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그 녀석의 카톡이 왔다. 하지만 그 녀석은 형식적인 안부조차 묻지 않고 바로 본론부터 애기한다. 물론 정말 다급하고 긴박한 상황에 처해있을수도 있다. 하지만 문돌이는 카톡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답장을 하지 않고 폰을 내려 놓는다. 카톡은 상대방이 읽었는지 확인이 가능하기에 왠만하면 읽고 씹진 않는다. 그래서 내용만 보고 싶다면 알림창에 뜨는 메세지를 읽어보거나 톡방에 미리보기 되는 글만 읽어본다. 읽었다는 티를 내지 않기 위해. 하지만 문돌이는 일부러 그런것처럼 '1'을 지워버렸다. 마치 '나는 니가 한 말에 대답도 하기 싫다'는 것을 어필하듯이. '1'이 지워졌음에도 답이 없는걸 안 그 녀석 역시 더 이상 카톡을 보내지 않는다. 다행히 문돌이의 어필을 눈치챈거 같다.
문돌이는 얼굴을 살짝 찡그리며 나지막히 읊조린다.
'에이 x바 아침부터 짜증나게'
그 녀석과 문돌이는 무슨 안좋은 일이 있었던 걸까? 한가지 확실한건 그 녀석이 문돌이의 가치관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친구가 이 세상의 전부고 우정은 변함없이 영원할꺼란 뽕에 잔뜩 취해 살았던 20살때로 돌아간다.
남자 20살. 술집 프리패스를 발급 받고 당당히 길빵을 할 수있게 국가에서 허락한 나이. 신분증 좀 보자하면 당당하고 허세에 가득찬 몸짓으로
누가 보면 암행어사가 마패 꺼내듯이 민증 까는 나이. 그 당시 나온지 좀 된 영화 '친구'의 뽕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해 길거리에서 시비가 붙으면 누가 누가 친구 많이 부르나 대결하던 나이. 친구가 시비 붙었다하면 우미관에서 노닥거리다가 뛰쳐나가는 김두한패처럼 피시방에서 한창 스포 하다가 뛰쳐나가는게 멋있다고 느끼던 그런 나이. 하루 이틀 정도 밤새고 놀아도 몇 시간 자고 일어나면 체력 완충 되던 나이.
한마디로 철 없고 덜 여문 머리에 신체는 지나치게 왕성하고 이제 어른이라고 하는짓은 어른들 그것도 나쁜 어른들 따라하기에 바쁜 혼란스러운 존재들이다. 그런 스무살의 문돌이는 오늘도 소주 한잔 마시며 친구들과 참된 우정과 멋진 인생에 대하여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다.
"야 진짜 우리 인생애서 우리같은 친구들을 만난게 얼마나 큰 행운이고? 안 그렇나? 진짜 우리는 우정 변치 말고
죽을때까지 보자"
"당연하지 x바 우리는 절대 서로 배신하지 말고 친구끼리 미안한짓 하지말고"
"마 니 '친구' 안봤나? 친구끼리 미안한거 없다. 친구 아이가?"
"자 짠치고 한잔 시원하게 빨자"
"짠 치고 다같이 '영원하자' 제창하는거다이"
"영원하자!!!"
아마 저때 나눴던 말을 녹음해서 지금 그들에게 들려준다면 늙어죽을때까지 주기적으로 이불킥을 시전할 것이다.
그리고 사실 저 자리에 함께 있었던 문돌이 제외 6명중 한명이 그 녀석이고 두명은 아직 연락을 주고 받고 있으나 나머지 3명은
군대 갔다온 후 현재 생사도 불투명하다. 아마 길에서 지나가다 마주치면 너무 어색해서 그냥 모른척 지나갈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우정과 인생 그리고 소주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계산을 하고 나가야 될 시간이 됐다. 호프집에서 생맥은 안먹고 소주만 처먹었음에도 17만원이라는 돈이 나온다. 뭔가 계산이 안맞는거 같아 술에 취했음에도 소주병을 일일이 세보고 안주도 메뉴판과 하나 하나 대조 해본다.
"아 원래 17만 5천원인데 사장님이 5천원 까주신거구나.... 감사합니다 사장님"
"야 얼마 나왔노? 17만원?"
"그럼 우리가 7명이니까 한사람에... 17 나누기 7은.... x바 얼마고?"
"2만 5천원씩 뿜빠이하면 되겠네. 남는건 가다가 하드나 사묵고"
그때였다. 그 녀석이 입을 연다.
"됐다 됐다. 오늘 내 알바비 받았으니까 내가 오늘 쏠께"
"마 니 괜찮겠나"
"괜찮다. 어차피 느그한테 술 한잔 살라고 했다. 오늘은 그냥 내가 낼께"
"그라몬 무리하지 말고 10만원만 내라. 그것만 해도 충분히 고맙다"
"그래 10만원도 크다. 그럼 나머지는 내가 2만원 낼테니까 느그는 만원씩만 도"
"아 진짜 괜찮은데. 알겠다 그럼 일단 십만원 내고 나가서 뭐 한개 더묵자"
문돌이는 그 녀석이 친구로 정말 괜찮아 보였고 같은 남자로 정말 멋있어 보였다. 사실 문돌이의 지갑에도 십만원 정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 한창 유행했던 리x이스 타입원을 사기 위해 모으는 돈이라 그냥 조용히 있었기에 십만원이란 거금을 아무렇지 않게 내는 그 녀석을 보며 왠지 모를 동경심과 질투심 마저 가지게 되었다.
'아 x바 그냥 내가 10만원 내고 가오 잡을껄.....2차 가서 내가 쏠까???....... 아이다. 그냥 가만히 있자'
그렇게 문돌이는 친구들과 그 녀석을 따라 호프집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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