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원치 않는 일을 해야될때가 있다. 나에게도 당연히 그런 때가 왔다. 당시에 막내로 꼽사리를 껴있던 한 모임이 있었는데, 나를 빼고는 나랑 꽤나 나이차가 나는 형님이었다. 내가 왜 그런 형님들과 왜 모임을 내가 굳이 하게되었냐면, 그 형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취미생활이 있는데 내가 그 취미생활의 고수였다. 그 모임은 원래 있던 모임이었고, 그 모임멤버중 한분의 대후배인 A가 나에게는 대선배였는데, A는 정작 그 모임멤버는 아니었지만 여튼 그 징검다리를 통해 고수를 갈구하던 그분들의 요청에 일회성으로 참여하려고 갔다. 가서 훈수도 좀 둬주고 강습도 해주고 하다보니 본인들도 재미가 있었던지 매번 나를 부르게 되었고, 그래서 나도 고정멤버가 되었다. 그분들 기분좋아지면 강습료조로 성의표시도 해주었기때문에, 나야 뭐 나쁠건 없는 모임이었다. 특히 기분좋을때 강습료 두둑하게 뿌리던 형님은 잘 자리잡으셔서 속칭 잘나가는 형님이 있으셨다. 초록창에서 인물정보가 검색되시는! 그전까진 그 모임자체는 원치않는 일은 아닌데 이때까지는 분명히 나에게 나쁠게 없는 모임이었는데, 갑자기 그 형님이 다음 모임은 커플모임으로 하자고 하신다.
이게 얼마나 나에게 곤란한 일이었냐면, 그분들이랑 내가 나이차가 좀 났지만 나도 내 여친과 나이차가 그정도 났다. 내 여친이 거기서 도무지 적응을 할수 있을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나이 있으셔서 결혼하시고 커플모임에 와이프 데려오실 분들이 왜 그렇게 계획해서 커플모임을 하려고 하시겠냐 재미없게. 적극 추진자분은 가정이 있으신데 따로 '애인'을 데려오려는 분이셨다. 사실 그런 둘간의 관계상 이런 상황을 추진하는게 이해가 되었다. 원할거라는 생각은 들었던게 애인도 '평범한 남친의 주변사람'은 소개받을수 없었을테니. 하지만 멀쩡한 가정있는 분이 (물론 내가 이야기안해주면 내 여친이야 모르겠지만) 애인을 데려오겠다는 커플모임에 나는 내 여친을 도저히 데려갈수는 없었다. 이건 안되는거였다. 그래서 저는 안된다고 죄송하다고 거절했는데, 안데려오는 사람이 밥값내야한단다. 돈내기 싫으면 길거리에서 헌팅이라도 해서 여자는 무조건 데려오란다. 알겠다고 하고 그냥 돈으로 막으려고 커플을 안데려오는 분들과 함께 밥값과 술값을 나눠내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이번에 다들 데려오는 분위기다. 평소에 한 네명정도 모여도 식사비가 XX만큼 나왔는데 그 두배는 나오겠지? 오우 이건 절대 아니야 탈출구가 필요해. 그래서 여사친중에 누군가를 백화점 상품권같은거 하나 사주고 데려가려고 섭외를 하다가 그냥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돈도쓰고 신세지는거보다 그냥 돈만 쓰자!
사실 그냥 아무도 안데려가고 '시원하게 제가 쏠게요' 할까 생각도 했다. 그간 많이 얻어먹었고, 쏠쏠찮게 챙겨주신거도 많았어서 그정도는 못할건 아니다. 하지만 벌칙으로 그것을 수행하는것은 정말 내스타일아님. "권주를 마시지 벌주를 마시지않는다, 미리 벌주가 오기전에 권주를 마신다"는 원칙으로 살아왔다. 그래 벌칙으로 수행하느니, 그냥 사람을 써서 데려가자. 한마디로 여친을 렌탈해서 데려가자는 생각이었다. 이때 나에게 렌탈여친을 부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주신분은 나의 구여친이다. 그분은 본인이 렌탈 아르바이트를 뛰던 분이라서.. 것때매 속많이 썩였었는데 그때 덕분에 이런 아이디어를 생각해낼수 있었다. 이 순간만큼은 고마워. 네이버에 치니깐 업체는 생각보다 많이 나오더라. 가격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음. 이정도면 오케이. 가격이 생각보다 괜찮았지만 안데려갔을때 벌금조로 지불해야될 비하면 너무나도 착한 금액이었다! 실행하려고 사이트를 들여다보니 모임에 데려갈 여친과 본인이 데이트를 하기위해 부르는 여친이 섹션이 달랐다. 나는 모임에 데려갈거니깐 그쪽 섹션으로 신청했다. 어떤 분을 원하시냐길래 키 큰분, 20대 초반 딱 두개만 말씀드렸다. 여친과 그정도 정보는 비슷하게 맞춰 데려가야 할거같아서였다. 선금을 입금하고 정해진 장소를 지정하니 시간을 알려주시더라. 모임장소앞 스타벅스에서 렌탈여친과 접선했다.
내가 10분먼저 도착해서 톡을 보내니 렌탈여친께서는 자기도 도착해있단다. 여자랑 단둘이 만났는데 먼저와서 기다리는 여자를 본게 얼마만인지. 역시 비즈니스가 좋군. 렌탈여친의 첫인상은 의외였다. 생각보다 굉장히 참하고 단아해보이시는분이 나오셨다. 나도모르게 먼가 섹시한 여성분이 나오실거라고 기대했었나보다. 먼저오셔서 커피 이미 한잔 드시고 계시더라. 먼저오셔서 +1점, 커피 한잔쯤은 사드릴랬는데 미리 마시고 계셔서 까페 객단가를 신경써주시는 모습에 +1점더. 단아하고 참한 외모에서 +1점더. (물론 섹시하셨다면 +10점!) 생글생글 웃으면서 저를 반겨주셔서 +1점더. 이렇게 나한테 영업용스마일을 잘하실수 있으면 모임가서도 잘하시겠지. 역시 비즈니스가 좋아 대만족. 미모는 대충 과탑형 외모였다. 일반인이 아닌 느낌은 아니고 일반인중엔 굉장히 예쁜 느낌. 이정도면 충분하다 싶어서 모시고 가려는데, 설정을 좀 알려달란다. 자기에게 미리 알려주시면 잘 기억해서 잘 해내겠다고. 아우 너무 기특하지않나. 하지만 그런거 필요없다고 관련한 부분은 제가 책임지겠다고 이야기했더니 '아 그래요?' 라며 이전의 그 영업용스마일을 다시 지어보이시면서 따라나오시더라. 그래도 이름은 서로 알아야될거같아서 이름만 교환했다.
모임에 들어가기 전에 들어갈때만 커플분위기 내주실수 있냐고 했더니, 역시나 웃으면서 알겠다며 팔짱을 껴주시더라. '팔만 걸치는 얄팍한 가짜팔짱' 아니고 '미드로 제대로 압박해주시는 정석팔짱'. +1점더. 이분 말라보였는데 의외네.... 언젠가 본 이야기중에 남자가 그저 그전까진 그저 여사친으로 생각한 여자에게 심쿵하는 순간이 떠올랐다. 남자가 심쿵하는 순간이 그 여사친이 글래머인걸 알았을때 아니면 글래머인걸 보았을때 아니면 글래머인걸 느꼈을때라고 했던가. 나도 순간 심쿵했다. 물론 중요한건 마음이다. 정석팔짱을 껴주시는 배려심에. +1점더. 그렇게 팔짱을 끼고 둘이 등장하니깐 먼저오신분들이 정말 반갑게 맞아주시더라. 형들이야 나도 알지만, 형들이 데려오신 여자분들은 나도 처음보는 분들이었는데 대충 여자분들은 형들과 나이차이가 나는 내 또래로 보이는 분들이었다. 그 분들이 우리가 오니깐 우리를 향해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하더라. 첫질문은 이거였다.
"와 여친 너무 이쁘다. 둘이는 언제부터 만났어요?"
렌탈여친께 묻길래 내가 말을 자르고 들어갔다.
"오늘 처음봤어요."
렌탈여친께서는 긴장하신 표정이셨는데, 나의 이 답변에 뒤집어지셨다. 어떻게 설정을 해나가야하는지에 대해 걱정이 많으셨는데 긴장이 순간 풀렸겠지. 다른 사람들도 내가 하는 말이 농담인줄알고 웃어대더라. 나는 정말 계속적으로 진실만을 이야기했는데 그들은 아무도 나의 말을 믿지 않고 웃을뿐이었다. 나는 이렇게 될거라고 생각을 했기때문에 미리 말을 안맞춘것이었다. 그들도 어차피 우리에게 별로 관심가지고 물어보는거 아니니깐. 아무렇게나 대답만 해주면 충분하고 내가 진실만을 말해도 농담으로 받아들일거라 생각했다. '남친 어디가 좋냐고' 또 렌탈여친께 물어보시던데 제가 '얘 저 안좋아해요~'라고했더니 다시 빵터진다. 대충 렌탈여친분을 언니들과 아저씨들 사이에 던져놓고, 나는 다른 형이랑 놀고있었는데, 사람들이 막 렌탈여친분께 말걸려고 하고 재미없는 이야기하는데 엄청 잘 들어주시더라. 역시 비즈니스가 좋아라고 다시금 생각했다. 그리고 미리 예상했지만, 그와중에 수작과 친분의 선사이를 줄타기하는 분이 계시더라. 역시 여친이든 여사친이든 주변인물을 안데려오길 잘했어.
어느새 분위기가 무르익고 시간이 많이 흘렀다. 약정한 시간이 되어서 형들이 너무 좋아해서 연장을 할까도 생각도했는데, 그냥 형들커플의 평화를 위해 보내기로 결정했다. 정작 나는 그녀와 몇마디 못나눠봤는데.. 내가 툭툭치면서 '이제 들어가야지'라고 했더니 알겠다며 웃어주더라. 얘 좀 데려다주고 오겠다며 형들께 이야기하고, 지하철타고 가신다길래 지하철역까지 걸어서 배웅해드렸다. 이제야 둘이서 이야기해볼 시간이 나서 오늘 재미있었냐 어땠냐 정도 이야기가 오고갔고, 그분께서 설정을 안했더니 편해서 좋았다고 하시더라. 센스가 있으신거같다는 공치사도 한번 해주셨다. 그러면서 전화번호를 하나 주더라. 일이 다른때에 비해 편해서 또 할 의향이 있으며, 그때는 업체에 수수료를 떼지 않기 위해 직접 연락해달라는 이야기 정도로 받아들였다. 비슷한 일이 생긴다면 연락해볼까 정도로 생각했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럴 일은 없었다.
그리고 그때의 경험으로 재미나게 보고있다.
이 글은 '여친 빌리겠습니다' 라는 만화의 소개글입니다. 물론 발암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