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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1/08 23:44
본문에선 일단 상업의 영역 안에서라고 한정하고 있네요. '조심해야 하는 건 대중이 아니라 상품을 판매하는 기업의 몫'이란 말이 언제부터 그래왔냐고 따져물을 거리.. 인가요?
15/11/08 23:59
1. [자유는 불쾌함 위에 군림할 수 없다. 특히 -] 라는 문장구조는 한정이 아니죠. 2. 또한 상업의 영역으로 한정 지었다고 하더라도 [ 상업의 영역과 맞닿아 있는 자유는 절대적으로 대중의 불쾌함 아래에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의 근거가 전혀 나와 있지 않습니다. [억울한게 아니라 당연한 것] ] [조심해야 하는 건 대중이 아니라 상품을 판매하는 기업의 몫], [예술이란 단어는 필요할 때만 가져다 쓰면 되는 방종의 도구가 아니다]를 근거로 볼 수는 없겠죠. 주장만 있는 글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건, 같은 견해를 취했을 떄 뿐입니다.
15/11/09 00:21
1번, '자유는 불쾌함 위에 군림할 수 없다' 는 '표현의 자유는 대중의 불쾌함 밑에 있다'는 말과 다르죠.
2번? 뭐 대충 하고자 하는 말이 뭔지는 알겠는데, 그럼 의도적인 곡해를 통한 '표현의 자유가 언제부터 대중의 불쾌함 밑에 있었나요?' 라는 말 대신 들어주는 비유/예시/설명/부연들을 근거라고 볼 수 없다(주장만 가득하고 근거가 없으며 이에 공감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지 그러셨어요? 같은 견해를 취하지 않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조심해야 하는 건 대중이 아니라 상품을 판매하는 기업의 몫'이란 문구에 대한 반박도 좀 하시구요. 본문이 근거 없이 주장만 가득하다고 하시는데, 저는 말씀하시는 바가 지적사항들만 있고 본인 주장(논지)은 없는 거나 다름없다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너무 본인이 편안한 방향으로만 댓글을 다시는 건 아닌지?
15/11/09 00:54
1. 한정이라고 주장 하셔놓고 거기에 대한 첨언 없이 전혀 갑자기 새로운 주장을 내세우는게 그다지 바람직 하지 않은 태도 인 것 같네요.
2. 표현의 자유와 자유가 다르다는 말씀이신지? 군림할 수 없다와 밑에 있다가 다르다는 말인지? 3. [조심해야 하는 건 대중이 아니라 상품을 판매하는 기업의 몫]에 대한 근거가 없는데 무엇을 반박합니까? 4. 본인 주장이 왜 필요한지요? sydney 님의 추가 댓글이 제 글에 대한 지적 사항으로 시작했듯이, 본문에 대한 제 댓글 역시 지적사항만 담겨 있는거죠.Sydney_coleman 님이 저에게게 지적하기 위해 제제에 대한 사안의 요지부터, 적용 이론, 결론을 늘어놓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저 역시 그럴 자유가 있죠.
15/11/09 01:56
1. 뭔소린지.. '자유는 불쾌함 위에 군림할 수 없다. 특히' 이후에 '특히'란 표현으로 제한하고서 상업의 영역에 대해 한정하자면 표현의 자유는 불쾌함 밑에 있다는 말을 본문에서 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 간과하시기에 풀어서 말씀을 드렸더니... 한정이라고 주장하고선 전혀 갑자기 새로운 주장을 내세워요? 뭘 어떻게 오독하셨는지 짐작하기 힘들 정도군요. 또는 뭘 어떻게 의사전달에 실패하셨는지 짐작하기 힘든 경우거나.
2. 군림할 수 없다와 밑에 있다는 그냥 부등호 놀이만 해도 <=(또는 not >>) 와 < 로 다릅니다. 이걸 굳이 풀어서 설명해야 하는군요. 3. 저로써는 상업적인 부분에서 자유와 불쾌함의 관계가 일반적인 예(팔아먹는 기업이 조심)에서 드러나듯 어떠하다(대중의 불쾌함 밑에 기업의 자유가 있다)는 말로 읽히는데, 주장만이 있고 근거가 없다며 반박할 필요를 못 느끼겠다라... 예시.설명.부연 그 어떤 것도 되지 않는다고 아무런 설명 없이 말하시는군요. '그건 그냥 주장일 뿐이네'란 그 어떤 설명도 근거도 없는 주장. 지금 미러링 하시나요? 4. 3번과 연결되는군요. 본문에서 꽤나 길다랗게 글을 적었더니 '이 글의 핵심사항이란 근거 없는 주장들만 가득할 뿐'이라며 그냥 한 문장 던져놓고 갑니다. 이걸 바람직한 토론태도라고 생각하진 않으시겠지요.(생각하시나요?) 뭐 말씀마따나 본인 자유긴 하겠습니다. 그 자유 마음껏 활용하세요.
15/11/09 02:19
1. 뭐 타당한 말이긴 하네요. 두번째 댓글 에서부터 제가 헛다리를 짚었군요. 다만 첫번째 질문으로 돌아와 [상업의 영역과 맞닿아 있는 자유는 절대적으로 대중의 불쾌함 아래에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 라는 주장에 (표현의)자유가 언제부터 대중의 불쾌함 아래에 있었냐 질문이 어긋나지 않음을 벤다이어그램을 통해 증명시켜드릴 필요는 없겠죠.
2. 뭐 정확하게 묻는게 뭔지 궁금했을 뿐입니다. 3. [자유는 절대적으로 대중의 불쾌함 아래에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건 억울한 게 아니라 당연한 것이고, 조심해야 하는 건 대중이 아니라 상품을 판매하는 기업의 몫이다 ]은 구조상 인과관계가 성립이 안되는데 왜 마음대로 인과관계 연결을 시키시는지.. [대중이 아니라 상품을 판매하는 기업의 몫이다] 이게 어떻게 예시로 해석되는지..주장이죠. 예시라면 [귀책사유는 대중이 아니라 기업에게 물어지곤 했다]식으로 문구가 쓰여져야겠죠. [조심 해야 하는 건 대중이 아니라 상품을 판매하는 기업의 몫이다.] 이걸 예시로 읽는 다는건 감당하기 힘든 오독이군요. 혹은 예시라는 말 자체를 오독하게 계시거나요. 4. 꽤나 길다랗게 적었는데 주장만 있는 글이라 주장만 있다고 뭐라했더니 그게 잘못된 주장이라니요. X는 바보다. 바보여야 한다. 바보였고 앞으로도 바보일테고 미래에도 바보일것이며 바보여야 하니까. 바보가 바보인걸 알면 바보가 아니고 바보가 바보인걸 몰라야 바보인데 X는 바보인걸 모른다. 라는 글에 언제부터 X가 바보인지 묻는게 바람직하지 않다니요. 그러면 X가 왜 바보인지 설명되지 않은 글에 대고 X가 바보인지를 묻는게 우선이지 아 X가 바보구나라고 납득하는게 바람직한 독해 태도인지요.
15/11/09 02:44
그래요? 본문을 'X는 바보다. 바보여야 한다. 바보였고 앞으로도 바보일테고 미래에도 바보일것이며 바보여야 하니까. 바보가 바보인걸 알면 바보가 아니고 바보가 바보인걸 몰라야 바보인데 X는 바보인걸 모른다.' 뭐 이런 식의 논리구조로 보신다니 알겠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심각한 오독쟁이로 보고 있군요. 뭐 서로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면서 삽시다. 어차피 더 말 나눠봐야 니가 틀리고 내가 맞다 동어반복밖에 안 되겠네요. 시간나면 천천히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고. 그리고 잘못된 주장이라고 말한 적 없고, 본문을 납득하지 않았다고 뭐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반격을 시작하기 편안한 방향으로 또 곡해하는군요. 냅다 언제부터 그랬나요에 이어 근거가 없고 주장만이 가득하네요 한문장만 던지고 가는 것이 바람직한 토론태도가 아니란 말인데 본인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며 그게 본인 자유라 여긴다니 그 자유 마음껏 활용하란 말이었죠. 뭐... 곡해도 본인 자유일 테니 이 역시 제한 없이 사용하세요. 뭘 할 수 있겠어요?
15/11/09 02:48
뭐 편리한 방향으로만 글을 읽고 편리한 곳에서만 대답하시며 편리한 지점에서 빠지시니 더 이상 할말이 없네요. 그대의 편리 역시 존중함으로 말하지 않겠습니다.
15/11/09 02:48
할머니 님// 네! 제가 하고 싶은 말이 딱 그렇습니다! 계속적으로 의도적인 곡해를 기반으로 편리한 곳에서만 대답하고 빠지니 더 하고 싶은 말이 없다. 이만 하자. 이거죠. 아, 그리고 그대의 편리 역시 존중함으로 말하지 않겠습니다..? 할 말은 이미 충분히 한 것 같군요.
15/11/09 02:49
Sydney_Coleman 님// 네네 서로 드디어 합의점에 도달 할 수 있군요. 다행입니다. 3번에 대한 대답은 듣지 못했지만 들은 걸로 치죠 뭐.
15/11/09 02:53
할머니 님// 문장구조해석에 대한 단정이 마구 들어간 부분에 대해 하나씩 적으려다 마지막 부분에서 본문을 'X는 바보다. 바보여야 한다. 바보였고 앞으로도 바보일테고 미래에도 바보일것이며 바보여야 하니까. 바보가 바보인걸 알면 바보가 아니고 바보가 바보인걸 몰라야 바보인데 X는 바보인걸 모른다.' 뭐 이런 식의 논리구조로 보신다니 아예 말 나누는 걸 포기했습니다. 말해봐야 무슨 소용이겠어요?
서로가 서로를 심각한 오독쟁이로 보고 있군요. 뭐 서로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면서 삽시다. 어차피 더 말 나눠봐야 니가 틀리고 내가 맞다 동어반복밖에 안 되겠네요. 시간나면 천천히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고. 다행임을 느끼는 와중에 대답을 듣지못해 아쉽다면 이 부분을 그에 대한 대답이라 여기면 됩니다.
15/11/09 02:56
Sydney_Coleman 님// 사실 답변하기 어려우면 답변하기 어렵다고 하시고 가셔도 됩니다. 그게 싫으시다면 본문을 그렇게 해석하지 않는다면 왜 그렇게 해석해선 안되는지 논증하시면 그만입니다. 시간되서 스스로를 천천히 돌아보고 싶다면 여전히 그냥 가셔도 그만이구요. 제가 님에게 타이핑을 강요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죠.
15/11/09 02:59
할머니 님// 또다시 편안한 포지션 잡고서 이번엔 정신승리+도발을 시전하는군요.
서로 더 할말이 없다는 합의에 도달해서 다행이라고 하시더니, 이 부분은 키배의 기술이 훌륭하다고 해야 하나. 뭐 좋을대로 생각하시고, 전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15/11/09 03:00
Sydney_Coleman 님// 대화의 주체를 공격할 바에야 대화 중단을 선택한 건 매우 현명한 선택이구나 싶어서 다행이라 느꼈지만 결국 주체에 대한 공격으로 흘러 간다는게 참으로 안타깝군요.
15/11/09 03:04
할머니 님// 글쎄... 서로가 서로를 오독쟁이로 보고 있고 편할대로 말하는 사람으로 보는 것 같아 더 할 말 없으니 그만하자는 식의 제 말에 합의점에 도달해서 다행입네라는 말까지 뱉고선 이렇게까지 고전적인 키배 정신승리+도발을 시전하는 건 스스로 좀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 같은데요..
15/11/09 03:05
할머니 님// 아 말이 중간에 바뀌었군요. 대화 흐름에 대한 해석이 '할 말이 궁해지니 주체에 대한 공격으로 흘러갔다'는, 본인이 편안한 해석이라.. 뭐 좋을대로 하십시오.
15/11/09 03:08
Sydney_Coleman 님// 할말이 없으니 그만둔다면서 몇번이나 돌아와 추가 댓글이 달렸나 안달렸나 확인하고, 달렸으면 다시 한번 키배스킬을 펼치며 정신승리 논리를 펼치고 있는거야 말로 부끄러워야 할 일 아니겠습니까? 키배스킬의 고전성으로 따지자면야 대화 도중 메타-키배적 시각을 제시하면서, 논쟁 참여자에서 갑자기 논평자로 스스로의 지위를 격상시키고 논평하는거야 말로 고전적이지 않겠습니까.
15/11/09 03:19
할머니 님//
문장 내에서 '예를 들면', 또는 '~하곤 했으므로'이라는 구문이 들어가지 않더라도, 둘째 문장(그건 억울한 게 아니라 당연한 것이고, 조심해야 하는 건 대중이 아니라 상품을 판매하는 기업의 몫이다)이 첫 문장(자유는 절대적으로 대중의 불쾌함 아래에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을 통해 주장하는 바를 [부연] 또는 [설명]하는 의도임은 명백합니다. 이 부분을 [예시]단어에만 본인이 편안한 방향으로 대단히 집중해서 말씀하신다고 여겼습니다. 더해서, '조심해야 하는 건 대중이 아니라 상품을 판매하는 기업의 몫이다' 이 부분은 그냥 마케팅팀과 고객지원부서의 존재로 인해 실'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한발 물러나더라도, 상품판매와 기업에 있어 특수적인 예외가 있을 수는 있겠습니다만 이 문장을 냅다 근거가 전무한 [주장]이라고 할 수는 없겠죠. 그리고 애초의 대댓글 계층답변이 시작된 부분은 편할대로 냅다 한문장 던지며 알아서 설명해 보라는 식의 댓글이 토론태도로써 적절하지 못하다는 지적이었습니다만... 메타 등등 휘황한 단어로 포장하면 본인도 헷갈리게 되니, 잘 생각해 보세요. 뭔가 대단히 꼬인 생각에 이르신 것 같군요. 답변을 회피하고 본인(대화 주체)를 '공격'한다고 여기시는 것 같아서 처음의 '회피한다'고 여기시는 부분에 대해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 말 하다가 '아.. 서로 말 안통하는 것 같네. 그만하자'는 사람에게 '도망간다. 자신없냐'는 식의 말을 하는 건 그냥 명백하게 잘못된 부류에 속하는 키배스킬이니 앞으론 쓰지 마세요. 정말로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15/11/09 03:39
Sydney_Coleman 님//
1. 예시에 집중하여 부연 이나 설명하려는 의도를 무시했다는건 말장난일 뿐입니다. 문장 내에서 '예를 들면', 또는 '~하곤 했으므로'이라는 구문이 들어가지 않더라도 둘째 문장이 첫 문장을 뒷받침하는 문장으로 작용하는 경우는 많습니다. A는 바보다. A가 한 행동은 바보같다. 같은 형태죠. 첫문장이 주장이라면 뒷 문장은 그 행태를 '예시' 또는 '부연'함으로써 첫 문장의 논지를 강화시킵니다. 그리고 뒷 문장이 참이라면 첫문장의 근거로써 작용하죠. 그런데 윗 내용은 어떨까요? [자유는 절대적으로 대중의 불쾌함 아래에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건 억울한 게 아니라 당연한 것이고, 조심해야 하는 건 대중이 아니라 상품을 판매하는 기업의 몫이다 ] A는 B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조심해야하는건 C가 아니라 D 이다. 뒷 문장의 구조는 첫문장의 축약 형태도 아니며, 확장 형태도 아니고 그렇다고 특정한 예시도 아닙니다. 뒷 문장이 어떠한 근거나 예시나 부연으로 기능하지도 않습니다. [A는 B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라는 문장과 [C가 아니라 D이다]라는 별개의 문장이 있을 뿐이죠. [A는 B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라는 주장이 있었는데 그 근거로 [C가 아니라 D이다]라고 새로운 주장을 하는게 부연이라니요. [A가 B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라는 주장을 위해 [A가 아니라 D]라는 모두가 동의하는 명제를 제시했다면야 완화해서 해석해서 부연으로 볼 여지가 있습니다만 윗 글은 그렇지 않았죠. [A는 B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라는 문장과 [C가 아니라 D이다]라는 문장은 각각 논증되어야 할 별개의 문장일 뿐입니다. 그렇기에 윗 문장은 [근거가 전무한 주장] 인거죠. Sydney_Coleman 님이 예시로 드신 마케팅팀이나 고객지원부서 역시 '현실'을 보여줄 뿐 '당위'를 논증하지 못합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헌법 상 동성결혼은 불가능하다라고 판례를 내렸더라도, 그 판례의 결론은 그저 동성결혼이 불가능 하다는 현실로써 기능할 뿐 당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님과 마찬가지입니다. 현실로 당위를 논증하려 해서는 안되겠죠. 현실과 당위는 구분되니까요. 2. 사실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데 있어서 훈계를 늘어놓는 것은 대화를 단절시키며, 실제 훈계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훈계가 키배에서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훈계를 함으로써 마치 본인이 윤리적으로 윗선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죠. 그 포지션만으로도 말에 권위가 부여 되는 듯한 모양새가 갖추어지는 건 부가적인 이득이구요. 예컨대 윗 문장에서 [메타 등등 휘황한 단어로 포장하면 본인도 헷갈리게 되니] [뭔가 대단히 꼬인 생각에 이르신것 같군요] 같은 문장이 그렇죠. 이런 문장은 무언가를 논증하거나 타인을 설득하는데 있어서 전혀 효과가 없지만 키배에서는 자주 등장하곤 해요. 왜 그럴까요? 저런 문장이 사용됨으로써 발화자로 하여금 누군가의 위에 서서 '아이구 이녀석아.. 형 말 들어봐 ' 와 같은 만족감을 주기 떄문이죠. 그렇기에 실익이 없음에도 자주 사용됩니다. 우리가 건전한 토론을 희망한다면 지양해야 할 태도겠죠.
15/11/08 23:56
표현의 자유를 막는 것이 아닌데 표현의 자유를 막는다고 하니까 그런 거겠죠. 표현의 자유와 비판의 자유(해석의 자유)는 양립합니다. 그런데 수용자가 부정적인 피드백을 보내면 이를 "표현의 자유"로 죄다 방어할려고 하니 그게 레발님이나 저 같은 사람은 언짢은 거죠.
표현을 하지 말라고 한 게 아니라, 표현해놓은 게 구리다고 하는 건데 이걸 어느 한 쪽에서는 "그럼 표현하지 말라고? 표현도 못하냐?" 라고 하니까요. "아니....표현하라니까? 그런데 그 표현이 싫다고." 이거죠.
15/11/09 00:07
글쎄요. 결국 지금 대중이 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한 해석에 따라 다르겠죠. 왕천군님이 말씀하신대로 표현 해놓은게 구리다라는 수준이라면 표현의 자유로 방어하는게 타당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제제를 섹시함의 대상으로 소비하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표현의 자유의 쟁점이 될 수 있겠죠. "표현을 싫어하던 말던 그건 내 관심사가 아니라고. 그저 제제가 섹시함이 대상이 되어선 안된다고만 말하지 말라고 ' 이거죠. 이건 PGR 내에서의 입장인거고.
PGR 밖으로 확장한다면, 아이유의 음원폐기요청서명 운동 같은 경우는 표현의 자유의 관점에서 한심하다고 말할 수도 있겟죠.
15/11/09 00:24
1. A라고 표현하지 말라고 주장하는 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게 아닙니다.
http://xkcd.com/1357/ 2. 음원폐기운동 정도까지 되면 표현의 자유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하긴 하는데, 이 건에서 아이유 비판자들 중에 이것까진 동의 못하는 사람들 많습니다.
15/11/09 00:44
1. 어떤 표현이 있었을 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방식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게 아니라고 말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이견이 있을 수 있는 주제지만, 적어도 제한하는게 아니라고 단언하기는 어렵죠. 명예훼손은 말을 하지 못하게 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표현의 자유의 쟁점이 되는건 명예훼손을 통한 고소가 실질적으로 표현을 막는 작용을 하기 때문입니다. 대중이란 집단이 '표현하지 말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떨까요? 실질적 효과는 명예훼손과 다르지 않을거라고 생각합니다.
2. 저 역시 표현이 싫다는 의견을 표현의 자유로 반박하는 행태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제가 참여한 토론에서 그런 경우를 보지 못해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더 말할 수는 없겠군요.
15/11/09 00:41
표현의 자유와 비판의 자유가 양립한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PGR에서 만큼은 이 부분이 확실히 양립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번 아이유 논쟁이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넣어줄 수 있는 사회현상의 모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표현의 자유와 비판의 자유가 양립하는 가운데 소수의 의견이나 다양성을 존중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 가장 기초적인 인간사상의 보편성에 대한 고찰 또한 해볼만한 문제이니까요.
15/11/08 23:58
아이유의 대처에 따라 다른거죠.
이번 논란에 대해서 [난 팬들이 뭐라하던 내 갈길을 간다] 와 [난 팬들의 인기를 먹고사니 논란을 일으키면 안된다] 둘중에 하나를 택해야 하는건데, 스스로 후자를 선택한거죠. 문제는 선택 후 대처가 그리 좋지 못했다는게...
15/11/09 00:08
아이유의 선택은 현실적인 문제이며, 현실적으로 [상업의 영역과 맞닿아 있는 자유는 절대적으로 대중의 불쾌함 밑에] 있음을 보여줬죠. 장동민이 현실적인 이유로 무한도전에서 하차했지만, 대중의 지지를 얻고 다시 방송에 복귀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장동민의 아웃과 컴백이 어떠한 당위를 보여주지 못하듯이, 아이유의 선택도 어떠한 당위를 보여주진 못하죠.
15/11/09 00:29
장동민의 사례는 반례에 가까울 겁니다. 대중의 불쾌함 "위에" 상업의 자유가 있는 사례라고 봐야죠. 대중의 불쾌함이 정말 상업의 자유를 밑에 둔다면 장동민은 지금도 자숙중일거니다.
15/11/09 00:46
아니요. PGR만 해도 장동민이 무한도전을 하차한 이후 장동민에 대한 옹호글이 얼마나 많이 올라왔습니까? 엠팍이나 오유등 대형 사이트에서 장동민을 검색해보시면 아실 수 있을텐데요. 여전히 대중이 장동민에게 불쾌해 하고 있다면 장동민은 자숙중일 겁니다. 다만 대중은 불쾌해 하지 않는거죠.
15/11/09 01:07
저는 이걸 비율 뿐 아니라 강도로도 봐야한다고 봅니다. 어떤 불쾌감이나 반감을 표해서 연예인의 방송활동을 중지시키는 건 과반수를 넘어 압도하는 여론이 아니라, 강대한 화력으로 직접적 부담을 느끼게 하는 세력들이 있다는 거죠.
이를테면 장동민 싫다 나오지 마라!! 라고 하는 여론이 있을테고 이런 여론은 장동민에게 압력으로 작용할 겁니다. 그런데 장동민 좋다 괜찮다 계속 해라 이건 잘 쳐줘야 원래의 여론을 지속하는 것입니다. 반대파와 격렬히 싸움을 한다거나, 이전까지의 애정 이상이나 더 강한 지지를 보이지 못하죠. 그래서 여론전은 "나는 너가 너무 싫다, 방송 쉬어라 VS 나는 안 싫다, 괜찮다 의 양상을 띄게 됩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좋아하는 사람 8 있어도 싫어하는 사람 2가 마음에 걸리고 거기에 움츠러듭니다. 그런데 이 비율이 3,4,5 막 이렇게 되고 그 비율의 사람들이 상상도 못할 정도로 막 분노를 토해낸다고 생각해보세요. 남은 5가 아무리 지지하고 열심히 싸워도 해당 연예인 눈에는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아서 다른 사람과 싸우는구나" 라고 생각하지 "나를 싫어하는 사람만큼이나 좋아하는 사람도 많구나" 라고 기세등등해지고 힘을 얻고 이러지 않습니다. 연예인이라는 건 대중의 애정을 받아먹고 사는 사람이라서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기본으로 깔고 가는 겁니다. 그래야 자기를 팔고 돈벌고 하는 거니까요. 여기서 장사의 구도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 VS 나를 싫어하는 사람"으로 나뉘지 않아요. "나를 좋아하는 사람 VS 나를 아직 좋아하지 않는 사람(모르는 사람)"으로 나눠서 장사를 하죠. 그런데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생기면 저 두 진영에서 현재 고객과 잠재적 고객을 죄다 뺏기는 상황이 되는 겁니다. 치킨 장사를 할 때도 "내 치킨을 사먹는 사람 VS 내 치킨을 사먹지 않는 사람" 으로 나눠서 유지와 흡수를 꾀하지 "내 치킨을 사먹는 사람 VS 내 치킨은 혐오하며 장사 그만하라고 깽판 두는 사람"으로 나누지 않듯이요. 사먹는 사람은 하던대로 사먹을 뿐이고, 안 사먹는 사람도 안 사먹고, 안 생겨야 할 "깽판맨"이 갑자기 생겨나서 치킨을 버리고 가게도 부숴지고 해야 하니 힘든거죠. 장동민의 경우 이 깽판맨들은 상당히 가시적이고 거친 공세를 펼쳤는데 (방송국에서 시위까지 했으니) 반대 진영은 "장동민을 욕하지 말라" 라는 거였지 "장동민씨 우리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계속 방송해주세요" 이게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수만 가지고 따져도 체감상 5.5 대 4.5 정도로 "미워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이 안에서도 상당수가 "정말 정말 싫어해서 방송 때려쳤으면 좋겠다는 압력을 행사" 했습니다. 질과 양에서 장동민이 은퇴할만한 이유는 충분했어요.
15/11/09 01:11
뭐 왕천군님과 제집단의 온도차이가 상당히 크기 때문에 다른 결론이 나오는게 아닌가 싶은데요. 제가 발 걸치고 있는 집단이 몇군데 있는데 인권단체쪽 사람들은 특히 그중에서 페미니즘을 기치로 내건 사람들은 장동민을 미워하는 사람이 거의 7:3에서 9:1까지 있었는데 그 외 로스쿨, 회사, 대학동기들 집단은 장동민을 미워하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단 한명도요. '실언했네 크' 이정도가 가장 네거티브한 반응이었죠. 인권단체쪽도 페미니즘에 관심없는 사람들을 보면 6:4에서 7:3 정도 일까요. 제 경험상으로는 그랬습니다.
15/11/09 01:17
그러니 화나는 사람들은 화를 내며 멈추려 할 것이지만 화가 안난 사람들은 그냥 그러려니 할 것입니다. 이 두 집단의 행동력 자체가 다르니 거기서 여론이 갈린다는 거죠. 단순히 수로만 바라볼 수는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15/11/09 01:30
그런데 그 수가 매우 미약하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이태리의 붉은 여단이 체제전복을 꿈꾸며 아무리 폭력적인 행동을 한다고해서 체제가 변하지는 않으니까요.
15/11/09 11:07
이러한 여론전에서 깽판맨들, 그러니까 과격한 행동분자들은 꼭 다수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이를테면 페페페처럼 1인 시위하고 몇명이 실제로 퍼포먼스를 펼치기만 해도 그 아래 덜하지만 그래도 과격한 안티들을 수면 위 여론으로 부상시키고 자신의 진영을 광고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딱 몇명만 어떤 퍼포먼스를 해도 "장동민을 싫어하는 사람은 저 몇명뿐이야" 가 아니라 "장동민을 싫어해서 저렇게까지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저만큼은 못해도 이를 갈고 토악질을 하는 사람들은 꽤나 많겠다" 하고 중립, 적당히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인상을 남길 수 있다는 겁니다.
저 바로 아래 수위의 사람들은 장동민 출연 방송을 보이콧했고, 이에 대해 방송 관계자들이 어떤 식으로든 피드백을 해야했으며 광고주들도 어느 정도 눈치를 보고 스폰서 여부를 결정해야 했습니다. 제 기억에 대한민국 연예인 가지고 이렇게 반대 여론이 타올라서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압력을 행사했던 게 정말 몇 안됩니다. 분명 어떤 영향력이 있었고 그 때문에 장동민은 손편지를 들고 가서 안절부절했어야 했습니다. 저는 당위가 있었다 없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상업의 자유와 대중의 불쾌함이라는 관계에서, 장동민이라는 사례는 "저만큼 강력한 압력이 있었는데도 기어이 방송을 하고 있는" 사례기 때문에 대중의 불쾌함 아래 상업의 자유가 있음을 논증하지는 못한다는 이야기죠
15/11/09 13:13
장동민 사태를 장동민이 무한도전에 참여한 시기와 그 이후 시기로 분리해서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식스맨 시점에 장동민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의견은 '중립, 적당히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인상을 남기'는데 성공합니다. 이에 따른 결과로써 가장 유력한 후보였던 장동민은 식스맨에서 사퇴하게 되죠. 이를 방송 관계자들의 피드백으로 볼 수도 있을겁니다. 그런데 그 이후 장동민에 대한 혐오는 장동민을 혐오 하였던 자들에 대한 혐오 - 여시에 대한 혐오 - 에 의하여 약해집니다. 장동민에 대한 과격한 행동이 ' 소수의 과격분자'에 의한 행동으로 평가절하 됨에 따라, 과격분자들이 중립, 적당히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최초로 심어주었던 '인상'은 부정당하게 됩니다. 과격한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그럴싸하게' 소비될 때는 강력한 압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그들의 과격한 행동이 '이상한' 것으로 소비 될 때는 전혀 강력하게 작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6월 민주화 항쟁과 7월 노동자대투쟁을 전자와 후자의 대표적 예로 들 수도 있을 것 같군요. 7월 노동자 대투쟁은 세기란 측면에서 6월 민주화 항쟁을 압도했지만, 그 파워는 6월 민주화 항쟁에 비할 것이 못됬죠. 무엇을 이루어 냈는가의 측면에서 보면 파워가 없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장동민의 경우를 예로 든다면 대중의 불쾌함이 장동민을 향하던 시기에는 장동민으로 하여금 무한도전에 하차하게 만들었으며, 대중의 불쾌함이 여시를 향하여 반대급부로써 장동민에 대한 옹호의견이 다시 등장하던 시점에서야 장동민이 복귀한 사례는 '대중의 불쾌함'과 '상업적 자유'가 일련의 상하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 수 있습니다.
15/11/09 14:47
대중의 소비와 상업적 자유의 관계에서, 제가 할머니님의 의견과 달리 보는 부분은 모든 대중의 피드백을 방송관계자나 본인이 같은 무게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할머니님은 두 진영의 여론이 서로 충돌하고,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다수의 중립이 어느 쪽 손을 들고 어느 쪽 의견이 더 영향력을 행사하는가, 이렇게 바라보고 계신데요. 저는 그 "회색분자"의 여론이라는 게 거의 무의미하다는 것이죠.
아주 단순하게 장동민 안티 - 시청자(호감에 가깝지만 별 행동력은 없는) - 장동민 팬 이렇게 나눠봅시다. 그렇다면 장동민 논란이 생겼을 때, 장동민 안티 그룹은 뒤의 시청자 그룹과 장동민 팬 그룹에서 각각 떨어져 나와서 행동력과 수량 이 두 측면에서 후자의 두 그룹에 비등비등한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때 방송사와 방송인 본인이 신경쓰는 건 안티 입니다. 시끄러운 게 싫고 죄송스럽고 거추장스럽죠. 나머지 팬과 시청자 그룹은 "원래 있는" 기본값입니다. 장동민 사과 이후, 식스맨 탈퇴 이후 여론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안티"의 의견이 긍정적으로 받아지지 않는다고 칩시다. 그리고 안티 - 팬(+ 시청자)의 여론전이 치열하게 펼쳐졌다고 합시다. 자, 이런 상황에서 방송사가 "아 여론이 긍정적으로 돌아왔군 그럼 장동민 리콜!!" 하는 게 아니라는 거죠. 왜냐하면, 장동민 안티 세력이 어떻게 수용되고, 이것이 전체 여론에서 어떤 식의 지분을 차지하는지 중요한 게 아니라 이들 입장에서 여전히 "시끄러워서 싫고, 거추장스럽고, 눈치봐야 하는" 유의미한 영향력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치킨집 깽판을 예로 든거죠. 깽판 놓는 사람들이 있고 장사 종목을 바꿔야 한다면 그 깽판을 소요시키는 선택을 하지 굳이 무시하면서 나를 찾는 고객들....이런 위안으로 장사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물론 방송계 사람들끼리 어떤 의리나 소신이 있겠지만 이 상황에서 그런 것들은 무의미했으니 딱히 조건으로 고려할 필요는 없겠죠. 장동민이 방송계에서 (아주) 잠시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건 안티 세력을 향한 일종의 전략적 협상의 제스쳐로서의 의미가 크다 할 것입니다. 나머지 대중을 모두 빨아들이고 안티 세력을 수나 행동력에서 무의미하게 만들고 자신의 지지세력을 만들려는 정치적 의미 역시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이 장동민이 방송을 하냐 못하냐 에서 큰 의미는 갖지 못하죠. 시청자 - 팬 이 세력은 장사를 하기 위한 당연한 자본이고 이들의 지지나 응원은 "원래 있던 것"이 "그 수나 행동력이 깎인 상태에서" 존재하는 거라는 거죠. 더 자세히 설명드리자면 논란 이전의 장동민에 대한 여론 세력을 안티(3) 시청자 (80) 팬(17) 정도로 치자면, 그 다음에는 안티(35) 시청자 (55) 팬(10) 로 남아있다는 겁니다. 결국 "이미 존재하는 팬 세력"에서 이미 깎여나간채로 어떻게 발버둥을 쳐봐야 기존의 시청자 - 팬(97)의 세력은 확보하지 못하고, (65)의 시청자 팬 세력을 믿는다하더라도 안티(35)와의 신경전을 펼쳐야 하니 이게 방송사나 방송인 입장에서는 부담인거죠. 결국 저런 논쟁에서 핵심은 저 "안티"를 얼마나 줄이느냐가 관건이 됩니다. 지드래곤처럼 압도적인 질과 양으로 소수의 안티를 찍하고 누를 정도면 모를까, 그럴 화력도 안되고, 아이돌이나 연기자처럼 팬층의 지지보다는 대다수의 시청자에게 적당한 호감으로 세를 굳힐 수 밖에 없는 개그맨이라면 더더욱 그렇죠. 그래서 장동민은 사과를 했고 안티(35)의 세력이 수그러들기를 바랬지만 오히려 기름만 더 부어서 공분만 샀죠. 그 결과 안티(35)의 세력은 그대로였습니다. 시청자 - 팬의 "행동력"이 올라가긴 했지만 그건 안티만큼의 적극적인 무언가가 아니었죠. 안티는 바로 불매운동을 해버립니다. 방송시청률을 떨어트리고, 광고제품을 안사버리죠. 자 그렇다면 여기서 팬과 시청자가 어떤 대항을 할 수 있었을까요? 환영분신술을 써서 떨어진 시청률을 올릴 수도 없고 장동민이 나오는 방송협찬 물건을 자신들이 팔아준다거나 할 수도 없습니다. 위협은 실질적으로 다가오는데 거기에 대한 저항수단은 전무합니다. 제가 말한 방송사, 장동민 - 시청자의 구도에서 상업의 자유와 대중의 호불호란 이런 걸 말씀드리는 거죠. 제로썸 게임에서 안티로 세력이 빠져버리면 시청자나 팬은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대중의 호불호를 걸고 하는 여론전은 방송인과 "안티"와의 대화가 됩니다. 장동민이 그때부터 지금까지 방송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은 "안티 세력이 여론전에서 패배한 후 팬과 시청자로 다시 돌아갔기 때문"이 아니라, 시간상의 문제로 안티의 화력이 죽었기 때문이죠. 장동민이 방송을 할 수 있었던 건 "여론을 무시한" 본인 및 방송국 측의 강행군이 있었기 때문이구요. 그렇기에 "장동민의 식스맨 하차 및 몇몇 방송 잠정적 자진 퇴출"은 대중의 힘, 즉 상업적 자유도를 대중의 불쾌함이 이긴 사례라고 볼 수 있지만 나머지 반쪽 "장동민의 다른 방송 출연 및 활발한 활동"은 대중의 불쾌함이 사그라들어서가 아니라, 대중의 불쾌함을 무시하고 나아갔던 장동민 측의 "상업적 자유"의 승리라고 봐야 할 겁니다. 그래서 저 사례는 "대중의 불편함은 늘 (상업적) 표현의 자유를 압도한다"는 사례가 될 수 없다는 거죠. 가장 간단한 예로, 노홍철 장가가기 특집을 생각해보시면 됩니다. 일부에서는 불쾌하다고 난리가 났고, 일부에서는 별거가지고 호들갑이라고 난리가 났죠. 그리고 이 둘 중에 딱히 속하지 않은 세력도 많을 겁니다. 그렇다면 불쾌해하는 쪽보다 불쾌해하지 않는 쪽의 수가 훨씬 더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이 세력을 믿고 김태호 피디는 유사한 컨셉을 다시 할까요? 아마 머리에 총맞지 않는 이상은 안 그럴 겁니다. 논란을 안만들고 싶기 때문이죠. 이게 대중 방송의 생리이고 "안티"의 세력이 나머지 팬이나 시청자의 세력보다 훨씬 더 유효한 사례입니다.
15/11/09 15:11
매우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문득 궁금해진 게, 사실 저 같은 경우는 좀 이런 가십거리? 논란? 이런 걸 자주 찾아 보는 편이고 이제 나이들고 기력이 쇠하여(?!) 의견개진 같은 건 거의 안 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관심있게 보는 편입니다. 반면에 제 아내분 같은 경우는 (연예 및 방송, 영화 관련) SNS와 커뮤니티는 만고에 무쓸모하다 라고 생각하며, 시청자 반응 이런 건 정말정말 가끔 초대형 이슈가 터질 때에만 가끔 보고 뭐 그런 편인데요. 아마도 언급한 사람들 중에 그냥 무난한 일반인에 제일 가까울 유형 같습니다. 그런데 장동민 사건의 경우 조금 흥미로운 점이, 장동민 논란이 불거지기 전까지 제 와이프는 장동민에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약간의 불호 정도? 그러다가 무도 식스맨 할 때 쯔음 장동민 막말 논란이 떴고, 극도의 불호+거부감을 나타냈지요. 덕분에 저는 지니어스의 열혈 시청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이번 그랜드파이널 시즌 본방 시청에 굉장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와이프도 제가 보니까 마지못해 본다 + 장동민 어서 탈락해라 이런 마인드로 겨우 보게 되었었구요. 분명 그랬는데 지니어스를 보게 되면서 정말 많이, 특히 결승전을 보면서 와이프의 장동민에 대한 시각이 완전히 바뀌더군요. 이후에는 '예전 발언은 여전히 마음에 안 들지만, 똑똑하고 사과도 깔끔하게 했고 아무튼 그래서 좋다' 로 바뀌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 부분에서는 다른 연예인들과는 별개로 확실히 장동민씨만의 해결법? 이랄까 그런 부분이 느껴져서 신선했습니다. 본문글이랑 상관없는 뻘 리플이었지만 남겨보고 싶었습니다.
15/11/09 15:41
일단 식스맨 시점에서 장동민 안티 그룹이 기타 그룹에 비등비등한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보는 점에서는 왕천군님과 의견을 같이합니다. 이 시점에서 장동민을 프로그랩에 투입시키는 선택은 상당히 커다란 안티 그룹을 적으로 돌린다는 점에서 손실이 상당합니다. 이때 손실은 시청율의 하락이 될수도 있을 것이며 ' 시끄러워서 싫고, 거추장스럽고, 눈치봐야하는' 무형의 것이 될 수도 있겠죠.
그런데, 여론의 전환이 이루어졌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장동민을 프로그램에 투입시킴으로써 장동민이라는 핫한 개그맨이 가져올 수 있는 시청율의 상승효과와 안티들이 가져올 깽판 효과는 상충될 수 있습니다. 나머지 팬과 시청자 그룹은 프로그램에 "원래 있는" 기본값이 아닙니다. 일정 부분은 '장동민'이라는 대체불가능한 개인이 가지고 있는 기본값이지요. 프로그램 입장에서 장동민의 팬과 방송인 장동민을 그저 소비할 뿐인 시청자는 상수가 아니라 변수가 됩니다. 장동민을 투입시켜야만 해당 시청자와 팬을 유입시킬 수 있다면 말입니다. 치킨집의 예를 든다면 치킨집을 계속 운영할 경우 '깽판' 놓는 사람들에 의하여 무형의 손해를 입게되겠지만 내가 치킨집 대신 다른 업종을 유치할 경우 잃게 되는 고객은 치킨집을 운영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됩니다. 자연스럽게 운영자는 치킨집을 계속 운영함으로써 얻게 되는 이익과 손실을 비교할 것입니다. 치킨집 대신 곱창집을 운영할 때 현재에 비하여 많은 손님이 없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면 '깽판'에도 불구하고 치킨집을 운영할 것입니다. 따라서 논쟁의 핵심은 '안티'를 얼마나 줄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장동민이 다른 대체가능한 연예인에 비하여 '시청율'을 확보할 수 있냐가 됩니다. 이 때 '안티'는 여론전의 승패를 독점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저 시청율의 하나의 변수로써 기능할 뿐이죠. 지니어스4의 시청율은 전 시즌 중 최고를 기록했습니다. 이를 모두 장동민의 공으로 돌릴 수는 없겠지만, 갓동민이라는 별칭을 얻으며 지니어스 그 자체가 된 장동민이 프로그램에 미친 효과가 적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노홍철 장가가기 특집은 적확한 예가 아닙니다. 무한도전의 '장가가기' 특집은 대체가 가능한 다른 아이템들이 있습니다. 해당 특집을 고수해야 할정도로 '장가가기' 특집이 무한도전의 상징적인 아이템이 아니며, 설령 당시에 장가가기 특집이 시청율을 뽑아냈다고하더라도, 무한도전은 다른 아이템으로도 높은 시청율 을 뽑아낸 경험이 많기 때문에 장가가기 특집을 대체불가능하다고 여길 이유 또한 없습니다. 반면에 무한도전에서 장가가기 특집이 마치 지니어스의 장동민처럼 대체불가능한 것이었다면, 김태호는 얼마든지 다시 할겁니다. 예컨대 정글의 법칙의 경우 '조작파문' 있었음에도 '정글 탐방' 이라는 컨텐츠를 버릴 수 없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정글의 법칙의 조작파문은 지금까지도 우스개거리로 여겨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정글 탐방을 버릴 수 없습니다. 컨탠츠를 버리는 순간 정글 탐방을 기대하는 시청자들은 떠날테고, 그 손실이 '안티'에 의해 생성되는 손실보다 크기 떄문이죠.
15/11/09 21:10
장기적으로 본다면 할머니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런데, 제가 동의하지 못하는 것은 [장동민이 대중의 지지를 얻고 다시 방송에 복귀한 것처럼] 이라고 말씀하신 부분입니다. 저는 이것이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어떤 인과관계라고 하기에는 부정확한 설명이라는 말씀을 드리는거죠.
장동민은 대중의 지지를 얻고 다시 방송에 복귀하지 않았습니다. 방송에 복귀했을 때는 여전히 여론은 차가웠고, 그걸 그냥 정면돌파한거죠. 그리고 나서 "대중의 지지"를 어느 정도 회복한 겁니다. 노홍철 장가가기 특집이 정확한 사례가 아닌 이유는 해당 사례가 "대체 가능"한 소재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장동민에 대해서도 같은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장동민은 과연 대체 불가의 존재인가요? 독설 날리고, 꽁트 잘하고 뭐 이런 부분에서는 그럴지도 모르죠. 그러나 한 연예인의 "개성"만 가지고 따질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거기에는 소위 "급"이라는, 해당 연예인의 입지 또한 대체가 가능하냐 안하냐의 질문에 대한 고려 요소가 됩니다. 유재석, 지드래곤, 이런 정도의 어마어마한 "급"과 "능력" 모두 갖추지 않으면 대체불가의 연예인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한때 예능 투톱이었던 강호동도 1박 2일 다 접고 내려가서 쉬었고, 김구라도 위안부 터지자마자 자숙했죠. 신동엽이 인정한 천재 신정환? 얄짤 없습니다. 대한민국 방송계에서 엠씨, 게스트로 뛰고 있는 개그맨(예능인)들의 대체 불가성이란 그냥 딱 이정도입니다. 영화계에서 이병헌 정도나 되어야 "대체 불가"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장동민이라는 이름으로 유입시킬 수 있는 시청자층이나 팬도 있긴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게 무슨 아이돌 팬클럽이나 연기자 팬만큼 강력한 충성도를 지니고 있는 게 아니죠. [ 장동민을 프로그램에 투입시킴으로써 장동민이라는 핫한 개그맨이 가져올 수 있는 시청율의 상승효과와 안티들이 가져올 깽판 효과는 상충될 수 있습니다. 나머지 팬과 시청자 그룹은 프로그램에 "원래 있는" 기본값이 아닙니다. 일정 부분은 '장동민'이라는 대체불가능한 개인이 가지고 있는 기본값이지요.] 따라서 해당 문장은 정확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지드래곤이 나오고 안나오고로 인기가요 시청률이 바뀝니다. 조인성이 나오냐 안나오냐에 따라 드라마 시청률이 오르내리죠. 그런데 장동민이 안나오면? 사람들은 그런가부다 합니다. 우리는 이런 사례를 이미 "라디오스타"에서 봤죠. 다른 엠씨 모두가 인정하는 라스의 핵심이자 터줏대감이 빠졌는데도 라스는 잘만 나갔습니다. 반대로 장동민이 나오면? 보던 사람은 볼 겁니다. 그런데 보던 사람중 안티로 변한 사람은 인상을 쓰면서 채널을 돌리겠죠. 그리고 시청자 게시판이나 SNS에 불만을 토해낼 겁니다. 장동민이 나온다고? 그럼 봐야지~ 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장동민이 출연여부로 시청률을 움직일만큼의 거물은 아니었죠. (물론 지니어스 같은 프로그램에서는 주시청자층의 여론이나 장동민의 대체불가성이 다른 프로들에 비해 다른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인력은 크지 않은데 장력은 대단히 큰 상황입니다. 그리고 장동민은 경솔한 사과라든가, 복귀한 프로그램에서의 비아냥 거리는 발언으로 전혀 신뢰를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안티 세력은 딱히 장동민을 용서하거나 감화된 적이 없었어요. 그렇기에 말씀하신 "인력으로 장력을 상쇄시키기"는 장동민 같은 연예인에게는 유효한 분석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것은 보다 충성스러운 팬층의 유지와, 새로운 시청자를 많이 흡수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대형 아이돌에게 더 들어맞는 분석일 겁니다. 장동민이 컴백했을 당시 여론은 전혀 뒤집어진게 없었습니다. 저는 이 지점을 이야기하는거죠. 자숙관련 인터뷰 했을 때도 다시 욕을 먹었습니다. 그 때 등을 돌린 여론이 다시 시청자층이나 팬층으로 흡수가 되었을까요? 저는 그런 여론은 한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제 개인 블로그에 올린 장동민 팟캐스트 관련 포스팅은 아직까지도 공감수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대중의 불편함이 상업적 표현의 자유 위에 있다는 게 아니라, 정확히 그 반대의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불편한 대중의 여론을 무시하고 방송을 강행했기 때문이죠. 현재 안티세력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단지 시간상의 문제로 강도가 줄었을 뿐입니다.
15/11/09 21:57
여기서 서로의 온도 차이를 다시 말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장동민의 복귀 시점에, 장동민이란 개인이 시청율에 긍정적인 효과를 내지 못함을 - 그러니까 그 당시 아직 여론이 뒤집히지 않았음을 - 왕천군님은[장동민이 안나오면? 사람들은 그런가부다 합니다.] 라는 장동민의 급수에 관한 근거와 [장동민 팟캐스트 관련 포스팅은 아직까지도 공감수가 늘어나고 있는] 것을 근거로 삼고 계십니다.
그런데 당장 구글에 검색만 해봐도 장동민이 식스맨 하차한 직후 장동민만한 사람이 있는가 라는 여론들이 꽤나 커다란 사이트에서 나오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장동민에 상당히 비판적이었다고 생각되는 PGR만 봐도 5월 시점에 [장동민 일 잘 풀리네요. 고소취하에 극딜하던 여시의 몰락도 그렇고.] [장동민 화이팅! 극딜 맞을건 다 맞았다고 보고 앞으로 다시 달릴일만 남았네요. ][장동민화이팅 여시의 농간을 꿋꿋하게 잘이겨내서 다행입니다] 같은 의견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제가 다니는 학교의 커뮤니티에서는 이미 장동민 이후 여시가 화두가 되지 마자 ' 여시에 의하여 희생된 장동민' 이라는 프레임이 지배적으로 되었습니다. 학교 커뮤니티에 한정지어 해당 프레임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시각 학교 커뮤니티에서 장동민은 아이유, 레바와 함께 '여시-메갈의 피해자' 라고 불리고 있죠. 이정도만 되더라도 장동민 수준의 대체불가능성으로도 충분히 +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봅니다. 피디의 성향에 따라 걸어볼만한 베팅이죠. 결과적으로 지니어스4는 성공했구요. - 대체불가능성만 따지면 강호동과 신정환이 장동민을 능가하는게 맞습니다. 다만 그 직후에 그들을 향한 시선이 다시 호감 또는 나오면 본다 수준으로 드라마틱하게 바뀌는 일이 없었다는게 차이점 입니다. - 안티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게 맞습니다. 왕천군님이 겪고 있는 [장동민 팟캐스트 관련 포스팅은 아직까지도 공감수가 늘어나고 있는] 현상은 이를 간접적으로 보여주죠. 다만 그건 아주 안티가 전체의 어느정도 수를 차지하는지를 보여주지는 못합니다. 왕천군님이 밝히셨던 정치적 태도라던가, 또 예상되는 포스팅 내용에 따르면 애초에 장동민에 대한 불호를 가질 만한 사람들이 왕천군님의 포스팅을 읽게 될 확률이 높죠. 결국 포스팅의 공감수가 늘어나는 현상은 왕천군님과 태도가 유사한 사람들이 장동민을 싫어하는 것, 또는 그 글을 찾아서 읽을 법한 사람들이 장동민에게 악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전체 시청자 중 안티비율이나, 안티세력의 크기 같은 수치를 보여주지는 못합니다. 물론 저는 제 주변의 태도가 대중의 태도임을 입증할 방법을 가지지 있지 못하기에 , 만약 왕천군님이 어떤 수치자료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이건 다시 온도차이의 문제가 되죠.
15/11/09 22:41
[장동민 일 잘 풀리네요. 고소취하에 극딜하던 여시의 몰락도 그렇고.] [장동민 화이팅! 극딜 맞을건 다 맞았다고 보고 앞으로 다시 달릴일만 남았네요. ][장동민화이팅 여시의 농간을 꿋꿋하게 잘이겨내서 다행입니다] 지금 복붙하신 이 멘트들이야말로 바로 제가 주장하는 바를 증명하는 발언들입니다. 제가 할머니님의 의견에서 동의하지 않는 부분은 바로 장동민 컴백 - 여론 의 선후관계죠. 저 말들을 살펴보면 장동민이 컴백하기를 바라거나 안티들이 돌아선 게 아닙니다. 선 장동민 컴백 - 후 여론의 변화 인거죠. 할머니님은 선 여론의 변화 - 후 장동민 컴백이라고 하셨구요. 정말 말씀하신 대로 대체불가의 캐릭터였다면 무도는 장동민을 잡았어야 합니다. 그러나 광희를 대신 뽑았죠.
할머니님의 이론을 따르면 장동민 여론 악화 - 여시 프레임에 의한 여론 회복 - 여론을 간본 후 장동민과 제작진의 방송 - 주류 여론 완전 회복 이렇게 됩니다. 저는 장동민이 컴백한 시점이 "여론 회복"의 시점이 아니라는 거죠. 그 시점뿐 아니라 할머니님께서 간과한 것은 "안티 세력의 강성함"입니다. 세력은 그대로였고 불편함도 딱히 바뀐 게 없었지만 활동력이 사그라든거죠. 이것은 다른 진영의 여론과 맞부딪혀서 아, 우리가 좀 심하긴 했네 이런 식으로 굽힌 게 아니라 모든 식의 투쟁 운동이 가지는 생명력의 한계입니다. 여전히 불편한 세력들은 그대로 있었지만 그걸 무시한 채로 장동민은 방송을 강행했고, 그렇게 불편한 의견들이 이전만큼 강성하지 못한 지금에 다다른 것이죠. 이를테면 초창기의 김구라나 강용석의 마이웨이 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동민을 포함한 이들 모두는 바로 "대중의 불편함" 이 절대적으로 상업적 자유에게 우위를 차지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증의 사례입니다. 이것은 딱히 온도차 가 아니라 여론에서 어떤 부분이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지느냐 에 대한 거겠죠. 엠씨몽 음원 순위 같은 것도 이 사례에 포함될 수 있을 겁니다. "대중"이라 함은 어떤 과반수 이상의 의견이 어느 한쪽을 명백히 지지하는 양상이 아닙니다. 딱히 이래도 좋고 저래도 상관없는 그런 사람들이 대다수고, 대표성을 띄는 것은 양 극단의 의견인데 이 둘이 붙을 경우 반대가 찬성을 이겨도 가운데의 회색분자들 때문에 (그리고 반대하는 측의 에너지 소모 때문에) 대중의 불편함은 유의미하지 않게 되는 거겠죠. 다른 문제라면 모르겠는데, 이 부분에서 장동민에 대한 불편한 여론의 존재와 그 규모를 유추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이건 대한민국 여성 / 남성으로 프레임이 갈리는 문제기 때문이죠(아마 그렇기 때문에 여초 사이트의 대표격인 "여시"를 할머니님께서 언급하시는 걸테죠) 회색분자들을 제외하면 대한민국의 반수, 그 안에서도 많이 분포된 안티들이 있을 겁니다. 대한민국의 "많은 여성"들이 불편해하고 싫어하는 데도 장동민은 방송에 나가고 활동합니다.
15/11/10 01:14
1. 우선 장동민이 컴백한 시점이 언제인지 확인해 보죠. 찾아보니 컴백이란 말은 정확하지 않은 것 같군요. 장동민은 4.14일 무한도전에 하차합니다. 추가 하차는 없으며, KBS 2TV ‘나를 돌아봐’, JTBC ‘엄마가 보고 있다’, ‘크라임씬2’, MBC 에브리원 ‘결혼 터는 남자들’ 등에 계속 출연했습니다. 새로운 프로그램의 확장은 없습니다. 이 때 왕천군님은 다시 장동민이 하차하지 않은 것을 대중의 불편함이 상업적 자유에 우위를 차지하지 못한 반례라고 주장하실 수 있겠죠. 우선 '나를 돌아봐' 의경우 당시 4회짜리 파일럿 프로였으며 4~5% 수준의 시청율을 유지했습니다. 장동민이 무한도전에 하차하면서 쟁점이 가장 극대화 된 시기에 나를 돌아봐는 최고 시청률인 5.2%를 기록합니다. '대중의 불편함'이 장동민을 향했음을 입증하는 증거가 되지 못합니다. 엄마가 보고 있다의 경우도 4월 26일 첫 방송을 했으니 적확한 예시가 되지 못하겠군요. 크라임씬의 경우 4.1 첫방송 0.6%를 시작으로 장동민의 사건과 별개로 4월동안 1.05%, 1.08% 1.45% 등을 기록하며 계속해서 상승합니다. 장동민을 하차 하지 않았음에도 시청률 손실은 없었습니다. 따라서 PD는 시청율 하락이라는 변수를 감안하고서 장동민을 하차해야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한도전은 어쨰서 장동민을 하차시켰는가. [장동민만한 사람이 있는가 라는 여론]은 장동민이 하차한 이후에야 주류로 등장합니다. PGR에 검색해보면 4.12일 글에는 장동민의 대한 옹호 여론이 있을 지언정 비난여론의 수가 절대 밀리지 않는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4.13일 왕천군님에 글에도 왕천군님에게 피로감을 표현하거나 공격성을 표출하는 글은 있을 지언정 장동민이 잘못한건 맞다는 의견이 주류입니다. 따라서 이 시점 무한도전 관점에서는 , 또 장동민 관점에서는 장동민을 하차시키는게 이득이라고 판단할 여지는 충분합니다. 그런데 4.14 장동민의 하차소식이 PGR에 알려지자 1000플 짜리 글에서 왕천군님이 댓글 달기 전 대부분의 댓글이 장동민의 하차를 안타까워하기 시작하죠. 직접 확인해보시면 아시겠지만 시청율로 따지면 비교가 안되는 비율입니다. 이때부터 다른 PD들은 '장동민이 무한도전에 하차함으로써 이미지 반전'에 기대어 장동민의 NPV가 양의 값이라는걸 확인할 수 있게됩니다. 그 결과는 5.27 장동민의 첫 새로운 프로그램 '더지니어스4'에 출연 확정입니다. '선 장동민 컴백 - 후 여론의 변화' 는 근거가 없습니다. 방송이 철저하게 '대중의 관점' 에 입각해서 출연진을 결정하였다고 주장 하더라도 실증자료는 이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선 장동민 컴백 - 후 여론의 변화 ' 라는 주장이 가능하려면 적어도 사건이 극대화 된 시점에 장동민이 출연 중인 작품의 시청율이 하락했어야 합니다. 또는 장동민이 출연한 작품의 시청율이 낮은 상태로 시작 한뒤 점차 이미지 개선을 통해 시청율이 상승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죠. 왕천군님은 운동의 힘을 과신하십니다. 일부의 '안티세력'이 대중을 지배할 수 있는 공간은 트위터 수준을 넘지 못합니다. 회색분자들은 담론 형성에는 참여하지 않을 지언정, 시청율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회색분자들은 정치적 수준에서 회색분자일 뿐이며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 재미있는 개그맨이 출연하는지 -에 얼마나 민감한지는 PD들이야 말로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만약 그들이 누가 나오던 보는 사람들이라면 유재석이나 강호동에게 그렇게 비싼 몸값을 지불해야할 이유도 없으며, 어떤 연예인은 생계곤란을 겪는데 어떤 연예인은 십수개의 프로그램을 출연하는 일이 없겠죠. '대중'이 양 극단의 의견이라는 것도 틀렸습니다. 대부분의 회색분자들이 장동민이 출연하는 것에 불쾌감을 가지고 있지 않고, 오로지 장동민이 웃기는지에 초점을 맞추어 시청율에 일조한다면 대중은 그들입니다. 안티세력이 극렬옹호세력보다 많다고 하여도 시청율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스스로를 감히 대중이라고 칭하겠습니까? 설령 스스로를 대중의 의견이라 칭한다 하여도 PD들이 관심을 가지는 '대중'은 소수의 강성 세력이 아닙니다.
15/11/10 01:03
그렇다면, 저는 할머니님에게 여쭤볼 수 밖에 없습니다. 할머니님의 학교 사이트는 과연 인터넷 여론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표본으로 적절한가요? (만약 그렇다면 왜 그런가요?) 혹은 그 학교 사이트에서 여성회원들의 발언 역시 공평하게 취급되었을까요? 메갈리아에서 가장 흔하게 보이는 게 이런 댓글입니다. "와 내가 하던 모모 사이트에서 장동민 옹호하고 난리더라, 질려서 그냥 떠남" 이용자 성비가 6:4라는 것이 그 사이트에서 해당 이슈에 대한 남녀 모두의 반응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전혀 알지 못하는 어떤 사이트를 "할머니"님의 판단 아래 할머니님이 전달하는 정보 가지고 어떤 대표 표본으로 이해해달라고 하는 건 제가 받아들이기 힘든 주장이죠.
그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여론을 보여주는 지표로 비슷한 날짜의 오유 게시물을 보죠.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bestofbest&no=206936&s_no=206936&kind=search&search_table_name=bestofbest&page=1&keyfield=subject&keyword=%EC%9E%A5%EB%8F%99%EB%AF%BC 하물며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여시와 가장 큰 척을 지고 있는 오유도 해당 날짜에서는 장동민에 대한 비판이 대부분입니다. 트위터 여론은 뭐 달리 말 할 필요가 없을 듯 하구요. 그런고로 할머니님이 인용한 댓글은 오유나 트위터만큼 여론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볼 때, 그렇게 신뢰성 있는 표본이라고 할 수는 없죠. 저때만 해도 장동민은 전혀 용서받거나 이해받거나 지지받던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날짜의 피지알 게시물 또한 분위기가 그렇습니다. https://cdn.pgr21.com/pb/pb.php?id=freedom&no=58172&divpage=12&ss=on&sc=on&keyword=%EC%9E%A5%EB%8F%99%EB%AF%BC 저는 "대중의 지지"라는 표현이 굉장한 어폐가 있다고 봅니다. 이를테면 동성애자의 결혼 법제화 같은 문제도 온 미국인이 모여서 동성애 찬성, 동성애 반대 이런 걸 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대다수의 사람들은 딱히 찬성, 반대 이런 운동이나 의견 표명을 안합니다. 귀찮고 나랑 상관없으니까. 세상 어지간한 운동이 다 그렇게 돌아가요. 그렇게 전국민적이었다던 촛불시위도 한 사람보다 안 한 사람이 훨씬 더 많을 겁니다. 결국 가만히 있는 대중들은 딱히 반대도 찬성도 안하기 때문에 오피니언 리더에 "휩쓸려갈" 뿐이죠. 그 사람들이 지지하고 반대하고 뭐 이러는 게 아닙니다. 예전에 제가 올렸던 퀴어 퍼레이드도 그런 형식의 형태를 띄죠. 막말로 퀴어 퍼레이드에 관심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그게 언제 어디서 하는지, 하긴 했는지조차도 모르고 넘어가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하다못해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뽑는 선거도 투표율이 안나와서 다들 난리인데 이런 사회운동 그리고 장동민 같은 이슈에 "대중의 지지" 씩이나 있다는 게 좀 이상하죠. 부동표를 지지로 해석하는 건 너무 편리한 해석입니다. 저희가 어떤 회사의 노조 활동에 딱히 관심을 보이거나 지지하지 않는다고 해서 노조보다 해당 사측을 더 지지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기에 할머니님의 의견은 모순이 생깁니다. 할머니님은 "오프라인의 의견"이 진짜 주류 의견이며 "온라인의 의견"은 찻잔 속의 태풍이라고 하셨죠.(저는 이런 구도를 표현할 때 현실 대 온라인이라고 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온라인을 한 매개체로 이용할 뿐이지 이곳이 무슨 가상현실이나 판타지 세계가 되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현실의 여성담론과 온라인의 여성담론이 차이를 보인다는 건 이 둘을 어떻게 구분할 수있는지, 그리고 만약 구분된다면 어떤 점에서 차이를 보이는지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채로 섣불리 말 할 수는 없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할머니님이 현실 속의 여성 담론이라고 지칭하는 그 여론이 장동민 사태 때도 명확히 구분되었다고 생각하신다면 저는 "현실"을 할머니님께서 잘못 읽으셨다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적어도 제 주변의 오프라인 여자들은 다 치를 떨었으니까요) 그렇다면 저희는 고작해야 "학교 사이트" 같은 온라인의 의견을 지표로 삼을 수 없습니다. 코르셋이냐 아니냐 하는 메갈리아의 이분법을 기준으로, 그와는 상관없는 장동민에 대한 여성의 혐오를 "찻잔 속의 태풍"정도로 취급하는 것 역시도 모순됩니다. 최소한 페페페는 방송국에서 시위를 했죠. 그렇다면 장동민 옹호나 지지를 위해 그런 퍼포먼스를 펼쳤던 사람은 있던가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사람들이라는 단어는 "티비를 볼 때 그냥 생각없이 보는 일반 시청자"를 뜻한 단어로서 이미 문장 자체가 충돌할 뿐더러, 그 사람들이 티비에 딱히 민감하다는 건 입증되지 않은 할머니님의 자의적인 해석입니다. 대중의 지지를 안티 세력이 받았는지 논증하라 - 이 문장도 모호합니다. 안티를 지지하는 순간 그 지지자는 안티로 흡수되는 거 아닌가요? 안티를 지지하는 대중의 세력은 우리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나는 장동민을 미워하진 않지만 욕 먹을만하다고 생각하고 불매운동 펼치는 여성들을 응원하다, 뭐 이렇게 말해야 할까요? 안티 세력 역시 "대중"의 일부분이죠. 이들은 존재하고 세력을 형성하는 그 자체가 대중들의 지지인 겁니다. 안티 - 대중 - 팬 이렇게 절대적으로 갈려있는 게 아니라요. 말씀하신 게 중도층인 "회색분자"라면 어느 한쪽에 들어가는 순간 회색분자가 아닌 팬이나 안티가 될 테니 "대중의 지지" 라는 부분은 성립하지 않게 되죠. 대중의 지지를 받는지 논증하라 - 이 말을 웹툰 송곳에 적용해봅시다. 이수인이 근무하는 푸르미 에서 이수인이 이끄는 노조는 대중의 지지, 중립층의 지지를 받나요? 혹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영향력이 없나요? 만약 말씀하신 대로라면 이 세상의 모든 1인 시위는 다 무의미한 일이 될 겁니다. 끽해야 찻잔 속의 태풍이나 일으키고 마는데 왜 그렇게 혼자서 "대중의 지지 없이" 뭘 외치고 있을까요.저는 지금 운동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하는 게 아닙니다. 어떤 여론이 움직이고, 그 여론에서 대표성을 띄고, 또 그 여론이 영향력을 발휘하는 데는 "반드시 중도층이나 과반수의 대중이 이를 편들 필요가 없다" 라는 말을 하는 겁니다. 이 말은 두번째 댓글부터 계속해서 말씀드린 사실이구요. (이에 대해서는 제가 쓴 퀴어 퍼레이드에 이리님이 단 댓글이 잘 설명하고 있으니 참조하시길) 장동민은 대중의 지지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시기상으로 그러하고, "대중"이라는 범국민적 여론이 딱히 형성된 적도 없다는 데 그렇고, "대중"이라는 여론을 나누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현실"로 할머니님이 구분하는 여론지표를 얻을 길이 없다는 데 그렇습니다. 또 말씀드리면, 장동민의 컴백은 대중의 불쾌함을 상업적 표현의 자유가 압도한 사례가 됩니다.
15/11/10 01:16
이런.. 엇갈렸네요. 폰으로 썻다가 지우고 좀 더 자세히 썼는데 다시 대답 부탁 드려도 되겠습니까. 쓰신 댓글에 답변을 원하시면 답변하겠습니다. 남겨주시거나 쪽지주세요.
15/11/10 02:29
할머니님의 논리는 좀 이상합니다. 대중의 불편함 이란 현상은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이죠. 할머니님께서 근거로 가져오시는 것은 "불편함의 사후 영향"이라는 결과입니다. 남양유업의 매출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사람들이 남양 유업에 열받아했다는 현상이 사라지진 않잖아요. 이는 당시의 수많은 사이트들만 확인해봐도 쉽게 관측됩니다. 불편해하는 사람이 "아주 많이" 있었고, 장동민은 무도 하차 말고는 다른 액션을 취하지 않은채 (방송인으로서) 계속 하던 일을 했습니다. 불편하니까 방송 하차해라!! 라는 여론이 있었다면 장동민이 여기에 대해 취할 선택의 수는 딱 두개입니다. 방송을 하차하든가 계속 하든가. 전자의 경우 대중의 불편함이 승리했다고 볼 수 있고 후자의 경우 상업적 자유의 승리입니다. 장동민은 하차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단순하게, 상업적 자유가 이긴거죠. 저는 이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찾아보니 컴백이란 말은 정확하지 않은 것 같군요. 장동민은 4.14일 무한도전에 하차합니다. 추가 하차는 없으며, KBS 2TV ‘나를 돌아봐’, JTBC ‘엄마가 보고 있다’, ‘크라임씬2’, MBC 에브리원 ‘결혼 터는 남자들’ 등에 계속 출연했습니다.] 이 현상 자체가 이미 할머니님의 주장을 반증하고 있는 셈입니다. 장동민은, 그렇게 방송 하차하라는 요구에도 불구하고, 방송을 쉰 적 조차 없어요. 컴백 이런 단어가 쓰일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자숙을 한 적도 없습니다. 방송을 하차하고 자숙할 만한 사고를 쳤는데, 그리고 대중이 그에 대한 피드백으로 자숙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를 전혀 듣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러니 언제부터 여론이 이러이러한 댓글의 증가를 통해 변화했다.... 이런 말들조차 다 부차적인게 되는 거죠. 가장 거셀 때도 방송은 계속 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니 할머니님이 주장한 선 여론 변화 - 후 방송 출연 이라는 구도가 무의미해져버리는 겁니다. 여론에 아예 상관없이 장동민은 하던 방송을 계속 하고 있었잖아요. 장동민만한 사람이 있는가의 여론에 따라 출연이 결정되고 이래저래 됐었다면, 장동민이 죽일 놈 소리를 전국민에게 듣던 때는 방송을 쉬던가 자숙을 하던가 했었어야 "여론의 변화에 따라 장동민은 부활했다" 라는 할머니님의 논리가 통용되는 겁니다. 죽기는 커녕 쌩쌩하게 방송만 잘 했어요. 할머니님이 말한 "지니어스4출연"은 말씀하신 것처럼 여론 변화에 따른 게 아닙니다. 여론이 최악일 때도 하던 방송을 여론이 덜 최악일 때도 그냥 계속 [이어서] 하는 겁니다. 시청률을 통한 장동민의 여론 변화를 주장하신다면 거기에는 하나 전제되어야 할 게 있습니다. 바로 "장동민의 안티들은 장동민이 나오는 방송의 시청률에 유의미한 지분을 가지고 있다" 가 되죠. 여기서 할머니님의 주장은 구멍이 생깁니다. "장동민의 안티들이 딱히 티비를 보지도 않고 장동민 출연 방송의 시청률이 대다수의 여론을 반영하지 않는다면?" 이라는 겁니다. 간단한 예로 마재윤을 들어보죠. 조작 사건 이후 마재윤에 대한 여론은 최악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게 마재윤의 아프리카 방송에 반영이 됐나요? 마재윤 방송 보는 사람은 봤습니다. 별풍도 뻥뻥 쏘고요. 마재윤의 인기를 이용하려고 소닉이 접촉까지 하고 그랬으니까요. 여러 다른 스타비제이들도 같이 어울렸고. 무언가를 반대하는 여론은 반드시 어떤 지표로 나타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아주 보편적인 소비가 보편적인 고객층에게 되고 있을 때 적용될 수 있는거죠. 컴백이 없었다고 말씀하시니 저도 제가 말한 구도를 수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간단합니다. 장동민 방송 유지. 컴백, 여론 변화 이런 걸 따질 필요도 없습니다. 저는 왜 컴백이 없었다고 하시고서는 제 주장은 또 "컴백론"으로 해석하시는지 모르겠네요. 저는 운동의 힘을 과신하지 않았습니다. [일부의 '안티세력'이 대중을 지배할 수 있는] 이 문장은 틀렸어요.(저는 안티세력이 대중을 지배했다고 한 적이 "단 한번도" 없는데요) 이에 대해서는 이 전 트윗에서도 계속 지적했습니다. "대중"을 어떤 중립적이고 어느 한 세력을 지지할 수 있는 제 3의 세력, 혹은 유권자 처럼 생각하시니까 이런 주장을 하시는 겁니다. 안티 - 대중 - 팬 이 3자의 구도가 아니에요. (대중)이란 커다란 세력 안에서 ((안티)(팬)) 이렇게 나뉘어져 있는거죠. (그 안에 회색분자도 있고) 그래서 동성애자 결혼 법제화 이슈를 예로 든겁니다. 거기에 대중이란 세력이 따로 있었나요? 기독교 측의 안티 세력과 동성애자 본인 및 이들을 지지하는 지지 세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나머지를 회색분자들이 채우고 있는 거죠. (회색분자들도 완전한 중립자가 아니라 어떤 의견은 가지고 있겠지만 결국 대세에 따르는 쪽으로 행동할 거라는 뜻에서 회색분자라고 하는 겁니다) 이 회색분자들이 기독교 측의 안티 세력을 딱히 반발하나요? 혹은 동성애자들과 함께 캠페인을 합니까? 아니면 다 같이 나가서 게이 고 투 더 헬 표지판을 들고 운동하나요? 어떤 변화가 일어나기전까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로 그 현상을 좌시했고, 변화가 일어나자 거기에 그냥 휩쓸려 갑니다. 전 이런 걸 말씀드리는 거에요. 이건 좋고 나쁘고 이런 게 아닙니다. 그냥 인간사회의 여론이라는 게 대부분 이런 현상을 띈다는 거죠. 아주 거국적이고 본인 생활에 밀접한 이슈를 제외하고서는요. [회색분자들은 정치적 수준에서 회색분자일 뿐이며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 재미있는 개그맨이 출연하는지 -에 얼마나 민감한지는 PD들이야 말로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회색분자들이 장동민이 출연하는 것에 불쾌감을 가지고 있지 않고, 오로지 장동민이 웃기는지에 초점을 맞추어 시청율에 일조] 이 문장으로 할머니님은 스스로 증명하고 계시는 거죠. 상업적 자유도를 대중의 불편함이 압도하지 못한다 - 이 명제 말이죠. 일단, 장동민 이슈는 정치적인 이슈입니다. 이 이슈를 두고 옳으냐 그르냐를 싸우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리고 분명히 불편한 사람들이 유의미하게, 아니 아주 많이 있었단 말이죠. 그런데 "대부분의 회색분자들은 장동민이 웃기는지에 초점을 맞출 뿐"입니다. 그리고 피디들은 "이 사람이 얼마나 웃기는가, 시청률을 얼마나 뽑아내는가 에만 집중하고요." 이 현상이야말로 바로 "대중의 불편함"을 "상업적 창작의 자유"로 압도하고 있는 거지 않습니까. 장동민은 나쁘다 (그러니 보기 싫다) - 장동민은 나쁘지 않다(그러니 볼 거다) 이게 이 이슈의 쟁점인데 장동민이 나쁜지 좋은지는 모르겠고, 웃기기만 하면 돼 & 이런 사람들한테 시청률만 뽑아내면 돼 이게 대중의 불편함을 상업적 자유도로 누르고 있는 상황이란 겁니다. 왜 엉뚱하게 이들은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이들은 대중이 아니다 라고 본인의 자의적인 구도로 배제하시나요. [설령 스스로를 대중의 의견이라 칭한다 하여도 PD들이 관심을 가지는 '대중'은 소수의 강성 세력이 아닙니다.] 이 문장도 해당 명제를 그대로 증명하지 않습니까.[상업의 영역과 맞닿아 있는 자유는 절대적으로 대중의 불쾌함 밑에] 있지 않다는 걸요. 할머니님은 저지르는 실수는 이 자의적인 구도 설정에 있습니다. 퀴어 퍼레이드를 이야기할 때, 제가 그걸 지지하면 저는 "대중"이 아닙니까? 이걸 반대하면 대중이 아닌가요? 찬성하든 반대하든 회색분자든 모두가 "대중"의 카테고리에 속합니다. 왜 대중을 자꾸 어떤 관객이나 이슈와는 아무 상관도 관심도 없는 사람 - 이라고 설정을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설령 단어 선택을 잘못하셔서, 지칭하고 싶었던 게 "회색분자"라고 합시다. 그렇다면 "회색분자"의 지지는 어떤 가치관을 정하고 판단하는 데 기준이 되나요? 이수인이 푸르미에서 노조 활동 하는 건 아직까지도 대다수의 푸르미 직원들에게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으니까 (물론 반대도 얻는 건 아닙니다) 그건 실패한 거고 과대평가된 시도입니까? 저희는 지금 가치판단과 그 가치판단의 근거가 되는 현실을 분석하고 있는데 왜 "결과론"으로 모든 당위적 논리까지 얻으려고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장동민이 현실적인 이유로 무한도전에서 하차했지만, 대중의 지지를 얻고 다시 방송에 복귀한 것처럼 말입니다.] 이 문장부터가 모든 문제의 시발점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하차한 게 무한도전이면,"방송에" 복귀한 게 아닙니다. 무한도전에서"만" 하차했고, 다른 방송은 계속 하고 있는거죠. 앞 문장의 보어와 뒷 문장의 보어가 완전히 다릅니다. 그런데 이를 동치시키고 있으니 이를 여론의 변화라는 변수로 현상을 해석하고 대입하는 오류를 저지르시는 거죠. 방송에 복귀한 게 되려며, 하차한 것도 "방송"이 되어야 합니다. 무한도전에서 하차한 거라면, 방송 하나만 하차했으니 "방송에 복귀했다" 라는 건 틀린 명제가 됩니다. @ 이번에는 댓글 수정 안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상대방의 주장에 반박하는데 그 주장 자체를 바꿔버리면 반박하는 측의 주장도 완전히 헛게 됩니다. 학교 사이트의 예를 비판하기 위한 사례를 찾고 그에 맞는 반론을 펼쳤는데 그 인용 자체를 아예 없던 걸로 해버리니 제 주장이 상당 부분 붕 뜨게 됩니다.
15/11/10 10:07
1.남양유업 매출은 떨어졌습니다. 자꾸 틀린 예시 가져오지마세요. 그리고 지금 아주많이란 말 쓰셨는데 그런 말 사용하시려면 수치자료를 가져오시라니까요? 사이트보세요. 따위의 불분명한 것 말구요.
2. 왜 장동민이 계속 방송했는지 그러면서도 주장이 달라지지 않는지 충분히 설명 드렸구요. 3.장동민은 정치적 이슈가 아니에요. 광의의 정치란 말 따위는 쓰지맙시다. 4.퀴어퍼레이드서 한 목소리를 낸다고 그게 대중의 목소리가 되는게 아니죠. 지금 영향력과 여론, 대중의 불쾌함 따의를 굉장히 자의적으로 입맛대로 사용하시는데 논점에 집중하세요. 영향력은 물은적 없는데 자꾸 이상한 답변만 하시네요. 그러니까 결국 다시 요구합니다. 시장이 대중의 불쾌함을 이겼다는 증거를 제시하세요. 5. 시청율이 단순한 사후지표라고 명명하실거면 우리는 대중의 내심의 의사를 판단할 방법이 없습니다. 결국 단일펙터의 문제가 아닌이상 펙터가중치의 문제이고 시청율은 방송업에서 민의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수치죠. 트위터 따위가 아니라요.
15/11/10 12:51
1. https://cdn.pgr21.com/pb/pb.php?id=freedom&no=48004&divpage=12&ss=on&sc=on&keyword=%EB%82%A8%EC%96%91%EC%9C%A0%EC%97%85
저는 가정법으로 말씀드린 겁니다. 할머니님의 논리를 따르면 남양유업은 매출을 회복했으니까 사람들에게 용서를 받은 건가요? 아니면 안티세력은 원래부터 별볼일 없었고 이를 압도할 만큼 "대중"의 의견이 정상세로 들어섰습니까? 어떤 지표의 변화가 있을 것이다 - 라는 귀납법은 들어맞지 않는다는 겁니다. 사회적 분노는 꼭 자본주의적 지표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거에요. 언제부터 사회적 분노를 따지는데 그 지표를 일일히 분석했습니까? 타진요가 맹위를 떨치고 타블로에 대한 사회적 의심이 커졌을 때 우리는 시청률로 이를 판단했나요? 음반 판매량으로 이를 확인합니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라는 개개인의 의견이 직접적으로 드러나고 그것이 어떤 행동으로도 이어지잖아요. 적지 않은 수의 그러한 행동에서 팬, 안티 이런 것들을 우리는 추론하고 그것을 기정사실화한다는 말입니다. 아이유에 대한 대중의 분노와 미움을 판단하기 위해서 저희는 음반판매량을 체크합니까? 그렇다면, 대체 시청률이고 뭐고 변화도 없는데 왜 장동민은 무한도전을 자진하차했습니까? 할머니님은 왜 처음에 "학교 사이트" 댓글 몇개를 저에게 제시하셨나요? 눈에 선명한 여론의 수많은 증거를 가지고 "시청률"과 연관이 안되니 가짜 증거 라고 하는 건 본인의 주장과도 모순을 일으키고 그 자체로도 오류입니다. 2. 설명하신적 없습니다. "컴백이란 말은 정확하지 않았군요" 라는 말만 있었고 그 이후에는 계속 정확하지 않다던 그 정의를 쓰셨으면서도 이에 대한 이유는 없습니다. 3. 제가 새정련의 강령 5번과 정의당 강령 5번을 가지고 와야 이게 정치적 이슈라는 걸 실감하실 수 있으신가요. 정치라는 말에 대해서 너무 거국적이고 제도적인 것만 생각하시는 거 아닙니까? 사람의 삶을 가지고 각 파가 갈려서 다투면 그건 그 어떤 주제고 소재건 간에 이미 정치의 영역입니다. 꼭 국회의원들이 국회의사당에서 서류뿌리고 이러는 게 정치가 아니라요. 학급반장 선거도 정치고 동대표끼리 난방비 가지고 싸우는 것도 정치입니다. 4. 퀴어퍼레이드에서 한 목소리를 낸다고 대중의 목소리가 아니다? 제가 계속해서 말씀드렸습니다. "대중" 이라 함은 최종적 결정권자이자 결론의 상태인 여론을 뜻하는 게 아니라, 여론을 뜻하는 가장 큰 집단이고 그 안에서 부분집합으로 팬, 안티. 덜 팬, 그냥 시청자 이렇게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시장이 대중의 불쾌함을 이긴 증거요? 엄청 많죠. 김구라, 강용석, 조영남 뭐 널리고 널렸습니다. 티아라가 은퇴했습니까? 제주도 공연무대에서는 함성 보이콧을 당했고 주티야올이라는 말까지 있었죠. 그런데도 지금 방송 잘만 합니다. 5. 대체 증거가 왜 없나요. 인터넷 여론은 여론이 아닙니까? 제가 언제 트위터를 증거로 들었나요? 말씀을 정확히 하셔야죠. 피지알 따위, 오유 따위 이렇게요. 제가 든 사례들은 이런 거였는데요. (본인 역시 그 여론들을 시청률의 증거로 쓰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대체 트위터가 여론의 부분이 되지 못할 이유는 뭔가요? 할머니님의 자의적인 해석 말고, 트위터가 여론으로 부실한 "사회적 지표"를 증명하실 수 있습니까? 도대체 이해할 수 없군요. 보는 사람의 생각과 마음은 아무 것도 반영하지 못한 채 "누가 티비를 시청 중"이라는 기록 하나만 남길 뿐인, 많아야 약 1550가구의 표본 조사는 그렇게 신뢰하면서 이용자 몇만 몇십만에서 개개인이 드러내는 생각과 의견은 ~따위 입니까? 객관적 지표요? 그래서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마재윤의 여론이 최악에 다다랐을 때 마재윤은 아프리카에서 제일 잘 나갔습니다. 별풍도 빵빵 터지고 움직이는 핫이슈로 살았어요. 그럼 마재윤은 여론의 용서를 받았습니까? 아프리카 시청률이 탑 비제이였으니까? 할머니님의 귀납적 증명은 구멍이 많다는 겁니다. 엠씨몽의 음원이 올킬 가까이 하고 1위도 꽤 하고 그랬으니까 대중은 엠씨몽을 용서했습니까? 불편해하지 않았나요? 어떤 사례를 들어야 본인의 귀납적인 증명이 오류가 있단 걸 인지하실 수 있을까요?
15/11/10 13:46
1. 논점 흐리지 마세요. 타진요가 언제부터 '대중'을 대표했죠? 사회적 분노라는 다른 표현으로 에둘러 가시려 하지마시구요. '타진요'가 타블로를 향해 표출한 것은 '타진요'가 분노를 표출한거고, 타진요의 불쾌함을 표출한겁니다. 대중의 불쾌함이 아니라요.
어떤 집단의 불쾌함이 '대중의 불쾌함'이라 부를정도로 크기를 가졌는지 판단하는데 있어서 타진요 처럼 그 크기를 확인할만한 명확한 근거가 없는 경우와, 주가, 매출 등으로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남양유업 사태는 전혀 다릅니다. 남양유업은 매출과 주가를 통해 대중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어요. 만약 매출에 흔들림이 없었다면, 남양유업이 '특정 목소리'를 무시하더라도 그건 '대중의 불쾌함'을 무시하는게 아닙니다. '일부'의 불쾌함을 무시한거죠. 크기가 '대중의 불쾌함'을 말하는데 있어서 유의미한 펙터가 아니라고 주장하시는 거라면, 담론 형성과정 처럼 보통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과, 장동민 사례 처럼 보통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경우를 구분하라고 말하고 싶네요. 보통 사람들이 시청율로써 자신이 불쾌한지 안한지를 말하고 있고, 대상자는 그 걸 확인할 수 있는데, 얼마나 많은 수의 지지를 받는지 확인도 불가능한 몇몇 안티세력의 말 따위를 신경써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죠. 대중의 크기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와 크기를 간접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는 경우를 같은 선상에 놓는 오류를 범하지 마세요. 본인에 말은 그저 '추정'일 뿐인데, 확정된 사실 인양 주장하려니 자꾸 이상한 궤변을 늘어놓게 되시는 거에요. 적어도 장동민 사건에서 왕천군님은 내심의 의사를 판단할 단일 펙터 자료를 전혀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구요. 그래서 온도차이를 이야기 한겁니다. 단일 펙터를 자료를 가지고 있었다면 '온도차이'를 말할 것도 없겠죠. 왕천군님의 보잘 것 없는 근거수준은 제가 '학교커뮤니티'따위를 근거로 하여도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걸 왕천군님에게 이해시키기 위해서 학교커뮤니티 따위를 예로 든 겁니다. 2. 시청율에 전혀 영향을 안미쳤다구요. JTBC는 장동민 하차고려라는 기사까지 내보내며 간까지 봤는데 시청율에 전혀 영향이 없으니 그냥 계속한거죠. 왜 안합니까? 시청율이 그대로인데. 3. 그건 왕천군님 정의구요. 정치를 협의로 바라보자고 한 정치학자 이름 대면 납득하실겁니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정치를 이야기 할 때 현실정치를 가르키는데, 광의의 정치를 외치며 모든 것이 정치다 말해봐야 정치적 레토릭일 뿐이죠. 정치에 염증이 난다. 라는 말이 정말 삶속에 작은 정치에 마저 염증을 느낀다는건지, 현실정치에 염증을 느낀다는건지 잘 생각해보세요. 정의를 바꿔가면서 그것도 정치인데? 헛다리 짚는 운동하는 친구들의 행태 반복하지 마시구요. 그러면 대중이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말부터 틀렸으니까요. 자기 삶에조차 관심이 없다는건데 그게 논증은 커녕 실례로 확인이나 가능합니까? 4. 보통 담론에서 회색분자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 싸울 생각이 없습니다. 누군가 대중의 반응을 확인할 때 그 회색분자들의 성향을 확인 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 경우는 다르죠. 시청율을 통해 확인 가능합니다. 그들은 시청율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보이고 이쓴거나 다름 없어요. 5. 1550이면 통계학적으로 오차범위 낮게 신뢰도 뽑아낼 수 있습니다. 제 생각 아니구요. 통계학 기본중에 기본이고 사회과학 기본 아닙니까? 중요한건 1550만을 뽑아낼 때 편의가 있었냐죠. 왕천군님이 말씀하신 주변의 트위터 분위기는 이점에서 아웃이에요. 편의에 대한 검증이 안되어 있는 자료입니다. 통계학적으로 신뢰도 측정이 불가능 합니다. 일단 트위터에 대하여 신뢰성 있는 표본조사 부터 제시해주시구요. 성별 고려해서 세대 비율 맞춘 자료로요. 최소한 시청율은 저정도로 편의를 줄이고자 하는 노력은 하거든요. 시청율보다는 통계학적으로 가치가 있는걸 제시하시고서 시청율을 부정하세요. 대중의 불쾌함이 시청율의 단일 펙터가 아니기에 시청율이 '대중의 불쾌함'을 입증하는 자료로 사용 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추정할 수 있습니다. 혹시 대중의 의견이라는 펙터가 시청율의 여러 펙터 중 '하나의 펙터'로도 없다고 주장 하시는 건가요? 그런데 왕천군님은 대중의 불쾌함을 펙터로 삼고 있는 어떤 통계자료도 제시하지 않으셨습니다. 사실 왕천군님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대중의 불쾌함을 측정할 수 있는 '단일펙터' 자료가 필요합니다. 전 그런 자료가 없으니 ' 온도차이' 를 이야기 한거구요. '온도차이'가 아님을 입증하시려면 단일 펙터 자료를 제시해주세요. 지금까지 전 왕천군님의 트위터 친구들이 어떤 의견인지만 확인했습니다. 6. 민의를 나타내는 수치자료를 제시해야 납득을 하죠. 좀 사회과학적 주제는 사회과학적 방법론에 입각해 이야기하셨으면 하네요. 변변찮은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단일펙터 자료는 커녕 대중의 불쾌함이 하나의 펙터로 들어가 있는 자료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대중의 불쾌함'을 선언하는데 무슨 납득을 합니까?
15/11/11 15:29
만일 제 강경한 어조에 불쾌해서 공격적인 어조를 쓰고 계시는 거라면, 사과드립니다. 저는 감정소모까지 하면서 키배를 하고 싶진 않습니다. 사실 이 이야기를 길게 이어나가고 싶은 의욕이 많이 떨어졌네요. 제 어조를 낮출테니 할머니님께서도 "따위의" "보잘 것 없는" 같은 단어는 사용을 자제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다시 처음으로 이야기를 되돌리자면, 제가 할머니님의 의견에 이의를 제기하는 부분은 "시점"의 해석과 "대중"이라는 정의와 분류입니다. 장동민 사태가 터지기 전의 시점과 그 이후의 시점을 "연결해서" 보자는 거죠. 컴백이 없었다는 할머니님의 주장을 따르면, (이것이 더 정확합니다, 저희는 여태 컴백이라는 단어 때문에 없는 사건을 만들어낸 셈이죠) 할머니님의 초점은 어느 순간에 맞춰져있고 여기에 다른 해석의 여지가 있다는 겁니다. 할머니님의 시점은 아마 이럴 겁니다. 장동민 사태 발생 - 지지도 하락, 안티급증 - 무한도전 하차 - (여론 회복) - 방송 복귀 이걸 좀 더 길게 봅시다. 장동민이 방송을 해오던 좀 더 과거의 시점에서, 장동민 사태가 터진 한참 이후까지요. 방송 - 방송 - 방송 - 장동민 사태 발생 - 방송(무한도전 하차) - (여론 회복) - 방송 - 방송 - 방송 장동민은 방송을 쉰 적이 없습니다. 소위 여론의 악화로 어떤 피드백을 대중들에게 주었다면, 그것은 "무한도전 하차"가 유일합니다. 그 비난의 강도를 봤을 때 장동민의 적절한 피드백은 "방송 중단 및 자숙" 이었습니다.(저는 당위를 말씀드리는 게 아니라, 비난에 알맞는 피드백 "값"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제가 볼 때는 강호동이나 김구라도 전혀 방송 중단을 할만한 사유는 아니었다고 보니까요. 마약을 한 사람에게는 마약을 한 만큼의, 막말을 한 사람에게는 막말을 한 만큼의 피드백을 대중은 요구합니다.) 그러나 그 피드백을 "무한도전 하차"로 대신했죠. 즉, 방송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방송에서 보기 싫다는 대중의 불쾌함은 장동민의 경우 제대로 적용이 되지 않은 것입니다. 다음으로, 대중이 무엇인지 저희는 서로 엇갈린 정의를 쓰고 있습니다. 할머니님의 의견을 보면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상태에서 최종적 결론을 내려 모든 의견을 통합한 여론"이라는 의미로 쓰시는데 저는 이 의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여론은 가치중립적인 하나의 군집에 불과합니다. 여론이 좋다, 여론이 나쁘다, 이런 게 어느 누구에게나 쓰일 수 있는거죠. "일부"로서 존재하는 여론 역시 대중입니다. 일베도 대중이고, 소라넷도 대중이고, 오유도 대중이죠. 어느 쪽의 의견을 따르고 받아들일지는 "합리성"으로 그것을 나누는 거지 다수결로 나누는 것은 아니라 할 수 있습니다.그래서 우리는 여론전에서 밀린다 할지라도 박근혜씨를 인정하지 않고, 이 또한 여론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죠. 박근혜씨를 좋아하고 지지하는 것 또한 여론이라고 부릅니다. 또 하나 말씀드리자면, 제가 할머니님의 가설에서 지적하는 오류는 "시청률은 여론을 나타내는 절대적 지표가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그 사례들을 말씀드리죠. 엠씨몽은 여론이 매우 안좋습니다. 대중은 엠씨몽을 불편해합니다. 엠씨몽은 새 음원을 발표했고, 해당 음원은 1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렇다면, 엠씨몽은 대중의 용서를 받았고 대중들은 더 이상 엠씨몽을 불편해하지 않는 걸까요? 마재윤은 조작을 해서 게임하는 사람들에게 여론이 매우 안좋았습니다. 그 상황에서 개인 게임 방송을 시작했고, 탑 비제이로 떠올랐습니다. 그렇다면, 아프리카의 자체적인 방송 순위에서 상위권을 차지한 결과를 볼 때, 대중들은 당시 마재윤을 용서했거나 호감으로 돌아섰을까요? 또 다른 예라면 "붐"이 있겠네요. 누가 봐도 붐은 여론이 매우 안좋았던 연예인입니다. 심지어 잘 나갈 때도요. 그렇다면 붐이 나오는 티비의 시청률은 떨어지지 않으니까 붐에 대한 여론은 좋았던 걸까요? 할머니님의 가설은 "어떤 사건에 호/불호를 보이는 대중들의 대다수가 해당 컨텐츠를 부지런하게 소비한다" 라는 전제가 있어야 설득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싫어하는 사람들은 원래 어떤 컨텐츠를 소비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해당 컨텐츠의 소비가 여론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불편해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고, 이 사람들과 상관없이 회색분자와 팬층에서 소비가 격렬하게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거죠. 1. 저는 타진요가 대중을 대표한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해당 문장을 다시 가져오겠습니다. [타진요가 맹위를 떨치고 타블로에 대한 사회적 의심이 커졌을 때 우리는 시청률로 이를 판단했나요? 음반 판매량으로 이를 확인합니까? ] 저는 "대중의 불편함"을 확인하는 데는 반드시 자본주의적 지표가 필요없다고 말씀드린 거죠.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타블로를 싫어하고, 타블로를 의심하는 사람들은 "타진요"가 아님에도 꽤나 많았습니다. 해당 의견들은 피지알에서도 충분히 확인 가능합니다. 누구누구에 대한 여론이 안좋다 - 라는 것은 댓글들의 수와 반응 정도로도 충분히 확인가능하다는 말씀을 드린 겁니다. 여론이라고 불릴만한 유의미한 숫자가 있고, 그 숫자의 반응이 사회적으로 시선을 끈다면 이것은 가치중립적으로 "여론"이고 "대중"이 됩니다. 어떤 이분법, 진영 논리는 흔히 여당에서 가장 많이 쓰는 논리죠. 분명히 유의미한 반발 여론이 있음에도 이들은 "일부 불순 종자들" " 과격한 반정부 세력" 이라고 프레임을 만들고 그 안에 넣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타진요 역시 여론의 일부분입니다. 남양유업의 매출과 주식이 회복되었으니 이는 대한민국 여론이 남양에 대해 호의로 돌아섰다는 뜻일까요? 타진요 사태에서 우리는 타블로가 소속된 회사의 주식이나, 시청률, 음반 판매율을 확인하지 않았으니 당시(의혹 제기 초창기부터 중기까지) 타블로에게 좋지 않던 여론은 그저 우리가 추정한 것일 뿐일까요? 할머니님이 학교커뮤니티를 굳이 근거로 들었던 이유는 제가 든 근거가 "이렇게나 허망하다" 라는 것을 깨우치기 위한 것이었던가요. 글쎄요, 제가 기억하는 할머니님의 논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제 주장을 반박하기 위한 사례로 쓰였지, 논리적 허점을 공격하기 위해 "~라면 내가 하는 이런 주장도 맞다~" 라는 식의 어조는 전혀 아니었어요. (그걸 또 왜 굳이 지우셨는지도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2. 여론이 이러하다면, 시청률에 영향이 이렇게 갔을 것이다 - 라는 전제의 함정을 저는 위에서 설명드렸습니다. 3. 저희의 정의가 서로 다르다면, 어느 한 쪽의 정의가 "옳다"고 할 것이 아니라 나의 정의는 이러하고 너의 정의는 이러하니 합의를 보는 게 낫겠죠. 저는 대한민국의 대다수가 논의에 참가하고, 이것이 "남성"으로서의 정치적 입장과 "여성"으로서의 정치적 입장이 부딪혔다는 것에 대해서 충분히 정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생각합니다. 현실 정치인이 정당의 강령에 걸고서 정치적 이슈로 다루고 있다는 부분 또한 그러합니다. 제가 우려하는 것은 "이게 무슨 정치야?" 라고 말하는 순간 이슈의 중대함이 희석되고 주장에서 힘을 빼는 시도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인종 문제가 정치적 문제고, 내국인/외국인 문제가 정치적 문제고, 빈부 격차 문제가 정치적 문제라면 남여 문제 역시 정치적 문제죠. 대한민국 전체에 걸쳐서, 모든 사람이 어느 한쪽의 정치적 입장을 띄고 그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면 이것은 충분히 정치적 문제입니다. 옆집 철수네와 영희네가 서로 싸운다면 이것은 정치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도 있죠. 그러나 이것이 대한민국에 만연한 보일러 난방비 문제라면 "정치적"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동의하지 않으신다면, 설명없이 넘어가셔도 됩니다. 어차피 이 부분은 "정치적"이라는 단어를 안쓰면 그만이니까요. 4. 위에서 반박한 내용이므로 넘어가겠습니다 5. "어떤 자료를 객관적 방법을 통해 재가공하지 않으면 자료로서의 가치가 없다" 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힘들군요. 저희가 아이유 제재 논란을 두고 이야기할 때 그런 식으로 자료를 누군가가 제공한 다음에야 "자, 그럼 제제라는 곡을 불편해하는 사람이 많으니 이야기를 해봅시다" 하고 논쟁을 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다시 말씀드리고 싶은 건, 시청률이 (직접적으로) 호불호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해당 채널, 해당 프로그램을 보는 사람들의 비율이지, 장동민이 좋아, 싫어를 마인드리딩하는 기구가 아니라는 겁니다. 오히려, 장동민이 좋아, 싫어 라는 의견을 직접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은 인터넷 사이트들과 SNS죠. (그래서 학교 사이트의 예를 든 것 아니셨나요) 이용자 몇만명의 SNS나 사이트에 "직접적으로" 나는 장동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한다, 라는 의견이 올라오고 거기에 대해서 토론이 벌어지는데 왜 이 의견은 "객관성"이 없다고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이건 트위터가 됐든, 일베가 됐든, 오유가 됐든, 다 어떤 여론의 지표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겁니다. [ 대중의 불쾌함이 시청율의 단일 펙터가 아니기에 시청율이 '대중의 불쾌함'을 입증하는 자료로 사용 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추정할 수 있습니다. 혹시 대중의 의견이라는 펙터가 시청율의 여러 펙터 중 '하나의 펙터'로도 없다고 주장 하시는 건가요? ] 할머니님도 스스로 알고 계시는데, 왜 시청률을 절대적인 지표로 계속 활용하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추정자료"일 뿐이죠. 그보다 확실하게 "생각"과 "의견"을 확인할 수 있는 지표가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말이죠. 대중의 의견이라는 팩터는 시청율의 "여러 펙터 중 하나"로서 작용할 수 있지만 그것이 할머니님의 말씀만큼 절대적이진 않다고 봅니다. 오히려, 그 영향력은 그렇게 크지 않을 수 있다고 봐야죠. 제가 이 논쟁에서 "트위터"를 사례로 든 적이 있던가요? 저는 의도적으로 "피지알"과 "오유"의 의견을 예로 들었습니다. 왕천군님의 트위터 친구들... 이라는 표현은 어떤 프레임론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제 "피지알 친구들" 이라거나 "오유 친구들"이라고는 하지 않으실 것 같은데요. 6. 다시 말씀드리지만, 객관적인 수치자료는 대중의 호불호를 판단하는 데 썩 유의미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 같은 천만 영화라도 해운대, 광해, 7번방의 선물, 이런 것들은 전부 평이 제각각이죠.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장동민에게 대중은 불편해했으며, 이 불편해하던 사람들은 의견을 크게 바꾼 적이 없습니다. 주장하시는 게 "대중은 장동민에게 불편해한 적이 없다" 라면 이것은 틀렸다고 할 수 있으며, 대중이 호의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장동민이 "방송 복귀"를 한 것도 아닙니다. 복귀가 필요한 "하차"상황이 아예 없었으니까요. 김구라나 강용석처럼, 질려서 익숙하게 만드는 전술을 쓴 거지 여론이 원인이 되어서 장동민이 "컴백"을 한 적은 없습니다.
15/11/11 16:06
1. 할머니님의 의견을 보면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상태에서 최종적 결론을 내려 모든 의견을 통합한 여론"이라는 의미로 쓰시는데 저는 이 의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여론은 가치중립적인 하나의 군집에 불과합니다. 여론이 좋다, 여론이 나쁘다, 이런 게 어느 누구에게나 쓰일 수 있는거죠. "일부"로서 존재하는 여론 역시 대중입니다. 일베도 대중이고, 소라넷도 대중이고, 오유도 대중이죠. 어느 쪽의 의견을 따르고 받아들일지는 "합리성"으로 그것을 나누는 거지 다수결로 나누는 것은 아니라 할 수 있습니다.그래서 우리는 여론전에서 밀린다 할지라도 박근혜씨를 인정하지 않고, 이 또한 여론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죠. 박근혜씨를 좋아하고 지지하는 것 또한 여론이라고 부릅니다.
-> 대중을 그렇게 정의 내린적 없습니다. 수적인 크기가 필요함을 반복해서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대중의 사회학적 정의는 엘리트와 구분되는 현대사회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사람입니다. 사전적정의는 수 많은 사람들 무리구요. 사회학적 정의에 따르면 일베는 대중의 일부 인거고, 소라넷도 대중의 일부이며, 메갈리아도 대중의 일부인겁니다. 대중 그 자체가 아니라요. 대중이 모든 의견을 통합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 의견이 대중의 의견이라고 말하는데 있어서 일정한 수적 요건을 요구하는게 당연하다고 봅니다. 사전적 정의를 따르더라도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단 한명의 합리성 넘치는 주장이 있고 나머지 전부가 반대하더라도 그 한명은 '대중'이라고 스스로를 말할 수 있게 됩니다. 남양유업의 매출과 주식이 회복되었으니 이는 대한민국 여론이 남양에 대해 호의로 돌아섰다는 뜻일까요? 타진요 사태에서 우리는 타블로가 소속된 회사의 주식이나, 시청률, 음반 판매율을 확인하지 않았으니 당시(의혹 제기 초창기부터 중기까지) 타블로에게 좋지 않던 여론은 그저 우리가 추정한 것일 뿐일까요? -> 추정이죠. 사실 관계가 확인되지 않은건 추정입니다. 사실관계가 확인될 여지도 또한 없으니 남양유업은 매출이나 주식의 흐름을 보고 대중의 의견을 '추정'하고 사과문작성을 고려합니다. 그런데 매출이나 주식의 흐름을 보는데 아무런 변화가 없으면 역시 '추정' 하여 사과문작성을 반려하겠죠. 결국 몇몇 사람이 트위터에서 남양유업을 욕하더라도 그게 대중의 목소리라고 '추정'하는 사람도 있을것이고 '추정'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뿐입니다. 그걸 사실이라고 주장 해서는 안됩니다. 모든 문제에서 단어를 명확하게 사용하기란 어려우니 대충 넘어가는 경우가 많지만, 왕천군님이 정확한 단어사용을 중시하시길래 명확하게 가자고 하는 겁니다. 이 전 글은 지운건, 지하철에서 핸드폰으로 작성한 것 이어서 썩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댓글이 달리지 않아 아직 읽지않은 걸로 파악하고 삭제했습니다. 이부분은 미안합니다. 5. 다시 말씀드리고 싶은 건, 시청률이 (직접적으로) 호불호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해당 채널, 해당 프로그램을 보는 사람들의 비율이지, 장동민이 좋아, 싫어를 마인드리딩하는 기구가 아니라는 겁니다. 오히려, 장동민이 좋아, 싫어 라는 의견을 직접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은 인터넷 사이트들과 SNS죠. (그래서 학교 사이트의 예를 든 것 아니셨나요) 이용자 몇만명의 SNS나 사이트에 "직접적으로" 나는 장동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한다, 라는 의견이 올라오고 거기에 대해서 토론이 벌어지는데 왜 이 의견은 "객관성"이 없다고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이건 트위터가 됐든, 일베가 됐든, 오유가 됐든, 다 어떤 여론의 지표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겁니다. -> 그러니까 이용자 몇만명의 사이트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장동민을 미워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통계자료를 보여달라는거 아닙니까. 전 트위터의 사용자 계층의 연령대나, 성별 분포도를 모릅니다. 최소한의 공정성은 갖춘 자료인지, 트위터가 대중의 향방을 나타낼정도로 고른 단위의 대중을 나타내는지 전 모르니, 트위터 같은 걸 근거로 사용하실거라면 그 근거가 제대로 된 근거인지 자료를 제시하라는거죠. 그걸 못한다면 감히 트위터의 몇몇 의견을 대중으로 둔갑시켜서는 안되겠죠 6. 그래서 '호불호'를 묻는 설문조사를 합니다. 그 자료를 기반으로 '대중은 불편했다' 라고 선언합니다. 그런데 지금 장동민 사건에 대하여 그런 설문조사를 '전' 못찾았습니다. 명확하게 표현합시다. '내가 생각하기에 대중은 불편했을 거라고 추측된다.' 라는 말에는 댓글을 더 달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 대중은 불편했을 가능성이 상당하다.' 라고 말하시려면 장동민에게 호/불호를 표현한 사람들 중 불호가 몇%를 차지하는지 보여주시면 됩니다. 역시 '추측'입니다. 트위터는 전국민대표성을 가지는 표본수집 장소가 아닙니다. '대중은 불편했다' 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통계과정을 거쳐서 표본을 추출하시면 됩니다. 7. 대중의 의견이라는 팩터는 시청율의 "여러 펙터 중 하나"로서 작용할 수 있지만 그것이 할머니님의 말씀만큼 절대적이진 않다고 봅니다. 오히려, 그 영향력은 그렇게 크지 않을 수 있다고 봐야죠. -> 난 그 영향력에 대해서 연구한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추측'자료로 활용할 뿐이죠. 명확하게 사용하려면 가중치를 연구해보는게 우선 일겁니다. 그래서 내 주장은 ' 대중이 불쾌하지 않았다'가 아니라 '내 생각에는 대중이 불쾌하지 않은 것 일수도 있다.' 입니다. 바로 두번째 댓글에서 인정했듯이 말입니다. 8. 공격적인 어조 사용한적 없습니다. 통계적 가치가 없는 것을 통계적 가치가 있는것마냥 기술하니 '따위' 인것 뿐이죠. 강경과 공격을 구분하시며 프레이밍을 씌우시는건 좀.. 곤란합니다.
15/11/11 17:52
그렇다면, 수적인 크기를 계량하는 데 있어서 맨 처음에 [ PGR만 해도 장동민이 무한도전을 하차한 이후 장동민에 대한 옹호글이 얼마나 많이 올라왔습니까? 엠팍이나 오유등 대형 사이트에서 장동민을 검색해보시면 아실 수 있을텐데요.] 라고 하신 이유는 무엇인지요.
이 부분에서 할머니님은 "시청률" 같은 객관적 지표를 가지고 온 게 아닙니다. 그리고 장동민에 대한 "대중의 불편한" 여론의 증거로서 대형 사이트의 평균적인 댓글 성향을 제시하고 있죠. 그런데 장동민에 대한 여론의 전환을 증명하는 사례는 "시청률"을 제시합니다. 이것은 이중적이지 않습니까...? [PGR에 검색해보면 4.12일 글에는 장동민의 대한 옹호 여론이 있을 지언정 비난여론의 수가 절대 밀리지 않는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4.13일 왕천군님에 글에도 왕천군님에게 피로감을 표현하거나 공격성을 표출하는 글은 있을 지언정 장동민이 잘못한건 맞다는 의견이 주류입니다. 따라서 이 시점 무한도전 관점에서는 , 또 장동민 관점에서는 장동민을 하차시키는게 이득이라고 판단할 여지는 충분합니다. 그런데 4.14 장동민의 하차소식이 PGR에 알려지자 1000플 짜리 글에서 왕천군님이 댓글 달기 전 대부분의 댓글이 장동민의 하차를 안타까워하기 시작하죠. 직접 확인해보시면 아시겠지만 시청율로 따지면 비교가 안되는 비율입니다. 이때부터 다른 PD들은 '장동민이 무한도전에 하차함으로써 이미지 반전'에 기대어 장동민의 NPV가 양의 값이라는걸 확인할 수 있게됩니다. 그 결과는 5.27 장동민의 첫 새로운 프로그램 '더지니어스4'에 출연 확정입니다. ] 제가 "온도차"란 표현에 동의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저는 저나 할머니님이 "이만하면 대중의 여론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는 공통의 지표를 사례로 들어서 반박하고 있습니다. 제가 만일 여초 사이트, 트위터, 메갈리아, 같은 사이트의 "우리네 집단"의 댓글을 취사선택했다면 그런 해석의 차이를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지표를 제시했습니다. 제가 링크를 한 사이트들은 "피지알"과 "오유"입니다. (더더욱 그 시점에서 여초사이트, 여시와는 어떤 의견이든 척을 지며 반대 여론을 형성하려고 했던 오유가 여시와 동일한 방향의 여론을 조성했다는 것은 이것이 일부 의견이 아니라는 점을 시사합니다.) 이것이 해단 여론이 발생하는 공론장의 평균 이용자 비율과 호/불호의 의견 비율의 수적 계량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이를 "여론" 혹은 "대중"이라고 볼 수 없다 - 라고 한다면 이는 필요 이상으로 엄격한 수치 요구가 됩니다. 우리가 대중이라 판단하는 것은 어떤 비율로 어느 정도 강도의 의견들이 몇퍼센트 나왔다, 라고 계량화를 통해야만 이를 사실로 인정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사회의 분위기를 읽어내는 데는 어떤 댓글들이 주류를 이루는가, 정도만 식별가능해도 충분히 판단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언론에서 "총 이용자 몇명의 사이트에서 몇퍼센트의 댓글들이 어떤 의견을 취했다" 같은 근거를 끌어대야만 해당 기사나 칼럼이 과연 "사회과학적 정합성"을 띄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지금 할머니님은 저에게 [' 대중은 불편했을 가능성이 상당하다.' 라고 말하시려면 장동민에게 호/불호를 표현한 사람들 중 불호가 몇%를 차지하는지 보여주시면 됩니다.] 라는 계량적 근거를 요구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자료가 "없음"을 근거로 모든 해석은 "추정"에 머무르고 "사실"로서 위치하지 못한다고 주장하고 계시죠. 이것은 좀.... 우리가 여론을 읽어내는 데 있어서 이런 수치가 늘 필요하지 않습니다. 가시적이고, 그것이 여러 부분에서 느껴진다면 이는 충분히 입증가능한 것이죠. [그러니까 이용자 몇만명의 사이트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장동민을 미워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통계자료를 보여달라는거 아닙니까.] 그렇다면, 할머니님은 앞서 주장했던 피지알의 댓글에서 이용자 수와 통계식으로 댓글을 저에게 제시하셨는지요. 그렇다면, [결국 몇몇 사람이 트위터에서 남양유업을 욕하더라도 그게 대중의 목소리라고 '추정'하는 사람도 있을것이고 '추정'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뿐입니다. 그걸 사실이라고 주장 해서는 안됩니다.] 이 주장은 결국 "남양유업을 욕하는 분위기는 일부일 수 있고, 그에 따른 설문조사나 특정 사이트의 이용자 분포도 및 댓글 현황의 통계적 분석이 없으니 당시 남양유업에 대한 대중의 불편함은 일부분, 한시적인 것이었다" 라는 주장도 가능합니다. 만약 객관적 지표가 대중의 불편함과 동치되지 않는 경우라면 이 논증은 더더욱 부술 수 없게 됩니다. 대중은 이제 엠씨몽을 좋아해, 용서했어 (저는 할머니님이 주장하시는 장동민에 대한 여론의 전환을 그대로 적용한 겁니다) 아냐, 대중은 여전히 엠씨몽을 불편해 한다고. 뭔 소리야? 지금 멜론 순위에서 1위먹고 있는데? 이건 충분히 객관적이잖아. 대중이 불편하면 이렇게 팔리겠냐고. 대중은 이제 마재윤을 좋아해, 용서했어. (막 BJ로 개업했을 때의 시점입니다) 아냐, 대중은 여전히 마재윤은 불편해한다고. 뭔 소리야? 지금 아프리카 방송 순위에서 탑 먹고 있는데? 이건 충분히 객관적이잖아. 대중이 불편하면 이렇게 팔리겠냐고. 마재윤의 사례로 봤을 때, 당시 시점에서 상대적으로 제일 객관적인 피지알, 그리고 다른 분위기의 포모스, 디씨 스갤, 나머지 커뮤니티에서도 마재윤에 대한 비난 여론이 다수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아프리카 방송 순위는 이와는 다르게 나옵니다. 그렇다면, 이것을 과연 극성 분자들의 일부 여론이라 보고, 이를 "대중"이 아니다 라고 볼 수 있냐는 거죠. 그래서 저는 "추정"을 "사실"로 만들 수 있는 근거로서의 "시청률"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 하지만 어떤 의견이 대중의 의견이라고 말하는데 있어서 일정한 수적 요건을 요구하는게 당연하다고 봅니다.]라고 하셨는데, 마재윤의 경우 그 수적 요건으로서 아프리카의 시청률은 왜 성립하지 못할까요? 객관적인 수치로서 존재하고 있는데요. "시청률"이 "모든 대중"의 의견을 고루 반영한다는 전제가 틀릴 수 있다는 겁니다. 더군다나 "시청률"은 "장동민이 호의적인 여론을 등에 입었다"는 사실도 증명해주지 못합니다. [ 우선 '나를 돌아봐' 의경우 당시 4회짜리 파일럿 프로였으며 4~5% 수준의 시청율을 유지했습니다.] [크라임씬의 경우 4.1 첫방송 0.6%를 시작으로 장동민의 사건과 별개로 4월동안 1.05%, 1.08% 1.45% 등을 기록하며 계속해서 상승합니다.] 전국민 중에서 4%가 봤다는 것이 어떻게 호의적인 여론을 대표할 수 있나요. 혹은 1%의 시청률이 어떻게 호의적인 여론을 대표할 수 있나요. [ 반면에 '선 장동민 컴백 - 후 여론의 변화 ' 라는 주장이 가능하려면 적어도 사건이 극대화 된 시점에 장동민이 출연 중인 작품의 시청율이 하락했어야 합니다. ] 할머니님의 주장을 다시 살펴봅시다. 이것은 "이 시점에서 시청률의 변화가 이렇게 일어났어야 한다" 라는 주장에 대한 근거이지, "대다수의 여론이 장동민에게 호의로 돌아섰다" 라는 근거가 아닙니다. 할머니님은 지금 "시청률의 변화" 로 "여론의 전환"에 대한 근거를 들고 계신 겁니다. " 시청률" 로 "대중 전체에서 장동민의 호의적인 여론비율" 을 말씀하고 계시는 게 아니라요. 다시 할머니님의 주장을 짚어드립니다. 장동민에 대한 여론이 그대로였다면 시청률은 이를 반영했을 것이다 장동민에 대한 시청률은 오히려 상승했다 (나를 돌아봐 의 시청률이 4% 나왔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군요. 거기에는 "장동민이 아니었다면 4%만큼 시청률이 나올 수 없었다 - 는 전제가 뒤따라야 합니다. 이 전제를 뒷받침해주는 요소를 설명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시청률을 근거로 했을 떄 장동민에 대한 여론은 호의적으로 바뀐 게 맞다 이 주장을 설령 참이라고 쳐도, 이 명제는 "장동민에 대한 여론의 대부분이 호의적이다" 라는 가설과는 무관합니다. 오히려 이 부분을 증명하기 위해서 할머니님은 피지알의 댓글 여론을 제시하고 계시죠. 다시 말씀드립니다. 저는 "트위터"만 참조해서 제 주장을 하는 게 아닙니다. [그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여론을 보여주는 지표로 비슷한 날짜의 오유 게시물을 보죠.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bestofbest&no=206936&s_no=206936&kind=search&search_table_name=bestofbest&page=1&keyfield=subject&keyword=%EC%9E%A5%EB%8F%99%EB%AF%BC 하물며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여시와 가장 큰 척을 지고 있는 오유도 해당 날짜에서는 장동민에 대한 비판이 대부분입니다. 트위터 여론은 뭐 달리 말 할 필요가 없을 듯 하구요. 그런고로 할머니님이 인용한 댓글은 오유나 트위터만큼 여론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볼 때, 그렇게 신뢰성 있는 표본이라고 할 수는 없죠. 저때만 해도 장동민은 전혀 용서받거나 이해받거나 지지받던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날짜의 피지알 게시물 또한 분위기가 그렇습니다. https://cdn.pgr21.com/pb/pb.php?id=freedom&no=58172&divpage=12&ss=on&sc=on&keyword=%EC%9E%A5%EB%8F%99%EB%AF%BC ] [트위터 같은 걸 근거로 사용하실거라면 그 근거가 제대로 된 근거인지 자료를 제시하라는거죠. 그걸 못한다면 감히 트위터의 몇몇 의견을 대중으로 둔갑시켜서는 안되겠죠 ] 이 부분은 제가 했던 이야기와는 명백하게 다르며, 또 계속해서 저를 "트위터리안"이라고 프레임을 뒤집어씌우는 발언입니다. 저는 이런 발언이 불쾌합니다. 제가 성심성의껏, 어조를 고치고 계속해서 "공통의 지표"를 사용해 의견을 펼치는데도 저를 편협한 사람으로 몰아가고 계시기 때문이죠. 이것은 수치나 증거의 문제가 아닙니다. 현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그 이해한 현상을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접근법에 대한 이야기죠. 추정이라 할 지라도, 사실에 한없이 근접하는 추정이 있는 겁니다. 이 추정을 "알 수 없음"의 상태로 같은 취급을 하는 건 우리가 어떤 사회현상을 바라볼 때 어떤 해석이나 판단도 할 수 없게 만들죠. 시청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저 역시도 할머니님의 접근법을 이용해서 무리한 요구를 할 수도 있습니다. 시청률이 몇 퍼센트가 나왔다는 게 장동민에 대한 전체 여론의 지표고 호감도를 나타낸다면, 그보다 시청률이 높게 나오는 프로그램은 어떻게 출연진에 대한 호감을 나타낼 수 있는지, 해당 프로그램(지니어스)가 원래 시청률은 어떠했으며 장동민의 안티가 시청자로 있었을 경우의 기대값은 어떻게 되는지, 어떤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어느 정도 나와야 그것이 전체 여론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는지, 이것저것 따져볼 변수는 엄청 많습니다. 이런 것들을 저에게 조사해서 가져다주실 수 있으신가요. 시청률로 여론을 대표하려는 것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JTBC 뉴스나인 이 시청률이 4.8%가 나오고 티비조선 뉴스쇼판 시청률이 3.8%가 나왔을 때도 왜 온오프라인을 통합한 여론에서 왜 소위 진보세력, 반 새누리당 세력의 승리를 확신할 수 없는지, 선거에서 참패를 걱정할 수 밖에 없는지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15/11/11 18:14
수적인 크기를 계량하는 데 있어서 맨 처음에 [ PGR만 해도 장동민이 무한도전을 하차한 이후 장동민에 대한 옹호글이 얼마나 많이 올라왔습니까? 엠팍이나 오유등 대형 사이트에서 장동민을 검색해보시면 아실 수 있을텐데요.] 라고 하신 이유는 무엇인지요.
-> 왕천군님이 '사실의 영역'이라 주장하시는 것에 반박하기 위해서는 한가지의 귀납적 사례로도 가능합니다. 귀납적 사례로 연역적인 결론을 도출할 수 없지만, 결론을 부정하는 것은 가능하죠. 전국민 중에서 4%가 봤다는 것이 어떻게 호의적인 여론을 대표할 수 있나요. 혹은 1%의 시청률이 어떻게 호의적인 여론을 대표할 수 있나요. -> 자꾸 논지 흐리지 마세요. 전 계속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시청율은 간접적인 추정치 자료일뿐이며 이로부터 여론의 호의적이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는 없다구요. 추정할 수 있을뿐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해석상의 문제라고 계속 주장하는거 아닙니까? 왜 자꾸 제가 호의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말장난 치시는지 이해하기 어렵네요. 우리가 대중이라 판단하는 것은 어떤 비율로 어느 정도 강도의 의견들이 몇퍼센트 나왔다, 라고 계량화를 통해야만 이를 사실로 인정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사회의 분위기를 읽어내는 데는 어떤 댓글들이 주류를 이루는가, 정도만 식별가능해도 충분히 판단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언론에서 "총 이용자 몇명의 사이트에서 몇퍼센트의 댓글들이 어떤 의견을 취했다" 같은 근거를 끌어대야만 해당 기사나 칼럼이 과연 "사회과학적 정합성"을 띄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 자꾸 마음대로 정의 내리지 마시구요. 사회과학적 정합성을 뛰려면 당연히 그래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글은 '현실적 문제'로 용인될 지언정 '사회과학적 정합성'을 갖춘글이 아닙니다. 물론 이정도 정합성을 요구하는게 부당하다고 느낄 수도 있으실겁니다. 저 역시 현실상의 문제로 왠만하면 정합성에 문제가 있는 글이라 하더라도 그냥 넘어가죠. 하지만 왕천군님은 정합성을 아주 중요시 여기시죠. 그러면 최소한 본인의 에티튜드에 맞는 수준의 근거를 제시 하시라는거에요. 지금 말씀하신 오유나 피지알 따위의 글타래는 아무런 증거가 못된다는게 제 주장입니다. 그거 백날 들고오셔봐야 그건 아무런 통계적인 가치가 없어요. 전체자료에서 댓글 통계 뽑으셔야죠. 그렇다고 하더라도 PGR이나 오유 같은 글은 그저 PGR회원 및 오유 회원의 성향을 보여주는 통계일뿐입니다. 통계에 대한 기본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아프리카 시청율은 아프리카 시청자들의 여론을 보여줄 뿐입니다. TV에 시청율은 TV를 시청하는 사람들의 여론을 보여주는 거구요. 그리고 PD들이 신경써야할 대중이 어디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시면 너무 당연한 건데, 왜 자꾸 아집을 피우시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한테 무리한 요구를 하실 수는 없습니다. 저는 '해석상 갈릴 수 있는 지점이라는'것을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 외에는 주장하는게 없습니다. 따라서 제가 연역적으로 무언가를 입증해야할 책임은 없습니다. 해석상으로 갈리는 지점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입증책임은 왕천군님에게 있습니다. 왕천군님은 제대로 입증하실 못하고 계시고 제 말에 반박만을 반복할 뿐입니다. 기다란 궤변 읽는 것도 지치니, 본인의 주장을 제대로 된 수치자료를 이용하여 증명해주시길 바랍니다. 지금 하시는 반박 다 수용해도 결국 해석상의 문제라는걸 확인하는 수준에 그칩니다.
15/11/11 18:14
수적인 크기를 계량하는 데 있어서 맨 처음에 [ PGR만 해도 장동민이 무한도전을 하차한 이후 장동민에 대한 옹호글이 얼마나 많이 올라왔습니까? 엠팍이나 오유등 대형 사이트에서 장동민을 검색해보시면 아실 수 있을텐데요.] 라고 하신 이유는 무엇인지요.
-> 왕천군님이 '사실의 영역'이라 주장하시는 것에 반박하기 위해서는 한가지의 귀납적 사례로도 가능합니다. 귀납적 사례로 연역적인 결론을 도출할 수 없지만, 결론을 부정하는 것은 가능하죠. 전국민 중에서 4%가 봤다는 것이 어떻게 호의적인 여론을 대표할 수 있나요. 혹은 1%의 시청률이 어떻게 호의적인 여론을 대표할 수 있나요. -> 자꾸 논지 흐리지 마세요. 전 계속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시청율은 간접적인 추정치 자료일뿐이며 이로부터 여론의 호의적이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는 없다구요. 추정할 수 있을뿐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해석상의 문제라고 계속 주장하는거 아닙니까? 왜 자꾸 제가 호의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말장난 치시는지 이해하기 어렵네요. 우리가 대중이라 판단하는 것은 어떤 비율로 어느 정도 강도의 의견들이 몇퍼센트 나왔다, 라고 계량화를 통해야만 이를 사실로 인정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사회의 분위기를 읽어내는 데는 어떤 댓글들이 주류를 이루는가, 정도만 식별가능해도 충분히 판단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언론에서 "총 이용자 몇명의 사이트에서 몇퍼센트의 댓글들이 어떤 의견을 취했다" 같은 근거를 끌어대야만 해당 기사나 칼럼이 과연 "사회과학적 정합성"을 띄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 자꾸 마음대로 정의 내리지 마시구요. 사회과학적 정합성을 뛰려면 당연히 그래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글은 '현실적 문제'로 용인될 지언정 '사회과학적 정합성'을 갖춘글이 아닙니다. 물론 이정도 정합성을 요구하는게 부당하다고 느낄 수도 있으실겁니다. 저 역시 현실상의 문제로 왠만하면 정합성에 문제가 있는 글이라 하더라도 그냥 넘어가죠. 하지만 왕천군님은 정합성을 아주 중요시 여기시죠. 그러면 최소한 본인의 에티튜드에 맞는 수준의 근거를 제시 하시라는거에요. 지금 말씀하신 오유나 피지알 따위의 글타래는 아무런 증거가 못된다는게 제 주장입니다. 그거 백날 들고오셔봐야 그건 아무런 통계적인 가치가 없어요. 전체자료에서 댓글 통계 뽑으셔야죠. 그렇다고 하더라도 PGR이나 오유 같은 글은 그저 PGR회원 및 오유 회원의 성향을 보여주는 통계일뿐입니다. 통계에 대한 기본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아프리카 시청율은 아프리카 시청자들의 여론을 보여줄 뿐입니다. TV에 시청율은 TV를 시청하는 사람들의 여론을 보여주는 거구요. 그리고 PD들이 신경써야할 대중이 어디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시면 너무 당연한 건데, 왜 자꾸 아집을 피우시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한테 무리한 요구를 하실 수는 없습니다. 저는 '해석상 갈릴 수 있는 지점이라는'것을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 외에는 주장하는게 없습니다. 따라서 제가 연역적으로 무언가를 입증해야할 책임은 없습니다. 해석상으로 갈리는 지점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입증책임은 왕천군님에게 있습니다. 왕천군님은 제대로 입증하실 못하고 계시고 제 말에 반박만을 반복할 뿐입니다. 기다란 궤변 읽는 것도 지치니, 본인의 주장을 제대로 된 수치자료를 이용하여 증명해주시길 바랍니다. 지금 하시는 반박 다 수용해도 결국 해석상의 문제라는걸 확인하는 수준에 그칩니다.
15/11/11 18:37
이게 제 마지막 댓글이 될 것 같군요.
1. 예의 이야기를 먼저 짚고 넘어가죠. 할머니님께서는 [먼저] 본인의 의견 표현을 "강경하다" 라고 하셨고 그렇기에 저도 제 의견을 "강경하다" 라고 한 겁니다. 공격적인 의도가 없었다면, 그저 "강경했을" 뿐이었다면, 서로가 "강경한 어조를 낮추자" 고 예의에서 합의점을 제시한 겁니다. 제가 언제 제 의견만 강경하다고 포장했나요? "포장"이라는 말 부터가 공격적인 겁니다. 2. 댓글 수정하는 거야 자유죠. 그런데 우리는 "토론"을 하고 있고 먼저 나온 상대방의 발언에 "맞춰서" 반박을 하는 겁니다. 자기가 이 전에 뱉은 말을 취소하고 바꾸는 건 상대방이 토론할 때 들이는 기본적인 노력을 죄다 허사로 만들어버리는 겁니다. A라서 B다~ A는 근거로 적합하지 않습니다 (수정 후) C라서 B다~ 이건 말바꾸기입니다. 3. [ PGR만 해도 장동민이 무한도전을 하차한 이후 장동민에 대한 옹호글이 얼마나 많이 올라왔습니까? 엠팍이나 오유등 대형 사이트에서 장동민을 검색해보시면 아실 수 있을텐데요.] 이 말은 할머니님의 주장을 따르면 귀납적 증거도 안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지금 말씀하신 오유나 피지알 따위의 글타래는 아무런 증거가 못된다는게 제 주장입니다. 그거 백날 들고오셔봐야 그건 아무런 통계적인 가치가 없어요. 전체자료에서 댓글 통계 뽑으셔야죠. 그렇다고 하더라도 PGR이나 오유 같은 글은 그저 PGR회원 및 오유 회원의 성향을 보여주는 통계일뿐입니다.] 라고 스스로 반박하고 계시니까요. 4. [저는 '해석상 갈릴 수 있는 지점이라는'것을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 외에는 주장하는게 없습니다.] [아니요. PGR만 해도 장동민이 무한도전을 하차한 이후 장동민에 대한 옹호글이 얼마나 많이 올라왔습니까? 엠팍이나 오유등 대형 사이트에서 장동민을 검색해보시면 아실 수 있을텐데요. 여전히 대중이 장동민에게 불쾌해 하고 있다면 장동민은 자숙중일 겁니다. 다만 대중은 불쾌해 하지 않는거죠.] 라고 반박하는 걸 우리는 해석의 차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해석의 차이가 있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그게 저희가 논쟁을 벌이는 핀포인트죠. 서로의 주장이 대립하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서로의 해석이 어떻게 틀릴 수 있는지를 지적하고 있는데 "이 외에는 주장하는 게 없다" 라는 말은 무의미합니다. 5. [아프리카 시청율은 아프리카 시청자들의 여론을 보여줄 뿐입니다. TV에 시청율은 TV를 시청하는 사람들의 여론을 보여주는 거구요.] 네 제가 하는 말이 바로 이겁니다. TV의 시청율은 TV를 시청하는 사람들의 여론을 보여줄 뿐입니다. 전국민 중에서 4%밖에 안보는 프로그램이 어떻게 과반수 이상의 "호의"로 해석되나요? 왜 아무 관계도 없는 통계 수치를 가지고 와서 "나는 통계 수치를 제시했다"라고 자꾸 객관성을 부여하려고 하십니까. TV의 시청률이 그렇게 유의미하다면 뉴스나인 시청률이 티비조선 뉴스의 시청률을 앞지르니까 이게 곧 투표결과로 이어지거나 여론 그대로 나와야 합니다. 6. [그렇지 않은 글은 '현실적 문제'로 용인될 지언정 '사회과학적 정합성'을 갖춘글이 아닙니다. ] 무슨 문장인지도 잘 모르겠네요. 아무튼, 본인부터 [PGR에 검색해보면 4.12일 글에는 장동민의 대한 옹호 여론이 있을 지언정 비난여론의 수가 절대 밀리지 않는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4.13일 왕천군님에 글에도 왕천군님에게 피로감을 표현하거나 공격성을 표출하는 글은 있을 지언정 장동민이 잘못한건 맞다는 의견이 주류입니다. 따라서 이 시점 무한도전 관점에서는 , 또 장동민 관점에서는 장동민을 하차시키는게 이득이라고 판단할 여지는 충분합니다. 그런데 4.14 장동민의 하차소식이 PGR에 알려지자 1000플 짜리 글에서 왕천군님이 댓글 달기 전 대부분의 댓글이 장동민의 하차를 안타까워하기 시작하죠. 직접 확인해보시면 아시겠지만 시청율로 따지면 비교가 안되는 비율입니다. 이때부터 다른 PD들은 '장동민이 무한도전에 하차함으로써 이미지 반전'에 기대어 장동민의 NPV가 양의 값이라는걸 확인할 수 있게됩니다. 그 결과는 5.27 장동민의 첫 새로운 프로그램 '더지니어스4'에 출연 확정입니다. ] 라는 글에 이용자 비율과 댓글 비율의 통계적 수치를 가지고와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어정쩡한 근거를 대서 네 주장을 반박할 수 있지만 너는 아주아주 면밀한 자료로 내 주장을 반박해야 해. 이게 뭔가요..................... 저는 이만 하겠습니다. 시간 아깝네요. 토론 도중 말 바꾸고, 상대방 열받게 하는 말은 쓰고 싶은 대로 계속 쓸 것이며, 자기 주장이 자기 주장으로 반박되는 모순을 인지하지 못하신다면 제가 뭐하러 이야기를 길게 끌까요? 댓글 안다셔도 됩니다.
15/11/11 18:57
사실 앞으로 대화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궤변을 늘어놓으면서도 본인의 논리에는 굉장히 관대한 이중잣대에는 납득하기 어렵군요. 엄밀성따위의 단어를 사용하기 이전에 본인 주장에 엄밀성을 먼저 고찰해보시길 바랍니다. 수고하세요.
15/11/11 18:06
부탁드립니다. 댓글 좀 안 고칠 수 없습니까? 어차피 시간제한으로 댓글 다는 것도 아니니까 퇴고하고 널널하게 쓰셔도 무방합니다.
~따위의 표현을 읽고 저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았고, 만약 그게 제 "강경한 "단어 사용에 맞받아친거라면 제 책임이 적지 않기에 어조를 서로 낮추고 대화하자는 부탁을 드린 겁니다. 예의를 갖춰서 대화합시다 - 라는 제안을 "강경하게 한거지 공격적으로 한 건 아니다" 라는 모호한 설명으로 넘기시고, ( 네 근거 따위는, 보잘 것 없는 네 근거는 같은 표현을 쓰시면서) 이를 제가 "프레이밍"한다고 여기시면 저는 한번 더 불쾌할 수 밖에 없습니다.
15/11/11 18:16
그러면 댓글을 빨리 다세요. 몇 시간이 지난 뒤에야 다는데 왕천군님이 읽었는지 안읽었는지 내가 모르는 상황에서 수정할 권한이 내게 없다는 겁니까? 이번에 내용을 수정한 것도 아닙니다. 댓글을 추가한 것 뿐이죠.
예의를 갖춰서 대화하자는게 아니죠. 본인의 말은 강경으로 포장하시면서 저에게는 공격이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부정적인 서술을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공평하게 합시다. 공평하게
15/11/09 00:27
일단 본문이 대신하는 화자들이란 저 같은 사람들일 것입니다. 악플러나, 음원 폐기 요청 이런 건 그냥 논외로 치는 거죠. 따지고 말 것도 없이 아웃입니다. 진중권씨나 허지웅씨가 모든 대중을 논외의 사람들과 동치시키고, 그에 대한 반응을 보이는 게 그래서 좀 오바스러운 거지요. 아이유의 사과도 그런 대상으로 모든 비판을 다 퉁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서 반감이 드는 거구요.
"왜 악플러 이야기를 하고 있어 새삼스럽게...?? 아이유가 아동성애자가 아닌 걸 알면서도 제제가 구리다고 하는 사람들이랑 이야기를 해야지? 악플 아닌 비판에 똑바로 말을 해보라고." 이런 논점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피지알 내의 대표 여론을 그렇게 보지는 않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가장 합리적인 비판점을 보여주신 분들이 몇분 계신데 그 분들의 관점은 전부 "아이유가 소아성애자다" 도 아니었고 "이 곡은 다섯살짜리 아동을 대상으로 한 패러디여서 안된다" 라고도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소아성애는 아니겠지만, 그렇게 읽히게끔 의도한 부분에 사람들이 반감을 갖는 건 당연하지 않겠느냐" 라고 작가의 의도가 세련되게 표현되지 못한 부분을 이야기하는 거죠. 그래서 표현의 자유 VS 아동의 보호 가 아니라 표현의 자유 VS 대중의 불쾌함으로 본문은 논지를 전개시키는 거구요. 본문의 저 문장은 저도 정밀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표현의 자유는 윤리와 엮여있을 수 있다" 정도로 고치고 싶네요. 자유는 불쾌함 위에 군림할 수는 있습니다.
15/11/09 00:58
[ "소아성애는 아니겠지만, 그렇게 읽히게끔 의도한 부분에 사람들이 반감을 갖는 건 당연하지 않겠느냐" 라고 작가의 의도가 세련되게 표현되지 못한 부분을 이야기]는 표현의 자유의 쟁점이 아닌건 명확하죠. 만약에 PGR에서 그런 분들을 향해 표현의 자유를 통해 반박한 경우가 있었나요? 그렇다면 본 글을 이해하는데 조금 더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윗 글은 '다섯 살 짜리 아동을 대상으로 한 패러디여서는 안된다'라는 주장에 대하여 표현의 자유의 쟁점으로 이야기를 한 사람들 마저도 퉁치는 경향이 있죠.
15/11/09 01:15
그 또한 표현의 자유라는 쟁점입니다. 나는 적극적 동조도 반대도 하진 않겠지만 반대하는 사람들의 입장이 수긍이 가고,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다 함께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라고 쟁점을 다루고 있으니까요. 소아성애가 아닌 건 알지만, 소아성애 이미지를 파는 건 맞지 않느냐, 대중들이 그렇게 해석하는 건 자연스럽지 않느냐, 이런 논점을 펼쳤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것은 두 가치관을 함께 가져가며 "해석"하는 일이라서 표현의 자유로 반박하는 건 너무 단순하게 이야기를 하는 거죠. 그런 반문을 한다면 "표현의 자유인건 알아, 그런데 대중들이 이를 표현의 자유로 놓지 않으려는 부분도 일리가 있지 않냐고," 라고 대답을 하셨던 것 같습니다.
본문은 "대중을 무지한 자로 바라보는 시선"을 비판하고 있지 표현의 자유를 들어 비판하는 사람 전체를 공격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공교롭게도 대중 격하와 표현의 자유를 함께 가져가는 사람들이 많긴 했지만요.
15/11/09 01:25
아 여러개의 답변을 하다보니 문장이 꼬였습니다. 해당 주장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고 반박하는게 타당하지 않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해당 주장은 아이유의 표현권을 문제삼지 않고있으며, 세련된 미감의 부재를 지적하고 있으니까요. 거기다 대고 표현의 자유를 주장해봐야 그건 정확한 반박이 아니라고 보구요. 반박하고 싶다면 아이유가 얼마나 세련되게 표현했는지를 이야기해야겠죠.
왕천군님 말씀대로 본문이 '대중을 무지한 자로 바라보는 시선'을 비판하고 있다고 해석하기 위해서는 [일부 아이유를 대변하는 글을 보면 - ] 으로 시작하는 문단은 불필요 합니다. 해당 문단은 '대중을 무지한 자로 바라보는 자'들이 '표현의 자유'를 무기로 삼는 행태를 비난 한 것이라 보기 어렵죠. 일부 '표현의 자유'를 기치로 하여 아이유를 공격하는 사람들을 이야기 하고 있으며, 그 근거로 '자유는 절대적으로 대중의 불쾌함 아래에 있다' 라며 대중가요에 표현의 자유를 적용하는 부당함을 이야기하고 있잖아요?
15/11/09 11:42
그 부분 역시 표현의 자유에 들어간다고 봅니다. 세련되게 못했다 - 라는 비판은 단순히 촌스럽다 구리다 이런 게 아니라 "표현의 자유 쟁점이 불거지게끔 감상자들이 틱틱 걸리게 표현을 했느냐, 이런 부분을 잡음 없이 매끄럽게 넘어갈 수 있게끔 했어야 세련된 표현일텐데" 라는 뜻이죠. 이를테면 어떤 가수가 시스루 상의를 착용하고 나왔을 때 논란이 크게 일었다면 옷 자체의 패셔너블함과는 상관없이 "옷 고르는 방식이나 입는 TPO가 세련되지 못했다" 라고 비판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미감의 부재가 아니라 윤리적 논쟁을 피하면서 넘어가는 예술적 표현방식의 세련됨을 뜻한다고 읽으시면 되겠습니다.
위에서 시드니 콜맨님과의 대화를 참조하고, 또 본문을 읽을 때도 제가 느낀 건데 분명 해당 문단 "일부 아이유를 대변하는 글을 보면 -" 이 부분은 당위와 현상이 섞여있습니다. 표현의 자유 VS 대중의 호불호 라는 가치관 대결은 당위이고 상업 표현의 자유(이 부분에서 살짝 글이 이상하긴 해요) VS 대중의 호불호는 [비즈니스의 생태계 논리] 이지 이게 그래야 한다 를 담보해주진 않거든요. [일부 '표현의 자유'를 기치로 하여 아이유를 공격하는 사람들을 이야기 하고 있으며] - 이 부분은 해석을 잘못하신듯 합니다. 해당 문단은 표현의 자유를 기치로 해서 아이유를 "변호"하는 사람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대중가요에 표현의 자유를 적용할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구요.
15/11/08 23:45
제일 어이없었던 쉴드들
1. 와 아이유 정도 돼니까 이런걸로 까이네. 진짜 아티스트 다됀듯. 2. 아니 이렇게 될줄 몰랐음? "소속사님들?" 소속사가 아이유 안티?? 앨범에 프로듀싱에 작사 작곡은 다하지만, 자기 음악에 보여준 책임감과, 팬들이 그 음악의 논란거리들을 소속사의 과로 돌리는 모습을 보고, 역시 아이유는 멀었구나, 아직은 발에 채이는 그저그런 아이돌들과 크게 다를바가 없구나 느꼈습니다. 마왕이 살아계셨다면 뭐라고 하셨을지... 이효리, 씨엔블루에게 아티스트란 무엇인지 참교육해주셨던 그 모습이 이번 사태내내 떠올랐습니다.
15/11/09 00:16
1번 레알요 크...
피지알 내 비판여론 정도면 제법 점잖은 편 같은데...그렇다고 여기서 아이유가 이유없이 까인적도 없고요. 그동안 아이유 다른데서 말도 안되는거로 욕먹을때도 피지알에선 호평일색이었고.
15/11/09 00:45
저는 PGR 눈팅러이고 댓글도 얼마만에 다는지 모르겠지만 밑에 아이유 관련글만 봐도 다수의 분들이 그러셨던걸로 기억 합니다. 일일이 세드릴수 없지만 분명히 있었던걸로 기억하네요
15/11/09 00:51
1,2 쉴드 많이 봤는데 진짜 어이 없더군요. 그냥 극성 아이돌팬 그 자체더라고요. 아이유가 대가의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었는데 헛된 생각임을 깨달았습니다.
15/11/08 23:46
실제로 그런건지 우연인건지 컨셉에 대한 이야기는 무시하고, 이번에 이 사건이 커지게 된건 사실 허지웅과 진중권의 참전이 아닐런지...
물론 타이틀곡이 맞춰보라며 도발적인 느낌이 있다며 강변할 수 있으나, 아이돌들이 이런저런 컨셉으로 어그로 끄는건 하루 이틀도 아닌지라... 실제로도 출판사의 트윗이후에 여론이 반전될 기미가 있었다고 보였는데.. 그 시점에서 어그로로 따지면 최고의 타선이 연이어 라지에이터를 터트리니..
15/11/09 00:04
재밌어요. 누군가에겐 과도한 비판이, 누군가에겐 과도한 쉴드만 눈에 띄는걸 보면 역시 사람은 보고싶은대로 보는가봅니다.
저는 기폭제가 사과문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지금의 사과문이자 해명글이 없었다고 사태가 진정되었을거라 보지도 않고요. 불쾌함에 대한 사과는 당연히 중요합니다만 그게 자신의 의도와 전혀 상관없는 짜집기와 왜곡에 대해서도 무조건 고개숙이고 들어가란 뜻은 아닙니다. 가령 알리에게 강간당한 희생자를 돈벌이로 이용했다는 비판은 합당하고 받아들여야 하지만, 강간을 미화했다거나 부추긴다 나아가 강간당하길 즐기는 변태성욕자라는 딱지까지 불이려고 한다면 전 당연히 반박하고 변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유의 해석이 공감받지 못했다면 그만큼만 비판받으면 됩니다. 그정도의 비판도 인정못하겠다는 쉴드가 문제라면 그 이상을 넘어서는 비판도 문제입니다. 그리고 만약 둘 다 문제라면, 저는 누군가를 절벽으로 몰아가는 과도한 비판보다는 차라리 과도한 쉴드가 나은거 같습니다. 참, 그리고 어차피 제 글이나 본문이나 pgr에서는 효용이 없는것 같습니다. 최소한 여기서는 선을 넘어서는 비판이나 쉴드는 거의 없어보이니까요. 여기 분들이 다른데가서 어떤 글들을 쓰실지는 모르겠지만요.
15/11/09 00:25
+1
비판은 비판에 그쳐야 하는데, 비판이 비난이 되고, 비난이 협박이 되는 상황까지 와버렸죠. 물론 PGR이야 대단히 이성적인 커뮤니티라고 보지만, 여타 커뮤니티는 정말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하고 있죠.
15/11/09 00:40
과도한 실드가 문제라면 과도한 비판도 문제고, 과도한 비판보단 과도한 실드가 차라리 낫다..?
본문은 일단 과도한 실드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과도한 실드는 과도한 비판에 따라 발생하였으므로 따로 떼어놓고 말할 수 없다'를 말씀하실 게 아니라면(이도 일리가 있는 말이긴 하겠으나) 초점이 잘 맞아 보이지는 않네요.
15/11/09 02:10
1. 사과문 하나로 전세가 역전되진 않지만 여론이 확 가라앉는 경우는 종종 있습니다. PGR 유저라면 다들 알수밖에 없는 나니와의 사과문이 대표적인 케이스며, 사회로 범위를 확장했을땐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메르스 사태 당시 사과문이 그렇습니다.
2. 사과문이 기폭제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아이유의 행동을 타임트리 형식으로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이유는 이번 앨범의 총괄 프로듀서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반적인 피드백을 해야할 이유가 있습니다. '제제' 사건이 터진 후 아이유는 사과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페이스북에 입장을 밝힙니다. 곧이어 아이유의 소속사인 로엔트리 역시 입장을 밝힙니다. 문제는 둘 사이의 입장이 대립한다는 점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아이유는 사과를 했다기 보단 해명문을 썼으며, 로엔트리는 아티스트는 그럴 의도가 없었으나 곡해하는 대중이 문제라는 식으로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같은날 열린 아이유의 팬미팅 행사에선 여전히 문제가 되었던 앨범의 표지가 걸려 있었습니다. 이런 사건의 흐름을 보았을때 하나의 결론을 내릴 수 있는데, '유감' 정도는 표하지만 그렇다 하여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감히 장담하건데 아이유 측이 해명문을 나니와 급으로 잘 썼다면, 그리고 소속사인 로엔트리와의 입장을 통일 했다면 지금정도의 후폭풍은 없었을 겁니다. 아이유가 잘못한 만큼만 비판받으면 된다 하셨는데, 아이유는 그 잘못된 행동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진행중이죠.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비난도 이어지는 겁니다. 무엇이 바뀌었죠? 아직도 음원은 판매중이며, 뮤직비디오는 공개되어있고, 제제의 그림은 바뀌지 않은채 공식행사를 진행중입니다.
15/11/09 03:12
일단 상황이 다른데 같은 사과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인거 같습니다.
위의 경우에는 잘못의 범주가 명확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죠. 아이유는 대체 어느 지점에 대해 사과했어야 했을까요. 모릅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사과문은 어떤 내용과 수준이었을까요. 모릅니다. 왜냐하면 범위가 너무 넓거든요. 누군가는 '다른 해석의 여지를 주는 구린 해석과 표현'에 대해서 사과를 원하고 누군가는 '다섯 살 아이를 성적대상으로 삼은 비도덕적 행동'에 대해 사과하길 원합니다. 누군가는 나아가 '지금까지 로리타컨셉을 사용하며 소아성애를 조장한 것'에 대해 사과하길 원하겠죠. 아시다시피 이들은 모두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그래서 사과문의 해명은 합당합니다. 내용이 합당하다는 것이 아니라, 해명을 할 만한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는 겁니다. 사과의 범위를 명확히 해야 하거든요. 어느 부분은 아니고, 어느 부분은 잘못했다는 걸 정확히 말해줘야 합니다. 그게 아니라 그냥 죄송합니다만 들어있는 사과문이라면, 오히려 가치가 없습니다. 공감을 못 얻는 무리한 해석을 해서 미안한 건지, 소아성애를 부추겨서 미안한 건지 당최 알 수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아이유는 사과의 범위를 명확히 했고 의도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자신의 구린 해석과 표현에 대해 사과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본문의 비판에 대한 사과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사람들의 분노는 그치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이미 논란의 핵심은 '표현의 자유의 범위'가 아니라, 5살 아이를 성적대상으로 삼은 아이유의 '비도덕성'으로 옮겨갔거든요. 비도덕성을 증명하기 위해 다른 노래 뮤직비디오의 소품 하나부터 예전 앨범의 자켓 까지 찾아 붙이고 있고요. 제가 합리적 비판과 과도한 비판을 나누는 지점은 여깁니다. 그리고 여기에 대해선 사과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요. 가령 '제제'도 아닌 '스물셋' 뮤직비디오에서 옷에 우유가 튀었다고 사과할 이유는 전혀 없다는 겁니다. 나아가 음원과 뮤직비디오를 내리고, 앨범 자켓을 바꿀만한 일도 아니고요. 정리하면, 해명문을 나니와 급으로 잘쓰기 힘든 사안이었을뿐더러, 자신의 의도와 전혀 상관없는 비도덕성에 대해 사과를 할 이유도 없습니다. 표현의 미숙함에 대해서만 사과하고 해명하면 되는 거죠.
15/11/09 10:10
이런글을 보니 그냥 쉴더분들이나. 아이유팬분들이나 소통할 맘 자체가 없었네요.
표현의 자유란 말은 비판하는 쪽보다는 옹호하는분들이 더 많이 하셨습니다. '어떻게 표현하든 아티스트의 표현에 자유다'를 만능방패로 삼고 모든 논란을 잠재우려하니까 표현의 자유의 범위로 논란이 난거 아니었습니까? 비판하는 쪽들이 듣고싶었던건 우연으로 지나치기 힘든 몇몇 클리셰의 세부디테일에 대한 해명이었고, 세부 디테일에대한 해명은 어느 누구하나 하지 않고, 오로지 아티스트의 표현의 자유만 앵무새처럼 되내었죠. 고작 해명으로 내놓은 것들은 제제가 아니고 제제의 성질이 섹시하다느니, 제제가 아니고 제3의 제제를 모티프로 따왔다느니(그런데 이름은 그대로), 하는 것들 이었습니다. 저 말이 저는 아직도 이해가 안돼네요. 다른 클리셰들도 '우유가 그렇게 튄것은 확대해서만 발견할수 있는 우연같은 일이다' 같이 조목조목 비판을 하면됩니다. 근데 그게 안돼잖습니까. 의도 하지 않았으나 그것에대해 해명할수 없는 상황이면 부주의 했던겁니다. 그 부주의에 대한 사과대신 '뮤지션의 욕심'으로 그것을 변명하는 순간 아이유는 뮤지션으로서의 책임감은 팽개친겁니다. 대중은 그것에 분노하는거구요.
15/11/09 11:36
그 세부 디테일에 대한 해명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겁니다.
가령 "우유가 그렇게 튄 것은 확대해서만 발견할 수 있는 우연같은 일이다."라고 비판하면 그 다음은요? 하트모양의 안경을, 젤리빈과 초콜릿에 대해 해명하면 그 다음은요? 하나하나 해명하고 나면 결국 남은건 "이렇게 다 해명했는데 xx에 대해선 말 안하는거보니 역시 의도했던게 맞구만."이지 않겠습니까. 그동안 수많은 사례에서 봐왔듯이요. 실제로 뮤직비디오 감독이(애초에 뮤직비도의 세부적인 내용을 가수가 일일이 나와서 해명하는 것도 웃기지요.) 말씀하신 세부 디테일에 대해 조목조목 얘기해줬죠. 그럼 논란이 잠잠해졌을까요? 아니요. 해명을 하니 거기 나온 내용 하나하나에 대해 또 의혹이 나오고, 그래서 콘티를 공개하니 또 거기서 어떻게든 의혹을 만들어내던데요. 뮤직비디오 감독의 글을 실은 기사엔, 여전히 뮤직비디오 감독이 거짓말하고 있다는 말이 베스트 댓글로 올라있습니다. 그리고 제제가 아니고 제제의 성질이 섹시하다, 제제를 모티프로 따왔다는게 왜 해명이 되지 않는지 모르겠네요. 저는 이해가 잘되어서요. 뭐 이해가 가고 안가고야 사람따라 다르겠지만, 본인이 실제로 저렇게 생각하고 만든거라면, 대체 뭐라고 해명해야 한답니까. "본인이 원래 의도가 이거였는데 잘못 전달됐다. 죄송하다." 이상의 어떤 사과가 필요할까요. 그리고 표현의 자유는 쉴더들이 만능방패로 삼기위해 갖다댄 것이 아니라, 이런류의 논란에선 당연히 쟁점이 되는 겁니다. 당연히 옹호측은 표현의 자유를 내세울거고 반대측은 그에 앞서는 대중들의 보편적 정서를 앞세우겠죠. 이런 논쟁은 당연할뿐더러 가치있죠. 문제는 지금 사태의 쟁점이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는 겁니다. 아이유의 비도덕성이요. 그걸 증명하기 위해 여기저기서 짜집기해 갖다붙이고 있고요. '부주의'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요. 예 맞습니다. 그리고 아이유는 그걸 했죠. 하지만 사람들의 요구는 그걸 넘어서는거 같네요. 아이유의 표현의 자유만큼 비판하는 사람들의 표현의 자유도 중요합니다. 그건 당연히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 자유라는 것이 상대의 도덕성을 검증하는 지금의 형태로 발현되는것에는 반대합니다.
15/11/09 11:14
해명할 이유가 없었는데 해명문을 썼다는거 자체가 진정성이 없는 행위죠. 진짜 해명할 이유가 없었다면 왜 대중의 반응이 오버이고 오해인지 하나하나 설명을 했어야 맞는거 아닌가요? 근데 아니었죠. 대중이 더 화난 이유가 그겁니다. 이걸 모른다면 영원히 남탓만 하다가 고립되는거고요
15/11/09 14:05
해명이 필요한 부분에 대한 해명은 없었죠. 앞선 인터뷰와는 상충되는 제3의 제제 라는 이상한 표현을 해가면서 회피하려 했을뿐.
차라리 내가 아티스트 병에 걸려서 오바했던것 같다. 사과한다. 라고 했다면 사건은 일단락 되었을겁니다.
15/11/09 12:03
'대중의 반응이 오버이고 오해인지 하나하나 설명을 했어야' 한다구요? 진심은 아니시죠? 그랬다간 어떻게 될지 모르시진 않을 것 같은데요..
15/11/09 14:03
그게 싫어서 가식을 떨었다면 끝까지 떨었어야죠. 해명문을 써놓았는데 소속사의 입장은 '곡해한 대중의 잘못이다'였고, 같은날 열린 팬미팅에선 여전히 망사스타킹을 신은 제제가 아이유의 뒤에 그려져 있었습니다. 이도저도 아니잖아요? 아이유가 사과했는데 그걸로 된거 아니냐 라고 하시는 분이 있는데 도대체 그 이후에 뭐가 달라졌냐 묻는겁니다.
15/11/09 03:20
마샬이 마샬에게는 좀 이상한 기분인데 어쨌건.....
저는 아이유가 '죄'를 지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제제 논란 한정. 무단 샘플링이나 이런 것 들은 문제겠죠. 어떻게 매듭이 지어질지는 모르겠지만) 다만 그 창작물을 소비하는 대중들이 공감하지 못한다면 대중들 또한 비판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고요 피지알에서는 그런 비판아닌 비난이 거의 없었으니 피지알에서 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수록곡 삭제나 왜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를 그렇게 해석하느냐 정정해라 라고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아이유를 비판하든 보이콧을 하든 불매운동을 하든 소아성애자 낙인을 찍건 뭘 하든 그런 범위내의 활동은 당연한거고 아이유도 자신의 입장을 철회할 생각이 없다면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일 뿐인거죠 누가 잘못해서 사과를 할 것은 아닌거죠. 오히려 아이유가 사과를 해야할 대상은 비판하는 사람들이 아닌 본인의 팬들일겁니다. 그리고 이런 류의 논쟁을 볼때 항상 느끼는건 1. 비난파 2. 비판파 3. NO 비난파 4. NO 비판파 가 있다고 하면 2는 4를 까고 3은 1을 까는데 피지알에서는 2,3이 논쟁을 벌이는 경우가 많아요(물론 2가 1,4를 다 까고 3도 1,4를 다 까는 경우도 있으나 이런 경우는 논쟁까지 가는 경우가 별로 없죠. 조금 다른 입장차이만 확인하고 끝나는 경우) 뭐가 쟁점인지 명확하게 정해놓고 논쟁을 해야하는데 대충 옹호와 반대로 나뉘어 버리니까요.
15/11/09 03:30
왜냐하면, 피지알에는 1과 4가 거의 없어서지 않을까요.
논리와 합리성이 우선 가치인 이곳에선 1,4 같은 극단적인 입장에 서기는 힘들죠 아무래도. '잘못한 일은 맞지만 지나친 비난 아니냐'와 '아주 큰 잘못은 아니지만 비판받을만한 일이다' 거의 둘 중 하나죠.
15/11/09 03:55
딱히 잘못도 아니고 비판이라는 단어도 좀 오버 같은데 아이유 꼬라지가 되게 우습고 비웃음 살만은 하다... 는 분 없을까요 킄
소설 죄와벌의 어떤 역자평에서 '라스콜리니코프가 두려워 했던 말은 <넌 나쁜 놈이야>가 아니라 <넌 웃긴 놈이야 킄>이었다' 라는 문구에 크게 공감했던 적이 있는데 만약 제가 아이유의 입장이라면 딱 그런 심정일거 같습니다.
15/11/09 03:04
저는 아이유를 애초에 셀레브리티로 보고 뮤지션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예술의 표현의 자유를 가져다 대는걸 거부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보기엔 (만약 아이유의 의도가 그게 맞다면) 장동민 장애인 비하나 비버의 인종차별 발언이나 별차이 없어보입니다.
근데 그렇다고 수록곡 삭제요청까지 하는것은 또 많이 나간것 같네요. 애초에 그부분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그냥 자유 문제입니다. 내 앨범에 내가 원하는거 넣는건 자유에요. 그로부터 논란이 일면 그부분에 대해서만 대중과 밀당하면서 상업성과 예술의 경계를 찾으면 되는거지 아이유가 죽을죄를 지은건 아니니까요.
15/11/09 09:38
저도 아이유를 그닥 뮤지션으로 보고 있지는 않는 입장이지만
아이유를 "비난" 하는 쪽 얘기들 중에서 가장 어이없는 것이 이것입니다. 아이유는 예술가가 아니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를 갖을 수 없다구요? 대체 어디서부터 예술가라는 건가요? 예술가라는 기준이란게 있나요? 그리고 지금 비난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를 가지신 분들은 뭐 대단한 예술활동 하시나봐요?
15/11/09 12:25
정확히 말하면 순수예술로서의 표현의 자유죠. 우리가 예술의 전당가서 현대무용 공연을 볼때, 김기덕, 박찬욱영화을 볼때, 그리고 대중예술로을 볼때의 표현의 자유가 같지 않은거죠. 확실히 순수예술쪽으로 갈수록 표현에 대해 좀더 관대해지고 상업성이 커질수록 더 빡빡해지죠.
장동민 장애인/여성 비하 논란때도 오락으로서 표현의 자유를 가져다 댈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나갔다고 사람들은 생각하죠. 반대로 예를 들면, 오무라이스 잼잼등을 그린 조경규 작가 개인전시전을 가면 내장쯤 나온것 아무 문제없이 찾아볼수 있습니다. 그래도 별 문제 없는건, 사람들이 그 작품을 상업적이라기보다 순수예술작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저는 아이유의 해석도 개인적으로 사람들 모아서 소극장 콘서트에서 들려줬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상업성 탈을 쓰고 세상에 공개된다면, 표현을 틀에 맞추던지 아니면 비난받을수 밖에 없겠죠. 이건 뭐 도덕이나 이데올로기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기능이에요.
15/11/09 03:26
제제 논란은 작품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상당히 잘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실패한 부분은 본인이 인터뷰를 통해 굳이 해석을 달아버린 부분입니다. 그 인터뷰가 없었다면, 가사의 밍기뉴는 상처받은 제제의 장난에 힘들어하면서도 보듬어주고 싶은 '엄마'같은 존재로 해석이 될 수 있었습니다. 특히나 제가 좋아하는 "못써"라는 부분에서 저는 밍기뉴의 엄마같은 모습을 떠올렸거든요. 인터뷰가 나오기 전까지 그 누구도 가사를 문제삼지 않았던 것을 감안해보면 참 아쉬운 부분입니다.
15/11/09 03:57
이미지 소비랑 말실수 줄이기 위해 인터뷰도 최대한 자제하는데 하필 그 단어가...현장에서도 아무 무리 없이 넘어가는 발언이 도화선이 될 줄은 누가 알았을까요
15/11/09 03:55
옳음이 좋음에 우선한다는 입장에서 본다면 100번 양보하여 반대측에서 제시하는 모든 것을 받아들여서 아이유의 제제가 설사 소아성애적 표현에 들어간다고한들 그렇게 큰 문제는 안되겠죠. 제제는 어짜피 가상의 캐릭터이고 그로인해 발생될 권리침해란게 존재하지않으니까요. 결국 남는 문제는 해당 표현의 good과 bad간의 경계문제지 옳고 그름은 여기서 멀어지죠.
진중권이나 허지웅은 아마도 여기에 가까운 입장일테고 반면에 모든 사안에 대해서 옳음이 꼭 좋음에 우선할 수는 없다는 입장에서 본다면 표현의 자유가 아무리 중요한 권리라고 해도 사회통념상 다수의 대중들에게 받아들이기 힘든 표현은 제재되어야할 것이고 따라서 본문과 같이 대중의 불쾌함과 표현의 자유의 저울질이 가능하리라 봅니다. 결국 입장의 차이인데 아마도 이 부분에서의 타협은 힘들지 않을까 싶네요.
15/11/09 06:11
개인적으로 자유 위에 윤리(본문의 불쾌감?)가 있다는 말에 동의합니다. 나아가 윤리에도 종류가 있는데 허구의 인물이 받는 상처와 현실의 인물이 받는 상처를 비교했을 때 당연히 현실의 인물이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아이유를 향한 비판 혹은 비난에는 이미 도가 지나친 부분이 분명히 있고 이 도가 지나친 부분 만큼은 허구의 인물이 받는 상처 보다 훨씬 무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5/11/09 06:56
진중권씨의 발언이 재미있더군요.
내 자유위에 왜 니 윤리있냐고 일갈하시던데 일베애들 자유위에 왜 다수의 윤리가 있어서 중권씨가 그리도 일베를 비판하셨는지 모르겠더라구요. 진중권씨는 하도 말을 많이하셔서 축적된게 많아서 그런지 점점 모순되는 경우가 생기는 듯합니다.
15/11/09 08:19
진중권의 평소 언행에는 동의하기 힘든 부분이 많지만,
윤리의 기준이라는게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내 자유위에 왜 니 윤리있냐'라는 말 자체는 틀린 말이 아니라고 봅니다. 동성애자들의 자유를 동성애 혐오론자들이 '내 윤리'로 탄압하면 안되잖아요.
15/11/09 08:28
똑같은 논리입니다.
일베가 일베 내에서 뭔 짓을 하건 메갈이 메갈 내에서 뭔짓을 하건 그건 해당 커뮤니티 내의 일이고, 불법이 아닌 이상 제제할 이유는 없죠. TV나 여타 커뮤니티까지 와서 '내 자유 위에 니 윤리'를 들이미니 일베나 메갈이 아닌 분들이 불쾌감을 느끼는 거죠. 쓰레기가 쓰레기통 안에 얌전히 있어주면 괜찮은데 이게 넘쳐 흘러서 주변을 더렵히니 문제인 겁니다. 물론, 이건 윤리에 한해서이고, 명예훼손 등 불법을 저질렀다면 그건 법대로 처분해야죠.
15/11/09 09:53
진선생의 이번 얘기는 얼핏 봐서는 그냥 싸우기 위한 헛소리일뿐이죠. '자유위에 윤리 있는데요?' 라는 친구의 말이 옳고 그름을 떠나 저 친구 얘기는 [보편적 자유위에 보편적 윤리]가 있단 얘기지 [진중권씨 자유위에 본인 윤리]가 있다는 얘기가 아니죠. 그냥 싸우기 위한 논점 호도에 가까운데 의도 자체야 '이번 제제 사건에서 비판파들의 윤리가 보편적 윤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라는 의도로 한 얘기겠지만 지금 어느 커뮤니티를 가도 그렇게 해석해주는 사람이 한명도 없는데 망한 발언이죠,.
15/11/09 10:15
그리 생각합니다.
어차피 말을 아주 아주 많이하면 모순이 쌓이고 쌓여서 답 없는 상태가 되는데... 김성근 감독처럼... 진중권씨도 그런단계가 되고 말았지요.
15/11/09 09:05
대중을 상대로 장사하는 대중 예술가의 작품을
대중들이 평가하는 것인데, 왜 그걸 자꾸 뭐라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이유는 아이유 갈 길 가면 되는거고, 대중들은 대중들 갈 길 가면 되는거죠.
15/11/09 09:25
그러니까요. 그런노래 만들었으면 만들고 혼자들으면 될걸 왜 들으라고 발표회까지하고 해석까지 늘어놨는지 모를일이네요. 그죠?
15/11/09 09:21
결국은 아이유가 대중들이 이해 할 만큼 완성도 있게 만들었으면 이런 일도안 일어났을 것같습니다 박찬욱이나 김기덕 감독 같은 감독들도 이런 논란이 있긴 했지만 결국은 영화의 완성도가 모든 걸 말해줬으니까요! 아이유가 이번 일을 계기로 아티스트가 되어야겠단 강박을 버리고 자신이 잘하는 걸 했으면 좋겠습니다
15/11/09 09:39
그냥 비판을 하는 정도라면... 사실 사과문에 해명 조금 같이 들어갔다고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이유도 없겠지요.
아이유의 연예인 생활에는 분명히 아무 변명도 없는 깔끔한 사과문이 제일 도움이 되겠습니다만... 우리가 아이유 연예인 생활 걱정해주는것도 아니니까요.
15/11/09 10:04
마치 수능시험 같네요. 어떤 작품을 보여주며 "화자의 의도는 무엇인가??"
묻는 시험 말이에요. 그 작품을 쓴사람, 읽는 사람의 상황에 따라 바뀔 수도 있는건데.. 이게 정답이니, 모두 이렇게 해석해야 된다 라는걸 강요한다고 할까요?? 현재 상황이 그렇게 느껴집니다.
15/11/09 10:12
화자의 의도는 무엇인가 하는 수능 문제가 마치 그릇된 문학 교육의 대표처럼 인용되는것 같은데, 개인의 감상이야 읽는 사람에 따라 바뀔 수 있어도 보편적 해석이라는것은 명백히 존재하며, 그것들을 배우는것이 그 '읽는 사람에 따른 개인의 감상'을 풍부하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수능식 문학 문제에 대해 반대하는 일부 작가들의 의견으로 인해 어떤 머저리가 저런식으로 시험보자고 했냐며 호도되는거 같은데, 그 작가들이랑 비교해서 떨어짐 없는 교수, 작가들 모셔놓고 최대한 머리 굴려서 나온 방법이 그 방법이고, 괜히 안 없어지는게 아니며, 문학 강국인 영국 일본에서도 그런식의 문학 시험은 다 있습니다. 미국이 특이한것뿐.
15/11/09 10:35
수능 시험에 나온다는것은 고등학교 교과 과정에서 가르친다는 얘기이며, 보편적 해석에 대한 방법은 중고교 문학 교육 과정 내내 배웁니다. 단순히 시험 문제로 억지로 내기 위해 존재하는게 아니에요.
15/11/09 10:50
보편적 해석만이 맞는 해석이다라고 개개인에게 생각을 강요한다면 폭력이지만, 지금의 문제는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합니다. 쿠르베의 '세상의 근원' 이 외설이 아닌 예술이라는데는 대체로 많은 이들이 동의할것이며, 어쩌면 어떤 이들은 '이것은 여성의 음부를 그린것이 아니다' 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작품을 시청앞 광장에 대형 확대 사본으로 게시하고 싶다' 는 이야기를 누군가 한다면, 그 그림이 음부를 그린것이 아니라는 해석에 대한 존중과는 별개로, 보편적 해석을 근거로 규제할 수 밖에 없습니다.
15/11/09 11:07
개인적으론 네티즌의 깡패짓으로 봅니다.
연예인이나 논란 사건에 대한 이런 사례가 한두번 있던것도 아니고, 마녀사냥 무섭게 하다가도 분위기 반전되는 것이 한두번도 아니고. 그러다가 뭔일 터지면 아님말고 식. 아무도 책임지지않죠. 분명 비판의 자유는 존재합니다. 근데 항상 비판을 넘어 비난과 협박 이상이 되는게 문제입니다. 이런 상황들을 보다보면 네티즌 여론의 흐름과 반대로 움직일때 '어? 너 내말 안들어? 괘씸하네 매장시켜야겠다' 이런 식이죠. 항상 너무 과해요. 이번 아이유 앨범 가사를 보면서 아슬아슬하다 느꼈고 안티와 악플러들을 겨냥한 저격은 쓸모없다 생각했었는데(어차피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가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보고 들으니까) 역시나 이렇게 되네요. 전 비판할건 맘대로 하되 아이유를 싫어하는 분들은 아이유 나오는 방송을 보지않고 관련된 상업적인 물건을 구매하지않으면 된다고 봅니다. 인터넷서명같은건 협박과 선동이고. 소아성애자니 범죄에 가깝다느니 이런 말은 비약을 넘어 확대해석과 죽이기에 가깝습니다. 억측도 정도가 있을것인데. 전에 이태임과 예원 사건때 둘이 엄청 욕먹을때도 좀 어이없었는데 이번에도 좀 그렇군요.
15/11/09 12:06
그냥 후진 걸 후지다 (아니야 후지지 않아...) 하는 정도였으면 이렇게 커질 일도 아니었던 것 같아요...여튼 이번 사태를 보면서 아이유가 가지는 파급력이 엄청나다는 것에 새삼 놀랐고 그녀가 대중들에게 생각보다 많이 미운털이 박혔다는 것에도 놀랐습니다...제 머리 속에는 부/마쉬멜로/좋은 날/너랑 나의 그 귀엽고 똘똘한 꼬맹이 이미지 정도 밖에 없었는데...몇 년간 그녀 안팎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나 봅니다...특히 인터뷰를 보니 (물론 편집 된 것이겠지만...) 능수능란/능글능글 해졌더군요...거기에 가사 및 창법의 변화도 상당한 것 같습니다...이렇게 속삭이고 재잘거리는 창법에 재미가 들었나보네요...(개인적으로는 별로 입니다...)...여튼 여전히 흥미로운 가수이지만 이번 건은 이제 슬슬 피곤하네요...
15/11/09 14:26
위에 관련글로 싸그리 긁어져 버려서 다시 적어봅니다
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bullpen2&mbsIdx=3658539&cpage=&mbsW=search&select=stt&opt=1&keyword=%B5%BF%B3%E8 - 출판사 동녘의 과거 페이스북 포스팅입니다 사실 이 글에 더 어울리는 리플 내용이었겠네요 아이유의 해석이 공감을 받지 못할수 있었지만, 답이 아니라고 단정지어진 데는 출판사의 공이 매우 컸다고 생각합니다 출판사가 입장표명을 하기 전까지는 이러이러한 점에서 불편한 요소가 있다 정도였을 수 있지만 입장 표명하는 순간 아이유의 해석은 틀린 해석이 되고, 소아성애자라는 주장의 빼도박도 못하는 근거로 자리매김 해 버렸습니다 하지만 과거 포스팅에서 대한민국의 성문화가 폐쇄적이다고 하며 발칙하고 불편한 메시지를 찾아보라는 운운 하던 출판사가 (더불어 장기하, 로이킴에게 발언한 내용이 여자라서 더 큰 비판을 받는다는 이야기는 덤) 포지션을 싹 바꿔서 니 해석은 잘못된거야 라고 주장 해 버리는건 도대체 뭐하는 짓인지 잘 모르겠네요 ~의 말은 ~의 말로 반박 가능하다 라는 말에 어느정도 부합하지 않나 싶습니다 결과적으로 아이유는 이미지에 엄청난 타격을 받았지만,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판매순위는 10위 안에 들었다고 하니 출판사만 신났겠다 싶습니다 거기에 페이지 관리자의 개인적인 글이라고 꼬리도 미리 잘라놨으니 문제 요소도 없구요
15/11/09 17:26
그래서 이번 논란의 결론은 뭡니까?
미성년의 성적암시를 나타내는 어떤 작품도 용인되어서는 안된다? 표현의 자유를 위해서는 어떠한 표현도 용인되어야 한다? 아이유의 논란은 이 사태를 흑과 백처럼 나누어 보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15/11/09 18:38
이번 일을 보면서 이해가 안가는게 몇가지 있는데요
첫째 제제는 가상의 케릭터 아닌가요? 노래 가사에 라임오렌지나무 라고 나오는 것도 아니고 가상의 인물의 일부 모티브를 베껴 온건데 그게 뭐가 문제인가요? 제가 삼국지 덕후라 존경하는 인물중 한분이 제갈공명인데 네이버 웹툰'삼국전투기'에서 제갈량은 여자에 섹시코드로 무장하고 나왔지만 그걸 보고 최훈 작가에게 변태라고 욕하는 댓글은 본적이 없는데요? 심지어 전쟁을 피해 유비를 따라가는 신야 백성들을 오타쿠로 묘사하기도 합니다. 제갈공명과 그들 모두 가상인물이 아니라 실존 했던 인물들 입니다. 지금 아이유를 비난하는게 가상의 인물인 어린아이를 섹시코드로 묘사했다는 건데 중국에서는 신으로 까지 추앙 받는 실존 인물을 성까지 바꿔서 섹시 코드로 묘사하는게 더 과한 표현이 아닌가요? 표현의 자유를 평가하는 잣대가 왜 사람에 따라 달라지나요? 둘째 노래 나온 직후에는 왜 잠잠했던거지요? 음원이 하위권 노래도 아니고 음원사이트 줄세우기하고 노래가사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서 가사해석 기사도 나왔던 거로 기억하는데 순위를 유지했던 만큼 분명 많은 사람들이 읽어봤을때는 조용하다 출판사 의견이 나오고 갑자기 화제가 되네요. 라임오렌지 작가도 의견도 아니고 번역한 출판사의 의견이 그렇게 절대적인가요? 대학다닐때 원서 번역에 오역 많다고 출판사 흉보던 교수님들 몇분 봐서 이해가 안갑니다. 셋째 문제가 되는건 '제제' 한곡 아니었던가요? 아이유 비난하는 글보면 스물셋 뮤비를 쓰던데요? 제제도 뮤비가 있나요? 심지어 예전 너랑나 라든지 화보를 끌고 와서 비난 하는데 왜 지금에 와서 그러는거지요? 넷째 왜 다름 을 틀림 이라고 하지요? 다른 사이트에서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제 생각은 다르다고 의견을 내면 아이유 빠, 쉴더, 변태라고 니 생각이 틀리다 고 하는데 다른 문제보다 유독 이번 아이유 글에는 그런 분들이 많이 보이네요. 시험 문제도 아니고 정답이 없는 문제인데 왜 틀렸다고 강조하는지 이해가 안갑니다.
15/11/09 22:28
1. 어린시절 작가의 성장배경이 반영된 자전적 소설입니다. 또한 제제라는 아이는 부모로부터 사랑받는 보통의 아이가 아닌 지독한 학대를 당하고 상처를 받았으며 유일한 친구가 인간이 아닌 오렌지나무 밍기뉴라는 나무라는 점에서 독자들에게 더욱더 슬픔을 느끼게 하는 캐릭터입니다.
2. 앨범 발매 직후 각종 차트에 앨범의 모든 곡이 들어간 화제성이 일각의 문제제기 보다 더 강했다봐야겠네요. 3. 챗셔 앨범의 일부 디테일한 부분을 문제삼다가 현재는 전체적으로 로리콤 마케팅을 해온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 그간 의심받던 부분들이 재조명된 상황입니다. 4. 제 생각은 다르다에 '대중들은 아이유의 해석을 왜곡한 것이고 뮤비를 바라보는 시각도 말도 안된다' 또한 '로리콤 마케팅은 일체 없다'라는 의견류를 표출한다면 일견 반감을 일으킬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15/11/09 21:47
저는 제제가 체셔 앨범에서 가장 좋은 곡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처음으로 앨범을 자세히 봤어요. 스마트폰으로 노래 재생하면서 앨범아트는 봤는데 자세히는 못봤거든요. 그런데 5살 제제가 망사 스타킹을 신고 핀업걸 자세를 하고 있더군요. 이게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는 건가요? 명백하게 부적절한 아동 묘사 아닌가요? 어째서 이게 논란이 되는 걸까요..... 분명 잘못된 일이고 논란의 여지가 없어 보이는데요.
15/11/10 00:37
그 5살 제제인가 아닌가는 뒤로 하더라도
단순히 그 문제였다면 아동에 성적 암시가 담긴 작품을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가. 정도가 논의 되겠죠. 전면 금지해야 하는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가? 정도에 차이가 있는가? 상관없는가? 예를 들어 일본군에게 주인공의 누이가 9살에 기생으로 끌려가는 장면. 여자와 어린아이를 아끼는 주인공의 성격에 큰 영향을 준 사건이다. 하지만 이것은 절대로 허용해서는 안되는 장면임이 명백한가? 하지만 이렇게까지 시끄러운 이유는 논란이 거기서 확장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시작으로 제제라는 노래가 아동성폭력의 의미를 담은 노래이고 스물셋은 아동성폭행 컨셉의 뮤직비디오이다. 라는 주장들이 생기면서 시끌시끌해졌죠. Ps:그 그림을 보고 왔는데 개인적으로는 왠 아저씨가 망사를 싣고 있는 것 처럼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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