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조, 그의 고조부 조온은 이성계의 조카로 개국공신이었습니다. 공신 가문이니 원조 중의 원조 훈구파 출신이죠. (...) 그래봐야 몰락한 쪽입니다만.
그는 아버지의 임지에서 무오사화로 유배 중이던 김굉필을 만나게 됩니다. 17세에 그의 제자가 되었으며, 이 때부터 그의 영향을 듬뿍 받죠.
김굉필은 사림의 시작이라 할만한 김종직의 제자였지만, 스승이 사장(시와 문장)에 집중하는 것 같아 연을 끊고 경학에 몰두한 이였습니다. 특히 소학에 집중해 소학동자라 불렸죠. 무오사화로 유배된 지 얼마 안 가 갑자사화로 죽습니다.
이후에도 그는 계속 학문에 몰두하죠. 과거를 위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저 학문을 파는 거였죠. 가족의 반대는 당연한 거일 겁니다. 그가 과거에 합격한 건 29세, 그것도 소과인 진사시였습니다. 이제 겨우 진사가 돼 성균관에 입학한 거였습니다.
하지만 합격한 그 해부터 바로 튀는 모습을 보여주죠.
"사신은 논한다. 이때 생원 김식·조광조 등이 김굉필의 학문을 전수하여, 함부로 말하지 않고 관대를 벗지 않으며, 종일토록 단정하게 앉아서 빈객을 대하는 것처럼 하였는데, 그것을 본받는 자가 있어서 말이 자못 궤이(詭異)하였다. 성균관이 ‘그들이 스스로 사성 십철(四聖十哲)이라 일컫는다.’고 하여 예문관·승문원·교서관과 통모(通謀)하여 그들을 죄에 몰아넣으려고 하다가 이루지 못하였으므로 경연관이 힘써 말한 것이다. (중종 5년 10월 10일)
이 날 경연에 대한 사관의 평입니다. 그 날 나온 말은 이런 거였죠.
- 요세 선비들은 오직 사장(시와 문장)만을 숭상하고 학문은 그냥 달달 외울 뿐입니다. 참선비가 없어졌어요.
- 옛말에 선비의 행동이 이러저러하다 했는데, 이게 배우는 자의 절도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학생들이 이런 행동을 따라하면 멍청하다고 비웃어요. 지들은 술만 쳐먹으면서요.
- 학교의 풍습이 망가져서 옛 성현들의 언동을 따라하는 이는 왕따시킵니다.
뭐 이런 식의 내용이었습니다. 연산군 때 많은 선비들이 쫓겨나고 죽었고, 연산을 몰아내니 그 어느때보다 많은 훈구파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일 중요한 건 자기 목숨 건사하는 거였죠. 그럴려면 처세술이 그 어느때보다 중요했습니다. 유생들에게도 이게 퍼졌고, 풍습은 위처럼 아주 엉망이 돼 버렸습니다.
하지만 이런 흐름을 바꾸려는 시도가 뒤따랐죠. 연산의 잘못을 바로잡는다는 명분이 있었으니까요. 분위기는 엉망이었지만, 그걸 바꿔야 된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졌고, 아래에서부터 그걸 주도하는 이들이 나타났죠. 그 중심엔 조광조가 있었습니다.
그는 스승 김굉필처럼 소학에 몰두합니다. 유학자들이 갖춰야 할 자세가 그 안에 모두 있었습니다. 그냥 달달 외우고 글 좀 잘 써서 벼슬길에 나아가봐야 가장 기본적인 소학의 가르침조차 따르지 않은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니 나라가 이렇게 된 것이다, 이게 조광조의 결론이었죠.
유교의 근본으로 돌아가자는 거였습니다.
분위기는 점차 바뀌어 갑니다. 그를 중심으로 학풍이 바뀌어갔고, 조정에도 그게 알려졌죠. 그 해 11월 중종이 유생들을 만났을 때 강연한 유생은 그 단 한 명 뿐이었죠. 이 덕분인지 다음해에 유생들 중 천거된 3명에 듭니다만, 신하들이 반대하죠. 학문에 뜻을 둔 사람이니 자기도 원하지 않을 것이고 지금 줘 봐야 말직이나 줄 수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이후에도 천거와 반대가 뒤따랐다가 중종 10년(1515년) 안당, 남곤 등의 천거로 벼슬살이를 시작합니다. 이 때쯤엔 그도 제대로 과거를 치러서 나가야겠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이 해에 대과에 합격하니 그의 나이 34세였죠.
그리고 사간원 정언(정 6품)에 임명된 다음 날, 문제의 상소를 올렸죠.
... 너무 오랜만에 써서 기억이 안 나실테니 이전글 링크합니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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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겨우 임명돼놓고 자기 말 안 들을거면 자기를 자르랍니다. 그것도 대간들을 다 자르든가 자기를 자르든가 하래네요. 이 상소 하나로 조정이 두개로 쪼개졌고, 대간들이 네 번이나 교체됩니다. 몇 달간의 아수라장 끝에 여론은 그의 편을 들어줬구요.
그 후 2년, 조광조는 홍문관의 수장인 정 3품 부제학까지 승진합니다. 그에게는 중종의 절대적인 지지와, 그와 함께 여론을 주도하는 사림파가 있었죠. 그는 이를 발판으로 자신의 이상을 밀어붙입니다.
... 뭐 그런 좋았던 시절은 얼마 가지도 못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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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쓰니 잘 안 되네요. 그래도 아예 안 쓰면 계속 못 쓸 거 같고 = =;; 일단 이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