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는 없습니다. 바꿔 말하면 어떤 소우주 안에서만 국한 돼 자칫 그 안에서조차 성립 못할 수도 있는 아주 제한적인 인상 비평에 불과하다고 미리 밝힌 채 시작하고 싶습니다. 말이 트여야 정이 더 쉽게 붙는다고들 하는 말이 떠도는데, 재주가 미천해 내세울 건 정직밖에 없어서 무언가 더 솔직하게 하고자 편의상 반말을 부득불 사용했으니 이해주시길 바랍니다.
-
굳이 열거할 필요가 있을지 자문조차 전혀 들지 않을 만큼 이 영화에서 사용되는 클리셰는 무수히 많다. 긍정적으로 말하면 이 일본 영화는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소소한 일화들을 차곡차곡 모아둔 어쩌면 꽤 예쁘장한 보따리다. 거기에 되는대로 마구잡이 갖다 던져 넣지도 않아서 이 묶인 선물 주변은 멀리서 보아도 자질구레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편이다. 그런데 왜인지 기이하게도 좀체 보따리는 쉽사리 풀리지 않는다. 크레딧이 스르륵 올라감과 동시에 과연 여기에 보물이 들어있는지 혹은 텅 비어있는지 난 궁금해졌다.
모녀의 되풀이, 축구의 단순한 규칙, 연거푸 겹치는 우연, 바다-물의 읨.. 나 잘났어요. 나 이만큼 찾았어요. 귀여운 거야 재롱잔치에서나 보면 충분할 터라, 애들 장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결국 영화 보기란 감독이라는 이름을 가진 어떤 신과 맞서 싸우는 놀이다. 스크린 안에 함몰 돼 이야 신기하다 어떻게 또 걔가 옮길 때 딱 아줌마가 죽고 또 거기서 걔는 탈국하고 와 이렇게 딱딱 들어맞게 각본을 썼을까 궁금해 할 필요따윈 없다. 디테일이니 자시구니 사소하고 미미한 것에 집착하는 건 감독을 무시한다는 점에서도 문제지만 스스로를 비웃는 짓이기에 더 크다. 난 이것밖에 안 돼요. 아 거기까지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그래 그렇게 넘어가고 싶진 않았다.
다 아는 이야기다. 딸이 나고, 또 그 딸이 딸을 낳고, 내 딸이 네 딸이고, 아빠야 누구든 너도 나도 쟤의 언니이자 동생. 가족의 소중함? 저출산에 신음하는 전지구, 인류를 위한 박애정신? 대체 감독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아니 그의 믿음이 달라졌는지 몹시 궁금했다. 그릇된 정열은 한두번 반짝에나 그치기 마련이지 십년을 넘게 스스로를 속이기란 돈에 환장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편이기도 했다. 대놓고 떡하니 보여주는 신사나 저 구석에서 파도 타는 서퍼던 화면 안의 것이라면 자질구레한 모든 소품까지 풍경 소리에 쓰듯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단 하나의 블럭이라도 줄기에 관통하지 않는다면 마침내 쓰러져 보여줄 도미노의 진면목을 볼 수 없는 셈이다.
소파에 푹 묻혀 있던 나를 처음 등뼈 꼳꼳히 일으켜 세운 것은 모두 검은 옷을 입은 날 중 마지막이었다. 대가 다르고 피는 조금 더 혼탁한 이 후손들의 만남, 여기서 결국 세대간 아니 나와 너가 어떻게 우리라는 연대의식을 가져야 하는지 묻는다. 그렇게 정적 속에 진행된 컷이었음에도 나는 이제 그 둘이 무슨 대사를 쳤는지 느낌조차 잘 생각나질 않는다. 다만 마지막에 어디로 한번 놀러오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건 이 영화 안에서 자꾸 누군가 집착하라는 것처럼 보이는 집-가정에 관한 전통적 의미를 생각했을 때 더욱 무엇을 믿어야 할 지 스스로 자신 없게끔 떠민다.
소녀도 늙는다. 연애던 낙서던 이 말을 하도 숱하게 써먹는 생활을 해온 터일까 나는 도저히 새로운 생각을 찾을 수 없어서 그래서 뭐 어쩌라고 되풀이 나인지 감독인지 그 대상을 모를 안타까움에 몸둘 바 몰라 더 몰입하고자 눈을 부릅 떴다. 여러 인물이 한 컷 내지 한 씬에 함께 있을 때는 집중하지 않고 힘을 모아서 주로 장녀나 막내를 단독으로 다룬 씬에만 주목했다. 우리가 궁금한 건 마치 저 새벽녘 우연히 멀리서 목격하고만 건넛 동 아파트 복도에 나와서 담배를 피우는 어떤 분간되지 않는 청년인지 중년인지 모를 사내가 왜 담배를 태우는 듯한 모습으로 있느냐지 내가 손수 경험한 일상이 저런 예쁜 애들에게도 똑같이 일어날까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어지럽게 내 머릿 속을 중구난방 부유하는 수많은 컷들의 의미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진짜 무슨 트와이스가 나오는 케이블 타는 예능 프로그램 보듯 와 귀엽네 예쁘다 아이고 맙소사 슬프다 음 저런 게 여자의 인생이고 사람 사는 모습이지. 이렇게 생각하기에는 너무 찌꺼기만 가득 차 소화불량이 된 것처럼 불콰해져 이렇게 낙서를 잔뜩 해도 잔변감이 가셔지질 않는다. 아이가 어른이 되어 부모가 되고 애 새로 낳고 살다가 죽지만, 그건 아름다운 일이야 그러니까 애를 낳아. 나는 누구처럼 잘 생기지도 않아서 모계 유전자가 무엇이든 낳는 족족 딸이 예쁠 리도 전혀 없다. 이래선 안 되는데 설마 그래서 불쾌한 건지도 모르겠다.
-
무겁긴 무거운가 봐요. 무언가 나누겠다 마지막으로 결정하는 순간만 되면 낯설고 망설여집니다. 이번에는 여러모로 특히 더 꺼리는 점이 번갈아 저를 스쳐지나갑니다.
입봉작이면 경우가 달리 없겠으나 이만큼 영화를 찍어낸 감독의 신작을 살펴볼 때 필모를 배제한 채 이야기한다는 건 헛소리만 잔뜩 늘어놓은 밥상이 되기 십상인데, 전 겨우 아무도 모른다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딱 두 편만 봤을 뿐입니다. 더더군다나 오프닝과 크레딧에서 확인한 바 아마도 올해 칸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이었고, 올해 불가피하게 참여하지 못한 부국을 통해서 이미 한국어권 관객에게도 소개됐다는 걸 알기에, 달리 제가 특별히 새로운 말은 하기보다 중언부언 것도 지루하고 뻔 한 것을 되풀이할까 두려운 점도 큽니다. 부러 따로이 검색해보지 않고, 영화를 본 뒤 바로 작성하는 것도 그렇게 스스르를 호도하기 위해섭니다.
더욱이 이런 일본, 아니 일본의 아름다움을 피상적으로 강조하는 영화에 한국인이 일본을 알면 얼마나 안다고 경도고 나발이고 떠들어! 꾸짖는 내부의 목소리도 자꾸 점점 크게만 들려오는데다가, 오늘은 한일관계 혹은 한국근현대사 내지 한민족의 역사에서 적잖이 중요한 날이기도 하기에 불필요한 오해를 팔까 두려운 마음도 큽니다.
이상이 마구 써내려간 낙서를 몇번 거듭 되돌아 본 뒤 느낀 방금의 제 소회입니다. 그래도 엉거주춤 제자리걸음하지 않고 마저 딛으려는 것은 진부하게 중언부언 되풀이하는 내용임에도 여전히 영화의 내러티브 자체 만큼은 확장된 혹은 비정상적인 각도에서 보지 않아도 현재, 한국에 부분적으로 유효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더 밑에 흐르고 있을 기저를 밝히기란 어려웠지만 적어도 건전하고 건강한 유쾌상쾌발랄함임에는 분명하다는 면에서 지난 주 토요일에 방영된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고 충격 받으신 시청자들이나 난생 처음 트와이스로서 아이돌에 입덕하신 분들에게 만큼은 몇번이고 추천하고 싶습니다. 비중 있는 남우는 한두명 것도 있어야 아재 느낌 물씬에, 자매를 연기한 배우들을 비롯해 여우들은 모두 하나 같이 예쁩니다. 여러분들의 안구 건강을 위하여 다시 한번 추천합니다. 어째 후기가 더 길어졌습니다.. 이상이 CGV RVIP?인 친구를 둔 덕에 오늘 공짜로 즐길 수 있었던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본 뒤의 짧은 감상입니다.
-
조금 전 무심코 잠이 깼는데, 도저히 잠이 오질 않아서 이곳 저곳 다니던 곳 둘러보고 있습니다. 뭐랄까 병인 없이 분명한 통증이 느껴진달까 벌써 얼마나 됐는지 모를 정도로 초겨울 줄곧 불면에 시달리고 있는데, 막상 어제 써제낀 이것도 대강 다시 훑어봐도 실지 하고 싶었던 말은 그리 많이 담아내지 못한 기분이 들어 후회가 큽니다. 전 어제 이 영화를 보면서 와 되게 의미심장하구나. 또 내게 세상은 영화가 되었구나. 압구정 CGV까지 가는 동안 여길 눈팅하면서 위안부 관련 이슈를 갓 읽은 참이기도 했으며, 최근 근 한달로 넓혀 보면 트와이스라는 소녀들에 반쯤 미쳐서 막 오늘도 카드 교환이다 뭐다 덕질로 정신 없는 하루였기에 더욱 이 저 바다 건너 소녀들의 이야기는 독특하게 보였습니다. 거듭 내 뒤에서 나와 나를 둘러싼 밖을 함께 모아볼수록 돌연 트와이스에 대한 갑작스러운 뜨거운 애정이 실연의 고통을 달래는 것에 그친다고도 전혀 생각들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외적으로 역시 거의 스스로 자학하고 싶을 때 와도 적당할 정도로 요새 이곳 저곳 어디던 눈팅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세상이 막장이 된 건지, 아니면 세상-언론이든 SNS든 도구가 좋아져 저 구석구석 숨어있는 일부 막장들이 제 눈에 띄기 쉬이 쉬워진 건지 지금 이 순간도 잘 가늠되지 않습니다. 음란한 마음이 골수까지 가득찬 변태보다 못한 싸이코가 곁에 앉아 있을지도 주위를 스쳐지나갈지도 모르기 때문일지, 핸드폰으로 컴퓨터로 저 멀리 미국땅에 있는 친구한테나 겨우 연락해서 유대감을 느끼는 게 고작인 이 현실, 그런데 이 영화가 은연 중에 우리에게 조장하고 있는 것은 그와 많이 다르다고 느껴졌습니다. 제 몸은 이 골통의 꼭두각시면 충분히 족하다 생각하고 사는 편이라 더 그런지 감히 내 무의식을 멋대로 침범하려는 그 사악한 혹은 멍청한 간지로 뒤섞인 이 미장센만 가득 찬 영화, 마치 작년 부국을 전후해서 소년, 소녀 그리고 바다를 보는 듯한 언짢은 기시감, 그래서 반드시 언급하고 넘어가야 한다 싶었습니다. 아멜리에 때의 카에뒤시네마처럼 새로운 시대정신은 혹 못 세우더라도 이 일본 작가들의 경향에 대해서 최소 정확한 정리는 해야 한다 싶은 마음도 컸습니다. 행여나 오해하실까 한자 더 덧붙이고 끝내겠습니다. 일본이 나쁘다는 이야기를 하자는 것도 아니고, 이게 한국 영화라도 제 생각은 응당 똑같을 겁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스포일러를 하기 싫은 점도 적잖았고, 무언가 정돈되지 못한 낙서를 공개하는 게 부끄럽기도 하여 미필적 고의로 그대로 놔뒀는데, 별것도 아닌 걸로 괜한 고생을 시켜드린 것 같아 리플 달아주신 다른 분들께 죄송하다는 마음을 먼저 전하고 싶습니다. 더는 불상사를 방지하기에 위해서 적자면, 제가 본문에서 소개한 영화는 '바닷마을 다이어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