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e |
2002/12/05 03:13:51 |
Name |
네로울프 |
Subject |
에스프레소 (1) (2) |
(1)........
그 것은 참 거창한 하품이었다. 한껏 벌린 입 주위의 경련이
조용한 연못의 낯선 파문처럼 몸 전체로 퍼져나갔다.
한참을 온 몸을 바드락거리던 그녀는 쇠된 소리를 목구멍에서
긁어올리며 입을 닫았다. 나는 순간 조금 멍청해져버린 듯
초점없는 시선으로 그녀를 멀거니 쳐다보았다. 그녀는 아주
고즈넉하게 눈꺼풀을 두 번 여닫았다. 그리고는 피식 웃음을
입꼬리에 말고는 배회하는 내 시선을 잡아채듯 내 두눈을
노려보았다. '클로즈 인카운터.' 문득 스필버그의 영화제목이
입술에서 머리 속으로 말려올라갔다. 난 처음으로 만난 외계인에게
취할 듯한 어정쩡한 웃음을 보냈다. 그녀의 눈동자 위로 이채로운
빛이 날카롭게 번쩍이며 지나갔다.
"주문 하시겠어요?"
그녀의 눈동자위를 스쳐간 빛의 잔상이 머리에 맴돌고 있었다.
그녀는 익숙한 듯 노련한 웃음을 지어보이고는 다시 물었다.
"손님, 주문하시겠어요?"
그때서야 난 막 이 골목에 도착한 듯 어깨를 움츠려보이고는 입술을
움직였다.
"에스프레소 더블 되나요?"
그녀의 눈이 다시 한번 고즈넉하게 굼벅였다.
"5천 4백원입니다. 크림하고 설탕은요?"
"아뇨. 괜찮아요."
재빠른 손이 주문표를 적어나가며 그녀는 큰소리로 '에스프레소 더블이요.'
하고 외쳤다. 주문표를 적느라 그녀는 조금 고개를 숙이고 있던 터라,
나는 그 소리가 자세와 어울리지 않게 크다는 생각을 했다.
테이크 아웃은 아직 익숙치 않은 터라 뒷덜미가 괜히 스멀거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산을 받쳐들고 있다는 것이다. 어깨에 걸친 것도
아닌터라 별로 시선을 가려주진 못하지만 왠지 조금은 마음이 편하다.
비가 며칠째인지 모르겠다. 누구말대로 징하게도 쏟아붇는다.
이 도시의 거리는 어느새 태어날 때부터 젖어있었던 듯한 표정들을 짓고
있다. 도시란 원채 그리 얄팍한 것이다.
"에스프레소 더블 나왔습니다."
후두둑 거리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빗발이 굵어졌다.
...................(2)
나흘째 계속되는 비에 도시는 조금씩 녹슬어 가는 것 같았다.
아니 식당 뒤켠의 쓰레기통 속에 처박힌 생선 대가리처럼
부패해가고 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도시의 가장 은밀한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찌꺼기들이 비로 불어난 물에
천천히 떠오르고 있음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일주일쯤
더 비가 내린다면 그 찌꺼기들은 이 도시의 사람들을 모두 삼켜
버릴 것이다.
습관적으로 주문표 철을 만지작 거리며 잠시 골똘해 있던
그녀 옆으로 조그만 종이컵이 내밀어졌다. 기계적으로 컵위에
플라스틱 마개를 쉬우던 그녀는 어쩐지 균형이 안맞는 자세로
어색하게 서 있는 앞의 남자를 힐끔 쳐다보았다.
'이렇게 쓴 걸 잘도 먹네.'
남자는 자신의 발끝으로 시선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왠지 나른해
보인다는 생각을 하며 그녀는 남자를 깨우듯 약간 톤을 높여
말했다.
"에스프레소 더블 나왔습니다."
남자는 마치 자다가 불려나온 듯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입술을 약간 일그러지게 벌리고 탄성인 듯한 낮은 소리를 내며
컵을 받았다.
"거스름 돈 4천 6백원입니다."
계절보단 조금 빠른 듯한 두터운 검은 잠바의 앞주머니에 돈을
쑤셔넣으며 남자는 돌아섰다. 그리곤 바로 출발하지 않고 잠시
멈춰서 있었다. 하늘을 보는 듯 우산이 뒷등쪽으로 기울어졌다.
잠시 후 남자는 어깨를 떨 듯이 움츠리고는 멀어져가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그녀는 어쩐지 자신의 목소리가 마치 그를 깨우려는 듯 톤이 조금 더
높아진 것을 깨닫았다.
남자는 들었는지 못들었는지 일정한 속도로 멀어져가고 있었다.
역시 어딘가 균형이 안맞는 걸음걸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한줄기 빠른 바람이 차양을 흔들며 가게 안으로 빗방울 몇 개를
흩뿌리고 지나갔다. 잠시 그를 바라보고 있던 그녀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습관적으로 주문표 철을 만지작 거리기 시작했다. 이내
그녀는 다른 생각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비는 내일도 계속될 것이다.'
비 때문에 빨라진 어둠이 스며들 듯 거리를 덮어가고 있었다.
.............zz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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