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던가. 온갖 파행과 추태로 연일 정보매체들이 시끄러운 요즘 상식적으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사건이 터졌다. 연예인의 음주운전이라면 요즘 같은 때에는 큰 이슈거리도 안되는 때이지만, 웃기는 게 음주운전의 당사자가 경찰서로 차를 몰고 가 자백을 했다고 한다. 누구한테 적발된 것도 아니고, 자백을 해야 할만큼 음주운전으로 인한 불행한 사태가 일어난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것도 한참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개그맨이 이런 행동을 했으니 딱히 동기나 진의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이것은 한 개인의 '일탈'로 보는 것이 아마 정답에 가까울 것이다.
아웃사이더이자 나이 서른이 다 되어가도록 호밀밭의 파수꾼을 꿈꾸는 나에게 그의 이 어처구니 없는 소동이 웃어 넘기기에는, 비난을 하기에는 스스로 주체할 수 없는 방황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사건이 아주 없는 것만도 아니다. 왜 찾아보면 은근히 있다고들 하지 않던가. 대기업 간부가 하루 아침에 족적을 감춰버리고 집에도 회사에도 나오지 않고 있기에 찾아봤더니 노숙자 생활을 하고 있다거나, 성공한 집안의 사모님이었던 분이 창녀촌에서 밑바닥 생활을 사서 하고 있더라하는 이야기들. 나는 유세윤을 개인적으로 전혀 모르지만, 그가 은연중에 비춰왔던 말과 행동들에서 그가 품어왔을 법한 불안이 상상은 된다. 모두가 꿈꾸는 성공, 그러나 예기치 않게 빨리 채워져 버린 것과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 사이에서 그가 비틀거릴 수 밖에 없던 그 이유를.
내가 보는 유세윤은 커다란 성공을 위해 무언가를 포기하고 버릴 줄 아는 위인은 아니다. 나는 그가 여타 개그맨처럼 물질적 안정에 대한 선망, 고달픈 인생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상대방의 공감을 얻고 웃음을 이끌어내는 개그를 거의 본 적이 없다. 더불어 그에게는 원대한 목표의식이나 야망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개그 콘서트에서 해오던 꽁트부터 방송에서 하는 멘트들까지, 그가 주로 웃음으로 삼는 것은 상상력을 극대화하고, 어떤 상황을 설정하고, 어울리지 않는 무언가를 배치시키고 구체화하며, 상대방의 점잖은 이미지를 파괴하는, 이른바 광대의 기질이 있다. 그냥 골 때리는 그 순간의 느낌이 좋으니까 상대방이 누가 됐건, 상황이 뭐가 됐건 다 비틀고 자기 마음대로 짜맞추는 그 상상의 자유를 말로, 또는 행동으로 즐기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유세윤의 돈자랑이 그리 밉지 않았다. 코메디 빅리그에서 우승상금으로 번 1억을 내놓으란 듯이 뽐내고, 음반 팔고 행사 해서 돈 많이 번다고 서슴없이 이야기하곤 해도, 그 안에 있는 반골정신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성공담으로 자신을 포장하고 남의 환심을 사려는 것 같지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돈 많이 번 게 뭐 대수라고 그렇게 돈 많이 버는 거에 환장을 하냐? 하고 돈에 초탈한 느낌 그리고 나 돈 많이 번 거 사실이니까 뒤에서 꿍얼거리지들 마라 하고 사서 미움을 받는 느낌 같은 것이 들었다.
이런 그에게 라디오스타의 엠씨 자리는 처음으로 즐거움보다는 책임이 큰 자리가 아니었나 싶다. 공교롭게도 밥줄 하나가 끊긴 그에게 동정표 비슷하게 베풀어진 기회를 그는 어떤 표정을 짓고 받아들였을까? 나와 맞지도 않고 내가 필요해 보이지도 않지만 어쨋든 나를 돕기 위해 마련된 자리니 열심히 해야지 - 라는 어른의 책임감은 원래 유세윤의 원동력이 아니다. 그는 한동안 지지부진하며 적응했고, 셋방살이에서 자신의 공간을 점차 넓혀가는 것처럼 보였다. 세상의 풍파 앞에서 원치 않게 철들어버린 소년의 얼굴을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친한 친구들이 모인 라디오스타 개식스 편에서 입을 뾰루퉁하게 내밀고 울음을 참아보려 애쓰던 그의 표정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무언가를 더 이상 삼키고 있지 못할 때, 슬픔 대신 다른 감정만을 애써 과장하려 할 때 사람은 그런 엉뚱한 표정을 짓곤 한다. 무엇이 될 지 더 궁금하지 않은 인생, 이미 행복의 절정기를 지나와버렸다는 절망 앞에서 하루에 스케쥴이 몇개가 되고 출연료는 얼마를 받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직장, 가정, 명예 보통 사람이 갖고자 하는 모든 것을 다 갖춘 한 남자가 소년의 얼굴을 하고 울었다. 꿈을 잃어버렸다며, 지금의 행복은 진짜 같지가 않다며 말이다.
아마 그가 꿈꾸는 삶은 컬투의 현재 삶이 아닐까? 얼마를 벌었네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했네 누구랑 사귀었네 무슨 기록을 남겼네 수많은 유력 인사들을 거쳐갔음에도 그가 단 한번도 보이지 않았던 선망과 동경을 처음으로 보였던 게 컬투가 게스트로 나왔을 때였음을 돌이켜보며 그저 막연히 추측해본다. 거기에서 나는 그의 기행을 일시적인 변덕으로 오해하고 싶지도, 단정짓고 싶지 않다. 남들이 성공했다고 하는 삶, 난 성공한 것 같지만 잘 모르겠는 삶, 내가 살고 있지는 못하는 다른 이의 어떤 삶. 그가 흘린 울적함과 갈망의 조각에서 나는 막연히 추측해본다. 보이는 것처럼 그는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 스스로 느끼기에 재미있는 사람이 아니라 우스꽝스러운 사람으로 전락해버렸다는 것을 말이다.
이번 일이 없었더라면, 그는 분명히 지금 같은 전성기를, 어쩌면 더한 전성기를 누리며 사람들에게 계속 웃음을 주고 방송인으로서의 성공을 만끽했겠지. 많은 돈을 벌고, 인기를 얻고. 그러나 우리가 그에게 보장할 수 있었던 것은 물질적 팽창이지 그의 행복이 아니다. 누군가의 성공담과 다른 누군가의 밑바닥 경험을 수없이 건네들으며 그는 남의 인생에 이래저래 웃고 떠드는 것이 많이 지쳤던 모양이다. 자신의 인생을 조롱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던, 돈도 명예도 가족도 오늘날 우리가 제1로 추구하는 그 모든 것도 위로해주지 못했던 그의 공허함이 일으킨 웃지 못할 희극에서 나는 자문한다. 나는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내가 사는 것은 죽지 못해서인지 살고 싶은 그 무엇이 있는지.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인생을 걸어도 되는지 인생을 걸고 질주하는 우리 시대 젊은이들의 초상이 아닐련지.
* 극단적인 선택으로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가지 않은 유세윤씨에게 격려와 응원의 글을 보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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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해프닝은 뭔가 유세윤이 양심이 있네.없네, 잘했네 잘못했네 라는 느낌보다는 유세윤씨에 대한 동정이라고 하기엔 애매하지만 그냥 뭔가 서글퍼 보이고 안타깝단 생각이 듭니다.
라디오스타에 유상무 장동민이랑 나온편에서도 공허감과 상실감이 상당히 커보인단 느낌을 받았습니다. 요근래에는 예전처럼 활기찬 모습이 보이지도 않고 가장 센스있는 타고난 개그맨중 하나라고 생각했던 유세윤이 방송을 그냥 의무감에 하는 느낌이 들더군요. 능력이나 감이 떨어졌다기 보다는 그냥 별로 웃기고 싶은 마음도, 의욕도 온데 간데 없어 보였습니다.
확실히 연예인, 특히 남을 웃겨야 하는 개그맨이란 직업도 참 감정의 소모가 심해보이는것 같습니다. 본인은 슬프고 우울해도 즐거운척 웃는 표정으로 광대역할을 해야 하는것 쉽지 않은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