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한가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
30대의 끝자락에 들어선 나에게는, 몇 년 전부터 추석은 최소 3일의 휴가였고, 올해도 특별한 일이 없었다면 그냥 그런 4일 연휴가 되었을 것이다.
이유인 즉, 결혼 한 지 벌써 8년 차에, 강아지만 셋 키우고 있는 나로서는, 설이나 추석 같은 민족 대 명절에는 움직이면 돈이요 체력낭비요 시간 낭비라, 집에서 가까운 처가에 들러 하루 정도 명절 음식을 맛보며 업무 및 강아지 육아(?)에 지친 몸을 힐링하는 시간이었을 따름이다.
올해는 여느해 와는 다르게, 휴가를 이틀 더 받아서 추석 연휴 전 이틀을 더 쉴 수 있었기에, 월요일에 출장을 다녀오고 나면 와이프와 함께 6일간 열심히 와우를 달려야지! 라는 원대한 계획을 세우고는 행복한 마음으로 추석을 기다렸지 싶다.
보통 친가가 있는 서울로 출장을 가게 되면, 부모님께 따로 연락을 드리거나 하지는 않고, 업무 및 출장을 마치고는 바로 집으로 돌아오곤 하는데.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오늘따라 잘 맞지도 않던 촉이 좋았던 건지. 출발 전에 부모님에 전화를 드렸는데, 기운 없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니, 올 추석은 평소와는 많이 다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몇 년째 병상에 계신 우리 외할머니. 내가 어렸을 때부터 일터에 계신 부모님 대신 엄마처럼 할머니처럼 키워주신 우리 외할머니가, 많이 위독하셔서 오늘쯤 돌아가실 것 같다는 이야기를 아버지에게 들었을 때만 해도, 휴가는 이미 써놨는데 이걸 다시 경조 휴가로 돌려야 하나 하는 걱정이 들었고, 오늘 출장 마치고 병원에 들를 때까지는 계시려나, 보고 갈 시간이 되려나 하는 생각을 하며 기차에 올랐는데. 한 시간쯤 걸려 도착한 서울역에 내려서 흡연 구역을 찾아가는 길에 다시 걸려온 전화에도 그저 담담했던 나는 담배만 계속 피우게 되었을까.
어렸을 때를 생각해 보면, 두 분 다 선생님이셨던 부모님 덕분에 학교 행사나 어머니들 급식 같은 일에는 주로 할머니가 오셨다. 남들은 다 젊고 이쁜(?) 엄마가 오는데 왜 나는 할머니가 오시나 같은 생각도 하면서, 우리 할머니 참 좋은 분이라고 자랑하고 다니기도 하고. 명절이면 친가에 가서 있던 시간보다, 외할머니 모시고 찾아갔던 외가가 그렇게 좋았던 것도. 병치레를 자주 하던 탓에 열이 나면 밤새 물수건 갈아주시던 기억이나, 철없던 중2병 시절에도 학교 마치고 돌아오면 집에서 기다리시는 할머니와 강아지 덕분에, 어머니보다 더 음식을 잘하셔서 도시락과 야식으로 챙겨주신 할머니 덕분에,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그런 학창 시절을 보내지 않았을까.
나이가 들고, 고등학교 대학교에 다니며 집에서 나와 살고, 군대를 다녀오고 대학원 과정을 마치면서도, 할머니는 계속 건강하시겠지, 내가 지금 바쁘니까 다음에 찾아 뵈면 되지 뭐 라는 생각으로 명절에나 찾아갔던 못난 손주인 데다, 결혼하고는 지역도 달라지면서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 하셨을 때도 다음에 가면 되지를 반복했던 나였는데. 그래도 지난 8월에 찾아 뵈었던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다음에 또 올게요 할머니 라고 했던 내 말을 못 들으셨는지, 그새를 못 기다리고 떠나신 할머니가 원망스럽기도 하고, 때마침 내리는 비가 야속하기도 하고, 참 그랬다.
장례식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외가 식구들과 정말 오랜만에 만나 근황도 묻고, 지금 만나고 나면 다음에 또 언제 보려나 헤아리던 밤을 보내고 나서, 발인까지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그다지 슬프지 않았던 탓에, 떨어져 지낸 시간이 길어서 그런가 보다, 나이가 들어서 예전보다는 더 담담해졌나 보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문득 떠오르는 할머니의 얼굴이나 목소리, 그 음식과 내음이 깊어 피곤한 몸인데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소리 죽여 울게 되는가 보다.
앞으로도 추석은 매우 좋은 3일 이상의 휴가, 연휴일 테지만. 올해만큼은 조금은 슬프고, 조금은 특별한 그런 추석이 될 것만 같은 생각에, 조금은 위로 받고 싶은 생각에. 남들처럼 잘 쓰지 못하는 글이지만, 이곳에나마 한 글자씩 끄적거리고 있나 보다.
오늘까지는 좀 더 슬퍼하고 내일부터 다시 즐거운 명절, 즐거운 휴가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아직 연휴는 4일이나 남았으니 와우 클래식 레벨업도 다시 시작하고, 강아지들이랑 가까운 곳에 놀러도 가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면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겠지. 지금의 슬픔은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겠지만, 그래도 매년 가을이면 할머니 생각으로 조금은 눈물짓고 조금은 추억하는 그런 추석이 될 수 있기를. 행복하고 즐거운 명절이 되기를.
앞으로도 늘 올해 한가위만 같아라.