우리나라 유신 옹호 하는 분들 수준이 다 저렇다는 건데...
16/02/17 22:27
독재정권에 자기들이 직접 당해봐야 정신을 차릴 사람들 같습니다.
해서는 안될 생각이지만....독재옹호하는 사람들 보면 '반대파 정권이 독재해서 한번 당하면 저러지 않겠지' 하는 생각이 가끔 듭니다.
16/02/17 23:59
한분에게 드린 댓글인데 아무래도 따로 써야 할 것 같습니다, 그분에게는 통할 것 같지도 않고 해서요, 다만 박정희 대통령 시절이 어떠했는지 저 개인의 경험담을 알려드리고 싶어서 위에 적은 글을 따로 댓글로 남기겠습니다
전 유년기 시절 박통 치하에서 보냈습니다. 당시는 국민학교라고 했었죠, 수업 시간에 담임 선생님이 북한에 대한 말씀을 하시다가 우리나라는 다행히 훌륭하고 위대하신 박정희 대통령 각하 때문에 북괴와 달리 어쩌고 저쩌고, 어린 마음에도 이상했었나 봅니다 집에 와서 집안 어른들에게 박정희대통령이 그렇게 훌륭하신 분이냐고 묻자 무슨 소리냐시기에 학교에서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하고 제가 들은 말을 들려주자 어른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서로 말씀을 잠시 나누시더니 제게 신신당부하셨습니다 나가서 누가 박정희대통령에 대해서 물으면 난 어려서 잘 모른다고 대답하라고요, 혹시 집안 어른들이 관련 이야기를 한 적이 있냐고 물어도 들은 적 없다고 하라고요, 얼마나 신신당부하시던지 어린 마음에 이 일은 기억에서 지워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잊혀지지 않은 에피소드입니다 당시는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아니 대통령 욕을 하는 것도 아니고 박정희대통령이 그렇게 훌륭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의 대통령이냐는 의구심조차 그렇게 조심하고 또 두려워해야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16/02/18 00:37
유신체제 당시 법률과 동일한 효력이 있던 긴급조치 1호 및 9호에 의하여 대한민국에는 '유언비어죄'라는 것이 존재했습니다.
법정형에 징역형만 존재하는 중형이었습니다.(물론 실제론 집유를 받는 일이 많긴 했겠지요.) 최근 대법, 헌재가 공통적으로 지적하듯 사실 여기의 '유언비어'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지는 잘 알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각하께서만 아셨겠지요) 다만 대법원 재판연구관의 보고서에 의하면 취중발언, 이웃과 나눈 대화, 전화통화로 유신헌법과 긴급조치 및 정부의 시책에 대한 비판, 남북한의 생활상 비교, 대통령 개인에 대한 소문을 이야기하는 경우 유언비어 유포죄로 처단되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돌돌이지요 님이 당시 하셨던 말씀은 실제로 당시 법에 의하면 유언비어죄에 해당할 소지가 상당히 있었습니다. 돌돌이지요님 본인이야 형사미성년자셨겠지만 만약 집안 어른 누군가가 거기에 동조했다가 밖으로 새나가면 난리가 났겠지요. 참고로 '긴급'조치 9호는 1975년 5월부터 1979년 12월까지 계속됬습니다. 긴급의 개념을 어떻게 잡아야 4년씩이나 긴급사태가 계속될까요?
16/02/18 00:46
유신 이전의 박정희는 어떻게든 평가가 갈릴 수 있겠지만 유신 이후는 간단히 악인입니다. 헌정을 유린한 독재자를 두둔하는 스펙트럼은 극좌 아니면 극우에요.
16/02/18 01:43
우리사회에 별의 별 인간들이 다 있다는 게 현실인데..
그냥 비율의 문제일뿐 여기라고 그런 인간들이 없을 수는 없죠... 직접 본것만 해도 고문을 옹호하는 댓글도 달리고 돈만 주면 다른 사람을 어떻게 할 수도 있다는 댓글까지 있었는데... 유신긍정쯤이야 한두번 나온 이야기도 아니고 상대적으로 귀여워 보일 정도에요..
16/02/18 02:48
별의 별 인간들이 다 있다라.. 하긴 뭐 학창시절 주변에서 공금 횡령한 사람의 과감성과 배짱이 부럽다는 사람이니까요.
고문옹호에 비하면 유신긍정이 귀엽나요? 음...... 사실 따지고 보면 유신 한 단어 안에는 고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신 독재 좀 하면 어때 나라만 발전시키면 장땡이지'론을 펼치는 사람들은 고문, 사법살인, 횡령, 탈세, 강탈 등이(채홍사 여대생 짓거리는 뭘로 끼워넣어야 할지 모르겠군요) 모조리 거기 포함되어 있다는 디테일에는 눈감고 귀막은 채 부르짖는 거죠. 아 저 위엣분은 이승만의 건국의 공이란 자국민 학살쯤은 차이가 날 정도로 뒤덮고도 남는 거대한 업적이기에 이승만은 국부가 맞다고 보는 분이라 모조리 인지한 상태에서 저리 말하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실제로 대를 위한 소의 희생 운운하기도 했나 보군요.
16/02/18 13:56
본문글과 관련해서 기사가 하나 더 나서 링크 걸어 드립니다.
http://www.nocutnews.co.kr/news/4549122 [Why뉴스] "하급심들 왜 대법원의 판결을 반박하나? 이유는 현재 대법원의 판단이 여러가지로 봤을때 제대로 된 판결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라네요. 물론 이를 수용한 판결이 훨씬 더 많으니까요. 다만 이러한 반박 판결이 앞으로 쌓이면 쌓일수록 결국 바뀔 수 있는 근거가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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