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단합체 도시락과 어묵 한상자
중학교 2학년 시절의 어느 날이었다. 갑작스런 과학 선생님의 부재로 자율학습을 하게 된 3교시 수업시간. 내 뒤에 앉아 있던 친구 하나가 내 등을 툭툭 건드리며 나직이 말했다.
["야, 샘도 없는데 우리, 도시락 까먹자!"]
무언가 내키지 않는 마음에 대답을 미루는 사이 어느새 내 짝꿍과 뒷자리 친구 둘은 슬며시 각자의 도시락을 꺼내 책상 서랍 밑으로 반찬통을 열기 시작했다. 내가 어찌할 바를 몰라 고민하던 찰나, 어느새 내 책상 고리에 걸린 도시락통을 낚아채듯 가져간 뒷친구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나는 괜스레 마음 한구석이 찜찜해졌다. 친구는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내 보온도시락 지퍼를 열기 시작했다. 열린 지퍼 사이로 미니항아리 모양을 한, 두 개의 작은 스텐레스 반찬통이 드러났고 첫 번째 반찬 뚜껑을 슬며시 돌려서 연 친구는 놀랍다는 듯 입을 쩍 벌리고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반찬통을 닫았다. 그리곤 다시 두 번째 반찬 뚜껑을 슬쩍 열어보더니 아까보다 두 배 가까이 커진 눈과 입으로 무성영화 속 찰리 채플린처럼 놀라움을 표하며 다시 반찬통을 닫았다. 도시락 반찬을 꺼내먹지 않고 닫은 친구는 뜻 모를 웃음을 흘리며 내게 슬쩍 도시락통을 돌려줬다. 나는 무언가 의아하고 어리둥절해졌다. 그 시절 내 도시락 반찬이야 안 봐도 뻔했던 탓에, '왜 저리 놀래지? 뭐 대단한 반찬이 있을 리가 없는데..'라는 생각을 하며 차례로 도시락 반찬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열려진 두 개의 반찬통에는, 새빨간 깍두기들이 차례로 담겨있었다. 나는 태연한 척 멋쩍은 웃음을 보이며 그렇게 도시락통 지퍼를 조용히 닫았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반찬통이 똑같은 탓에 누나와 내 도시락반찬 하나가 바뀐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이런 속사정을 친구들에게 구구절절이 설명하고 해명하기도 뭣하고.. 나는 그냥 조용히, 그날의 '도시락 까먹기 공모행위'에 가담하지 않기로 했다.
오전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르게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고 나는 소란스런 교실을 벗어나 운동장으로 향했다. 차마 책상 위에 두 개의 깍두기 반찬통만을 열어놓고 태연하게 점심밥을 먹을 용기가 내겐 없었나보다. 학교 건물 뒤편을 한참을 서성이며 시간을 때우던 나는 빈속을 달래려 그렇게 운동장 수돗가에서 맨물로 배를 채웠다. 그러고 있자니 마치 그 시절 유행하던 성장드라마 속 가난한 주인공 소년이 된 듯한 기분도 들었다. 그렇게 물을 마시며 얼른 오늘 하루가 지나가길 맘속으로 바랐다. 한시라도 빨리 책가방을 싸서 교실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날따라 하루가 왜 그리 길게 느껴졌는지.. 그렇게 길고긴 오후수업이 끝나고 나는 서둘러 책가방을 싸서 교문을 나섰다. 하굣길에 느껴지는, 평소와는 다른 도시락통의 무게가 그날따라 묵직하게 낯설었다. 가만히 고갯길을 넘어 집으로 향하던 나는, 문득 길가에 멈춰서 고갯마루 풀숲으로 향했다. 그리곤 남몰래 풀숲에 쪼그려 앉아 도시락 지퍼를 열곤 반찬통과 밥통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용히 반찬통에 담긴 깍두기와 밥통 안의 흰밥을 풀숲에 버렸다. 숟가락으로 밥통 안의 흰밥을 깨끗이 박박 긁어내던 어느 순간에, 나도 모르게 콧등이 시큰해졌다. 잠시 숟가락질을 멈춘 채로 가만히 앉아있던 나는 다시금 숟가락에 꾸욱 힘을 주었다. 나는 그냥 이러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등교할 때와 마찬가지로 묵직한 도시락통을 보며 의아해할 엄마에게 굳이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자세히 설명하기보단, 차라리 그냥 이러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날의 도시락 완전범죄(?)는 남몰래 조용히 끝이 났지만, 길가에 쪼그려 앉아 깍두기를 풀숲에 버리던 중학생 꼬마의 뒷모습은 공소시효 없는 기억처럼 내 마음 속에 오래도록 남았다. 영문도 모른 채 풀숲에 버려진 새빨간 깍두기 양념 속에, 무언가모를 쓸쓸함과 서글픔이 함께 버무려져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그 시절의 나는, 내가 가진 볼품없는 구형 도시락통이 참 싫었다.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누군가가 오래 쓴 흔적이 역력한 도시락통을 초등학교 시절부터 사용하던 나의 유일한 바람은 깨끗한 삼단합체(?) 보온 도시락통을 가져보는 일이었다. 아무리 빨아도 지저분하고 탁한 파란색 면가죽의 도시락 지퍼를 열면 곧바로 작은 항아리 모양의 스텐 반찬통 두 개가 나왔고, 그 밑으로 보온밥통이 바로 나왔는데 그 모양새가 아무리 봐도 영 볼품없고 초라했다. 말이 보온 도시락이지, 밥통의 보온 기능도 영 시원치 않았다. 그런데 주변 친구들의 도시락통은 달랐다. 빤들빤들하고 까만 도시락 가죽의 지퍼를 열면 뭉툭한 포탄 같은 스텐 보온통이 먼저 당당하게 그 위용을 드러냈다. 이중으로 보온이 되는 그 스텐통 위에 달린 뚜껑을 드륵드륵 돌려서 열면 그 안에서 마치 삼단합체 변신로봇처럼 동그란 플라스틱 반찬통과 국통, 그리고 보온밥통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거 아닌 그 삼단합체 도시락이 그 당시의 나는 내심 꽤나 부러웠다. 그렇다고 뻔히 있는 내 도시락통을 일부러 버리거나 없애고 새로 사달랄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하릴없이 들고 다니던 볼품없는 내 도시락통이 점심시간마다 내 입맛마저 빼앗아버리는 듯 했다.
그래서였을까, 학창시절 점심시간에 주로 나는 혼자서 밥을 먹었다. 시골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내고 초등학교 4학년 때 도시로 올라온 나의 도시락 반찬은 시골에서와 마찬가지로 조촐하고 단출했다. 평소 김치깍두기와 나물류가 많았던 내 도시락 반찬은 친구들에겐 그닥 인기가 없었다. 때로는 친한 친구들이 같이 먹자며 성화를 부리기도 했지만 나는 그냥, 혼자 먹는 게 편하다며 그때마다 태연하게 거절을 하곤 했다.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그때마다 사실 마음이 조금은 쓰렸다. 점심시간마다 책상위로 삼단합체 변신로봇을 당당히 꺼내는 친구들 앞에서, 팔조차 삐걱거리며 움직이지 않고 발 한쪽은 망가져버린 파란색 구형로봇을 꺼내고 싶지 않은 중학생 꼬마의 마음. 더불어 별로 내보일 것도 없는 볼품없는 반찬을 내놓고 친구들과 밥을 먹다보면 친구들의 젓가락이 내 반찬통으로 향하는 일은 적었다. 그럼 왠지 모르게 친구들의 맛있는 반찬을 내가 뺏어먹는 듯한 그런 기분마저 들기도 했다. 그런 씁쓸한 기분을 감내하며 점심밥을 같이 먹느니 차라리 혼자 먹는 게 마음 편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학창시절 점심시간엔 친구들로부터 '혼자 논다'는 오해 아닌 오해와 핀잔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단 한번도, 삼단합체 도시락과 비엔나 소세지 반찬에 비교되는 내 도시락 때문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 친구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느니 차라리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친구로 오해받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 후 중학교 3학년이 되고난 후부터 학교에서 급식을 먹기 시작했다. 똑같은 스텐레스 식판에 친구들과 같은 밥과 반찬을 배식받아 먹기 시작하면서부터는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더 이상 친구들의 삼단합체 도시락을 부러워할 일도, 도시락 반찬이 비교될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도시락통을 꺼내는 일도 사라졌다.
그리고 어쩌면 이러한 학창시절의 경험들이 성인이 되어 직장인이 되고난 후 한국컴패션을 통해 해외아동을 후원하고, 최근 한숲지역아동센터에 정기후원을 시작하게 된 동기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이야 예전과는 달리 초등학교, 중학교 점심이 모두 무상급식으로 바뀐 지 오래여서 급식비 걱정은 물론이거니와 그 시절의 나처럼 삼단합체 도시락을 부러워하거나 친구와 반찬이 비교될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도시락 뚜껑을 여는 아이들은 없겠지만, 또 다른 삶의 영역과 현실의 장벽 속에서 지금도 깍두기처럼 새빨간 상처가 아이들의 마음속에 또 얼마나 자리하고 있을까. 나는 지금이라도, 작은 힘을 보태어 이 아이들의 마음 속 깍두기 같은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싶다.
어쨌든 그렇게 중학교 3학년부터 급식을 시작하면서 내 마음 속 소외감과 쓸쓸함은 점차 사라졌지만 이와 더불어 더 이상 삼단합체 도시락을 가져볼 기회도, 맛있는 반찬을 당당하게 친구들에게 나눠주며 맛보여줄 수 있는 기회도 함께 사라져버린 것은 내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되고 직장생활을 하던 어느 날, 부산으로 출장을 다녀온 직장상사가 부산에서 유명하다는 모 수제어묵을 사온 일이 있었다. 직장동료들끼리 둘러앉은 테이블에서 전자레인지에 데운 따뜻한 어묵을 한입 베어물어보니 웬걸, 깜짝 놀랄 만큼 기대 이상의 맛이었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어 '이게 정말 어묵이란 말야?'라는 생각이 들만큼 맛과 식감이 훌륭했다. 지금껏 그 긴 세월 동안 내가 먹어온 짝퉁어묵들에 대한 분노와 배신감에 몸을 부들부들 떨며 그릇에 남은 어묵들을 깨끗이 비워냈다. 그렇게 흥분을 가라앉히고 보니 문득 집에 계신 부모님이 떠올랐다. '우리 엄마, 아빠도 어묵 좋아하시는데..' 라는 생각에 그날 귀가하자마자 어묵회사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2~3만원 정도 하는 세트상품을 택배로 주문시켰다. 그렇게 며칠 후 도착한 택배는 제법 묵직했고 내용물도 다채로웠다. 그렇게 수제어묵을 부모님과 함께 데우고 끓여서 함께 먹는데 역시나 맛있게 드시는 부모님 모습에 마음이 흐뭇해졌다. 그런데 이렇게 식탁에서 가족들과 오붓하게 어묵을 먹다보니 문득 결혼한 형과 누나, 그리고 친한 친구들의 모습이 눈에 어른거렸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나만 맛보기엔 너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곤 그날 밤에 다시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형과 누나, 그리고 절친 몇 명의 집으로 어묵세트를 한 상자씩 주문시켰다.
특별한 의도 없이, 단지 그냥 맛있는 음식을 같이 맛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주문한 어묵 한 상자였지만 반응은 생각보다 뜨거웠다. 연신 맛있다며 생각 이상으로 고마워해주는 주변 사람들의 즐거운 반응을 보면서, 내가 먹은 것처럼 배가 불렀다.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는 기쁨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조금씩 더 많은 주변의 지인들에게 어묵세트를 보내기 시작했다. 고향친구부터 중고등학교 친구들, 대학동창들과 직장 동료들까지. 한꺼번에 다 보내주기엔 부담스러워 한두달에 한 번씩 여유가 생길 때마다 찬찬히 주변 지인들에게 수제어묵을 보내곤 했다. 그렇게 가까운 주변 지인들 뿐만 아니라, 지방에 살고 있어 한동안 연락이 끊겼던 대학친구, 이런저런 오해로 소원했던 동기 등에게까지. 그러다보니 뜬금없이 보내는 어묵상자 속에, 그동안 잊고 있던 서로간의 안부와 추억이 자연스레 되살아나는 듯 했다. 너무 맛있다며 본가에 계신 부모님에게도 일부 보냈다는 친구부터, 임신한 아내가 너무 좋아한다며 인증샷을 보내온 친구, 택배를 받고는 몇 년 만에 전화로 그동안 소원했던 안부를 묻던 친구, 너 무슨 어묵사업 홍보용으로 보낸 거 아니냐며 장난스레 너스레를 떨던 친구까지.
그 모든 이들이 내게 갑작스레 이게 웬 어묵이냐며, 무슨 일이냐며 그 이유를 물을 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그냥 맛있어서."
"맛있는 거 먹다보니 니 생각이 나더라."
어린 시절, 맛있는 반찬을 싸와 친구들과 도시락통을 맞대고 함께 먹고 싶었던 그 중학생 꼬마는, 이제라도 내 소중한 친구들과 함께 맛난 어묵을 나눠먹고 싶었나보다. 이렇듯 결국 내가 보내는 어묵세트 상자 안에는 언제나 몇 톨의 자그마한 깍두기가 함께 담겨져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소중한 지인들에게 예상치 못한 반가운 선물을 보내는 일이 결국 그들을 위한 일임과 동시에, 어쩌면 그 하굣길 고갯마루 풀숲에 쭈그려 앉아 남몰래 깍두기를 버리던 그 꼬마아이의 등을 토닥여주는 일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어린 시절의 나를 위한 마음. 나는 이런 마음으로 어묵을 보내고 싶었다. 처음엔 그냥 가까운 주변 지인 몇에게만 보내기로 마음먹었던 '어묵 한 상자'가 이제는 어느새 제법 많은 수의 사람들에게 전달이 되었다. 언제나처럼 상자 안의 내용물은 도착할 때까지 비밀에 부치다보니 그 처음은 항상 뜬금없는 집주소 추궁으로 시작되곤 한다.
["야, 오랜만이다~ 너네 집 주소 좀 불러줘봐."
"갑자기 왜?"
"그냥.. 뭐 좀 보내줄 게 있어서."
"뭔데?"
"있어 그런 게~! 받아보면 알아."
"야, 너 무슨 이상한 거 보낼라 그러지?"
"-_-; 속고만 살았냐? 무슨 도시락폭탄이라도 보낼까봐?"
"아님 내 개인정보가지고 무슨 짓 할라구?!"
"야 내가 너네 집주소 가지고 하긴 뭘해, 어디 써먹을 데도 없다!"
"이놈 수상한데.."
"그래서, 안 알려줄거야?"
"알써.. 기다려봐."
"짜식, 진작 그렇게 나올 것이지^^"]
이렇게 오늘도 '어묵 보내기 프로젝트'를 위한 카톡 실랑이는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