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앞 혹은 인디씬에서 여성 2인조는 유달리 정형화된 편성으로, 오랜 경력을 가진 여러 팀들이 있습니다. 몇 팀을 소개하는 글을 써볼까 하는데 이 글은 일종의 프리뷰로 올려 봅니다.
우리가 흔히 걸그룹에 매력을 느끼는 포인트 중에 멤버간의 애정 표현이 있는데, 인디의 여성팀들은 미디어 노출이 잘 없는데다 대개 성격이 내성적이라 그런 모습들은 거의 볼 수가 없죠. 하지만 이들은 시작부터 스스로 뭉쳐서 함께 버텨온 세월이 있으며 또한 곡을 직접 씁니다. 그리하여 직/간접적으로 가사에 멤버가 나오는 노래들을 골라봤습니다.
(왼쪽 : 최인영 - 보컬, 멤버 오른쪽 : 왕세윤 - 기타, 리더)
스웨덴 세탁소 - 기념일
오늘 날씨가 참 좋네 쓸데없이
그냥 늦잠이나 잘 걸 아무 생각 없이
느린 발걸음 애써 재촉해도 어디도 갈 수가 없네
거리에 굴러다니는 웃음소리가
내 것이 아닌 것 같아 괜히 눈물이 나
너와 오늘을 함께 했었다면 누구보다 행복했을 텐데
스치는 모든 사람이 너인 것 같아
오늘 하루만, 오늘 까지만 울게
오늘을 기대하며 환하게 웃던 너무도 아름답던 너를
스치는 모든 사람이 너인 것 같아
오늘 하루만, 오늘 까지만 울게
오늘 날씨가 참 좋길 바랬었는데
기대하고 기다렸던 바로 그 날인데
너와 오늘을 함께 했었다면 그랬다면
행복했을 텐데
이 노래는 한 여자가 얼마 전에 헤어졌거나 연인이 잠시 어디로 떠나서 기념일을 혼자 보내는 상황을 그린 곡입니다. 가사가 달리 해석될 여지도 별로 없구요. 그런데 라디오에서 이 노래를 쓴 보컬 최인영(사실 전곡을 다 최인영이 도맡아 씁니다.)에게 '이 곡을 쓰게 된 계기'에 대한 질문이 나옵니다. 아마 연애담이 나올거라고 예상했을텐데 이런 얘기를 하죠.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세윤이와 생일이 비슷해서 매년 같이 생일파티를 했는데 한 번은 세윤이가 갑자기 가족 여행을 가서 (비록 친구들과 놀긴 했지만) 같이 보낼 수 없게 되었다. 그 때 느낀 감정을 바탕으로 쓴 노래다."
(왼쪽 : 박별 - 건반 오른쪽 : 김현아 - 보컬, 기타)
랄라스윗 - 앞으로 앞으로난파된 배 위의 두 사람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고
힘차게 노를 젓고 있는데 새어나오는 물줄기 어쩌지를 못하고
두 발이 젖어 오고 있는데 모른 척 눈을 감은 두 사람눈앞을 스치는 작은 배 멍하니 바라보면서 앞으로 앞으로
왜 가라앉는지 왜 자꾸 제자리인지
왜 지치기만 하는지
무언가 빛나는 저곳에 닿을 때까지
앞으로 앞으로
난파된 배 위의 두 사람 고상한 웃음을 짓고서
힘차게 노를 젓고 있는데 앞으로 향해가는 건 식어가는 마음뿐왜 가라앉는지 왜 자꾸 제자리인지
왜 지치기만 하는지
간절한 기대로 다시 낡은 노를 잡고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얼핏 권태기를 맞은 연인, 혹은 위험한 사랑을 하는 연인에 관한 노래 같지만 지독한 슬럼프를 겪으면서 쓴, 팀원 두 사람에 관한 노래 입니다. 랄라스윗 음반에서 대략 70%의 창작 지분을 갖고 있는 김현아가 쓴 곡으로, 박별은 녹음하고나서 가사의 의미를 듣고는 감동을 받았다는 후문이 있습니다. 곡의 구성도 편곡도 미니멀하지만 후반부터 나오는 인상적인 일렉기타가 이들의 락덕후 성향을 잘 드러내는 곡입니다.
'앞으로 앞으로'는 랄라스윗 정규 2집의 첫 번째 곡인데, 우연히 박별도 이 앨범에 멤버(와의 실화 - 2007년 어느 날 2시간 동안의 통화)를 언급한 곡을 썼습니다. 제목이 '컬러풀'이며 1절과 2절이 각각 이렇게 시작합니다.
언젠가 스치듯 내뱉은 너의 말을 기억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진 모르겠지만 이런 건 아니었던 것 같아"
언젠가 스치듯 내뱉은 너의 말을 기억해
"서울의 낮은 하늘처럼 흐릿해진 채도는 다시 돌이킬 수 없겠지"
(왼쪽 : 김선영(영태) - 기타 오른쪽 : 조예진(에롱) - 보컬) 세 팀이 다 멤버간 키 차이가 상당하다는 공통점이...
루싸이트 토끼 - TIBI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어
마치 폭풍이 몰아칠 듯이
하지만 난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아
너와 함께 걸으니
나를 봐
아픈 게 아픈 줄도 모르던
가엾은 난 없어
이것 봐
이만큼 날 이끌어 온 너야
내 맘을 들어봐
넌 나의 길이야
내 발이 닿는 곳은
어디든 너일 거야
난 너를 걸어
넌 나의 꿈이야
내 맘이 닿을 곳은
결국엔 너인 거야
네게 날 걸어
이 팀 또한 보컬이 곡을 많이 쓰죠. TIBI는 라틴어로 '너', '너에게' 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가사가 절대적으로 의지가 되는 연인에게 하는 절절한 고백으로 보이는데 이 노래야말로 그냥 대놓고 멤버에게 쓴 노래 입니다. 기타 김선영은 이 노래를 처음 듣고 '몰래' 울었는데 나중에 녹음할 때 연주가 성에 차지 않아 수 차례 재녹음을 하면서 계속 짜증을 냈다는 비하인드가 있습니다.
이들이 유튜브로 공개한 TIBI의 완전히 다른 버전이 있습니다. 이걸 보면 이팀의 또다른 면모를 알 수 있을 겁니다. (인트로의 스톱모션 애니도 멤버들이 직접 만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